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94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군인들은 폭음이 들린 빌라로 접근하고 있었다.
1층엔 변종이 있는데, 안개 때문에 육안으로 확인하지 못한 건가?
재빨리 1층을 살피자, 미동도 하지 않던 미확인 변종이 총성을 듣고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다급히 계단으로 향했다.
아직 가시지 않은 현기증 때문에 똑바로 걷는 게 버거웠다.
난간을 잡고 1층까지 내려간 뒤, 정문으로 나가지 않고 처음 들어왔던 원룸으로 들어갔다.
정문에 변종이 쓰러져 있기에, 정문으로 나가는 건 내게도 부담스러웠다.
뜯어진 방범창을 통해 밖으로 나가자, 좌측골목에서 총성과 함께 고함치는 군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 상병! 소대장님 없는 것 같은데?”
“어떡하죠? 탄알도 별로 안 남았습니다!”
“아이들부터 건물로 들여보내! 총성 때문에 좀비들만 많아지고 있잖아!”
“알겠습니다!”
아이들?
생존자들은 박성훈과 함께 고가도로로 이동했을 텐데?
설마, 여기에 생존자가 더 있었던 건가?
그래서 지금까지 밖으로 나오지 않은 거야?
껴어어어…….
오금이 저리는 음성이 귓바퀴를 간질였다.
텁, 스으윽- 텁, 스으윽.
그와 동시에 기다란 팔로 땅을 짚으며, 상체를 질질 끌고 가는 변종의 모습이 두 눈에 들어왔다.
비좁은 골목에서 바라본 변종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폭발로 인해 오른팔과 오른쪽 다리가 잘려나가고, 옆구리도 반쯤 떨어져 나간 것으로 보였다.
지면을 적시는 붉은 혈흔이 변종의 상태를 말해준다.
“앞에, 앞에! 김 상병 앞에!”
“가, 강 병장님! 저거 뭡니까?”
“몰라 씨발! 쏴, 쏴!”
뒤이어 탄알 세례가 변종에게 집중되었다.
변종은 하나뿐인 팔로 빗금을 그으며 날아드는 탄알을 막아냈다.
파박! 팍! 파바박! 팍!
살점을 파고드는 탄알들.
하지만 뼈가 얼마나 단단한지, K2소총은 변종의 뼈를 뚫지 못했다.
변종은 날아드는 탄알을 왼팔로 막으며 세차게 고개를 젓더니, 이윽고 골목에 있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놈은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까드득 이를 갈기 시작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나를 죽여 버리겠다는 분기가, 하나뿐인 칠흑 같은 동공에 묻어났다.
“탄알집, 탄알집 줘!”
“저도 다 떨어졌습니다!”
날아드는 탄알이 없자, 변종은 시선을 돌려 군인들을 응시했다.
골목이 비좁은 탓에 내게 달려들지 못하고, 군인들을 목표로 삼은 모양이다.
내버려 둘까?
아무리 변종이라도, 저 상태로 군인들을 사냥하진 못할 것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군인들도 도망칠 게 뻔하니, 나도 고가도로까지 도망가면…….
크어어어어!!
“강 병장님 뒤!”
“빌라로 들어가!”
“마, 막혔습니다! 좀비가 너무 많아요!”
“이런 씨X! 애들부터 보호해!”
좀비를 망각했다.
폭음과 총성이 울렸으니, 근방의 모든 좀비가 모여들 것이다.
난 까드득 이를 갈며 고심에 잠겼다.
못 본 척…… 지나갈까?
저 사람들만 무시하면 난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다.
도와주고 싶지만…… 나 역시 지칠 대로 지친 상태.
여전히 골이 울리고, 귀에선 이명이 들렸다.
한계에 도달한 사지는 덜덜 떨리고, 심장은 이제 그만 쉬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왜.
어째서 발이 떨어지지 않는 걸까.
“어휴…… 이 병신 새끼.”
난 육두문자를 읊조리며 빌라를 크게 돌아 군인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같잖은 선의.
생존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양심.
현 상황에 전혀 부질없다는 걸 알지만…… 차마 저들을 버리고 갈 수 없었다.
본인이 죽을 위기인데, 아이들부터 챙기는 군인들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다.
저들은 버리고 떠나면, 이 순간이 평생의 악몽으로 남을 것 같았다.
크어어어! 카하아악!!
쩍!! 뻐걱- 떡! 팍!!
목젖을 가는 좀비들의 안면에 젖 먹던 힘을 다해 주먹을 내지르며, 노도와 같이 좀비들을 뚫고 들어갔다.
