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83화
그러자 아파트 정문을 향해 탄알을 쏟아붓던 박성훈이 식은땀을 흘리며 뒤를 돌아봤다.
그는 다급히 대검을 휘둘러 좀비들의 성대와 안구를 꿰뚫었다.
최대한 군인들과 붙어야 한다.
서로의 등을 맞대고, 버스가 올 때까지 버텨야 한다.
한 발 한 발 천천히, 좀비들을 처리하며 군인들의 곁으로 이동했다.
“아!”
그 순간, 뒤에서 설여원의 비명이 들려왔다.
세차게 고개를 돌리자, 뒷걸음질 치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설여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득달같이 달려드는 좀비들.
내가 팔을 뻗는 시간보다 좀비들이 설여원을 덮치는 게 빠를 것이다.
설여원의 상체를 뒤덮는 좀비의 모습이 느린 영상처럼 두 눈에 들어온다.
그 모습을 보고 심장에서 아찔한 충격이 느껴지고, 미친 듯이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기 시작했다.
손이 안 되면 발로 해결하면 그만.
생각할 겨를도 없이, 좀비의 안면을 향해 있는 힘껏 발길질을 가했다.
좀비에게 물릴 가능성?
그런 걸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빠각!!
좀비의 안면이 일그러지며 경추가 부러지는 소리가 귓가로 들려왔다.
정강이로 느껴지는 저릿한 통증을 외면한 채, 휘두른 오른발을 디딤돌로 삼아 왼발 돌려차기를 시도했다.
떡!!
옆에 있던 좀비의 관자놀이가 함몰되며 발뒤꿈치로 느껴지는 타격감에 흐려졌던 정신이 번쩍 들었다.
헌팅 나이프로 좀비들을 처리하는 것과 다른 느낌.
모든 세포가 예리하게 빛나고, 감각이 살아 숨 쉰다.
두 다리를 이용해 접근한 좀비들을 떨쳐내고, 뒤이어 접근하는 좀비들의 안구에 헌팅 나이프를 찔러넣었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오른발로 땅을 디딜 때마다 저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정강이에 금이 간 것 같다.
설여원은 다급히 땅을 박차고 일어나 등을 맞대었다.
빠- 앙!
그 순간, 눈부신 상향등을 점멸하며 이곳으로 다가오는 불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산책로를 지나 대로로 올라서는 버스와 승합차의 모습.
버스는 우렁찬 엔진소리를 울리며 이곳으로 다가왔다.
콰가가가가가각!
인도와 대로의 경계에 세워진 팬스를 깨부수며, 팬스와 좀비들을 동시에 쓸어버리며 내 옆에 정차하는 버스.
치이익-
“빨리 타!”
버스의 문이 열리며 박재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에 있는 군인들을 쳐다보자, 그들도 버스의 경적을 듣고 현 상황을 파악한 것으로 보였다.
박성훈은 다급히 분대원들을 향해 외쳤다.
“뛰어! 버스로 뛰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사불란하게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오르는 군인들의 표정으로 하나같이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혼비백산한 표정으로 버스에 오르며 두 팔을 바들바들 떠는 군인들.
아파트에서 쏟아져나오는 좀비들을 보고 겁에 질린 게 틀림없다.
시선 분산을 위해 전술 차량을 타고 이동한 군인들이 대로에 있는 좀비들은 유인했지만, 아파트에 내부에 있는 좀비들까지 불러내진 못했다.
난 모든 군인이 탑승한 것을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버스에 올랐다.
텁!
카하아아악!!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좀비들은 나를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안구가 꿰뚫린 좀비 하나가 내 발목을 잡고 매달렸다.
뇌수까지 칼끝이 닿지 않은 건가?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데, 죽지 않고 발악하고 있었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다급히 운전석 옆의 기둥을 붙잡고, 까드득 이를 갈며 뒤를 돌아봤다.
뒤이어 좀비는 질척한 치아가 내 발목을 씹었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놈의 머리에 발길질을 가하고, 뒤에 있는 박재우에게 외쳤다.
“빨리 출발해!”
문 닫을 새도 없이 버스는 대로를 나아가기 시작했다.
아파트에서 쏟아져 나오는 좀비들이 길목을 틀어막기 전에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난 정강이로 느껴지는 통증으로 인해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다.
미간을 찌푸린 채 고통을 호소하자, 설여원이 내 양팔을 잡고 버스 내부로 질질 끌고 들어왔다.
곧 몇몇 군인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무, 물린 거 아니야?”
“발목, 발목 물린 거 같은데.”
