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73화 (73/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73화

뒤에서 설명을 듣고 있던 설여원이 조성훈을 쳐다보며 물었다.

“나도 궁금한 거 있어. 대장 좀비랑 수하들은 어떻게 소통하는 거야? 서로 텔레파시라도 통하는 거야?”

설여원의 물음에 조성훈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나도 정확한 자구가 들리는 건 아니야. 다만…… 좀비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슨 의도인지, 머릿속으로 떠올라.”

“그게 텔레파시지 뭐야.”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그들만의 의사소통 기능이었다.

돌고래의 초음파를 인간이 알아들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원리인가?

난 가만히 턱을 매만지며 조성훈에게 물었다.

“수하들은 네 말에 절대적으로 따르는 것 같던데, 무슨 명령이든 따르는 거야?”

“어, 뭐든 따라. 그리고…… 수하가 된 좀비는 내 머릿속에 위치가 보여.”

“위치가 보인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좌표처럼 내 머릿속에 수하들의 위치가 붉은색으로 표시돼. 그래서 정찰병이 사라지면 거기에 생존자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좀비가 좀비를 죽이진 않으니까.”

그러니까…… 공명 좀비만 정찰병이 되는 게 아니라 모든 수하가 정찰병이 될 수 있다는 건가?

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을 이어나갔다.

“네가 만약 변종으로 변하면, 지금처럼 수하를 부리지 못하는 거야?”

“혁진이는 그랬어.”

혁진, 일전에 학교에서 봤던 변종의 이름이었다.

뒤이어 조성훈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변종이 되면…… 더는 인간도, 좀비도 아닌 존재가 돼.”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옆에 있는 일행의 모습을 살폈다.

정진영과 설여원, 둘 다 각자의 무기를 손에 쥐고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언제든 공격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마친 것으로 보였다.

내가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자, 조성훈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아는 건 이게 다야. 그러니 이제…… 너도 약속 지켜야지?”

“없어.”

“뭐?”

“좀비랑 싸우러 오는데 치료제를 어떻게 들고 와? 당연히 아파트에 두고 왔지.”

“…….”

조성훈이 눈살을 찌푸리기에, 어깨를 으쓱이며 얘기했다.

“계단에 있는 네 수하들 좀 어떻게 해봐. 그래야 치료제를 가져오든 말든 하지.”

“나도 같이 가면 되잖아.”

“퍽이나. 다른 사람들이 순순히 비켜주겠어?”

“네가 설명하면 되잖아. 치료제만 주면 저 밖에 있는 놈들은 내가 멀리 보낼게.”

좀비들을 보험으로 두겠다는 건가?

103동까지 좀비들을 끌고 가겠다는 것 같은데…….

곤란한 마음에 정진영과 설여원을 쳐다봤다.

정진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옥상 난간 너머를 살피기 시작했다.

뒤이어 엄지로 옆 건물을 가리키며 얘기했다.

“빌라는 많아.”

그러자 설여원도 자리에서 일어나 옆 건물을 살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조성훈을 처리한 뒤에 빌라를 넘나들며 거리에 남은 좀비들을 따돌리자는 뜻.

정진영의 말을 듣고 조성훈은 내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지금…… 뭐라는 거야? 빌라가 많은 게 왜.”

“딱 하나만 더 묻자.”

이번엔 내가 동문서답했다.

조성훈의 눈빛으로 불안한 마음이 고스란히 엿보였다.

난 조성훈의 눈빛을 외면한 채,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까지 몇 명이나 죽였어?”

“뭐?”

“생존자 말이야. 지금까지 몇 명이나 먹었냐고.”

“그건 왜…….”

조성훈은 어벙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뒤늦게 상황 파악을 마치고 얼굴을 붉히며 물었다.

“야, 너 설마…….”

난 헌팅 나이프를 말아쥐며 망설임 없이 놈의 목젖을 그었다.

조성훈의 목에서 분수처럼 핏물이 쏟아지고, 그의 눈빛으로 허망함과 분노, 배신감이 엿보였다.

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네 목숨이 소중하면, 남 목숨 소중한 것도 알았어야지.”

* * *

내가 이런 말 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나 역시 타인의 목숨을 생존이란 명목으로 끊어왔으니까.

하지만…… 내겐 나름의 정의가 존재했다.

사람답게 살아남은 생존자는 받아들이되, 쓰레기는 가차 없이 처리하자는 다짐.

조성훈이 쓰러지자, 좀비들의 발소리가 불규칙적으로 대지를 물들이기 시작했다.

지금껏 상명하복 관계로 질서정연하던 움직임이 순식간에 흐트러졌다.

