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67화
정문에 들어서자, 운동장을 가득 채운 좀비들의 시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피로 얼룩진 버스는 주변을 에워싼 좀비들을 쉴 새 없이 으깨고, 짓밟고, 들이받고, 갈아 죽이고 있었다.
빠아아앙!
경적을 울리자, 버스를 에워싸고 있던 좀비들이 이곳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부웅-! 부우웅-!
차로 밀어버릴 생각이었는데, 운동장에 널브러진 시체들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앞 범퍼에 부착한 강판이 무더기의 시체들 때문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
가속을 이용한다면 어떻게든 밀고 들어갈 수 있겠지만, 지금은 정차한 상태로 경적을 울린 탓에 그럴 수 없었다.
재빨리 무전기를 들고 이정우에게 얘기했다.
“후진, 후진하세요!”
-갑자기? 안 들어가?
“안 들어가는 게 아니고 못 들어가요! 시체가 너무 많아서 차가 못 들어갑니다!”
부아아아앙!
뒤따라오던 승합차가 빠르게 후진하고, 간발의 차로 좀비들이 당도하기 전에 정문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정문의 맞은편으로 한때 주차장으로 사용된 넓은 공터가 존재했다.
다급히 핸들을 틀어 주차장으로 들어서자, 고등학교에서 빠져나온 좀비들은 방역 차를 쫓는 아이들처럼 양팔을 허우적거리며 달려들었다.
주차장으로 들어선 좀비들은 내가 처리하고, 이정우를 따라간 좀비들은 급가속에 들어찬 승합차가 그대로 밀어버렸다.
대략 50마리의 좀비들을 처리하고 다시금 고등학교 정문으로 들어서자, 좌측부근으로 시체가 별로 없는 인도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곳에 차량을 정차하고 내리자, 옆에 있던 이덕배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 내려? 지금?”
이덕배의 물음에 헌팅 나이프를 뽑으며 대답했다.
“아까는 생존자 구출하자면서요?”
이덕배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쇠뇌와 쇠뇌 촉을 챙겨서 차량에서 내렸다.
그는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양손으로 지면을 짚으며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모습을 보였다.
30분간 트램펄린을 타고 내렸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크어어어어!!
카학!! 크아아아!!
교정을 울리는 좀비들의 울음소리.
자욱한 안개가 퍼져 있지만, 활활 타오르는 화염 덕분에 시계는 트였다.
운동장에 들어찬 좀비들은 얼추 정리된 모습을 보였고, 뒤이어 버스에서 하차한 일행이 달려왔다.
그들은 최현과 설여원의 얼굴을 보고 기겁하며 물었다.
“얼굴이 왜 그래? 육탄전이라도 벌였어?”
전완수의 물음에 최현과 설여원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두 눈을 게슴츠레 뜬 채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과격하게 운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난 두 사람의 시선을 회피하며 물었다.
“실내 상황 파악했어?”
“아니, 여태 밖에 있는 좀비들 처리했지.”
“여기도 가관이네.”
“300마리는 족히 죽인 거 같다. 정리 끝나면 차량 손봐야겠어.”
버스의 외관도 정상은 아니었다.
너덜거리는 철판, 부러진 칼날, 움푹 파인 측면.
이곳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지, 굳이 들을 필요도 없었다.
난 주변을 살피며 전완수에게 물었다.
“학교로 들어간 좀비는 몇 마리야.”
“60마리 정도.”
“왜 안 나오지? 이렇게 소란을 피웠는데.”
불씨가 타들어 가는 소리를 제외하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전완수는 퍼석한 입술을 핥으며 말끝을 흐리더니,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인데, 혹시 공명 좀비들만 안에 있는 거 아니야?”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였다.
공명 좀비는 사고기능이 남아 있기에, 평범한 좀비들에 비해 상황파악 능력이 빨랐다.
일반 좀비 중에도 전투가 길어지면 공명 좀비처럼 변하는 놈들이 있으니, 건물 안에 있는 놈들은 전부 사고기능이 남아 있는 놈들일 것이다.
우리의 목표가 건물 옥상에 있다는 걸 안다는 듯이, 들어올 테면 들어와 보라는 태도.
혹은 밖에서 싸우는 건 승산이 없다는 판단으로 내부에서 농성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여곡절 끝에 여기까지 왔는데, 고지를 코앞에 두고 문제가 생겼다.
3층의 상황을 살피자, 서서히 불씨가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저 안에 있는 좀비들도 이를 알기에, 발화성 물질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닐까?
설여원도 얼추 상황을 파악했는지, 미간을 구기며 입을 열었다.
“짜증 나는 놈들이네. 밖으로 유인할 방법 없을까?”
저 안에 있는 좀비들은 우리를 경계하고, 본인이 유리한 상황이라는 걸 알고 있다.