훙-!
“큭!”
안개 속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칼날에 재빨리 방향을 틀었지만, 좌측 볼에 생채기가 생겼다.
반사 신경을 높이지 않았다면 안구에 칼날이 박혔을 것이다.
“어어? 어?”
내게 칼을 휘두른 군인은 기겁하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안개 때문에 시야 확보가 어렵다 보니, 나를 좀비로 오인하고 칼을 휘두른 모양이다.
“빨리 일어나!”
그는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사지를 덜덜 떨더니, 넋이 나간 표정으로 바지에 오줌을 지렸다.
칼이 빗나간 순간 내 얼굴을 인지한 게 아니라, 죽음을 떠올린 모양이다.
“바, 박재형 씨?”
뒤늦게 내 얼굴을 확인하고 두 눈을 껌벅이더니,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 손으로 사타구니를 가렸다.
군인들의 뒤로 보이는 두 명의 아이.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과 7살 정도로 보이는 남아의 모습.
“으아앙! 누나…… 누나아!”
남아는 내 얼굴을 보고 좀비라 생각했는지, 금세 울음을 터뜨리며 여학생에게 안겼다.
여학생은 동생을 품에 안은 채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크어어어어!!
난 접근하는 좀비들의 안면에 쉴 새 없이 주먹질과 발길질을 가하며 외쳤다.
“뒤에 골목으로 들어가!”
군인들은 뒷길을 확인하더니, 폭 1m의 골목으로 들어가며 여학생과 남아에게 어서 오라고 외쳤다.
그들이 대피할 동안 난 악착같이 좀비들을 막았다.
훙- 훙-!
그 순간, 허공을 물들이는 검은 인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안개 속에서 사방으로 흩어지는 덩어리들.
저게 뭔가 싶어서 봤더니, 좀비들이 사방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온다.’
반사적으로 마른침이 넘어가며 이마 위로 식은땀이 맺혔다.
걸리적거리는 좀비들을 밀치고 던지며, 변종이 접근하고 있었다.
“박재형 씨 빨리 와요!”
목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자, 골목을 정리한 군인들이 내게 외치고 있었다.
난 지면을 박차며 그들의 뒤를 따랐다.
텁!
하지만 발목을 붙잡는 손길에 그대로 엎어지고 말았다.
미간을 찌푸리며 뒤를 돌아보자, 발목을 붙잡은 커다란 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기다란 손을 따라 시선을 돌리자, 살기와 분노로 점철된 변종의 안구가 눈에 들어왔다.
크어어어어!! 카하아악!
변종의 상체가 골목을 틀어막자, 좀비들은 들어오지도 못하고 서로 얽히고설키는 모습을 보였다.
뿌드득.
“으아악!”
변종이 악력을 더하자, 발목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통증이 몰려왔다.
복사뼈와 경골이 으스러지는 통증.
고통으로 인해 시야가 아찔하게 흔들리고, 숨이 막혔다.
그런 와중에도 끌려가지 않기 위해 옆으로 보이는 배관을 붙잡았다.
껴어어어억!!
그러자 발목을 쥐어뜯던 변종은 비좁은 골목으로 상체를 욱여넣기 시작했다.
[45%, 42%, 37%.]
빠르게 줄어드는 내구도.
보호대가 있으면 뭐해?
안에서부터 뼈가 부러지고 있는데.
“박재형 씨!”
두 명의 군인은 헐레벌떡 다가와 내 양팔을 쥐고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아아악!! 놔!! 놔 씨X!!”
양쪽에서 잡아당기니 금방이라도 발목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고통이 정신을 좀먹기 시작하자, 아찔한 현기증과 함께 시야가 멍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숨도 쉬어지지 않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고통을 감내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고통에 몸서리쳤다.
그러다 문득, 안절부절못하는 군인들을 보고 내게 주어진 마지막 수가 떠올랐다.
난 오른손을 파르르 떨며 병장의 옷에 있는 동그란 물건을 가리켰다.
병장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울상을 지으며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내가 두 눈을 부릅뜬 채 뜻을 굽히지 않자, 그는 아랫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박재형 씨…….”
그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 숙였다.
뒤이어 다른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 동그란 물건을 건네주었다.
난 수류탄을 손에 쥐고 두 사람에게 얘기했다.
“고가…… 으윽! 고가도로까지…… 뒤돌아보지 말고 뛰어.”
뿌드득- 떡!
발목이 완전히 돌아가고, 살점이 찢어지는 고통에 비명조차 내지를 수 없었다.
