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85화
덜컹!
뒤이어 들썩이는 충격과 함께 묘한 부유감이 느껴졌다.
버스가 좀비들의 시신을 짓밟으며 세차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기둥을 붙잡고 운전석으로 다가가자, 수십 구의 시신이 지면에 널브러진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전완수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 두 눈을 번뜩이며 좌측으로 핸들을 틀었다.
갑작스러운 부유감에 하마터면 균형을 잃고 넘어질 뻔했다.
끼리리릭! 끼리릭!
버스의 외벽에 붙어 있던 변종들은 철판을 긁으며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원심력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 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삼각뿔에 하체가 깔린 변종도 골반이 아스팔트 바닥에 갈리더니, 곧 하체가 절단되어 떨어져 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전완수는 퍼석한 입술을 핥으며 사이드미러를 살폈다.
변종들이 따라오도록 속도를 조절하기 시작했다.
“거의 다 왔어. 저 끝에 보인다.”
크레모아가 설치된 고가도로.
목적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 * *
“버스 보인다! 다들 피해요!”
설여원은 저 멀리 상향등을 점멸하는 버스를 보고 일행에게 외쳤다.
그러자 이덕배와 이현배, 박재우와 황덕록은 재빨리 격발용 전선을 쥐고 안전지대로 이동했다.
박재우는 격발용 전선을 격발장치에 연결한 뒤, 설여원이 있는 곳을 쳐다보며 외쳤다.
“다들 빨리 와요! 거기 있으면 위험합니다!”
크레모아는 뒤편으로도 상당한 거리까지 파편이 날아오기에, 방심할 수 없었다.
설여원이 이정우를 쳐다보자, 이정우는 아직 치료가 끝나지 않은 군인들을 쳐다보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곧 뒤에 있는 군인들을 쳐다보며 외쳤다.
“사지 멀쩡한 사람은 빨리 와서 부상병들 차에 실어요!”
박성훈과 분대원들은 이정우의 말에 따라 2분대를 군용 트럭에 실었다.
2분대는 2차 위치로 대피하는 길에 대부분 다리가 부러지거나, 팔이 부러진 상태였다.
고층 건물에서 탈출하는 과정에, 2층까지 올라온 좀비들을 보고 3층에서 뛰어내렸다고 한다.
지면에 화단처럼 생긴 곳이 있어서 뛰었는데, 화단이 아니라 도로 공사를 위해 벽돌을 쌓아둔 곳이었다고 한다.
안개 때문에 시야 확보가 어려웠을 테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시기 좋게 도착한 박성훈과 다른 분대원들, 그리고 이정우와 일행 덕분에 고가도로까지 대피할 수 있었다.
모든 부상병을 군용 트럭으로 옮기고, 이정우는 마지막으로 트럭에 오르며 부상병 치료에 전력을 다했다.
마지막까지 상황을 지켜보던 설여원이 전술 차량에 탑승하자, 박성훈이 운전석에 오르며 다급히 액셀을 밟았다.
50m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안전지대.
혹시라도 파편이 날아들 수 있기에, 박성훈은 전술 차량을 사선으로 주차하며 안전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했다.
부우우웅- 부우웅!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버스의 엔진소리.
모두가 긴장감을 유지한 채, 버스가 크레모아를 지나치기만을 기다렸다.
박재우는 격발장치를 손에 쥐고 설여원의 신호만 기다렸다.
설여원은 전술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쓰러지듯 박재우의 곁으로 다가가 사거리를 응시했다.
300m, 200m, 100m, 그리고 50m.
버스가 크레모아를 설치해둔 장소를 지나치자, 그 뒤를 바짝 추격하는 변종들의 모습이 설여원의 눈에 들어왔다.
“지금!”
달칵.
쾅!!!!!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굉음과 함께 크레모아가 폭발하고, 자욱한 안개 속으로 회갈색 연기가 피어났다.
설여원은 고막이 먹먹한지, 두 눈을 껌벅이며 관자놀이를 눌렀다.
옆에 있던 박재우는 코를 찌르는 화약 냄새에 눈살을 찌푸리며 기침을 토했다.
뒤이어 박성훈이 다가와 설여원에게 물었다.
“변종은, 변종은 어떻게 됐습니까?”
설여원은 마른침을 삼키며 정면을 응시했다.
미간을 좁힌 채 유심히 살피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성공이에요. 몰살입니다.”
* * *
전완수는 녹초가 된 모습으로 버스에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바닥에 엎어지며 울렁거리는 속을 게워냈다.
나 역시 전완수의 옆에 주저앉으며 덜덜 떨리는 손을 부여잡았다.