밖으로 나오지 않는 좀비들, 들어갈 수 없는 구조대.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3층 창가를 살피던 와중, 불씨가 사라진 교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우측 끝에 위치한 교실이기에, 측면의 불씨도 사그라든 모습을 보였다.
저기라면 밧줄이 불에 타지 않을 것이다.
저쪽으로 밧줄을 연결할 수만 있다면…….
생각이 여기까지 흐르자, 한 가지 방안이 떠올랐다.
난 전완수를 쳐다보며 물었다.
“완수야, 지금 버스 움직일 수 있어?”
“어디로.”
“저쪽 벽면으로.”
“저기에 세워두기만 하면 돼?”
“어. 바짝 붙여줘.”
전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버스로 달려갔다.
난 다른 일행에게도 지시를 내렸다.
“덕배 아저씨는 쇠뇌랑 밧줄 챙기시고, 정우 형은 승합차 끌고 본관 입구 막아주세요.”
이정우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본관을 살피더니, 고개를 저으며 얘기했다.
“승합차 한 대로 못 막아.”
“차량은 좀비들 발목을 잡는 용도에요. 차로 문부터 막고, 현배 아저씨가 쇠뇌로 엄호해 주세요.”
“저 안에 있는 좀비들이랑 전면전을 치르자는 거야?”
“생존자들이 전부 내려올 때까지만, 그때까지만 버티면 됩니다.”
“너는 어쩌려고.”
“뒷문 막아야죠. 여원이, 현이, 호진이는 나 따라와. 우린 뒷문으로 간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난 중형차를 끌고 건물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좀비들의 위치를 육안으로 확인하고 싶었지만, 교실까지 들어찬 자욱한 안개와 연기, 창가의 커튼으로 인해 내부의 좀비들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
일단 내부의 좀비들은 잠잠한 것 같으니, 계획대로 뒷문에 차량을 정차시키고 일행에게 수비를 부탁했다.
전완수는 건물의 우측 벽면에 버스를 정차시킨 뒤, 내 곁으로 달려왔다.
“버스 주차했어.”
“완수 너도 현이랑 여원이 도와서 뒷문 막아줘.”
“오케이.”
전완수는 카타나를 뽑아 들며 설여원과 최현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난 옆에 있는 이덕배에게 얘기했다.
“덕배 아저씨, 쇠뇌 촉에 밧줄 연결해요.”
이덕배가 쇠뇌 촉에 밧줄을 연결하는 동안, 난 옥상을 쳐다보며 외쳤다.
“제 목소리 들립니까!”
“도와주세요! 내려갈 수가 없습니다!”
옥상에서 들리는 생존자들의 목소리.
이덕배는 밧줄을 묶다 말고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옥상을 향해 외쳤다.
“너, 너 만석이냐!”
“……어?”
“나 덕배! 덕배다 이놈아!”
“덕배? 이덕배? 야 인마! 살아 있었구나!”
안개 때문에 생김새는 확인할 수 없지만, 목소리에 감격스러운 마음이 담겨 있었다.
뒤이어 옥상에 있는 생존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정아! 너희 아빠 왔다! 너 구하러 왔다고!”
“아, 아빠요? 아빠, 아빠!”
앳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이덕배는 눈시울을 붉히며 외쳤다.
“예정이냐? 예정아! 아빠 여기 있다, 아빠 여기 있어!”
“아빠아!”
“기다려! 아빠가 금방 구해줄 테니까 기다려!”
이덕배는 반쯤 울먹이는 표정으로 다급히 쇠뇌 촉에 밧줄을 연결했다.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를 표정으로, 딸의 이름을 읊조리며 20m 길이의 밧줄을 쇠뇌 촉에 고정했다.
밧줄들을 엮어서 족히 60m 길이의 밧줄이 완성되자, 덕배 아저씨는 옥상을 쳐다보며 외쳤다.
“그쪽으로 쇠뇌 발사할 거야! 괜히 맞지 말고 두 눈 똑바로 뜨고 잘 봐!”
“준비됐다!”
“쏜다!”
퉁-!
밧줄을 묶어서 그런가?
묵직한 소리와 함께 쇠뇌 촉은 끝도 없이 위로 뻗어 나갔다.
“잡았다!”
뒤이어 만석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덕배 아저씨는 그렇지! 하는 외침과 함께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옥상에서 만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길이 충분한 거야?”
“충분해!”
“여자랑 애들부터 내릴 테니까 밑에서 잘 받아줘!”
미동도 없던 밧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생존자가 내려오고 있다.
여자들의 경우 힘이 부족해서 떨어질 수도 있기에, 덕배 아저씨는 허공을 유심히 쳐다보며 양팔로 사람 받을 준비를 했다.
