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68화
이토록 많은 좀비가 숨어 있을 줄이야.
처음부터 우리가 접근하길 기다린 건가?
생존자를 구출하고, 더 많은 먹잇감을 손쉽게 사냥하기 위해 때를 기다린 건가?
판도가 뒤집혔다고 생각했는데, 미끼를 물어버린 건 우리였다.
좀비들이 더 쌓이기 전에 황급히 외벽으로 나아가자, 옥상에서 내려온 생존자들이 버스에 탑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 내려왔어! 다 왔어!”
이덕배의 외침에 뒤에 있던 전완수가 외쳤다.
“세워, 차 세워!”
“미쳤어? 여기서 차를 왜…….”
“버스 운전할 줄 아는 사람이 없잖아!”
급브레이크를 밟자, 전완수는 의자 등받이에 어깨를 부딪치는 와중에도 차량 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크어어어어어어!!
발치에서 들려오는 좀비들의 외침.
후진 기어를 넣고 접근한 좀비들을 밀치며 전완수가 버스에 탑승할 시간을 벌어주었다.
뒤이어 우렁찬 소리와 함께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다시금 전진기어를 넣으며 액셀을 밟았다.
외벽을 돌아 앞문으로 향하자, 승합차를 이용해 정문을 방어하던 일행도 이미 차량에 탑승한 상태였다.
앞뒤로 쏟아져나오는 좀비들.
생존자 구출에 성공했으니, 이제 벗어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난 무전기를 들고 각 차량의 운전자들에게 얘기했다.
“좀비들 따돌리고 실개천 너머에서 합류합니다! 완수는 곧장 실개천 너머로 이동하고 정우 형이랑 저는 좀비들 따돌려요!”
-오케이!
-알았어!
돌아갈 여유가 없기에, 운동장에 널브러진 좀비들의 시신을 짓밟으며 정문을 향해 달렸다.
쉴 새 없이 요동치는 차량.
마치 수십 개의 방지턱이 50㎝마다 설치된 것 같았다.
도저히 속도를 높일 수 없었다.
다들 안전띠도 착용하지 못했기에, 뒤에 타고 있는 일행의 입에서 연신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핸들을 쥐고 있는 나 역시 연달아 느껴지는 부유감에 액셀의 강약조절을 하기 어려웠다.
그어어어어어…….
그어어어…… 어어어어…….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교내에 남은 좀비들은 멀어지는 우리를 보고 따라오기는커녕, 허공을 향해 일제히 공명하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두두두-
그러자 자욱한 안개 너머로 수십, 수백의 인영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정문으로 노도와 같이 밀려드는 좀비들.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분명 수백 마리의 좀비를 처리하고 들어왔는데, 교외에 저토록 많은 좀비가 남아 있었다고?
가뜩이나 속도도 높일 수 없는 상황에, 정문으로 들어오는 좀비들은 하나의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다.
사이드미러는 떨어져 나가고 앞 유리는 균열이 생겼으며, 측면에 달아둔 철판도 너덜거리는 상황.
차량이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다.
치지직- 치직-
-앞에 비켜!!
빠아아아아앙!!!
뒤이어 무전기 너머로 전완수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고막을 때리는 경적과 함께 버스가 길을 뚫기 시작했다.
삼각뿔로 좀비들의 시신을 밀치며 폭주 기관차처럼 나아가는 버스.
재빨리 핸들을 틀어 버스가 지나가도록 길을 만들고, 버스의 후미로 붙었다.
뒤따라오던 승합차도 내 뒤로 붙으며 상향등을 한 차례 깜박였다.
잘 따라오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신호.
30㎞, 40㎞, 50㎞.
버스는 서서히 가속에 들어가더니, 정문에 들어찬 좀비들을 볼링핀처럼 때려 부수며 길을 뚫기 시작했다.
입구를 막아선 수백 마리의 좀비가 좌우로 나가떨어지는 걸 뒤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크어어어어어어!!
하지만 우측에서 좀비들의 포효가 들려오더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좀비들이 일제히 버스의 측면을 향해 몸을 날렸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좀비들이 버스를 가격하자, 버스는 한 차례 기우뚱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쓰러지지 않기 위해 핸들을 이리저리 조작하는 모습.
버스에 있던 생존자들은 버스가 뒤집히지 않도록 오른쪽으로 달려가 손에 잡히는 뭐든 붙잡고 일제히 매달리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지면에 깔리는 좀비들의 시신으로 인해 버스는 15도가량 기울어진 상태로 몇십 미터를 나아가더니, 이윽고 좌측의 공터 담벼락에 충돌하며 멈춰 섰다.
