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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100화 (100/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100화

전완수는 현재 시각을 살피며 얘기했다.

“아직 오전 11시니까, 지금 바로 이동하죠.”

“여기서 안심역까지 얼마나 걸려?”

“다 왔어. 버스 타고 이동하면 3분 거리야.”

“그 사이에 청천주유소 있는 거지?”

“어, 그리고 청천주유소 지나서 쭉 들어가면 차량 튜닝숍 있어.”

전완수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다들 각자 위치로 이동하죠. 늦기 전에 튜닝숍 안전부터 확보하고, 가능하면 철물점까지 도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이정우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설여원과 정진영, 최현, 윤혜리, 김희연을 데리고 승합차로 돌아갔다.

모두가 차에 탑승하는 걸 확인한 뒤, 전완수는 비상등을 점멸하며 서서히 액셀을 밟았다.

* * *

청천주유소에서 연료를 확보하고 곧장 튜닝숍으로 향했다.

튜닝숍은 전완수의 말대로 가까운 거리에 있었고, 종종 보이는 한두 마리의 좀비를 제외하면 위협적이지 않았다.

차량을 끌고 오지 않으면 굳이 발을 들일 필요가 없는 곳이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좀비의 숫자가 많지 않았다.

수색팀이 일사불란하게 좀비를 처리하는 동안 수비팀은 튜닝숍의 입구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다.

박재우와 황덕록은 어디서 구했는지 몰라도, 기다란 가시철망을 들고 와서 바리케이드에 설치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디서 구했냐고 묻자, 박재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얘기했다.

“이거? 상가 지역 담벼락에 있는 거 뜯어왔지.”

너무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니 할 말이 없다.

그런데 가시철망으로 좀비들을 저지하는 게 효과적일까?

의구심 가득한 표정으로 철망을 쳐다보자, 박재우는 싱겁게 웃으며 물었다.

“뭐야 그 표정. 못 믿겠나?”

“이게 효과가 있을까? 좀비들은 고통을 못 느끼는데.”

“기다려봐. 아직 완성된 거 아니니까.”

뒤이어 황덕록은 집게를 들고 와서 철망에 연결하는 모습을 보였다.

황덕록은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내 곁으로 걸어오며 얘기했다.

“앞으로는 들어올 때 무조건 무전치고 와. 통구기 되기 싫으면.”

설마…… 이거 전기 철망인가?

멍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박재우와 황덕록은 머리를 맞대고 상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바리케이드에 구리스를 칠하자는 둥, 전압을 높여야 한다는 둥, 작전 모의의 현장이었다.

뒤이어 튜닝숍에 있던 윤혜리가 이쪽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다들 들어와서 점심 먹고 해요!”

윤혜리의 목소리를 듣고 박재우는 헤벌쭉 웃으며 튜닝숍으로 향했다.

쫄래쫄래 뛰어가는 모습이 딱 봐도 사랑꾼의 모습이었다.

황덕록은 박재우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저거…… 아무래도 연애하는 거 같지?”

“모르겠는데?”

시선을 회피하며 오리발을 내밀자, 황덕록은 허탈하게 웃으며 얘기했다.

“밥이나 먹자.”

* * *

실개천 너머에서 구출한 40대 여자 이민정.

10세 미만 아이들의 정신적 지주와도 같았다.

최근 들어 밥이 맛있어졌다고 생각했는데, 들어보니 이민정의 솜씨라고 한다.

그녀는 윤혜리와 김희연을 도와 매번 맛있는 식사를 차려주었다.

따뜻한 된장국을 깨끗하게 비우고 입맛을 다시자, 이민정은 내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국 더 줄까요?”

“아, 말씀 편하게 하셔도 돼요.”

“그럼…… 잠깐만 기다려. 국 더 줄게.”

“감사합니다.”

근력을 높인 뒤로 기초대사량이 늘었는지, 예전보다 먹는 양이 많아졌다.

난 순식간에 밥 두 공기를 비우고, 현재 시각을 살피며 얘기했다.

“철물점은 저랑 여원이, 현이, 재우, 덕록이가 갔다 올게요. 다른 분들은 수비 강화하고 완수가 차량 개조하는 거 도와주세요.”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박재우와 황덕록의 표정으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난 두 사람의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

“여기 남을 거면 지금 얘기해. 필요한 자재 알려주면 우리가 가져올게.”

“아니다, 괜찮아, 우리가 직접 가는 게 빠르지.”

박재우는 양손을 털며 긴장감을 떨쳐냈다.

윤혜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박재우를 쳐다보자, 그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옆구리에 차고 있던 헌팅 나이프를 박재우에게 건네며 얘기했다.

“할 수 있지?”

“수비팀에 있으면서 덕록이랑 만날 연습했으니 걱정하지 마.”

