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102화
두 달이 넘도록 홀로 철물점에 갇혀 있던 좀비.
새벽 3시경에 안개가 퍼졌으니, 가게에서 잠을 청하던 사장님이 좀비로 변한 것 같다.
가게 내부는 다른 점포들과 달리 고약한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오랫동안 방치된 좀비 때문인지, 시체 썩은 냄새가 가득했다.
반사적으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옆에 있던 설여원은 어후, 하는 신음과 함께 오른손을 휘휘 젓는 모습을 보였다.
난 왼팔로 코를 가린 채 점포 내부를 살폈다.
책상 위에 놓인 손전등 하나.
손전등을 들고 가게 내부를 찬찬히 훑었다.
벽에 걸려 있는 이름 모를 물건들, 한쪽 구석에 세워둔 다양한 크기의 철판들, 책상 옆으로 보이는 각종 나사와 용수철까지.
난 쇠뇌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지만, 철물점에 있는 물건들은 보니 박재우와 황덕록이 그토록 철물점에 가자고 노래 부른 이유를 알겠다.
두 사람에게 철물점은 장난감 가게 같을 것이다.
설여원은 바닥에 놓인 좀비 시체를 가만히 살피더니, 밖으로 질질 끌고 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어디 가?”
“이걸로 냄새 좀 지우려고. 철물점 거리 앞뒤로 뿌려두면 좀비들이 달려드는 일은 없을 거야.”
박재우와 황덕록이 물건을 챙기려면 시간이 필요하기에, 미리 좀비들의 공격을 방지하는 것도 괜찮겠다.
설여원과 함께 좀비의 시신을 끌고 나갔다.
골목의 양 끝으로 좀비의 혈액을 뿌리고, 건물의 외벽에도 덕지덕지 묻혔다.
작업을 마치고 돌아오자, 점포 앞에서 대화를 나누는 세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난 양손에 묻은 좀비의 혈흔을 바지에 문질러 닦으며 물었다.
“거기서 뭐해? 벌써 다 챙겼어?”
“재형아, 여기 생각보다 쓸 만한 물건이 너무 많다는데?”
최현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쓸 만한 물건이 없는 것도 아니고, 많아서 문제라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쳐다보자, 옆에 있던 박재우가 얘기했다.
“이거 오늘 안에 다 들고 가는 건 무리고, 며칠 나눠서 움직여야 할 거 같다. 들고 온 가방도 부족하고.”
“필요한 것만 챙겨서 가자.”
“그러니까 필요한 게 너무 많다고. 웬만한 건 여기 다 있어.”
어떡하지?
오늘 안에 깨끗하게 털고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난 머리를 긁적이며 설여원을 쳐다봤다.
설여원도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하자. 오늘은 작은 부품만 챙기고, 내일 다시 와서 큰 물건 옮기는 게 어때?”
설여원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이게 최선인 거 같네. 오늘은 이찬혁 씨 아내도 찾아야 하니까.”
이찬혁의 아내라는 말에 최현은 손가락을 튕기며 얘기했다.
“안 그래도 위치 파악 끝났어.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도 아는 곳이더라고.”
“어디야?”
“여기 철물점 거리 뒤편으로 들어가면 한 줄로 쭉 이어진 빌라들 있거든.”
“한 줄?”
“좀 특이하지? 다른 빌라촌이랑 구조가 달라. 앞뒤로 도로가 있고, 도로 사이에 빌라들이 있어.”
이게 무슨 말이야.
중앙차로에 빌라가 있다는 건가?
공사허가가 나와?
최현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한쪽 방향을 가리키며 얘기했다.
“저쪽으로 100m 거리. 가까워.”
설여원과 최현을 데리고 가는 게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지만, 이곳에 박재우와 황덕록을 두고 가는 게 마음에 걸린다.
난 잠깐의 고민 끝에 설여원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여원아, 넌 여기서 재우랑 덕록이 지켜줘.”
“나 없이 둘이 간다고? 앞도 못 보면서 어떻게 찾으려고.”
“재우랑 덕록이를 여기 두고 움직일 순 없잖아. 현이가 길도 아니까 괜찮을 거야.”
“이찬혁 씨 아내가 다른 곳으로 이동했으면 어쩌려고?”
그러자 옆에 있던 최현이 입을 열었다.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왜.”
설여원이 뚱한 표정을 지으며 묻자, 최현은 이마를 긁적이며 얘기했다.
“그…… 아무래도 임신하신 것 같아.”
“그런 것도 알 수 있어?”
놀란 눈으로 최현을 쳐다보자,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얘기했다.
