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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97화 (97/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97화

전완수의 말에 생존자들은 서로 눈치 보며 함묵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던 설여원이 입을 열었다.

“완수 말이 맞아요. 지금은 재형이가 살아 돌아왔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니에요?”

“웬일로 네가 내 편을 다 들어주냐.”

“편드는 거 아니야. 맞는 말 하니까 맞다고 하는 거지.”

전완수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정우는 가만히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이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물었다.

“재형아, 수류탄 터진 뒤에 꿈 같은 걸 꿨다고?”

“네, 잘은 기억이 안 나는데…… 꿈을 꾼 것 같아요.”

“꿈속의 존재랑 무슨 얘기 했는지 기억나?”

“그걸 모르겠어요. 가물가물해요.”

그러자 숟가락을 들고 있던 정진영이 입을 열었다.

“야, 혹시 그거 아니야? 사후 세계에 슬쩍 들어갔다가 나온 거.”

“…….”

이정우가 뚱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정진영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아니 왜, 예전에 TV나 영화 보면 그런 거 있잖아. 심장이 잠깐 멎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사후 세계를 보고 왔다고 그러잖아.”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하던가?

의견이 많아질수록, 화제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이를 이정우도 느꼈는지,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이 얘기는 나중에 하자. 명확한 정보도 없고, 정말 꿈일 수도 있으니까.”

“꿈이 아니면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정진영이 되묻자, 이정우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라스트아크의 제작자를…… 만나고 온 건 아닐까 싶어서.”

“제작자? 재형이가 꿈속에서 신이라도 만나고 왔다는 거야?”

“재형이는 라스트아크를 클리어한 사람이고, 재생 능력이 이제 와서 활성화된 것도 그렇고, 레이첼의 도움 없이 신체가 너무 빨리 회복된 것 같아서.”

“흠……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정진영이 수긍하는 모습을 보이자, 이를 지켜보던 박재우가 얘기했다.

“저희끼리 얘기해 봐야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이런 얘기는 그만하는 게 어떨까요?”

박재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다른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다.

덩달아 주변 생존자들의 표정을 살피자, 다들 혼란스러워 보였다.

결인들이면 몰라도, 다른 사람들은 우리의 대화에 쉽게 끼어들기 어려울 것이다.

이에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재우 말이 맞아요. 지금은 이런 얘기보다 다음 계획을 세우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계획도 좋은데, 정리부터 하는 게 어때?”

황덕록의 물음에 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무슨 정리?”

“좀비랑 변종 말이야. 라스트아크의 배경이랑 많이 다르다며.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를 정리해서 가지고 있는 게 좋을 거 같은데.”

하긴,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오긴 했다.

현재 우리가 아는 정보를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 들어서며 좀비들의 감각은 1.5배 증가했고, 이는 언제든 좀비들의 신체 능력과 감각이 임의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는 걸 뜻한다.

변종은 알파, 베타, 감마와 같은 라스트아크의 설정 외에 미확인 변종이 나타났으니, 추후 베타 변종이 나타났을 때 또 다른 미확인 변종이 나타날 수 있다는 걸 뜻한다.

또한 죽은 조성훈의 말이 사실이라면, 강화된 대장 좀비들은 우리가 아는 좀비와 판이한 성질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일행에게 들려주자, 고심에 잠겨 있던 이정우가 입을 열었다.

“베타 변종은 원래 두 번째 에피소드 후반이나 세 번째 에피소드에 나오는 설정이지?”

“네, 하지만 알파 변종도 발생시기가 첫 번째 에피소드였으니, 베타 변종도 언제 나올지 몰라요.”

“베타 변종의 특징이 뭐였지?”

“개구리요.”

“아, 맞아. 개구리.”

알파 변종의 별명이 거미였던 것처럼, 베타 변종의 별명은 개구리였다.

개구리처럼 뛰어다니고, 혓바닥이 길어서 사람들을 낚아간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설여원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것도 알파처럼 단단해?”

“알파 변종이 탱커라면 베타 변종은 서포터 느낌이야. 방어력이나 공격력은 약하지만 진영을 망가뜨리고 혼란을 주지.”

“먼저 발견해서 처리하면 그만이잖아.”

“가브리엘을 플레이했던 사람들은 쉽게 처리했을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은 베타 변종의 위치도 모르고 죽어.”

설여원은 그제야 아, 하는 탄성을 뱉으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안개 속에서 쏜살같이 튀어나오는 혓바닥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혓바닥만 더럽게 단단해서 쉽게 잘리지도 않고, 끌려가는 도중에 좀비들에게 물어뜯기는 경우가 허다했다.