그 모습을 보고 조수석에 있던 설여원이 무전기를 들며 외쳤다.
“완수야, 완수야 괜찮아?”
-씨X! 차가 안 나가!
벽에 박힌 버스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뒷바퀴가 회전하는 것으로 보아 액셀을 밟고 있지만, 지면에 깔린 좀비들의 살점만 찢어질 뿐 차량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빠아아앙! 빠앙!
난 경적을 울리며 좀비들의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 주변을 맴돌았다.
하지만 무슨 영문인지, 이곳에 있는 좀비들은 내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설마 하는 마음에 이마 위로 식은땀이 맺혔다.
‘전부 공명 좀비들인가?’
초기에는 공명 좀비가 극소수였다.
하지만 장마가 끝나고, 두 번째 에피소드에 접어들면서 공명 좀비의 숫자가 많아지고 있었다.
1분 1초가 촉박한 상황.
난 아랫입술을 깨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고등학교의 불씨가 사그라들며, 세상은 다시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이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좋을까.
대체 어떻게 해야 이 난관을 뚫고 모두를 살릴 수 있을까.
“가망 없어.”
옆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여원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차분한 목소리로, 매정한 말을 꺼냈다.
지금…… 버스를 두고 떠나자는 건가?
최현이 반박하려 하자, 이를 눈치챈 설여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연료도 얼마 안 남았어. 무리야.”
설여원의 말을 듣고 남은 연료를 확인하자, 어느새 한 칸도 남지 않은 상태였다.
연비를 포기한 차량개조, 게다가 쉴 새 없이 액셀을 밟았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난 양손으로 핸들을 말아쥐며 까드득 이를 갈았다.
정말 방법이 없는 건가?
설여원은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답 없다고.”
난 연거푸 한숨을 내쉬며 반박했다.
“그렇다고 우리만 도망쳐?”
“…….”
“뭐든 처음이 어렵지. 나중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어쩌려고? 그때도 사람들 버리고 도망칠 거야?”
“여기서 다 같이 죽기라도 하자는 거야?”
경산도 벗어나지 못하면서 아크까지 가는 건 허황된 꿈이나 다름없다.
지방 소도시에 있는 좀비들도 감당하지 못하는데, 서울과 부산에 있는 좀비들은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결사 항전의 마음으로 타개책을 떠올리든가, 아니면 막말로 다 같이 죽든가.
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설여원은 눈살을 찌푸리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설여원의 마음도 편치만은 않을 것이다.
버스에 있는 생존자만 수십 명이다.
정말 방도가 없기에, 저런 선택지를 제시했을 것이다.
난 찰나의 고민을 끝내고 훅, 하고 숨을 뱉으며 설여원에게 물었다.
“여원아, 버스 상태 브리핑해 줘.”
“야.”
“빨리.”
“…….”
설여원은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더니,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삼각뿔이 벽에 박혔어.”
“벽 두께는, 균열은 보여?”
“두께는 별로 안 두꺼워. 벽이 깨지면서 삼각뿔 하단이 걸린 거 같아.”
삼각뿔이 벽을 부수고 들어갔다는 건 철근을 넣지 않았다는 뜻이다.
콘크리트로 쌓아 올린 벽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다들 꽉 잡아.”
“어쩌려고.”
“완수가 개조한 차야, 완수를 믿어봐야지.”
이미 벽에 균열이 발생했고, 두꺼운 벽도 아니며, 철근도 들어가지 않은 벽이다.
그렇다면 중형차로도 충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있는 힘껏 때려 박으면 삼각뿔을 빼낼 정도의 여유는 생기겠지.
부아아아앙!!
있는 힘껏 액셀을 밟으며 벽으로 달리자, 설여원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다급히 안전벨트를 착용했다.
“너 미쳤어? 야!”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봐야지!”
“다 같이 죽자는 거야 뭐야!”
“다 같이 살겠다는 거야!”
전방의 좀비들을 들이받으며 더욱 세차게 액셀을 밟았다.
이윽고 균열이 발생한 벽이 두 눈에 들어온 순간, 두 눈을 질끈 감고 모든 것을 하늘에 맡겼다.
쾅!!!
머리와 어깨, 허리 순으로 충격이 전해지고, 안전벨트로 인해 복부와 가슴 쪽이 당겨왔다.
“커헉!”
기침을 토하며 실눈을 뜨고 전방을 살피자, 벽이 완전히 허물어진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부우우웅!
버스가 후진하기 시작했다.
난 지끈거리는 두통으로 인해 오만상을 찌푸리며 다급히 후진 기어로 바꾸고, 다시금 액셀을 밟았다.
