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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91화 (91/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91화

생존자를 구출한 뒤로 경운기 길을 지나 단층 건물이 즐비한 지역까지 단숨에 이동했다.

아이들은 벌써부터 지친 기색이 역력했고,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을 달래고 업어가며 따라왔다.

크르르르…….

우측의 단층 건물에서 목젖을 가는 좀비의 음성이 들려왔다.

사람이 많아지면서 진득한 체취가 공기 중에 퍼지고 있었다.

이전처럼 조용히 지나가고 싶었지만, 마당에 있는 좀비는 담벼락 너머로 콧잔등을 찌푸리며 냄새를 맡는 시늉을 보였다.

난 대기하라는 신호를 보낸 뒤, 단숨에 담벼락을 넘어 마당을 거니는 좀비의 목젖을 헌팅 나이프로 그었다.

지면에 쓰러지는 좀비를 발등으로 받치며 큰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했다.

숨죽인 채 청각을 곤두세우자, 다행히 좀비들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소대장은 담벼락 위로 고개를 내밀며 내 모습을 살폈다.

난 이동하라는 신호를 보내며 다시금 담벼락을 넘어 소대장의 옆에 붙었다.

이윽고 대로가 눈에 들어오고, 빌라의 겉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발 앞서 대로를 건너고, 건물 내부의 모습을 살피며 생존자들에게 어서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박성훈과 생존자들이 앞서 빌라로 들어서고, 뒤따라오는 군인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들어섰다.

옥상에 도착해서야 숨돌릴 틈이 생겼다.

습한 안개 속에서 장시간 숨을 쉬는 건 심신이 허약한 생존자들에게 버거운 일이었다.

콜록!

한 아이가 옥상에 오르자마자 기침을 토했다.

기침한 아이는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어린아이도 아는 것이다.

소리를 내면 위험하다는 것을.

아이는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불안한 눈빛으로 어른들을 쳐다봤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아이의 행동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어른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괜찮다는 말과 함께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작은 손길에, 아이는 울먹이는 모습을 보였다.

죄책감과 안도감, 감사함 등, 본인이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하는 모양이다.

아이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자, 아이의 마음이 느껴졌다.

이 어른들은 날 버리지 않아.

착하게, 어른들 말씀 잘 들으면 나도 살아갈 수 있어.

이런 마음이 엿보였다.

솔직하게 말하면…… 망해버린 세상에 아이들은 아무 쓸모없다고 생각했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 목숨으로 득실을 따진다면, 과연 그걸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기계지.

이정우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대표는 항상 이성적이어야지. 그게 모두를 위한 길이니까. 하지만 너무 이성적이면…… 시간이 지날수록 독재자가 될 수밖에 없어.

이정우의 말을 마음에 새기며, 난 아이들의 곁으로 다가갔다.

“애들아, 움직일 수 있겠어?”

“네, 네!”

힘찬 목소리와 달리 불안한 눈빛.

나를 신뢰하지 못하기에, 내게는 버림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할 수 있다고, 잘할 수 있다고 얘기하는 게 더 안쓰러워 보였다.

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옥탑방으로 들어가 여기저기를 들쑤셨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건너기 위해서는 널빤지가 필요하다.

건물 간의 간격은 2m.

신장이 130㎝도 안 되는 아이들이 뛰어넘기엔 불가능한 거리.

천만다행으로 옥탑방에서 기다란 책상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밖에 있던 박성훈은 내 곁으로 다가오더니, 책상을 보고 입을 열었다.

“길이가 모호합니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죠.”

강의실에서나 볼 수 있는 두께 2㎝의 기다란 책상이었다.

상판이 덜거덕거리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 살던 사람이 버린 책상을 들고 온 모양이다.

있는 힘껏 상판을 뜯어내고, 박성훈과 함께 옥상 난간으로 향했다.

직접 대보니 상판의 길이가 건물 간격보다 길었다.

가로 2m가 넘고, 세로도 70㎝에 달해서 아이들도 안전하게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난 한발 먼저 반대편 건물로 뛰어넘은 뒤, 박성훈이 건네주는 상판을 잡고 난간에 걸쳤다.

“건너와. 밑에 보지 말고.”

상판이 무게를 얼마나 버틸지 모르기에, 아이들만 이용하도록 하고 어른들은 그냥 뛰어 넘어오라고 했다.

속도는 현저히 느려졌지만, 이동에 차질은 없었다.

다리를 놓고 이동하고, 또 놓고 이동하기를 반복하며 몇백 미터를 나아갔다.

