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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86화 (86/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86화

쾅!!!

굉음과 함께 옥상 바닥이 울리고, 비좁은 입구에서 알싸한 화약 냄새가 올라왔다.

입구 천장에서 떨어지는 시멘트 가루와 입구로 들어차는 회갈색의 연기.

사방으로 흩어지는 좀비들의 살점과 선혈.

잠시나마 좀비들의 접근은 저지할 수 있었지만, 반대로 시야가 차단됐다.

최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기침을 토하더니, 옆에 있는 최만석에게 외쳤다.

“만석 아저씨 뒤로 와요! 앞으로 나가면 위험합니다!”

안개 속에서 시야 확보가 안 되는 것과는 엄연히 다른 문제였다.

숨쉬기도 어려운 메케한 연기 속에서 좀비들을 저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최만석은 기침을 토하며 왼손으로 입과 코를 가리며 최현의 말대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카하악- 카학!!

그 순간, 연기를 뚫고 나온 좀비 하나가 최만석의 어깨를 붙잡으며 넘어뜨렸다.

정진영과 최현이 지원하려는 찰나, 연기 속에서 튀어나온 좀비들이 그들을 가로막았다.

틱- 틱-

뒤에서 엄호사격을 가하던 천호진이 좀비를 조준했지만, 쇠뇌에 남은 볼트가 없었다.

“으아악! 제기랄!”

최만석은 좀비의 울대를 붙잡고 물리지 않기 위해 발악하는 모습을 보였다.

타인의 도움 없이는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

상황을 지켜보던 10대 남학생.

박성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뒤에 있는 여학생들에게 얘기했다.

“너희는 여기 있어. 애들이랑 민정 아주머니 지켜줘.”

박성하는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훅!

“억!”

하지만 어깨를 짓누르는 손길에, 박성하는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뒤이어 박성하를 스쳐 지나가는 두 명의 남자.

탈영병 김석원과 이병훈은 망설임 없이 최만석의 곁으로 달려갔다.

김석원은 옆구리에 차고 있던 대검을 뽑아 들고 최만석을 덮친 좀비의 관자놀이에 박아넣었다.

최만석이 기겁하며 발버둥 치자, 뒤따라온 이병훈이 최만석의 양팔을 잡고 뒤로 끌었다.

최현은 정면의 좀비들을 처리하며 김석원을 곁눈질로 쳐다보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얘기했다.

“무기 압수당했다더니!”

“나중에 얘기하죠!”

크어어어어!!

연기 속에서 계속해서 올라오는 좀비들.

정진영은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또 다른 수류탄을 손에 쥐며 외쳤다.

“더 뒤로 가!”

“몇 개나 훔친 거예요!”

“그런 걸 따질 때야?”

그는 안전핀을 뽑자마자 입구 깊숙이 수류탄을 투척했다.

쾅!!!!

벽면에 거미줄 모양의 균열이 퍼지며 굵은 입자의 시멘트 가루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통로 일부가 무너졌는지 좀비들의 공세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크어어어어!!

하지만 이를 눈치라도 챘는지,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반대편 통로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입구를 막았더니 출구 쪽에서 올라오는 좀비들.

정진영은 이마에서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옆에 있는 일행에게 외쳤다.

“여긴 나랑 호진이가 막을 테니까 나머지는 출구 쪽 막아!”

“둘이 괜찮겠어요?”

“괜찮겠냐? 어쩔 수 없잖아!”

끼이이익- 끼이이익-

그 순간, 밑에서부터 타이어 끌리는 소리가 미세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최현은 타이어 소리에 집중하더니, 금세 화색을 띠며 얘기했다.

“자동차, 자동차에요!”

크어어어어!!

출구에서 쏟아져나오는 좀비들의 모습에 모든 생존자는 두려움에 잠식된 표정을 지었다.

김석원과 이병훈은 가장 먼저 좀비들에게 달려들어 놈들의 접근을 저지했다.

끼이이익! 끼이이이익!!

오래 지나지 않아 타이어 끌리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출구 너머로 눈부신 상향등과 함께 승합차의 모습이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빠아아아아앙-!

요란한 경적에 김석원과 이병훈은 재빨리 옆으로 몸을 날렸다.

옥상까지 올라온 좀비들은 뒤에서 밀고 들어오는 승합차에 받혀 앞으로 고꾸라지며 뼈마디가 으스러지는 모습을 보였다.

승합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자, 차량의 문이 열리며 설여원과 이덕배, 이현배, 박재우, 황덕록이 무기를 들고 내렸다.

이정우는 핸들을 틀어 출구 앞에 가로로 차를 세우고, 일행의 돌아보며 얘기했다.

“막아! 재형이 올 때까지 버텨!”

“재형이는 어디 있는데요?”