박재우는 헌팅 나이프를 말아쥐며 뻐근한 목덜미를 풀었다.

황덕록은 바닥에 내려둔 쇠뇌를 어깨에 메고,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쇠파이프까지 챙겼다.

설여원과 최현도 준비를 마치고, 내 얼굴을 쳐다보며 신호를 기다렸다.

난 훅, 하고 숨을 뱉으며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얘기했다.

“다녀올게요. 저희가 무전 보내기 전에는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해요.”

* * *

튜닝숍을 빠져나와 발소리를 죽인 채 비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일찍이 지도를 통해 철물점의 위치를 확인했기에, 움직임에 망설임은 없었다.

우측의 한적한 골목을 따라 얼마나 이동했을까.

서서히 물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뒤에 있던 박재우는 물소리를 듣고 내게 얘기했다.

“냇가 지나서 좌측으로 들어가야 돼.”

난 고개를 끄덕이며 설여원에게 물었다.

“냇가 쪽에 좀비들 보여?”

“안 보여. 없는 거 같아.”

“잠시만.”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좀비는 없지만, 숨어 있는 좀비가 있을지도 모른다.

난 청각을 곤두세운 채 인기척이 느껴질 때까지 기다렸다.

하지만 냇물 소리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좀비가 없는 건지, 좀비들의 울음소리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자, 옆에 있던 설여원은 한발 앞서 냇가로 이동했다.

울퉁불퉁한 도로의 표면.

깨진 아스팔트 조각과 색이 발한 과속 방지턱이 여럿 보였다.

냇가를 지나 좌측의 일방통행로를 따라 얼마나 이동했을까.

설여원은 내 팔을 잡으며 벽으로 붙으라는 손짓을 보였다.

황급히 벽에 붙으며 설여원을 쳐다보자, 그녀는 속삭이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앞에 좀비들 셋.”

“거리는.”

“50m 앞에 슈퍼 있는데, 그 앞에 있어.”

“슈퍼 옆에 골목길 있어?”

설여원은 고개만 빼꼼히 내민 채 슈퍼를 바라보더니,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슈펴 옆에 전봇대 윗부분만 보이는 거로 봐서는 골목길 있는 거 같아.”

“그럼 골목에 더 있을지도 모르겠네.”

주변은 온통 단층 건물뿐이라서, 이전처럼 옥상으로 이동하는 건 불가능했다.

잠깐의 고민 끝에 설여원에게 물었다.

“슈퍼 지나서는 좀비 없는 거지?”

“어, 저기만 지나면 좀비들 없어.”

근처에 좀비가 없다는 건 슈퍼 쪽에 좀비들을 불러들이는 뭔가가 있다는 건가?

난 두 주먹을 쥐었다 펴며 얘기했다.

“다들 여기서 기다려.”

“어쩌려고?”

“정리하고 올게.”

“너 혼자? 만약 변종까지 있으면 어쩌려고.”

“없어.”

“그걸 어떻게 확신해.”

“변종이 있으면 좀비들이 저렇게 뭉쳐 있지 못해.”

“……왜?”

“좀비들이 저기 뭉쳐 있다는 건 먹을 게 있다는 거야. 변종이 양보할 턱이 없잖아.”

짧은 시간 내가 내린 판단이었다.

일전의 경험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처음 학교를 벗어나 이예정의 일기를 발견했을 당시, 화장터에 뭉쳐 있는 좀비들이 좋은 예시였다.

그곳에 변종이 없었기에, 좀비들이 한데 모여 시신을 뜯어먹은 것이다.

반면에 금호강 건너에는 변종이 있었고, 좀비들이 사방에 즐비한 걸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좀비의 머릿수가 많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변종을 피해 흩어진 것이라 생각되었다.

설여원은 곰곰이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이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내심 노파심이 드는지, 내 팔을 잡으며 물었다.

“네 말대로 변종이 없다고 쳐. 하지만 골목에 좀비들이 꽉 차 있으면?”

걱정해 주는 건 고맙지만, 아무 생각없이 나서는 건 아니었다.

변종도 없고, 좀비들이 한 방향에서 달려드는 비좁은 골목이라면 내게 유리하다.

난 싱겁게 웃으며 대답했다.

“좀비 카운트 늘릴 기회거든.”

설여원은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더니, 끝내 팔을 놓아주며 얘기했다.

“위험하면 이쪽으로 뛰어. 쇠뇌 조준하고 있을 테니까.”

“알았어.”

정면 50m.

내겐 새하얀 안개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설여원은 3마리의 좀비가 있다고 했다.

천천히 접근하면 놈들의 후각에 발각될 위험이 있으니, 전력으로 달려서 단숨에 처리해야 한다.