뒤이어 최현이 오른손을 들며 물었다.

“결국 변종도 대장 좀비가 인간을 섭취하지 못하면 나타나는 놈들인데, 아직 살아남은 대장 좀비가 있을까? 확률적으로 너무 희박하지 않아?”

“그건 그렇지.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남은 대장 좀비가 있다면…… 진화했을 가능성이 높아.”

“진화? 저번에 조성훈이 얘기했던 그거? 신체 능력 향상이랑 수하들 머릿수 증가였나?”

“맞아. 만약 진화한 대장 좀비라면…… 일반 변종보다 위험할 수도 있어.”

“신체 능력이 향상해 봤자 1.3배라며. 그 정도면 해볼 만한 싸움 아니야?”

“충분한 탄약이 있으면 가능하지. 하지만 육탄전으로 싸운다면 체력이 못 버틸 거야.”

최현은 머리를 긁적이며 뚱한 표정을 짓더니,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 최현의 옆에 있던 전완수가 입을 열었다.

“재형아, 좀비들 특징도 명확하게 알아야 할 거 같다.”

“왜, 달라진 거 있어?”

“감각이 1.5배 증가했으면 시야 30m, 청각 45m, 후각 45m라는 말인데, 지금 좀비들 청각은 100m가 그냥 넘는 거 같지 않아?”

“45m라는 기준은 어디까지나 발소리를 인지하는 범위야. 실험한 장소가 학생회관이었잖아.”

“아.”

“1.5배 증가하기 전에도 파열음이나 변종의 울음소리 같은 건 멀리서 인지했어. 또 장소가 울리는 곳인지, 밀폐된 곳인지, 그런 부분에서도 차이가 있고.”

이덕배를 구출할 당시에도 전완수가 경적을 울리자 100m 밖의 좀비들이 몰려왔다.

하물며 총성과 폭음이라면 좀비들에게 나 여기 있어요, 하고 알리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난 일행의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또 궁금한 거 있으면 지금 얘기해요.”

다들 어느 정도 정리가 됐는지, 질문하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난 뻐근한 목을 풀며 얘기했다.

“희연아.”

“네?”

“퀘스트 어떻게 됐어?”

“아, 저도 완료됐어요. 현이 오빠랑 완수 오빠가 받은 퀘스트랑 똑같아요.”

“아크 탑승?”

“네.”

아크 입장권과 탑승권.

대체 무엇에 대한 탑승권인지 몰라도, 메인 퀘스트를 완료해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

다음으로 확인할 사람이…… 박재우와 황덕록의 본가였나?

난 두 사람을 쳐다보며 물었다.

“재우랑 덕록이, 너희 본가가 수성구라고 했지?”

“어.”

“정확한 위치가 어디야?”

“황금동이라고, L아파트로 도배된 동네 있어.”

“고가도로 지나서 고속도로나들목으로 올라가는 게 가장 빠른 길이지?”

“아니, 제일 빠른 길은 아니야. 여기 금호강 건너의 상황을 모를 때 그렇게 가야 한다는 거였지.”

박재우의 말에 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럼 지금은 달라?”

“여기 산업도록 방면으로 쭉 올라가면 고속도로로 빠지는 길이 있어. 빠른 건 거기가 더 빨라.”

“좋아, 그럼 그쪽으로 해서…….”

“잠깐만.”

그 순간,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전완수가 다급히 오른손을 들며 말을 끊었다.

전완수를 쳐다보자, 그는 헛기침하며 입을 열었다.

“그…… 가능하면 안심 방면으로 이동하는 건 어때?”

“안심역? 대구로 나가자고?”

굳이 안심역을 들러야 하나?

안전한 길이 있는데, 굳이 위험한 길로 들어설 필요는 없다.

내가 못마땅한 표정을 짓자, 전완수는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역시 안 되려나?”

그러자 맞은편에 있던 박재우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안심으로 나가면 완전히 도심으로 들어가는 거야. 좀비들이 여기랑은 비교도 안 되게 많은데, 굳이 안심으로 가자고?”

“안심역 근처에 자동차 튜닝숍이 있거든.”

“튜닝?”

“어, 좀비카를 보강하고, 고장 난 부분도 고쳐야 돼. 정비소가 필요해.”

“우리 학교 앞에도 정비소 있잖아.”

“거긴 간단한 정비만 가능한 곳이야. 뜯어고치는 건 튜닝숍만큼 좋은 곳이 없거든. 장비도 많고.”

전완수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이정우와 내게 쏠렸다.