옆에 있는 설여원을 쳐다보자, 그녀는 맞은편 빌라를 턱짓하며 얘기했다.

“아직 처리해야 하는 놈 하나 남았어.”

그래, 인간이기를 포기한 녀석이 남았다.

옥상을 넘으며 처음 올라왔던 빌라에 도착하자, 노끈에 묶인 채 버둥거리는 인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하진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기겁하며 발악하기 시작했다.

“살려줘, 살려줘! 나, 나도 살고 싶어서 그랬어. 나도 생존자잖아! 난 좀비 아니잖아!”

맞는 말이다.

이하진은 좀비가 아니지.

하지만 인간도 아니다.

쾅! 콰광! 쾅! 끼리릭, 쾅!

크어어어어어어!!

조성훈이 사망하자, 잠잠하던 좀비들이 다시금 철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뒤에 있는 일행을 쳐다보자, 정진영은 뻐근한 다리를 풀며 얘기했다.

“길은 하나뿐이지?”

“네.”

“저쪽에 옥탑방 있는 빌라 있던데, 거기서 보자고.”

“알겠습니다.”

한발 앞서 정진영이 이동하고, 설여원은 이동하려다 말고 내 얼굴을 쳐다봤다.

뒤이어 입술을 달싹이며 얘기했다.

“빨리와야 돼. 또 늦지 마.”

“알겠어, 걱정하지 말고 먼저 가.”

저 멀리, 대략 200m 떨어진 거리에 옥탑방이 있는 빌라가 있다.

정진영과 설여원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곳으로 이동했다.

“야, 너 나 알지? 나 알잖아! 한 번만 봐주라. 응? 제발, 제발…….”

이하진은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며 애걸복걸하기 시작했다.

멀어지는 일행을 보고, 느낌이 좋지 않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다.

이하진은 눈물까지 글썽이며 얘기했다.

“제바알……! 살려줘, 살려줘…… 나도 사람이라고!”

“너 사람 아니야.”

“미안해. 내가 진짜 미안해! 나도 죽기 싫어서 그랬다고! 다시는 안 그럴게. 응? 그러니까 제발…….”

착잡한 마음에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물었다.

“그동안 기생충처럼 살아남아서 좋았냐?”

“잘못했어,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안 그럴 테니까 제발 나도 데려가. 제발…….”

눈물 콧물을 쏟으며 사정사정하는 이하진의 모습을 보고, 속에서 정체 모를 역한 기운을 느꼈다.

이하진은…… 지금껏 이런 광경을 수도 없이 봤을 것이다.

남들이 살려달라고 사정하는 모습을 보고, 그동안 이하진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말 본인이 같은 처치에 놓일 거라고는 꿈에도 모른 걸까?

난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노끈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러자 이하진은 끅끅거리며 얘기했다.

“고마워, 진짜 고마워. 내가 진짜…… 앞으로 진짜 착하게 살게. 다시는…….”

이하진이 뭐라고 하든 가볍게 무시하고, 손바닥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하진은 흐느껴 울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그의 양팔과 두 다리는 여전히 노끈에 묶인 상태였다.

이하진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내 얼굴을 올려다보기에, 난 어깨를 으쓱이며 얘기했다.

“내가 언제 풀어준다고 했지?”

“……뭐?”

“하도 꿈틀거려서 느슨해졌을까 봐.”

쾅! 쾅쾅! 끼리릭- 뜨득- 쾅!

크어어어어!!

철문을 두드리는 좀비들의 압박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옥상 문이 부서지지 않더라도 창고를 통해 밖으로 나올지도 모르기에, 더는 늑장 부릴 여유가 없다.

앞으로 5분 이내에, 좀비들이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맞은편 빌라의 높이는 5층.

건물 간의 거리는 대략 3m.

난 이하진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지금껏 타인의 목숨으로 연명했으니까, 마지막만큼은 타인을 위해 네 목숨 바치는 것도 괜찮을 거야. 그래야 천국 간다?”

이하진의 체취가 좀비들의 발목을 잡아줄 것이다.

그 길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정진영과 설여원이 이동한 건물로 향했다.

크어어어어어!!

지면에서 들려오는 좀비들의 울음소리로 보아, 이 근방은 좀비들에게 포위된 게 틀림없다.

조성훈이 사망하면서 상명하복 관계가 사라졌으니, 자유를 얻은 좀비들이 거리 곳곳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200m가량을 쉬지 않고 이동하자, 옥탑방에서 손을 흔드는 정진영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급히 옥탑방에 들어서자, 설여원은 망원경을 건네며 내게 물었다.

“이하진은 일부러 살려둔 거야?”