난 전신을 파르르 떨며 멀어지는 군인들을 확인한 뒤, 시선을 돌려 변종의 얼굴을 살폈다.
비좁은 골목에 상체가 꼈는지, 더는 들어오지 못하는 변종.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안전핀을 붙잡자, 놈은 기겁하며 발악하기 시작했다.
수류탄을 몸소 겪어본 놈이니, 살기 위해 저항하기 시작했다.
“뒤져 이 개새끼야.”
훅-!
안전핀을 뽑으려는 찰나, 전신을 잡아당기는 악력에 하마터면 수류탄을 놓칠 뻔했다.
콰득!
변종은 젖 먹던 힘을 다해 내 발목을 잡아당기더니,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내 하복부를 깨물었다.
놈의 쭉 찢어진 입가가 붉게 물들고, 하복부에서 붉은 선혈이 낭자하기 시작했다.
분명 내 몸인데,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장면에 머릿속이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시간이 엿가락처럼 늘어진다.
지나간 세월이 하나의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게…… 주마등인가?
허망하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살아야 한다는 집념도 들지 않았고, 무형의 존재가 된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시선을 돌린 찰나, 오른손에 쥐어진 수류탄이 눈에 들어왔다.
정해진 순리처럼, 난 안전핀을 뽑고 무감각해진 팔을 휘둘러 수류탄을 투척했다.
머리에선 변종의 얼굴로 던지라고 하는데,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며 날아간 수류탄은 변종의 등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땡- 땡그르르르…….
변종의 등을 타고 힘없이 굴러떨어진 수류탄.
수류탄이 어디에 떨어졌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멀리 날아간 거 같은데.
모르겠다.
이젠…… 생각할 힘도 없다.
전신에 힘이 풀리며 참아왔던 숨결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이 차디찬 아스팔트 바닥이 내 마지막이구나.
백발의 노인이 되어 따뜻한 노을을 바라보며 죽을 줄 알았는데.
역시 인생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구나.
난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내게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를 받아들였다.
띠링-
죽음을 목전에 둔 순간, 귓가로 기계음이 들려왔다.
지난 1년간 들어온 라스트아크의 알림음.
하지만 눈꺼풀을 움직일 힘도 없었다.
이제 그만…… 쉬고 싶었다.
콰앙!!!!!
폭음과 함께 전신이 떠오르는 부유감이 느껴졌다.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순간이었다.
* * *
“재형이, 재형이는?”
설여원은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고 불안한 눈초리로 전완수를 붙잡았다.
전완수는 시선을 회피하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야 전완수. 내 말 안 들려?”
설여원이 되묻자, 전완수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잔잔하게 떨리는 그의 어깨.
뒤이어 버스에서 내리는 최현의 모습에, 설여원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최현은 덤덤한 표정으로 설여원을 쳐다보더니, 시선을 회피하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최현까지 대답을 회피하자, 설여원은 박성훈의 곁으로 달려갔다.
“재형이 어디 있어요.”
박성훈은 착잡한 표정을 짓더니, 허공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뒤이어 옆에 있는 군인들을 쳐다보며 대신 설명하라고 했다.
강 병장과 김 상병.
아이들을 구출하고, 박재형의 도움으로 빌라촌을 탈출한 이들이었다.
김 상병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미간을 찌푸리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죄송…… 합니다. 못 데리고 왔습니다.”
설여원은 김 상병의 말을 듣고 멍한 표정을 짓더니, 그의 어깨를 붙잡으며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똑바로 설명해 봐요.”
“…….”
김 상병은 입술을 달싹이더니, 고개를 떨구며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냈다.
그 모습을 보고 설여원은 뒷걸음질 치며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뒤이어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군인들의 얼굴을 멍하니 올려다봤다.
강 병장은 김 상병의 어깨를 토닥인 뒤, 설여원의 앞으로 한 걸음 다가오며 얘기했다.
“박재형 씨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저희도, 저 뒤에 있는 아이들도 벌써 좀비가 됐을 겁니다.”
“그럴 리가…… 재형이는 좀비들한테 당할 수준이 아닌데…….”
“좀비가 아니었습니다. 저희도 처음 보는 변종이었어요. 정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강 병장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고개 숙였다.
설여원은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지, 고개를 저으며 옆에 있는 김희연을 쳐다봤다.
“희연아, 네가 설명해 봐. 너도 봤어? 재형이가 죽는 거, 네 눈으로 똑똑히 봤어?”
김희연의 눈가도 붉게 물들어 있었다.
터지려는 울음을 힘겹게 참는 모습을 보이더니, 김희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얘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