난 이정우를 쳐다보며 물었다.

“형 생각은 어때요?”

“보강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좀비카 하나 때문에 안심역으로 가는 건 위험해. 차라리 학교 앞 정비소에서 간단하게 수리하고 이동하는 게 좋지.”

“나도 정우 형 의견에 찬성. 학교 앞에서 정비하고…….”

“아니 잠깐만.”

이번엔 박재우가 내 말을 끊으며 곰곰이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였다.

할 말이 있으면 미리미리 하지.

사람 민망하게 돌아가면서 말을 자른다.

박재우를 쳐다보자, 그는 황덕록을 쳐다보며 물었다.

“야, 덕록아. 안심역 앞에 철물점 있지 않나?”

“철물점? 철물점이야 어디든 있지.”

“아니, 철물점만 쭉 늘어선 곳 말이야. 철물 단지라고 해야 하나? 철물점 골목?”

황덕록은 관자놀이를 누르며 기억을 되짚더니, 손가락을 튕기며 입을 열었다.

“아, 어딘지 알 거 같다. 안심이 아니고 각산이지.”

“안심이나 각산이나. 거가 거지.”

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목덜미를 주무르며 물었다.

“철물점은 왜?”

“쇠뇌 때문에.”

“쇠뇌?”

“볼트도 더 만들어야 하고, 연사할 수 있도록 개조하려면 필요한 게 좀 있어서.”

일전에 박재우와 황덕록이 만든 쇠뇌 설계도.

부품을 구하지 못해서 진전이 없는 상태였다.

난 곤란한 마음에 구레나룻을 긁적이며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다.

다들 선뜻 나서지 못하고, 이정우와 내 대답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지?

생존자가 너무 많아졌다.

이 많은 사람을 데리고 안심역으로 이동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 같은데.

내가 곤란한 표정을 짓자, 가만히 앉아 있던 박성훈이 입을 열었다.

“여기서 정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당연히 여기서 정해야죠.”

“아니요. 각자 목적지 말입니다.”

박성훈의 의견에 머릿속이 멍해지고, 말문이 막혔다.

각자 목적지?

설마…….

그러자 옆에 있던 이정우가 대신 입을 열었다.

“저희랑 흩어지겠다는 겁니까?”

“그게 서로 좋지 않겠습니까?”

박성훈은 알고 있다.

우리가 퀘스트를 완료하기 위해 여러 지역을 돌아다녀야 한다는 것을.

결인들만 해도 10명.

거기에 실개천 너머의 생존자를 합치면 25명.

금호강 건너의 생존자와 군인들까지 합치면…… 웬만한 쉘터의 생존자보다 많을 것이다.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내가 대답을 망설이자, 심오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이정우가 입을 열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죄책감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여러분을 데려가지 못하는 저희가 죄책감을 느껴야죠.”

“그래도…….”

“저희 군인입니다.”

박성훈은 애써 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정우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였다.

누가 누굴 걱정할 상황이 아니지만, 함께 목숨을 걸고 좀비들과 싸웠다.

함께 한 시간은 짧지만, 그 농도는 결코 옅지 않았다.

박성훈은 훅, 하고 숨을 뱉으며 물었다.

“부산으로 가면 아크라는 쉘터가 있다고 하셨죠?”

“네, 하지만 아크의 정확한 위치는 모릅니다.”

“부산에 도착하면 정보가 있을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생존자들을 쳐다보며 물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때요?”

생존자들은 물건이 아니다.

최소한 그들의 목숨은, 그들의 선택에 맡기고 싶었다.

하지만 선뜻 나서서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눈치를 보며 망설이는 모습.

이에 자리에서 일어나며 얘기했다.

“내일 아침에 저희는 바로 이동할 겁니다. 그러니 아침까지 고민해 보시고, 누구와 함께할지 여러분이 정하시기 바랍니다.”

그 길로 식당을 빠져나와 건물 옥상으로 향했다.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은 경산시.

멍하니 밤하늘을 바라보며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했다.

내가 생존자들을 책임질 필요는 없다.

쓸데없는 책임감, 알량한 동정심으로 저들의 목숨을 짊어지고 가는 건 멍청한 짓이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책임만 손에 쥐는 게 현명한 선택이니까.

또한 우리와 함께하는 사람이라면 함께 싸울 준비가 된 사람이어야 한다.

“하…….”

마음이 무겁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지금의 먹먹한 마음을 달랬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백열등처럼 밝은 달, 높아진 하늘과 은은하게 들리는 귀뚜라미 울음소리.

가을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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