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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106화 (106/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106화

경부고속도로에 설치된 투명 방음벽의 틈새를 잡고 계속해서 위로 올랐다.

간신히 벽을 넘은 뒤, 도로 위의 상황을 살폈다.

고속도로라서 그런지, 다행히 좀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설여원은 방음벽 앞에 자리를 잡고 앉으며 가방에 넣어둔 망원경부터 꺼냈다.

혁신도시 방면을 살피더니, 내 어깨를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얘기했다.

“보인다.”

“대장 좀비야?”

“아니, 대장 같진 않아. 300m 거리에서 10마리 정도 달려오고 있어.”

벌써 정찰병이 죽은 걸 파악한 건가?

하긴, 대장 좀비는 수하들의 위치가 머릿속에 표시된다고 했으니, 수하의 사망 소식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8마리의 좀비가 당했으니, 지원병력을 보낸 모양이다.

이정우의 계획대로 흘러간다.

난 방음벽의 틈새를 쥐며 설여원에게 얘기했다.

“여원아, 무슨 일이 있어도 나서지 마. 넌 들키지 않는 게 이번 역할이니까.”

“……알았어.”

설여원의 대답을 듣고 투명 방음벽을 타고 올라갔다.

스탯을 높인 뒤로 서전트 점프만 대략 3m 50㎝는 뛸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방음벽을 넘어가는 건 일도 아니었다.

방음벽을 타고 다시금 지하도로 내려온 뒤, 뻐근한 손목과 발목을 풀었다.

크르르르…… 크어어어어…….

멀찍이서 들려오는 좀비들의 울음소리.

한 차례 심호흡으로 긴장감을 가라앉히며 상황에 집중했다.

크어어어어!

오래 지나지 않아 양팔을 기이하게 흔들며 달려오는 좀비들의 인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른발을 뒤로 빼고 가볍게 가드를 올리며 전투태세를 취했다.

크어어어어!!

이윽고 코앞으로 다가온 좀비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두 눈을 부릅뜨며 있는 힘껏 주먹을 내질렀다.

쩍!!

정면으로 주먹을 맞은 좀비는 안면이 함몰되며 그대로 몸이 꺾이는 모습을 보였다.

전완수가 켜둔 버스의 상향등 덕에 좀비들의 위치를 더욱 손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가볍게 스텝을 밟으며 뒤따라오는 좀비들에게 쏜살같이 주먹을 뻗었다.

손목에서 팔꿈치로, 팔꿈치에서 어깨로 느껴지는 압력에 서서히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기 시작하고, 오감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디딤발은 가벼워지고, 뭉쳐 있던 허리 근육이 풀리며 몸의 회전반경과 유연성이 증가한다.

허벅지로 느껴지는 탄탄한 조임, 손끝으로 느껴지는 타격감, 잠들어 있던 심장이 박차를 가하고, 시야가 선명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전신의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며 혈액순환이 빨라졌다.

동체 시력이 증가한 덕에 좀비들의 움직임은 하나의 느린 영상처럼 보였다.

놈들의 움직임이 읽힌다.

양팔을 뻗으며 무턱대고 달려드는 좀비의 모습.

제아무리 좀비라도 균형을 무너뜨리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기 마련이다.

‘오른발.’

좀비의 오른발이 지면에 닿는 찰나, 재빨리 놈의 허벅지를 향해 발길질을 날렸다.

떠걱!

좀비의 오른 다리가 반대로 꺾이며 옆으로 고꾸라졌다.

쓰러지는 과정에 버스의 측면에 달아둔 칼날에 성대가 박히자, 놈은 걸쭉한 피를 토하며 물에 젖은 수건처럼 축 늘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카하악!!

곧이어 나타난 좀비의 하복부에 발길질을 가하자, 발끝으로 느껴지는 척추의 촉감과 함께 뼈가 으스러지는 감각이 느껴졌다.

치지직- 치직- 삑.

-더 온다. 우측 대로에서 20마리.

설여원의 무전을 듣고 우측을 살피자, 이전보다 거칠어진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다음 전투를 대비하기 위해 보호대의 내구도를 살폈다.

장기전이 될 것 같으니 부위별로 내구도를 아껴가며 싸워야겠다.

크어어어어어!!

20마리의 좀비는 좌표라도 보고 달려드는 것처럼,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내 앞으로 달려왔다.

대장 좀비의 수하라는 방증이었다.

카하아아악!

발치까지 다다른 좀비는 내 콧대를 향해 쩍 벌어진 입을 들이밀었다.

재빨리 상체를 숙이며 오른팔로 좀비의 갈비뼈에 주먹을 내지르고, 연이어 왼팔로 놈의 하관을 갈겼다.

놈은 턱뼈가 돌아가며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휘청거리는 좀비의 멱살과 팔을 잡고 풍차를 돌리듯이 한 바퀴 돌려 이곳으로 달려오는 좀비들에게 집어 던졌다.