최현이 묻자, 이정우는 눈앞의 좀비에게 손도끼를 휘두르며 얘기했다.

“밖에 있는 좀비들 처리하고 올라올 거야!”

“재형이 혼자요? 아니, 같이 와야지 두고 오면…….”

“걱정할 필요 없어.”

설여원이 최현의 말을 끊으며 대답하자, 최현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정우와 설여원.

누구보다 박재형을 걱정하는 두 사람이 태연하게 얘기하니, 최현은 현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이덕배가 입을 열었다.

“재형 학생은 더는 인간이 아니야!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고!”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인간이 아니라니? 설마, 설마 재형이 물렸어요?”

최현이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이자, 이정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얘기했다.

“구경만 하지 말고 빨리 도와! 나중에 얘기해도 되잖아!”

* * *

“나오지 마!”

버스에 있는 전완수에게 외치자, 그는 얼빠진 표정으로 내 모습을 살폈다.

주차장 입구가 좁은 탓에 버스와 군용 트럭은 들어갈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버스로 주차장 입구를 틀어막고, 군인들이 타고 온 군용 트럭으로 출구를 봉쇄했다.

박성훈의 지시에 따라 군인들이 외부의 좀비들을 처리하고, 난 건물로 들어간 좀비들을 처리하며 위로 올랐다.

상가 지역을 둘러싼 좀비만 족히 300마리는 되었다.

이렇게나 많은 좀비가 남아 있을 줄이야.

“재형아 뒤!”

카하아악!!

뒤를 돌아보자, 턱이 덜렁거리는 좀비가 내 목덜미를 노리고 있었다.

떡!!

재빨리 상체를 틀며 팔꿈치로 놈의 관자놀이를 가격하자, 두개골이 깨지는 감촉과 함께 좀비의 눈알이 튀어나왔다.

뻑! 퍽! 떠걱! 퍽!

주변을 둘러싼 좀비들에게 쉴 새 없이 주먹질을 가하며 침착하게 한 발, 한 발씩 위로 올랐다.

더는 헌팅 나이프가 필요 없었다.

헌팅 나이프보다 다루기 쉽고, 빠르고, 강한 무기가 생겼으니까.

골밀도와 표피를 강화하면서 더는 뼈가 부러질 위험도, 살이 터질 일도 없었다.

보호대의 내구도가 버텨주는 한, 평범한 좀비들은 내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

주먹만 사용하면 부담이 되지만, 팔꿈치와 두 다리를 이용하면 보호대의 내구도도 충분했다.

5개의 보호대는 각 부위별로 내구도가 존재하니까.

타닷!

‘우측 두 걸음 뒤.’

반사 신경도 인간의 2배에 달하기에, 작은 소리에도 모든 감각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좀비의 위치를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놈과의 거리가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망설임 없이 돌려차기를 가하자, 뒤꿈치로 느껴지는 두개골의 감촉을 느낄 수 있었다.

뻑!!

정확히 좀비의 머리에 직격하며 두개골이 으깨지고, 벽면으로 흩뿌려지는 선혈이 두 눈에 들어왔다.

다수의 좀비에게 둘러싸였다고 해서 부담스럽거나, 두렵다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상황에 집중할수록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집중력이 향상되며 동체 시력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2배나 증가한 동체 시력 덕에, 놈들의 움직임이 하나의 느린 영상처럼 보였다.

카하아아악!!

목젖을 갈며 정면에서 달려드는 좀비.

있는 힘껏 놈의 복부에 발길질을 가하자, 복부가 움푹 파이는 기묘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발끝으로 느껴지는 척추의 감촉.

뒤이어 나뭇가지가 부러지듯, 척추가 등가죽을 뚫고 나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좀비는 기이한 자세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동안 악으로 깡으로 버티고, 아등바등 살아남은 끝에 에덤의 능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난 노도와 같이 좀비들을 뚫고 위로, 또 위로 올라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전완수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 * *

옥상에 다다르자, 출입로를 막아둔 승합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카하아아악!!

인기척을 느낀 좀비들이 돌아보기에, 망설임 없이 놈들의 안면을 깨부수며 승합차로 접근했다.

옥상으로 들어갈 공간이 없기에, 난 주저 없이 차량을 밟고 올라섰다.

훙-

그 순간, 정강이로 날아드는 칼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재빨리 뛰어올랐다.

하마터면 정강이 보호대를 잃을 뻔했다.

“재형아!”

뒤늦게 나를 발견한 최현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좀비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휘둘러야 할 거 아냐?”

“거, 거기서 나올 줄은 몰랐지! 거긴 좀비들이 바글바글…… 어?”

최현은 말을 하다말고 건너편을 살피더니, 더는 올라오는 좀비가 없다는 걸 보고 넋이 나간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뭐야, 다 어디 갔어.”