크어어어…… 카하아악!!
그와 동시에 건물 내부에서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우리의 위치를 파악한 건가?
하긴,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쳤으니 좀비들도 들었을 것이다.
난 헌팅 나이프를 뽑아 들며 덕배 아저씨에게 얘기했다.
“아저씨는 여기서 사람들 받아요.”
“재형 학생은 어쩌려고.”
“사람들 지켜야죠.”
두두두두두두두두-.
뒤이어 건물 내부에서 노도와 같이 이동하는 좀비들의 발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입이 바싹바싹 마른다.
아직 한 명도 구출하지 못했는데, 좀비들이 예상보다 빠르게 반응하고 있었다.
황급히 뒷문으로 향하자. 건물에 들어찬 좀비들이 일제히 뒷문을 밀어붙이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형차로 입구를 막아두지 않았다면 일방적으로 당했을 것이다.
쯔드득- 쩌적-
유리로 된 뒷문은 금세 거미줄 모양의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차량을 둘러싼 일행은 각자의 무기를 말아쥐고, 차량 위에 올라선 천호진은 긴장한 모습으로 어깨에 쇠뇌를 견착했다.
쩌드득- 쩍- 챙그랑!
유리문이 깨지자, 입구에 들어찬 좀비들이 일제히 차량을 들이받기 시작했다.
천호진은 기다렸다는 듯이 좀비들의 이마에 쇠뇌를 발사했다.
퉁! 투둥! 퉁!
연발로 발사된 쇠뇌 촉이 좀비들의 이마에 적중했다.
차디찬 주검으로 전락한 좀비들이 쓰러지자, 뒤에 있던 좀비들은 죽은 좀비들을 발판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좀비들이 차량을 밟고 올라서려 하자, 설여원과 전완수, 최현이 기다렸다는 듯이 각자의 무기를 휘둘러 좀비들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저지했다.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안간힘을 쓰지만, 한데 엉켜 있는 좀비들의 압박은 제압하기 버거워 보였다.
그어어어어어…….
그 순간, 내부에서 공명 소리가 들려왔다.
입구가 막혔다는 걸 알아챈 공명 좀비들이 다른 수를 꺼내 들었다.
챙그랑! 챙강!
고막을 찌르는 날카로운 파찰음이 사방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놀란 눈으로 소리의 근원지를 살피자, 2층과 1층의 교실 창문을 깨고 밖으로 쏟아져나오는 좀비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미친…….’
전완수는 건물로 들어간 좀비가 60마리 정도 된다고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전투 중에 건물로 들어간 좀비가 60마리라는 거지, 애초에 건물에서 대기하고 있는 좀비들을 간과했다.
살갗이 유리에 긁히고 찢어지는 와중에도 쉴 새 없이 창밖으로 쏟아져나오는 좀비들.
족히 100마리가 넘는 숫자였다.
그 모습을 보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전부 차에 타!”
카타나와 헌팅 나이프를 휘두르던 설여원과 전완수, 최현, 그리고 쇠뇌를 발사하던 천호진까지 재빨리 차량에 탑승했다.
마지막에 탑승한 천호진이 차량 문을 닫기도 전에, 난 다짜고짜 액셀을 밟았다.
“형! 문!”
“그냥 놔둬!”
전방의 좀비들을 주시하며 차량으로 들이받았다.
쾅! 콰곽- 쾅! 텅!
바닥에 엎어진 좀비들을 그대로 짓밟고, 으깨버렸다.
달려드는 좀비들은 휠에 달린 칼날에 갈려 나가고, 좀비들이 엎어지는 과정에 알아서 차량 문을 닫아주었다.
천호진은 문이 제대로 닫혔는지 확인하더니,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형! 뒤에도 좀비들 따라와요!”
“나도 알아 인마!”
버스가 있는 외벽까지 다다른 뒤, 재빨리 후진 기어로 바꾸고 다시금 액셀을 밟았다.
역행하는 중력에 모두가 윽! 하는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터덩! 쾅! 텅! 드득!
뒷바퀴에 깔리고 뼈마디가 으스러지는 좀비들.
쾅!!
그 순간, 차량의 천장이 움푹 파였다.
창문에서 뛰어내린 좀비들이 장대비처럼 차량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콰광! 쾅! 쾅!
연달아 천장 위로 떨어지는 좀비들.
다급히 브레이크를 밟자, 천장에 매달려 있던 좀비들이 일제히 뒤로 굴러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앞에서도 쉴 새 없이 떨어지는 좀비들.
‘나가야 돼.’
이곳에 있으면 금세 좀비들에게 갇히고 말 것이다.
좀비들이 더 쌓이기 전에, 재빨리 기어를 바꾸고 앞으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