뭉쳐서 달려오던 좀비들은 볼링공에 맞고 쓰러지는 볼링핀처럼 뒤로 넘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크어어어악!

하지만 쓰러지지 않은 좀비 하나가 빈틈을 파고들어 내 하복부를 노렸다.

이에 오른발을 뒤로 빼며 양손으로 놈의 머리를 붙잡았다.

그와 동시에 무릎으로 놈의 안면을 가격했다.

쩌덕!!

듣기 거북한 소리가 지하도를 울리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좀비의 이빨을 발견할 수 있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붙잡고 있던 좀비의 머리를 좌측으로 보이는 버스의 측면 칼날에 박아넣었다.

다시금 정면을 살피자, 쓰러졌던 좀비들이 일어나 동시에 달려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달려들면 나도 균형을 잡기 어렵기에, 우측으로 스텝을 밟으며 좀비들의 위치를 흔들었다.

그러자 횡대로 달려들던 좀비들은 순차적으로 달려드는 종대의 구도로 변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가장 앞에 있는 좀비의 안면에 돌려차기를 가하자, 뒤꿈치로 전해지는 저릿한 감각과 함께 좀비의 관자놀이가 함몰되며 우측 벽에 정수리를 받는 모습을 보였다.

휘둘렀던 오른발이 지면에 닿자마자 바로 뒤에 있는 좀비의 가슴에 발길질을 가하고, 우측에 있는 좀비의 턱을 추어올리듯이 팔꿈치로 가격했다.

연달아 달려드는 좀비들은 규칙성이 없기에, 재빠르게 스트레이트를 뻗으며 일사불란하게 두개골을 깨부수었다.

치지직- 칙-

-좌측 빌라촌에서 20마리!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쉬며 호흡을 가다듬고, 양손을 털며 다시금 가드를 올렸다.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겠다 이건가?

난 퍼석한 입술을 핥으며 조소를 지었다.

“언제까지 숨어 있나 보자.”

* * *

승합차에 타고 있던 전완수는 무전으로 들려오는 설여원의 목소리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정우를 쳐다봤다.

반면에 이정우는 침착하게 기다리는 모습을 보였다.

“형, 이렇게 계속 기다려요? 재형이 체력이 못 버틸 거 같은데.”

“아직이야. 기다려.”

우려의 소리에도 이정우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불안한 표정의 사람들과 달리, 이정우는 다른 생각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정우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반복하더니, 차내의 사람들을 쳐다보며 물었다.

“지도, 지도 어디 있습니까?”

이정우의 물음에 뒷줄에 있던 이덕배가 지도를 건네주었다.

이정우는 지도를 펼치며 빠르게 지형을 훑기 시작했다.

빠르게 눈을 굴리며 지형을 살피더니, 이덕배와 이현배를 쳐다보며 물었다.

“덕배 아저씨, 현배 아저씨, 소총 챙기셨죠?”

“당연히 챙겼지. 수류탄도 사람 머릿수대로 들고 왔는데.”

이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 있는 최현을 불렀다.

“현아, 어제 안심역에서 혁신도시로 이어지는 길도 확인했어?”

“시냇물 흐르는 곳까지는 확인했는데, 그 너머의 상황은 몰라요.”

이정우는 지도를 살피더니, 시냇물의 위치를 확인하고 전완수에게 얘기했다.

“완수야, 안심역에서 혁신도시로 들어가는 길 알지?”

“알긴 알죠. 거기로 가요?”

“어, 그쪽에도 지하도 있는 거 같은데, 일단 지하도 앞까지만 이동하자.”

“갑자기 왜요?”

“여원이가 무전으로 그랬잖아. 좌측이랑 우측에서 각각 20마리 정도 왔다고. 빠르게 지원 올 수 있는 좀비들은 지하도 수비하는 놈들뿐이야.”

이정우의 말에 전완수는 아, 하는 탄성을 뱉으며 핸들을 틀었다.

이덕배는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이정우에게 물었다.

“정우 학생, 소총은 왜 물어본 거야? 발포하려고?”

“그래야 할지도 몰라요. 지금 추세로 봐서는 대장 좀비가 이쪽 길로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무슨 근거로?”

“성격 때문에요.”

영문을 알 수 없는 이정우의 대답에, 이덕배는 눈꼬리를 치켜뜨며 의구심 가득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성격? 본 적도 없으면서 그놈 성격을 어떻게 알아.”

“호쾌한 성격이었으면 처음 20마리가 당했을 때 모든 병력을 끌고 나타나거나, 본인이 먼저 와서 상황을 확인했을 거예요. 그런데 계속 간 보듯이 부하들만 보내잖아요.”

“……간잡이라는 거야?”

“네, 어제부터 저희가 거슬렸을 텐데, 계속 간만 보는 거로 봐서는 얌생이 같은 성격일 가능성이 커요.”

이덕배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이현배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거랑 우리가 돌아가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저희도 혁신도시로 들어가서 고지대를 선점해야 합니다. 그 뒤에 재형이한테 빠지라고 할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야. 재형이를 이 작전에서 뺀다고? 이제 와서?”