한 차례 심호흡과 함께 땅을 박차며 튀어나갔다.

좌우로 쏜살같이 갈라지는 안개와 귓바퀴를 때리는 바람 소리.

허벅지로 느껴지는 탄탄한 힘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지금의 신체 능력이라면, 평범한 좀비들은 내 적수가 되지 못할 것이다.

크르르르르…….

뒤늦게 인기척을 느낀 좀비들이 목젖을 갈기 시작했다.

덕분에 놈들의 위치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6m 앞, 1시 방향.’

좀비의 위치가 머릿속으로 그려진다.

뒤이어 순식간에 드리우는 검은 인영을 보고, 달려온 가속을 이용해 그대로 날아차기를 가했다.

떡!!!

날아차기를 전통으로 맞은 좀비는 머리가 90도로 꺾이며 고꾸라지는 모습을 보였다.

우측에 있던 좀비가 목젖을 갈려고 하기에, 착지하자마자 상체를 틀어 스트레이트를 뻗었다.

쩍!!

좀비의 콧대가 내려앉고, 후드득 떨어지는 치아가 한 편의 느린 영상처럼 두 눈에 들어왔다.

피해는 입혔지만, 자세가 흐트러진 탓에 제대로 힘을 싣지 못했다.

좀비가 휘청거리며 상체를 숙인 지금, 재빨리 오른발을 치켜들어 단두대처럼 정수리를 내려찍었다.

파각!!

좀비의 안면이 아스팔트 바닥에 찍히며 수박 터지는 소리와 함께 질퍽한 뇌수가 흘러나왔다.

‘남은 한 놈은?’

분명 세 마리라고 했는데?

크어어어!

두 눈을 부릅뜨고 좌우를 살피는 찰나, 슈퍼마켓 입구에서 달려드는 좀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양팔을 휘저으며 달려오는 좀비.

재빨리 놈의 오른팔을 쥐고 엎어치기를 했다.

아스팔트 바닥에 정확히 내리꽂았는데, 놈은 전신을 좌우로 흔들며 일어나려는 시늉을 보였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숨도 못 쉬고 헉헉거려야 정상이지만 역시 좀비는 좀비인가?

놈이 상체를 반쯤 일으킨 순간, 축구공을 차듯이 놈의 안면에 발길질을 가했다.

경추의 뼈마디가 틀어지는 소리와 함께 좀비의 하관이 함몰되고, 그대로 엎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타닥- 타닷-

곧 등 뒤로 들려오는 발소리.

한 걸음 물러서며 전봇대가 있는 골목을 돌아보자, 다수의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안개 때문에 정확한 숫자는 파악할 수 없지만, 발소리로 보아 최소 10마리 이상.

사람 두세 명이 간신히 들어가는 골목이기에, 난 가볍게 스텝을 밟으며 자세를 잡았다.

어깨너머로 배운 권투지만, 기본기는 충분히 배웠다.

또한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태권도는 배우지 않았는가?

상황에 집중하며 모든 감각을 예리하게 벼렸다.

크어어어어!!

뒤이어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좀비들의 발소리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안개 너머로 보이는 좀비의 인영을 보고, 가장 앞에 있는 놈에게 있는 힘껏 주먹을 뻗었다.

빠각!!

손끝으로 느껴지는 묵직한 타격감.

정확하게 주먹이 들어갔을 때, 좀비의 뼈가 으스러지는 특유의 감각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빠르게 스텝을 밟으며 뒤따라오는 좀비들에게 쉴 새 없이 주먹을 날렸다.

주먹을 뻗을 때는 치고 빠진다는 느낌이 아니라, 뚫고 들어간다는 마음으로 뻗으라고 배웠다.

하체와 허리, 어깨를 이용해 양손을 번갈아 가며 스트레이트를 꽂았다.

쓰러지지 않고 버티는 놈이 있으면 갈비뼈에 훅을 날린 뒤, 반대편 손으로 하관을 날렸다.

예전엔 복부를 맞고 꿈쩍도 하지 않던 좀비들이지만, 지금은 갈비뼈가 으스러지며 상체가 틀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덕분에 복부를 가격해도 충분한 타격을 입힐 수 있었고, 놈들의 균형을 흩뜨리는 데 효과적이었다.

순식간에 열댓 마리의 좀비를 처리하고, 가드를 올린 채 골목을 응시했다.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모든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 숨 쉬는 기분.

어느새 나는…… 더 많은 좀비를 갈망하고 있었다.

좀 더 때려눕히고 싶은데, 더는 접근하는 좀비가 없었다.

인기척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가드를 내리며 폐부에 들어찬 탁한 숨을 내쉬었다.

지금의 감정을 뭐라고 해야 좋을까.

안도감이라고 해야 좋을지, 아쉬움이라고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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