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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90화 (90/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90화

난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맞은편에 있는 동료들을 쳐다봤다.

최현과 전완수, 그리고 김희연은 골목에 들어찬 좀비들을 보고 넋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었다.

휘익!

그들에게 휘파람을 불자, 맞은편에 있던 군인들과 전완수, 최현, 김희연이 이곳을 쳐다봤다.

“밧줄 던져!”

최현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좀비들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

지금은 밧줄을 연결하더라도 생존자들을 데려올 수 없다.

내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짓자, 전완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이곳으로 밧줄을 집어 던졌다.

“재형이도 생각이 있겠지! 일단 던져!”

옥상에 있는 철근에 밧줄을 연결한 뒤, 맞은편에 있는 일행에게 얘기했다.

“난 소대장님이랑 아파트로 이동할 테니까 좀비들 시선 좀 끌어줘!”

“뭐?”

전완수는 얼빠진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이것들 다 죽이고 움직이는 건 불가능해. 싸울 게 아니라, 흩어지게 만들어야 돼.”

전완수는 눈으로 욕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지로 걸어 들어가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니, 전완수의 반응도 이해한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최대한 짧게 설명했다.

“옥상으로 좀비들 유인해! 저놈들 아무리 사고기능이 있어도 옥상 타고 이동하는 건 불가능할 거야! 좀비들이 따라오면 낙사하게 만들어!”

“설마…… 우리더러 계속 건물 뛰어다니라고?”

“방법이 없다고!”

“아니 왜 우리더러 똥을 치우래?”

“내가 쌌냐?”

윽박지르자, 옆에 있던 병장과 상병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고개 숙이는 모습을 보였다.

저들이 유리 파편만 밟지 않았어도, 상황이 이렇게 되진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전완수가 수긍할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다.

난 박성훈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먼저 반대편 건물로 넘어가요.”

“저 사람들을 저기 두고 이동하라는 말씀입니까?”

“다른 방법 있어요?”

도끼눈을 뜨며 묻자, 박성훈은 마른침을 삼키며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곧 병장과 상병을 이끌고 반대편 건물 옥상으로 뛰었다.

덜컹!

크어어어어어!!!

귓바퀴로 선명하게 들려오는 좀비들의 울음소리.

뒤를 돌아보자, 활짝 열린 철문에서 좀비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세를 잡고 뛸 여유도 없다.

난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난간을 밟고 반대편 건물을 향해 몸을 날렸다.

아슬아슬하게 반대편 건물 옥상에 착지하자마자 뒤를 돌아봤다.

옥상에 들어찬 좀비들은 이곳을 향해 양팔을 허우적거렸다.

뒤에서 밀려드는 압력으로 인해 바닥에 깔리는 놈들도 보이고, 지면으로 추락하는 좀비들도 여럿 찾아볼 수 있었다.

그어어어어…… 그어어어어!

곧 옥상에 있던 좀비들이 공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지면에 있던 좀비들은 반대편 빌라가 아닌, 우리가 이동한 빌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깡! 깡! 깡! 깡!

그러자 전완수와 최현이 있는 건물에서 철근을 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좀비들의 시선은 그곳으로 돌아갔고, 지면에 있던 좀비들도 그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일행이 좀비들의 시선을 유도하는 동안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난 박성훈과 병사들의 등을 밀치며 어서 이동하라고 했다.

* * *

쉬지 않고 이동한 끝에, 마침내 빌라촌의 끝자락에 다다를 수 있었다.

박성훈은 뒤를 돌아보며 여전히 거리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좀비들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두고 온 병사들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걱정하지 말아요. 현이랑 완수가 같이 있으면 안전해요. 도망치는 건 도가 텄으니까.”

군인들의 화력은 나도 잘 알고 있다.

좀비들을 손쉽게 사냥하던 모습은 내 기억에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하지만 탄알이 바닥난 상황에는?

쥐새끼처럼 숨어서 이동하는 건 우리가 한 수 위다.

전완수와 최현이 항상 티격태격하고 우스운 모습만 보여와서 그렇지, 긴박한 상황에는 뛰어난 기지를 보여왔다.

카타나를 이용해 좀비들을 일도양단 내던 최현의 모습, 위급한 상황에 독특하지만 실용적인 임기응변을 보인 전완수.

좀비의 특성도 군인보다 우리가 더 잘 알고 있다.