“좀비들이 재형이를 따라갈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여기 있는 대장 좀비는 혁신도시 내에서 으스대는 걸 좋아하는 놈 같아요.”

“…….”

“수하들이 줄어들지 않으면 싸움이 끝났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때 얼굴을 보이겠죠. 그럼 움직이지 않는 수하들 사이에서 혼자 움직이는 좀비가 대장 좀비일 겁니다.”

이정우의 말에 이현배는 감탄을 터뜨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생각에 잠겨 있던 이덕배도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자네가 대표인 이유가 있구먼.”

“어디까지나 가설이에요. 만약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철수합니다.”

“하핫! 좋아 좋아, 아주 든든하구먼.”

이덕배가 이정우를 어깨를 주무르며 칭찬을 아끼지 않자, 다른 사람들도 이정우를 치켜세웠다.

하지만 이정우의 표정은 미동도 없었다.

이정우는 이덕배의 손을 잡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재형이 덕에 가능한 계획입니다. 칭찬은 재형이한테 해주세요.”

“……흠흠, 그래.”

“좀비가 보이면 섣불리 행동하지 마세요. 별동대답게 은밀하게 이동합니다.”

* * *

크어어어어!!

미처 확인하지 못한 방향에서 좀비 하나가 달려들었다.

울음소리를 듣고 다급히 고개를 돌리자, 버스 위에서 몸을 날리는 좀비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언제 버스 위로 올라간 거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재빨리 왼팔을 뻗어 놈의 성대를 붙잡았다.

그와 동시에 있는 힘껏 지면에 내리꽂았다.

쿵!!

좀비의 뒤통수가 아스팔트 바닥 부딪혀 깨지며 붉은 핏물이 흘러나왔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재빨리 상체를 일으켜 죽지 않고 꿈틀거리는 좀비의 머리를 짓밟았다.

콰직!!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으며 다시금 안개 속을 응시했다.

어느새 검푸른 빛이던 세상은 아침노을로 물들어 있었다.

감빛으로 물든 안개를 바라보며, 얼굴에 묻은 좀비의 혈흔을 닦아냈다.

치지직- 치직- 삑.

-정면 큰길에서 40마리!

설여원의 무전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적은 처음이다.

족히 90마리 이상 처리한 것 같은데, 대장 좀비는 모습을 드러낼 생각이 없었다.

슬슬 어깨가 굳어가기 시작했다.

손목도 부은 것 같고, 손끝은 얼얼했다.

정강이와 골반은 삐거덕거리는 것 같고, 허리는 자꾸만 굽었다.

몇 번이고 심호흡을 반복하며 다시금 가드를 올렸다.

40마리.

제발 이번 좀비들만 처리하면 대장이 나타나기를.

크어어어어!!

코앞으로 다다른 좀비에게 까드득 이를 갈며 발길질을 가했다.

연달아 달려드는 좀비들에게 이 악물고 주먹을 내질렀다.

턱-!

“윽!”

발밑을 확인하지 못하고 좀비의 시신에 다리가 걸리고 말았다.

앞으로 고꾸라지는 와중에도 좀비들의 위치를 살폈다.

좀비의 발끝이 두 눈에 들어온다.

난 양손으로 바닥을 짚는 대신, 세차게 몸을 비틀며 코앞에 있는 좀비의 발목을 잡아당겼다.

퍽!

“큭!”

좀비는 넘어뜨렸지만, 어깨로 느껴지는 충격에 반사적으로 신음이 터졌다.

크어어어어!!

하지만 잠깐의 여유도 허용하지 않는 좀비들.

황급히 뒤구르기로 좀비들의 손길을 회피하고, 상체를 일으키며 상황에 집중했다.

등을 적시는 꿉꿉한 핏물이 뒤통수부터 아킬레스건으로 흐르는 게 느껴졌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묘한 감촉에 한 차례 전신을 털며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내게 달려드는 좀비들도 지면에 즐비한 시신에 걸려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완전한 진흙탕 싸움.

걸음을 뗄 때마다 신발 밑창이 미끄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바닥을 적신 선혈이 겹겹이 쌓인 시신에 막혀 하수도까지 흐르지 못하고 있었다.

카하아아악!!

정면에서 달려드는 좀비에게 주먹을 내지르려는 찰나, 우측으로 보이는 내구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손목 보호대: 41%]

좀비들이 언제까지 달려들지 알 수 없는 상황에, 40%에 다다른 내구도는 위험신호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주먹을 뻗는 대신, 세차게 허리와 어깨를 비틀며 따귀를 날렸다.

짝!!

좀비는 종이 인형처럼 휘청거리더니, 버스의 측면에 달아둔 칼날에 옆구리가 뚫리는 모습을 보였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니 칼날에 박힌 채 버둥거리는 좀비.

그 모습을 보고 더는 징그럽거나, 역겹거나, 두렵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유 모를 분노만이 내 안에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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