마침내 밧줄을 연결한 건물 옥상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옥상에 즐비한 좀비들의 시신.

박성훈과 내가 먼저 반대편 옥상으로 뛰어넘은 뒤, 숨이 붙은 좀비들이 있는지 확인했다.

크르르르…….

인기척을 느끼고 목젖을 가는 좀비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다른 좀비들에게 짓밟혀 두개골이 함몰된 상태였다.

뇌가 제대로 파괴되지 않은 건가?

숨이 붙은 좀비들을 차근차근 처리한 뒤, 생존자들에게 건너오라고 했다.

상판이 흔들리지 않도록 좌우를 잡은 상태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최현과 전완수, 그리고 군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까지 간 거지?

설마 당한 건 아니겠지.

그동안 내색하지 않았지만, 걱정되는 게 당연했다.

문제는 또 있다.

아이들이 밧줄을 쥐고 반대편 건물까지 이동할 수 있을까?

“애들아, 아저씨한테 업혀봐.”

비쩍 마른 아이들을 등에 업었다.

너무나 가벼운 아이들의 무게.

충분히 등에 업고 건널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아이들이 내 등에 얼마나 매달려 있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것.

“아저씨가 저기까지 건너갈 동안 잘 잡고 있을 수 있겠어?”

최대한 부드럽게 묻자, 누구 할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은 앙상한 두 팔로 내 목을 감싸고, 앙증맞은 두 다리로 내 허리를 감았다.

밧줄의 양 끝이 제대로 묶여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한 뒤, 지면을 슬쩍 살폈다.

안개 속을 거니는 몇몇 좀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근심 걱정을 털어내고, 양손으로 밧줄을 쥐며 건물을 이동했다.

내 목을 감싼 아이의 두 팔이 파르르 떨리는 게 느껴졌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 더욱 강한 힘으로 내 목을 조른다.

안정적으로 옥상에 도착한 뒤, 맞은편 건물에 있는 생존자들에게 건너오라고 손짓했다.

박성훈과 병장, 상병, 그리고 남자들이 각각 아이들을 등에 업고 이동했다.

다들 죽기 살기로 밧줄을 쥐고 움직였다.

떨어져도 죽고, 팔에 힘이 빠져도 죽는 상황.

생존자들은 마지막 동아줄을 잡는 심정으로 두 눈 부릅뜨고 건넜다.

“후…….”

마지막으로 건넌 30대 초반의 여자가 옥상에 착지하며 참아왔던 숨을 토했다.

얼마나 긴장했으면, 옥상에 착지하자마자 사지를 덜덜 떨었다.

계속 이동해야 하는데, 문제는 상판까지 챙겨올 여력이 되지 않았다는 것.

또다시 옥탑방을 살피며 쓸 만한 판자를 찾아야 했다.

박성훈과 함께 옥탑방을 살폈지만, 이번에는 쓸 만한 널빤지가 없었다.

“내려가서 찾아보고 올게요.”

소대장에게 얘기하자, 그는 부대원들에게 생존자들을 지키라고 명령한 뒤 내 옆으로 따라왔다.

박성훈과 함께 빌라의 모든 방을 확인했다.

내부에 갇혀 있는 좀비를 발견하면 망설임 없이 처리하고, 아이들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널빤지를 찾기 위해 돌아다녔다.

“이 정도면 괜찮겠습니까?”

얼마나 지났을까.

소대장이 새하얀 널빤지를 들고 나타났다.

뭔가 싶어서 쳐다보니 붙박이장 문짝이었다.

두께가 얇기에, 문짝 두 개를 뜯어서 이용하기로 했다.

소대장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문짝을 들고 가는 게 저토록 즐거운 일인가?

하지만 묘하게도, 같이 문짝을 옮기다 보니 나 역시 입가로 미소가 번졌다.

사서 고생하는 기분보다, 같이 땀 흘리는 게 즐거웠다.

사람 구하는 일이니까.

이게 소소한 행복인가?

타다다다다당!!!

그 순간, 느슨해졌던 감각을 일깨우는 파열음이 들려왔다.

갑작스레 울린 총성에 박성훈을 쳐다보자, 그도 놀란 눈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격발하지 말라고 그렇게 일렀는데, 대체 누구란 말인가?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창가로 달려갔다.

박성훈은 소리의 근원지를 살피더니, 불안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설마…….”

불안한 눈빛으로 한 지점을 바라보는 박성훈.

옥상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한 장소였다.

* * *

박성훈과 함께 다급히 옥상으로 올라 소리의 근원지를 살폈다.