푸드등- 드등-
하지만 차가 움직이지 않았다.
축간거리에 문제가 생긴 건지, 엔진에 문제가 생긴 건지 모르겠다.
덜컥- 덜컥- 덜컥-
액셀을 있는 힘껏 밟았다 떼기를 반복했지만, 차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크어어어어어!!
텅- 터덩- 텅- 쾅-
뒤 범퍼에 달라붙는 좀비들.
버스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이번엔 우리가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두통으로 인해 초점은 흐리고, 세상이 빙빙 돌았다.
귀에서는 이명이 들리고, 머릿속을 울리는 경종으로 인해 눈을 뜨는 것조차 버거웠다.
난 눈살을 찌푸린 채 왼손으로 관자놀이를 누르며 뒤에 있는 일행을 살폈다.
“다들…… 움직일 수 있어?”
“아…….”
“으으…….”
뒷좌석에 있던 일행은 다들 앓는 소리를 내며 움직이지 못했다.
충격이 심한 것으로 보였다.
콰광! 쾅! 뜨득, 쩍!
그러거나 말거나, 좀비들은 뒤 범퍼를 뜯어내기 시작했다.
난 좌우를 살피며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지 살폈다.
후진하던 버스는 중형차의 옆에 바짝 머리를 들이밀었다.
치지직- 칙- 삑!
-재형아, 재형아! 들려? 살아 있냐?
“……말해.”
-지금 문 열 테니까 빠져나와! 움직일 수 있어?
“열지 마! 뒤에 좀비들 붙어서 못 나가!”
콰과과광! 콰각! 쾅!
그 순간, 이정우가 운전하는 승합차가 뒤 범퍼에 붙은 좀비들을 쓸어가며 무전을 보내왔다.
-시간 끌어줄 테니까 빨리 내려!
난 아랫입술을 씹으며 차 문을 열고 내렸다.
내리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린 나머지 바닥에 엎어지고 말았다.
똑바로 서고 싶은데, 달팽이관에 문제가 생겼는지 초점이 맞지 않았다.
‘빨리…… 가야 돼.’
양손을 파르르 떨며 지면을 짚고 일어나는 순간, 털끝이 곤두서는 질척한 울음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크르르르르…… 카하악!!
차량 천장에 붙어 있던 좀비가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다급히 헌팅 나이프를 휘둘렀지만, 초점이 잡히지 않아 칼끝이 빗나가고 말았다.
콰득!
좀비는 내 전완근을 씹으며 머리를 비틀기 시작했다.
[98%, 96%, 93%, 90%……]
보호대의 내구도가 빠르게 감소하기 시작했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오른발을 뒤로 빼며 놈의 안면을 직시했다.
어떻게든 떨쳐내야 한다.
난 까드득 이를 갈며 반대편 팔꿈치로 놈의 관자놀이를 가격했다.
좀비는 한 차례 휘청거리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오뚝이처럼 제자리로 돌아오며 내 상체를 짓눌렀다.
“젠장……!”
재빨리 왼손으로 좀비의 안면을 붙잡았다.
벽에 들이받은 충격 때문인지,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무리 근력을 강화해도, 뇌의 충격은 회복하기 버거웠다.
푹!
그 순간, 좀비의 경추를 꿰뚫고 들어오는 칼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좀비가 피를 토하며 쓰러지자, 그 너머로 칼날을 뽑아내는 설여원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설여원은 미간을 찌푸린 채 거친 숨을 몰아쉬더니, 내 팔을 잡아끌며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에 오르자 옥상에서 탈출한 생존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10세 미만의 어린아이가 여섯,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학생이 셋, 40대 이상이 셋이었다.
총 12명의 생존자.
지끈 거리를 두통으로 인해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쓰러지듯이 버스 바닥에 엎어지자, 생존자들은 두려움에 잠식된 표정으로 내 모습을 살폈다.
뒤이어 버스에 올라탄 최현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입을 열었다.
“지혜야, 최지혜!”
“오빠? 오빠!”
차내에 있던 생존자 중, 최현과 안면이 있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두 사람은 서로 얼싸안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엄마는? 엄마 아빠는 어디 있어?”
“흐흑…… 오빠, 오빠…….”
여학생은 참아왔던 눈물을 쏟으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최지혜.
최현의 친동생인 모양이다.
최현은 최지혜를 품에 안은 채 가만히 등을 토닥이더니, 입술을 질끈 깨물며 두 눈을 감았다.
아무래도…… 최현의 부모님은 아파트에서 탈출하지 못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