“좀비들이 옥상에 올라왔을 때 먹을 게 없으면 우리의 체취를 쫓아올지도 모르니까.”

“이하진의 냄새로 우리의 체취를 가리겠다는 거야? 안개 밖인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아니, 두 번째 에피소드부터는 달라. 좀비들의 감각이 증가한 것도 마음에 걸리고, 이제 안개 밖에서도 좀비들의 후각이 작용하니까.”

설여원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반박하지 않았다.

반면에 정진영은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대장 좀비도 처리하고, 이하진을 처리한 것도 좋아. 그런데 이제 우리가 문제 아니야?”

나 역시 탈출방안은 생각하지 못했다.

대장 좀비를 잡으러 나올 때는 좀비들의 분포지를 얼추 파악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사방이 지뢰밭이나 다름없었다.

떵!!

크어어어어!!

저 멀리, 철문의 경첩이 떨어지며 옥상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좀비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난 망원경을 통해 이하진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봤다.

육식동물의 날카로운 치아에 저항조차 못 하고 처참하게 찢기는 초식동물의 모습이었다.

이하진이 죽은 뒤에도 좀비들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놈들의 행태를 파악해야 다음 수를 준비할 수 있으니까.

옥상에 있던 좀비들은 연신 콧잔등을 찌푸리며 공기 중에 퍼진 체취를 맡더니, 내가 있는 옥탑방을 응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설마, 우리의 위치를 파악한 건가?

크어어어어!!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이곳을 바라보던 좀비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상체를 숙이고 이하진의 살점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이하진을 미끼로 풀어두길 잘했다.

이하진의 체취 덕에, 우리의 위치는 발각되지 않았다.

난 들고 있던 망원경을 내려두고, 뒤에 있는 일행에게 얘기했다.

“오늘은 여기서 묵고, 내일 해 뜨면 움직이죠.”

두 사람 모두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밤이 깊었고, 사방에 좀비들이 깔려 있다.

체력적으로도 버거운 상태였기에, 이곳에서 해가 뜰 때까지 대기하는 게 최선이었다.

난 옆구리에 차고 있던 무전기를 들고 아파트에 있는 일행에게 무전을 보냈다.

“정우 형, 제 말 들립니까? 여보세요?”

치지직- 칙.

-다들 괜찮아?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이정우의 목소리에,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형 괜찮아요? 다친 사람은 없어요?”

-우린 괜찮아. 그쪽은 어때? 어떻게 된 거야?

“대장 좀비, 저희가 잡았습니다.”

-뭐?

대장 좀비가 죽었다는 소식에 무전기 너머로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도나도 먼저 말하겠다고 난리인 모양이다.

뒤이어 무전기를 잡은 이정우가 얘기했다.

-다들 안전한 곳으로 피신한 거야?

“옥탑방에 숨어 있어요. 안전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후……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정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존재 자체의 의문인 신에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

103동에 있던 좀비들이 일제히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걱정했던 모양이다.

-지금 정확한 위치가 어디야? 우리가 데리러 갈까?

“아니요. 밖에 좀비들이 많아서 지금은 기다리는 게 좋겠어요. 좀비들이 흩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내일 아침에 이동하겠습니다.”

-그래, 우린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너희들 몸만 생각해.

“알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무전기 꺼둘게요. 무전 소리 듣고 올라오는 좀비가 있을지도 모르니.”

-알았어, 내일 아침에 다시 연락해. 마중 나갈 테니까.

아파트에 있는 일행과 연락을 마치고, 벽에 등을 기댄 채 설여원과 정진영을 쳐다봤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둘 다 묵직한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리고 있었다.

“진영이 형이랑 여원이는 먼저 자요.”

“넌 뭐 하려고?”

“보초는 있어야죠. 2시간마다 돌아가면서 서요.”

먼저 자라는 말에 정진영은 사양하지 않고 그대로 등을 붙였다.

뒤이어 반쯤 잠긴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재형아.”

“네?”

“수고했다.”

정진영은 이 말을 끝으로 1분도 되지 않아 잠에 빠졌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많이 지친 모양이다.

하긴, 오늘은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학교를 빠져나오자마자 마트를 수색하고, 천호진을 만나고, 실개천 너머의 생존자들을 구출했으며, 대장 좀비까지 잡았다.

설여원도 상당히 지쳤는지, 다른 말 없이 곧장 두 눈을 감았다.

나도 안도감이 들어서 그런지, 몸이 느슨해지며 하품이 절로 나왔다.

정신을 다잡기 위해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끝나지 않은 하루, 마지막까지 맡은 바 최선을 다할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