건물의 옥상을 넘나드는 것도 도가 튼 녀석들이니, 분명 살아남을 것이다.

난 주변을 살피며 입을 열었다.

“그보다 여기서부터 어떻게 이동하는 게 좋을지, 그것부터 생각하는 게 맞는 거 같은데요.”

지면을 가리키며 묻자, 박성훈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산업도로만 건너면 대부분 단층건물이고, 그 뒤로는 농경지입니다. 좀비가 있을 확률은 낮아요.”

“무작정 길을 뚫자고요?”

“생존자들이 폭죽을 터뜨렸는데도 좀비들이 몰려들지 않았습니다. 좀비가 없다는 방증이죠.”

내가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자, 박성훈은 옆에 있는 병사들에게 얘기했다.

“선두는 나와 박재형 씨가 선다. 둘은 후방 살피면서 따라와.”

결국 박성훈의 말을 따라 1층으로 내려갔다.

현관의 유리문 너머로 좀비들은 보이지 않았다.

최현과 전완수가 요란하게 움직여준 덕에, 원룸촌의 좀비들은 다 그곳으로 이동한 모양이다.

난 헌팅 나이프를 손에 쥐고 소대장과 함께 대로로 나아갔다.

5차선 도로를 가로질러 단층의 건물이 즐비한 곳으로 들어섰다.

차량이 들어갈 수 없는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나타나고, 일대는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건물의 담벼락도 낮았다.

까치발을 들면 마당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정도.

최대한 상체를 낮추고, 벽에 붙은 채 이동했다.

크으으으…… 커허억…….

담벼락 너머에서 목젖을 가는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슬쩍 고개를 내밀어 마당의 모습을 살피자,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니, 할머니의 모습을 한 좀비였다.

농촌의 특징이라면…… 젊은이들의 씨가 말랐다는 것이다.

단층건물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르신들이었고, 그들은 좀비로 변했다.

좀비들의 감각이 1.5배 성장했지만, 결국 인간의 육체를 기반으로 하는 게 좀비였다.

헬스를 한 사람들이 좀비로 변하면 강인한 것처럼, 반대로 저들은 나약할 것이다.

또한 청각과 시각, 후각, 모든 것이 퇴화한 육체를 지녔기에, 감각이 1.5배 성장하더라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다.

할머니와의 거리는 대략 7m.

내 예상이 맞는지, 할머니는 인기척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위협이 되지 않는 좀비를 굳이 처리하며 나아갈 필요는 없다.

괜히 소란을 만들어서 좀비로 변한 동네 어르신들이 몰려들지도 모른다.

박성훈에게 계속 이동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구불구불한 골목과 둔덕을 지나자, 이윽고 논밭이 펼쳐졌다.

우린 속도를 높여 아파트로 이동했다.

기다랗게 이어진 경운기 길을 지나다 문득, 좌측의 논에서 인간의 형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등에 메고 있던 쇠뇌를 견착하며 놈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미동도 없는 형체.

유심히 살피자, 사람이 아닌 허수아비였다.

곳곳에 설치된 허수아비들은 안개 때문에 식별하기 어려웠다.

박성훈도 이를 알기에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다시금 속도를 낮추고, 사주경계 하며 나아갔다.

끝도 없이 이어진 비포장도로.

지나온 길과 나아가야 하는 길이 똑같은 풍경이었다.

운무로 인해 아파트의 위치도 확인할 수 없었다.

격자무늬의 경운기 길을 한참이나 걷다 보니, 방향감을 상실하게 됐다.

반면에 박성훈은 망설임 없이 나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박성훈을 믿고 한참이나 나아가자, 이윽고 거대한 건물의 테두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단지의 입구로 ‘개나리 아파트’라는 글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입구의 우측으로 마트가 위치하고, 치킨집과 호프집이 눈에 들어온다.

워낙 구석에 위치한 아파트라서 아무것도 없을 줄 알았는데, 있을 건 다 있었다.

박성훈은 단지 내에 좀비들의 인기척이 있는지 확인한 뒤, 내게 속삭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몇 동입니까.”

“네?”

“생존자가 있는 동이요.”

망원경으로 확인했을 때 폭죽이 터진 건 103동이었다.

기억을 되새기며 103동이라고 얘기하자, 박성훈은 곧장 길을 찾아 나섰다.

“어딘지 알고 가는 거예요?”

“입구에 단지 전도 있었습니다.”

그걸 한 번 보고 외워?