뒤이어 이곳으로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려오고, 안개 속에서 설여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재형아!”
설여원의 뒤로 이정우와 박재우, 황덕록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고, 이덕배와 이현배도 다가왔다.
난 대충 오른손을 휘휘 저으며 괜찮다고 했다.
흔들리는 버스에 오랫동안 서 있어서 그런지, 다리가 후들거려서 일어날 엄두가 안 났다.
뒤늦게 시야의 우측 상단에서 반짝이는 불빛을 확인할 수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불빛을 클릭하자, 눈앞으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캐릭터 이름: 에덤 화이트
-능력: 강화
-스탯: 근력 22(Max), 체력 7(+12), 반사 신경 5(+5), 동체 시력 5(+5), 정신력 10
-스탯 2: 골밀도 5
*스탯 2는 2포인트에 1스탯씩 증가합니다.
-현재 처리한 좀비의 수: 400/400(Clear)
-남은 포인트: 40
*개방되지 않은 스킬이 존재합니다.
*요구조건: 변이바이러스 흡입(0/1)
벌써 400마리를 처리했다고?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 112마리를 처리했다고 떴는데?
대단지 아파트 앞에서 처리한 좀비들과 어시스트 포인트, 변종의 카운트까지 들어오면서 단숨에 400카운트를 달성했다.
체력도 최대치로 올리면 새로운 스탯이 생성되려나?
고민할 필요 없이, 체력에 3개의 포인트를 투자하자 예상했던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체력이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새로운 스탯이 생성됩니다.
-스탯: ‘표피강화’가 생성됩니다.
-추후 체력 스탯을 높이기 위해서는 표피강화를 최대치로 높여야 합니다.
예상이 맞았다.
표피강화도 스탯 2에 해당하기에, 2포인트에 1씩 증가한다는 설명도 떠올랐다.
남은 37개의 포인트는 어떻게 투자하는 게 좋을까?
골밀도와 표피부터 강화하는 게 좋겠지?
망설임 없이 골밀도와 표피강화에 반반씩 투자하고, 남은 1포인트는 반사 신경에 투자했다.
-캐릭터 이름: 에덤 화이트
-능력: 강화
-스탯: 근력 22(Max), 체력 22(Max), 반사 신경 5(+6), 동체 시력 5(+5), 정신력 10
-스탯 2: 골밀도 5(+9), 표피강화 5(+9)
*스탯 2는 2포인트에 1스탯씩 증가합니다.
-현재 처리한 좀비의 수: 8/700
-남은 포인트: 0.
*개방되지 않은 스킬이 존재합니다.
*요구조건: 변이바이러스 흡입(0/1)
뒤이어 체내의 모든 세포가 꿈틀거리는 느낌과 함께 아찔한 현기증이 일었다.
뼈가 시리고, 피부는 뜨겁고, 전신으로 퍼지는 통증에 숨도 쉴 수 없었다.
심장마비에 걸린 사람처럼 옆으로 픽, 쓰러지자, 모든 일행이 화들짝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야! 너 왜 그래!”
이정우는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으로 내 뺨을 때렸다.
난 눈도 깜박이지 못하고, 통증이 사라지기만을 기다렸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묘한 기운에 입도 벙긋거릴 수 없었다.
동상에 걸린 사람처럼 차가운데 뜨겁고, 후끈거리는데 시렸다.
그렇게 30초가량 미동 없이 누워 있자, 서서히 통증이 가시며 폐부에 들어찬 탁한 숨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하아아아…….”
앓는 사람처럼 숨을 뱉으며 상체를 일으키자, 이정우는 마른침을 삼키며 내 전신을 훑었다.
“너 괜찮은 거야? 빨리 말해 인마! 얘기를 해야 치료하지!”
“괜찮아요.”
“괜찮다는 사람이 그렇게 힘없이 쓰러지냐? 심장이 안 좋아?”
난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신체를 강화할 때 나타나는 현상을 알려주었다.
그러자 이정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대뜸 내 등을 때렸다.
“놀랐잖아 인…… 악!”
이정우는 얼얼한 손바닥을 어루만지며 멍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이에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정우는 얼빠진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무슨 몸이…… 쇳덩어리 같냐.”
그러자 너도 나도 내 곁으로 다가와 손가락으로 팔뚝을 찌르기 시작했다.
“와, 안 들어가.”
“뭐야, 피부가 돌 같아.”
“이게 에덤인가?”
전완수와 박재우, 황덕록의 모습에 난 두 눈을 게슴츠레 뜨며 얘기했다.