“둘이 도망치는 장면을 봤는데…… 부인이 아랫배를 잡고 뛰더라고. 만삭 같았어. 그리고…….”
최현은 말끝을 흐리더니,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찬혁 씨의 주마등을 본 거 같아. 살아생전의 기억이었는데, 제일 먼저 보인 게 부인이랑 산부인과 들어가는 모습이었어.”
“…….”
“아마 이찬혁 씨 부인은…… 지금도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리겠지.”
최현의 말을 듣고 설여원을 쳐다보자,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 숙였다.
임신이란 말에 생각이 많아진 모양이다.
뒤에 있던 황덕록도 씁쓸한 표정을 짓더니, 세차게 혀를 차며 읊조렸다.
“제 한 몸 가누기도 힘든 세상인데…….”
“그래서 뭐, 임신했으니 데려갈 수 없다는 거야?”
설여원이 대뜸 인상을 찌푸리며 쳐다보자, 황덕록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격하게 손사래 쳤다.
“아니 대단하다는 거지. 내가 그런 쓰레기로 보이나?”
“……미안, 나도 모르게 흥분했네.”
설여원의 빠른 사과로 상황은 일단락됐다.
이래서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황덕록이 말끝을 흐리니, 이를 보고 부정적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난 씁쓸한 마음을 가다듬으며 얘기했다.
“현이랑 나랑 둘이 다녀올게. 너희는 필요한 물건 챙기고 있어.”
설여원은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더니, 결국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느새 태양이 기울기 시작했다.
앞으로 2시간 내에 해가 떨어질 것이다.
이에 박재우와 황덕록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작은 부품만 챙기고, 우리 돌아오면 바로 출발할 수 있도록 대기해 줘.”
“알겠어.”
보호대의 내구도를 살피자, 다시금 100%로 회복된 모습을 보였다.
최현은 카타나의 날을 살피며 손목과 발목을 풀었다.
긴장되는 마음을 심호흡으로 달래고, 최현과 함께 빌라로 이동했다.
* * *
언제나 선두에서 브리핑을 해주던 설여원이 없어서 그런지, 오감이 예민해지는 것을 느꼈다.
작은 소리에도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사방을 경계하게 되었다.
최현도 이를 느꼈는지, 속삭이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이런 느낌 오랜만이네. 왜 이리 긴장되냐.”
“길은 제대로 오고 있는 거 맞지?”
“맞아. 저 앞에 지하도 지나면 보일 거야.”
왕복 2차선의 지하도.
햇빛이 들지 않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옆에 있던 최현은 가방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최현이 꺼내 든 것은 손전등이었다.
그 실낱같은 빛을 따라 지하도로 들어섰다.
크르르르…….
빛을 발견한 몇몇 좀비들이 목젖을 갈기 시작했다.
소리는 들리는데, 어디 있는 거지?
뒤이어 놀란 최현이 손전등의 전원을 끄고 말았다.
이에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얘기했다.
“켜, 빨리 켜.”
“빛 보고 달려들면 어떡해.”
“이미 들켰으니 빨리.”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까드득 이를 갈며 성을 냈다.
딸- 칵.
다시금 손전등을 켜자, 3m 앞까지 다가온 좀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좀비에게 살점을 물어뜯겼을 것이다.
난 재빨리 스텝을 밟으며 좀비의 안면에 주먹을 내리꽂았다.
퍽!!
눈앞의 좀비를 처리하고 옆에 있는 최현에게 외쳤다.
“좀비들 있는 방향으로 불빛 비춰!”
크어어어어어!!
소리를 지르자, 지하도에 있던 좀비들도 덩달아 소리치며 이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고작 20m 길이의 지하도가 이렇게 길게 느껴질 줄이야.
최현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가까운 좀비들에게 빠르게 불빛을 비추기 시작했다.
난 예민해진 감각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며 불빛을 따라 쉴 새 없이 주먹을 내질렀다.
타닷-
카하악-!
좌측에서 갑작스러운 발소리와 함께 좀비들 특유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사각지대에 있던 좀비인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좌측으로 시선을 돌리자, 새까만 손이 내 팔뚝으로 날아드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재빨리 뒷걸음질 치며 거리를 벌리자, 손전등의 불빛이 좌측으로 날아들었다.
반사 신경을 높이지 않았다면 그대로 물릴 뻔했다.
뻑!!
좌측의 좀비에게 있는 힘껏 발길질을 가하자, 놈은 그대로 고꾸라지며 전신을 꿈틀거렸다.