웅성거리는 목소리를 듣고 설여원이 반박하려는 찰나, 박성훈이 대검을 들고 내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대뜸 바짓단을 걷었다.
박성훈은 보호대에 찍힌 이빨 자국을 보고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안 물렸어. 아니 어떻게…… 이거 재질이 뭐지?”
“지금 그게 중요한…….”
쾅!! 퍼버벅!!
뒤이어 버스로 충격이 느껴지고, 좀비들의 비명이 사방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박재우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세차게 핸들을 돌리며 뒤에 있는 설여원을 불렀다.
“설여원! 빨리 와서 앞에 좀 봐줘!”
박재우는 안개 속에서 시야 확보가 어렵기에, 버스의 속도가 올라갈수록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기 시작했다.
설여원은 박재우의 옆으로 다가가 주변 지형을 살피며 얘기했다.
“100m 앞에서 좌회전.”
“회전 각은?”
“내가 그런 것까지 어떻게 알아!”
부아아앙-!
난 바닥에 누운 채 설여원에게 물었다.
“정우 형은, 정우 형 따라오는지 확인해.”
설여원은 사이드미러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뒤에 불빛 보여. 잘 따라오고 있어.”
이정우가 따라오고 있다는 말을 듣고,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 자리에 대(大)자로 뻗었다.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오른팔을 이마 위에 얹었다.
다행이다.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산책로를 벗어났다.
치지직- 치직-
그 순간, 무전기에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옆구리에 차고 있던 무전기를 손에 쥐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우리 쪽 무전기가 아니다.
박성훈의 가슴팍에 있는 무전기에서 무전이 들어오고 있었다.
-여기는 뻐꾸기! 여기는 뻐꾸기! 변종 출몰! 변종 출……! 으아악!
무전기 너머로 난사에 가까운 총성이 들려오고, 그 속으로 고막을 찌르는 외마디 비명이 섞여 있었다.
-끼에에에에엑!!
선명하게 들리는 변종의 울음소리.
전신을 더듬는 질척한 울음소리에, 박성훈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후퇴! 뻐꾸기 후퇴하라! 2차 위치로 후퇴!”
-치이이이이- 삑.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무전기 너머에서 대답이 들려오는 일은 없었다.
박성훈은 마른침을 삼키며 다른 분대에 무전을 시도했다.
“여기는 올빼미, 독수리 응답하라. 독수리 응답하라!”
-여기는 독수리! 다수의 변종 출몰! 위치 파악 불가! 건물 외벽에서…… 야 뒤에!
-타다다다다당!!!
무전기 너머로 찢어지듯 들려오는 총성.
박성훈은 불안한 표정을 짓더니, 계속해서 무전을 시도했다.
“독수리! 독수리 나와라! 지금 당장 2차 위치로 이동!
-2차 위치로 이동! 교신 끝!
다수의 변종?
대체 몇 마리나 되기에 다수라고 하는 거지?
설마 이곳에 있는 변종은 3마리가 아닌 건가?
뒤늦게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변종에게도 지능이 존재한다.
이는 무리 행동을 할 수 있다는 뜻이 되고, 서로 소통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음지에 있던 변종들까지, 놈들이 뭉치기 시작했다.
* * *
설여원의 브리핑에 따라 박재우는 온정신을 운전에 집중하며 간신히 상가 지역에 다다랐다.
버스와 승합차가 순서대로 진지에 들어서자, 안전귀가를 기도하고 있던 생존자들이 일제히 달려왔다.
생존자들의 모습을 보고 안도감이 들다가도, 한편으로는 초조한 마음을 떨쳐낼 수 없었다.
미끼가 되어준 군인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뒤에 있는 박성훈을 쳐다보자, 그는 3분대와 함께 무기고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는 버스에서 다음 작전의 브리핑을 마친 상태였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군인들.
변종과 싸워야 한다는 생각에 다들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생사의 갈림길에 있을 전우들을 생각하며, 마지막까지 힘을 쥐어짜고 있었다.
난 설여원의 부축을 받아 정진영의 앞으로 향했다.
정진영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안절부절못하며 물었다.
“어디야, 어디 다친 거야.”
“다리요. 치료 좀 부탁해요.”
난 바닥에 주저앉으며 생존자들 사이에 있는 김희연을 불렀다.
“희연아, 퀘스트 완료됐어?”
“네? 아, 메인 퀘스트요?”
김희연은 홀로그램을 켜고 퀘스트 목록을 살피더니, 고개를 저으며 얘기했다.
“아니요, 아직 완료 안 됐어요.”
대단지 아파트의 상황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왔는데, 어째서 완료가 안 된 거지?