“다들 그만 하지? 그림 이상하다.”
뒤이어 옆구리를 어루만지는 손길이 느껴졌다.
옆을 돌아보자, 입을 떡 벌린 채 신기한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아이처럼 두 눈을 빛내는 설여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너 뭐하냐.”
“신기하다.”
“내가 장난감이냐?”
설여원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회피했다.
장난은 이쯤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변종들의 시신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박성훈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사지가 떨어져 나간 변종의 시체를 발로 툭툭 건드리며 생존 여부를 살폈다.
“소대장님.”
그는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12층 건물이었습니다. 12층 건물 옥상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이것들이 외벽을 타고 올랐다고 합니다.”
“…….”
“발소리도 없어서 인기척도 못 느꼈대요. 사각지대를 파악하고 우리 분대원들을 공격한 거죠.”
그는 경직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입술을 달싹이며 물었다.
“박재형 씨는…… 알고 있었습니까?”
“…….”
“변종들의 특성, 알고 있었냐고 묻는 겁니다.”
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왜, 대체 왜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변종이…… 3마리인 줄 알았어요.”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 겁니까?”
박성훈은 내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멱살을 잡으며 얘기했다.
“당신이 변종의 특성만 얘기했어도 대기하라는 명령 안 내렸어.”
“……죄송합니다.”
“죄송? 저기 있는 군인들한테 똑같이 얘기해 봐.”
슬쩍 고개를 틀어 군용 트럭에 있는 군인들을 쳐다봤다.
이정우에게 치료를 받아 상처는 회복했지만, 다들 생기를 잃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1분대와 2분대, 총 16명의 군인이 이곳에서 있었지만, 살아남은 군인은 4명이 전부였다.
차마 그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시선을 내리깔자, 박성훈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눈시울을 붉혔다.
변종의 특성을 얘기할 시간이 없었다.
바쁘게 돌아간 상황 속에, 거기까지 설명할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말이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변명일 뿐이니까.
멱살을 쥐고 있는 박성훈의 손이 파르르 떨리는 게 느껴졌다.
엄폐하고 대기하라는 명령을 내린 본인을 자책하는 것으로 보였다.
박성훈은 내 상체를 밀치며 멱살을 놓더니, 등을 돌린 채 멍하니 허공을 바라봤다.
울컥한 마음을 달래는 걸까.
죄스러운 마음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박성훈은 훅, 하고 숨을 뱉으며 얘기했다.
“돌아가서 다시 얘기합시다. 난 당신이…….”
치지직- 칙-
그 순간, 옆구리에 차고 있던 무전기에서 소음이 들려왔다.
무전기를 손에 쥐자, 낯설면서도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어요?
두려움이 묻어나는 목소리.
‘……전수연?’
전완수의 여동생, 전수연의 목소리였다.
수비팀의 무전기는 정진영에게 있을 텐데, 왜 전수연이 가지고 있는 거지?
뒤이어 울먹임에 가까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와주세요! 여기, 여기 좀비들이 너무 많아요!
좀비들이 많다는 말에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박성훈을 쳐다보자, 그는 분대원들에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수비를 담당하던 4분대까지 이곳으로 왔기에, 상가 지역은 무방비상태나 마찬가지였다.
길거리에 있던 변종과 좀비들을 이곳으로 유인한 줄 알았는데, 대로에 남은 좀비들이 상가 지역으로 이동한 모양이다.
일행을 돌아보자, 전완수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방금…… 그거 누구야. 수연이 목소리 아니야?”
난 대답할 새도 없이 버스로 달려갔다.
전완수는 욕설을 읊조리더니, 다급히 내 뒤를 따르며 설여원에게 외쳤다.
“여원이는 정우 형이랑 같이 가!”
시야 확보가 가능한 설여원을 승합차에 태우고, 이덕배와 이현배는 서로 눈치를 보며 버스로 달려왔다.
고가도로에 있던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차량에 탑승하고, 우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상가 지역으로 이동했다.
* * *
크어어어어!!
옥상 주차장으로 대피한 생존자들은 두려움에 떨며 주차장 입구를 쳐다봤다.
최현과 정진영, 천호진, 최만석이 좀비들을 막고 있지만, 체력적으로 지쳐가는 모습을 보였다.
“다들 뒤로 와!”
좀비들에게 밀리기 시작하자, 정진영은 들고 있던 손도끼를 내려놓고 주머니에서 동그란 물건을 꺼냈다.
핑-!
언제 챙겼는지 몰라도, 그는 재빨리 안전핀을 뽑으며 입구 깊숙이 수류탄을 투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