난 차량에서 내려와 이정우를 쳐다보며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요?”

“안전해.”

모든 생존자가 안전하다는 말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무전기를 들었다.

“완수야, 완수야 내 말 들려?”

치지직- 칙- 삑.

-들려. 얘기해.

“그쪽 상황 얘기해 줘.”

-좀비들 얼추 정리됐어. 그쪽은?

“정리 끝났어. 이제 올라와도 돼.”

최현은 내 손등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야, 너 보호대가…….”

최현의 말을 듣고 보호대의 상태를 살폈다.

붉게 물든 보호대.

질척하게 흘러내리는 좀비들의 핏물.

전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전투?

아니, 이건 학살의 흔적이었다.

최현은 화등잔만 해진 눈으로 내 전신을 훑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너…… 설마 주먹으로 때려잡은 거야? 좀비들을?”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자, 최현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혀를 두르며 얘기했다.

“혼자 다른 게임 하고 있네.”

내가 라스트아크를 클리어할 수 있었던 이유.

안정궤도에 올라선 에덤이 얼마나 막강한지, 이제 몸소 느낄 때가 됐다.

* * *

좀비들 정리가 끝나고, 남자들은 청소작업을 시작했다.

시신들을 한데 모아 겹겹이 쌓고, 휘발유를 부어 모조리 태웠다.

수북하게 쌓인 시신의 모습도 적응되지 않지만, 인간의 살가죽이 타들어 가는 냄새는…… 죽을 때까지 잊히지 않을 것이다.

40대 여자, 이민정은 10세 미만의 아이들을 데리고 20m 거리에 있는 음식점으로 들어섰다.

시체 태우는 풍경이 아이들의 정서에 좋을 턱이 없으니. 아이들에게 요리를 도와달라는 핑계로 관심을 끌었다.

윤혜리와 김희연, 그리고 10대 학생들도 시체 태우는 모습은 거북한지, 이민정을 따라 저녁 준비에 나섰다.

활활 타는 불꽃과 끝도 없이 치솟는 연기.

연기를 따라 허공을 바라보자, 어느새 노릇노릇하게 익어가는 저녁노을이 안개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재형아, 몸 상태는 어때?”

옆에서 이정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주먹을 쥐었다 펴기도 하고,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뻐근한 부위가 있는지 확인했다.

아픈 곳도 없고, 불편한 곳도 없었다.

“멀쩡한 거 같아요.”

“이제 주먹으로 싸워도 이상 없는 거야?”

“네, 골밀도랑 표피가 3배는 단단해졌거든요.”

“사람한테 표피가 뭐야. 피부라고 하자. 어감이 좀 그렇네.”

“……네.”

멋쩍은 마음에 싱겁게 웃으며 대답하자, 그는 활활 타는 시체 더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도 계속되겠지.”

“뭐가요?”

“이런 풍경.”

우수에 잠긴 이정우의 표정을 보고, 나 역시 생각이 많아졌다.

애써 괜찮은 척하지만, 이정우는 많이 지친 것으로 보였다.

끝이라도 보이면 모르겠지만, 아직 두 번째 에피소드 초반.

기력을 다한 이정우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좋을까.

곰곰이 생각한 끝에, 난 엷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형, 제가 고등학교 때 국토순례를 다녀온 적이 있어요.”

“국토순례? 그런 것도 했어?”

“제가 사서 고생하는 걸 좋아하잖아요. 몸 쓰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싱겁게 웃으며 얘기하자, 이정우는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저었다.

뒤이어 게슴츠레 풀린 눈으로 내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래서.”

“그때 뭘 느꼈는지 알아요?”

“내가 왜 사서 고생을 하나, 했겠지.”

“푸하핫! 그것도 맞아요. 그런데 뭐랄까…… 깨달음도 있었어요.”

“원효대사냐?”

이정우의 농담에 박장대소를 터뜨리자, 그는 한층 밝아진 표정으로 물었다.

“뭘 느꼈는데.”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목적지에 대한 생각은 출발선에서 끝내자는 거예요.”

“왜?”

“200㎞ 정도 걷다 보면 머릿속에 언제 도착하지, 하는 생각 말고는 안 들거든요. 그걸 반복하면 미치기 시작해요.”

“…….”

“사타구니는 쓸리고, 겨드랑이도 쓸리고, 옷을 입으면 덥고, 그렇다고 벗으면 살이 타고, 포기하고 싶은데…… 그러자니 걸어온 길이 아깝고.”

이정우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가만히 들어주었다.

난 일렁이는 불꽃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길은 끝이 안 보이고, 그놈의 언덕길은 계속 나오고, 그만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그럴 때 어떻게 하면 되는 줄 알아요?”

“어떻게 하면 되는데.”

“땅만 보고 걷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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