수많은 옥탑방과 불법 증축물로 인해 베이스캠프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타다다다다당!!

타다다당!!

연달아 울리는 총성만이 위급한 상황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 속으로 사람의 비명이 섞여 있었다.

어떡하지?

생존자들을 데려가는 게 옳을까.

아니면 이곳에 두고 내가 먼저 확인하고 오는 게 옳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후자였다.

난 뒤에 있는 군인들과 생존자들에게 얘기했다.

“다들 옥탑방에 숨어요.”

내가 명령해서 그런가?

사람들은 얼빠진 표정으로 박성훈과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러자 박성훈은 초조한 모습을 보이더니, 옥상 난간으로 달려가 지면의 상태를 살폈다.

크어어어어어어!

카하악! 하악!

거리에 있던 좀비들이 총성을 듣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박성훈은 마른침을 삼키며 얘기했다.

“주변 좀비들이 이동하고 있어요. 지금이면 1층으로 내려가도 안전할 겁니다.”

“이 많은 사람들 데리고 1층으로 내려가자고요? 위험해요.”

“박재형 씨는 병사들과 함께 생존자들 데리고 고가도로 이동하세요. 전 베이스캠프로 갑니다.”

박성훈이 이동하려 하기에, 난 그의 팔목을 잡으며 얘기했다.

“마음 급한 건 알겠는데, 소대장님 없으면 여기 관리 안 됩니다. 정 못마땅하면 다 같이 고가도로로 이동한 뒤에 다시 돌아오는 게 맞아요.”

박성훈은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나도 물러서지 않자, 그는 뒤에 있는 생존자들과 병사들의 표정을 살폈다.

저들은 내 명령에 따르는 사람이 아니다.

박성훈의 명령에 따르는 사람들이지.

오래 지나지 않아 박성훈은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알겠습니다. 다 같이 고가도로로 이동합니다.”

박성훈은 착검을 하며 생존자들에게 얘기했다.

“어른들은 아이들 업고 뛰겠습니다. 떨어지지 않도록 잘 따라오세요.”

* * *

좀비들을 처리하며 대각선으로 길을 뚫었다.

총성의 근원지와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비좁은 골목길을 내달리며 사방을 경계했다.

카하아악!!

골목에 들어설 때마다 나타나는 좀비들.

난 가장 앞에서 길을 뚫으며 뒤따라오는 군인들과 생존자들의 모습을 살폈다.

박성훈과 병사들은 대검을 이용해 좀비들을 처리했다.

난 그들의 모습을 보고 의구심이 차올랐다.

발포 명령이 떨어지지 않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격발하지 않는 게 군인들이었다.

그런데 베이스캠프에 있는 군인들은 어째서 난사를 한 걸까.

안개 속에서 질주하는 우리보다 위급한 상황이 발생한 걸까?

옥상에서 위급할 게 뭐가 있다고.

좀비가 벽을 타고 올라온 게 아니라면 결코 위험…….

‘벽?’

그러다 문득, 불현듯 날아드는 불안감에 몸서리치게 되었다.

이곳 어딘가에 변종이 남아 있다면?

변종에 대한 위협이 머릿속이 차오르자, 나 역시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이에 뒤에 있는 박성훈에게 얘기했다.

“먼저 가서 길 정리해둘 테니, 고가도로까지 생존자들 안내하세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난 두 주먹을 말아쥐고 상체를 접으며 얘기했다.

“길 열어두겠다고요.”

쾅!

지면을 박차며 용수철처럼 튀어 나가자, 뒤에 있던 박성훈은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눈앞에 있던 사람이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 * *

근력과 체력 스탯은 최대치에 도달했고, 동체 시력과 반사 신경도 대폭 증가한 상태.

이미 인간의 신체가 지니는 한계를 넘어섰다.

근력이 최대치에 도달한 뒤에 전속력으로 달려본 적이 없었다.

쏜살같이 스쳐 지나가는 주변 풍경에 좀비들의 모습을 뒤늦게 발견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그럴 때마다 걸음을 멈추고 지나쳐간 좀비들의 뒤통수를 깨부수었다.

이번 일만 정리되면, 내 신체 능력의 한계도 실험해 봐야겠다.

족히 20마리의 좀비를 처리하자, 눈앞으로 2차선 도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만 건너면 공터가 나오고, 공터를 지나면 고가도로가 나올 것이다.

길 정리를 끝내고 황급히 무전기의 전원을 켰다.

“완수야, 완수야 내 말 들려?”

아무리 기다려도 전완수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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