망설임 없이 뒤통수를 지르밟고, 정면에서 달려드는 좀비들에게 연달아 스트레이트를 뻗었다.
대략 7마리 정도 처리했을까?
더는 달려드는 좀비가 없었다.
난 거칠어진 숨을 몰아쉬며 청각을 곤두세웠다.
더는 좀비의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가브리엘이 없어도 크게 지장이 없을 줄 알았는데,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건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상당한 피로를 요구했다.
최현은 손전등으로 사방을 비추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야, 돌아가서 설여원 데려올까?”
“지하도만 지나면 빌라라며.”
“아니…… 그래도 이건 너무 위험한데.”
“다시 돌아가는 것도 일이야. 빨리 찾아서 돌아가자.”
최현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끝내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20m 길이의 지하도를 벗어나자, 다시금 새하얀 안개가 펼쳐졌다.
안개가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지하도를 벗어나자 시계가 5m나 되었다.
최현은 주변 지형을 살피더니, 11시 방향을 가리키며 얘기했다.
“저쪽, 가로질러 가자. 어차피 차도 없는데 신호 지킬 필요 없잖아.”
최현의 말대로 2차선에 달하는 도로를 건너자, 서서히 빌라의 테두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빌라를 중심으로 양옆에 위치한 차도.
정말 이런 곳에 빌라가 있을 줄이야.
앞뒤로 건널목이 있으면 편의점 갈 때마다 신호를 기다려야 되는 건가?
소음도 심할 텐데.
여러 잡념이 머릿속을 배회한다.
최현을 따라 30m 정도 나아가자, 상아색 외벽의 빌라 하나가 나타났다.
최현은 빌라의 출입구를 유심히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여기가 이찬혁 씨 마지막 기억이야.”
최현에게 뒤로 오라고 한 뒤, 발소리를 죽인 채 입구로 들어섰다.
자욱한 먼지가 내려앉은 계단으로 사람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대략 230㎜ 정도 되는 발자국 크기.
발자국을 따라 계속해서 위로 오르자, 어느새 빌라의 옥상까지 다다랐다.
긴장되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조심스레 옥상 철문을 열고 들어갔다.
뒤따라 들어온 최현은 좌우를 살피더니,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망한 거 같은데?”
사람이 없다.
분명 여기에 이찬혁의 아내가 있어야 하는데…….
발자취를 찾기 위해 옥상을 샅샅이 살핀 결과, 옥상 출입구의 뒤편으로 낡은 계단이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계단을 따라 위를 쳐다보자, 자그마한 옥탑방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최현은 내 곁으로 다가오며 옥탑방을 쳐다보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저기 있겠네.”
난 최현의 말을 듣고 옥탑방을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옥탑방의 방음이 그렇게 좋은가?
옥상 문이 열리는 소리도 충분히 들렸을 것이고, 최현의 목소리도 들렸을 것이다.
그런데 얼굴을 내비치지 않는 이유가 뭘까.
생각을 반복한 결과, 하나의 결과가 도출되었다.
좀비한테만 쫓기는 게 아니라면?
난 퍼석한 입술을 핥으며 속삭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현아, 네가 봤다는 기억 말이야. 혹시 경찰들의 모습도 보였어?”
“당연히 봤지. 퀘스트 이름부터 타락한 경관이잖아.”
“무기는, 확인했어?”
“무기는 못 봤어.”
오는 길에 봤던 경찰서에서 권총과 탄약은 전부 사라진 상태였다.
그리고 이번에 생성된 퀘스트 타락한 경관.
만약 두 가지 상황에 연결고리가 있다면, 이 퀘스트의 난이도가 A로 설정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타락한 경관들이 권총을 소지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경관들과 함께 있던 이찬혁과 그의 아내는…… 권총을 가지고 탈출했을 가능성이 높다.
난 눈썹을 긁적이며 최현에게 얘기했다.
“현아, 넌 여기 있어.”
“왜?”
“왠지…… 운 나쁘면 총 맞을 거 같다.”
최현은 어벙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이에 싱겁게 웃으며 최현의 어깨를 토닥이고, 한 차례 심호흡과 함께 조심스레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 위를 흘깃거리며 올라가자, 옥탑방 내부에서 들리는 잔잔한 발소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최현과 나를 경계하는 모양이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까.
무턱대고 방문을 열면 총을 쏘거나 둔기를 휘두를 것 같은데.
일단…… 경계심이 최대치에 달한 여자부터 진정시켜야겠다.
난 가볍게 목을 가다듬으며 물었다.
“안에 계십니까? 구조하러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