장교,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103동 입구에 다다르자, 현관 앞으로 설치된 허술한 바리케이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예전 학생회관에 있을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바리케이드를 치우고 내부로 들어서자, 쩍쩍 금이 간 벽과 반쯤 떨어진 페인트 자국이 눈에 들어온다.

철거작업이 중지됐다고 하더니, 그 흔적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왔다.

복도식 아파트라서 발소리가 울렸다.

박성훈은 벽면에 기댄 채 미동도 하지 않더니, 다른 잡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계단을 올랐다.

11층 아파트의 옥상.

계단과 복도를 순차적으로 확인하며 위로 향했다.

중간에 문이 열린 방이 있으면 내부에 좀비가 있을지도 모르기에, 하나하나 확인하며 이동했다.

그렇게 얼마나 올라갔을까.

타닥- 타닷.

10층에 다다른 순간, 위에서 들리는 발소리에 박성훈은 대검을 말아쥐며 걸음을 멈췄다.

이에 박성훈의 옆에 바짝 붙으며 계단을 살폈다.

“어?”

뒤이어 복도를 거니는 아이와 여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이는 박성훈의 모습을 보고 겁에 질린 표정을 지으며 여자의 뒤로 숨었다.

여자는 놀란 눈으로 입술을 벙긋거리더니, 간신히 입을 열었다.

“구, 구조대. 구조대!”

“쉿.”

박성훈은 주변에 다른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손에 쥐고 있던 대검을 내리며 물었다.

“생존자들은 어디 있습니까.”

박성훈의 물음에 여자는 눈시울을 붉히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뒤이어 연거푸 감사 인사를 전했다.

우리에게 하는 감사 인사인지, 존재 자체가 의문인 신에게 올리는 감사 인사인지 모르겠다.

생존자들은 옥상에 있다고 했다.

왜 생존자들과 떨어져 있었냐고 묻자, 여자와 아이는 화장실 때문에 옥상에서 잠시 내려왔다고 한다.

여자를 따라 옥상에 들어서자, 옥상 바닥에 앉아 있는 생존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생존자들은 군복을 입은 박성훈을 보고 너도나도 두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금세 울상을 지으며 살았다, 이제 살았다, 하는 말을 반복했다.

다들 오랫동안 굶주렸는지, 피골이 상접했다.

박성훈은 생존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피며 얘기했다.

“인원파악부터 하겠습니다. 다들 이쪽으로 모여주세요.”

* * *

10대 미만의 아이가 7명, 10대 학생들이 12명, 20대 이상이 18명.

총 37명의 생존자.

난 생존자들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여기, 혹시 금호강 앞의 대단지 아파트에서 오신 분들 계십니까?”

그러자 네 명의 사람이 손을 들었다.

불안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보는 사람들.

난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김희연 아는 분 계십니까?”

그러자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희연이를…… 어떻게 알아요?”

“관계가 어떻게 됩니까.”

“언니, 희연이 언니요. 희연이 살아 있어요?”

기대와 불안감이 엿보이는 표정.

이에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살아 있습니다. 같이 가시죠.”

그러자 여자는 양손으로 입을 막으며 금세 울상을 지었다.

닭똥 같은 눈물이 그녀의 두 볼을 타고 흘렀다.

여자는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참아왔던 눈물을 쏟았다.

“엄마…… 희연이 살아 있어…… 희연이 살아 있대.”

엄마? 주변에 엄마처럼 보이는 사람은 없는…….

‘아.’

뒤늦게 상황이 이해됐다.

설명을 듣지 않아도 김희연의 부모님이 어떻게 됐는지 알 것 같았다.

감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많이 지친 이들이다.

이들을 데리고 돌아갈 수 있을까?

착잡한 표정으로 박성훈을 쳐다보자, 그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바로 이동하겠습니다. 아이들 뒤처지지 않도록 주의해 주세요.”

대열을 정비하고, 박성훈은 내려놓았던 소총을 들고 계단으로 향했다.

뒤이어 훅, 하고 숨을 뱉으며 뒤를 돌아보더니, 엷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얘기했다.

“고맙습니다.”

박성훈의 입에서 나온 고맙다는 인사에 말문이 막혔다.

내가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자격이 될까?

난…… 진심으로 생존자 구출을 바라고 이곳으로 온 게 아니었다.

퀘스트 완료를 위해 이곳으로 왔을 뿐.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서,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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