설마…….
난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 숙였다.
김희연의 가족은 살아 있는 것이다.
대단지 아파트에 없다는 건 산지에 있는 아파트로 대피했다는 건데, 거기는 안전한 건가?
문제는 산지에 있는 아파트로 이동하려면 산업도로를 지나서 1㎞는 더 들어가야 한다.
군인들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상황.
분주하게 움직이는 군인들을 쳐다보자, 옆에 있던 설여원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너 또 무슨 생각하는 거야? 설마 군인들 따라가려는 건 아니지?”
“도와야지.”
“미쳤어? 변종이 있다잖아!”
설여원이 언성을 높이자, 주변에 있던 생존자들은 너도나도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아직 변종을 경험하지 못한 생존자들.
변종이란 말만 듣고 움츠러든 모습을 보였다.
가만히 있던 이정우도 눈살을 찌푸리며 얘기했다.
“민간인 구출하는 게 저 사람들 일이야. 섣불리 행동하지 마.”
“형은 저 사람들 표정 못 봤죠? 저대로 보내면 전멸이에요. 어떻게든 힘을 보태야 한다고요.”
“우리가 무슨 힘이 있다고 저들을 도와? 총 들고 있는 사람도 버티기 힘든데, 우린 뭐 쇠뇌로 잡을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좀!”
“우리 때문에 갇혔다고요!”
내가 언성을 높이자, 이정우는 까드득 이를 갈며 아무런 말도 잇지 않았다.
난 눈살을 찌푸리며 폐부에 들어찬 탁한 숨을 뱉었다.
그리고 한층 가라앉은 마음으로,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얘기했다.
“군인들 전멸하면 그다음은 우리예요.”
“내 말은 그게 아니야.”
“그럼 뭔데요? 버스 타고 수성구로 바로 갈까요?”
비아냥대듯이 얘기하자, 이정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계속해서 얘기했다.
“희연이 퀘스트가 아직 완료 안 됐어요. 모르겠어요? 산지에 있는 아파트, 거기에 희연이 가족이 있다고요!”
이정우는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며 시선을 회피했다.
난 일행의 얼굴을 돌아봤다.
다들 이정우와 내 눈치를 보며 함묵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김희연은 일행의 눈치를 보더니, 아랫입술을 깨물며 두 주먹을 파르르 떨었다.
배신감을 느낀 건가?
김희연이 우리의 모습을 보고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윤혜리가 위로하려 하자, 김희연은 윤혜리의 손길을 뿌리치며 등을 돌렸다.
난 모든 일행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고작 이 정도에요? 이 정도 일에 이렇게 쉽게 포기할 생각이었어요?”
“이 정도? 야, 변종의 숫자도 모르는 마당에 어떻게 싸우려고? 산업도로 쪽에 고층 건물 많은 거 몰라? 변종들은 외벽 타고 다니는데, 죽으려고 환장했어?”
이정우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다만……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우리의 목표, 우리의 약속인데.
모두의 본가를 확인하고 아크로 이동하기로 한 약속을, 이렇게 허망하게 깨고 싶지 않았다.
악으로 깡으로, 비참하고 처절하더라도 싸우고 살아남아야지.
회피할 일이 있고 아닌 일이 있잖아.
우리 파티원의 일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외면해선 안 된단 말이다.
난 천천히 뒷걸음질 치며 얘기했다.
“다들 실망이다. 진짜.”
난 자리에서 일어나 박성훈이 이동한 곳으로 향했다.
“야!”
그러자 이정우가 달려와 대뜸 내 팔을 잡아끌었다.
힘으로 버티자, 그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얘기했다.
“지금은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그럼 어쩌자고요!”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치자, 참다못한 김희연이 이정우와 내 곁으로 다가오며 얘기했다.
“됐어요! 둘 다 그만 싸워요. 그냥…… 그냥 내가 포기하면 되잖아.”
울먹이는 목소리.
김희연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울음을 쏟아냈다.
옆에 있던 이정우는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뜨더니, 한층 진정된 목소리로 내게 얘기했다.
“포기하겠다는 게 아니야. 제발 사람 말 좀 끝까지 들어.”
“…….”
“너 흥분하면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 다 끊어버리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거 알아?”
“…….”
“지금 바로 움직일 게 아니라, 계획을 세우고 움직여야 한다고. 지금 변종들은 군인들 잡으려고 혈안이 됐잖아. 다 같이 안쪽에서 저항할 게 아니라, 우리가 바깥에서 조여야 한다고. 모르겠어?”
이정우의 말을 듣고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