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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63화 (63/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63화

원룸촌의 생존자들은 전완수가 운전하는 버스에 탑승했다.

가장 앞에 있는 버스가 비상등을 점멸하자, 승합차도 비상등을 점멸했다.

이상 무, 출발하겠다는 신호.

나도 비상등을 점멸하며 버스의 뒤로 붙었다.

해가 떨어지자 인적이 사라진 거리는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었다.

일정한 속도를 유지한 채 얼마나 이동했을까.

치지직- 삑-

무전기에서 한 차례 파찰음이 들리더니, 전완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직진하지 말고 좌측으로 돌아갈게.

“직진하는 게 빨라.”

-덕배 아저씨가 돌아가래. 내비게이션 따라서 직진하면 차로 못 들어간다는데? 실개천 다리 막혀 있대.

이덕배는 각 은신처의 특징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출발하기 전, 이 동네에서 발생한 사건 사고를 들으며 얼추 상황 파악을 끝낸 상태였다.

다리를 건너기 위해서는 오직 걸어서 진입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덕배의 말을 따라 좌측으로 핸들을 틀었다.

뒤이어 구불구불한 언덕길이 나타나고, 도로 폭이 좁아지기 시작했다.

앞서가던 버스가 정차하기에, 나도 덩달아 브레이크를 밟았다.

설여원은 상체를 앞으로 쭉 내밀며 앞 유리 너머의 상황을 살폈다.

“와…… 너무 좁은데?”

설여원은 도로 폭이라도 확인할 수 있지만, 내겐 버스의 후미등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가뜩이나 안개 때문에 시야 확보가 어려운데,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으니 어둠 속을 거니는 기분이었다.

장시간 정차가 이어지자, 옆에 내려둔 무전기에서 신호가 들어왔다.

-안 가? 뭐해.

이정우의 목소리.

앞에 있는 전완수를 다그치고 있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전완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앞에 도로 폭이 너무 좁아요. 지나갈 수 있는지 확인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버스들 지나다니던 길이야.

-차량 개조하면서 측면에 잔뜩 달았잖아요.”

비좁은 일방통행.

웬만큼 뛰어난 공간지각능력이 아니면 시도조차 하기 어려운 길이었다.

부르릉-

미동도 하지 않던 버스가 서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상황을 지켜보던 설여원은 연달아 감탄사를 터뜨리며 얘기했다.

“와…… 종이 한 장 차이로 지나가는데? 완수 운전 잘하네.”

이윽고 내리막길에 들어서자, 버스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량처럼 가속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지금껏 40㎞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60㎞까지 속도를 높였다.

액셀을 밟으며 뒤따라가자, 전방의 실개천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다리를 막아선 불법 주정차들.

저것 때문에 속도를 높인 건가?

설마 밀고 들어가려고?

콰광! 쾅! 콰각! 콰광!

앞에서 고막을 때리는 파열음과 함께 길을 뚫는 버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리 위에 정차되어 있던 차량들은 삼각뿔의 곡선을 따라 뒤 범퍼가 들리더니, 허공에서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며 우측으로 떨어졌다.

그대로 실개천으로 곤두박질치는 차량들.

다리를 건너자마자 버스는 급정거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박이네.”

그 모습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영화에서 보던 장면을 두 눈으로 보게 되다니.

전완수가 좀비카의 성능을 믿으라고 호언장담한 이유를 알겠다.

정차된 차량을 밀어낼 정도면…… 한낱 좀비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질 것이다.

뒤이어 이정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완수야 괜찮아?

-으하하하! 당연하죠! 누가 개조한 찬데!

충격 때문에 정차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전완수의 호쾌한 웃음소리가 들리자, 뒷좌석에 있던 최현이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좀비들 확인하려고 멈춘 줄 알았는데, 그냥 자랑하고 싶어서 멈춘 거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최현의 입가에도 엷은 미소가 번졌다.

좀비카만 있으면, 아크까지 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 * *

실개천을 지나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한참이나 이동했다.

바람에 휘날리는 천막과 너저분한 쓰레기들이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종종 가다 들리는 까마귀들의 울음소리가 풀어졌던 긴장감을 잡아주었다.

마치 저승에 뚝 떨어진 것 같은 분위기.

도로가 끝나는 지점까지 이동하자, 서서히 아파트의 형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난 무전기를 들고 전완수에게 물었다.

“완수야, 주변에 좀비들 보여?”

-쥐 죽은 듯이 조용해.

전완수의 대답이었다.

조금 전까지 들떠 있던 전완수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변했다.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에 차올랐다가, 을씨년스럽게 변한 아파트단지를 보고 저조해진 모양이다.

씁쓸한 마음에 백미러로 최현의 표정을 살폈다.

최대한 덤덤한 표정을 하고 있지만, 최현도 만감이 교차하는 것으로 보였다.

20년을 살아온 동네가 폐허로 변했으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을 것이다.

뒤이어 전완수의 무전이 들어왔다.

-실개천 너머의 은신처가 앞에 보이는 아파트래. 바로 주차장으로 들어갈까, 아니면 다른 곳에 차량 세워두고 갈까?

“바로 들어가자.”

-오케이, 주차장까지 직진할게.

전완수를 따라 아파트 초입에 다다르자, 무너진 바리케이드와 훼손된 시신들이 눈에 들어왔다.

까마귀가 파먹어서 훼손된 시신이 아니었다.

절단면이 예리한 것으로 보아, 칼로 도려낸 것처럼 보였다.

벌써 폭풍이 지나간 흔적.

주차장에 차량을 정차하고, 주변의 인기척을 확인한 뒤에 하차했다.

이정우는 손도끼를 꺼내 들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오면서 특이사항 없었어?”

“없었어요.”

“일단 바리케이드부터 손보고 실내 확인하자.”

“바리케이드는 왜요?”

“벌써 해 떨어졌어. 오늘은 여기서 묵고, 생존자들은 내일 찾아야 돼.”

그래, 이정우의 말이 맞다.

어둑해진 세상에서 생존자를 수색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반면에 최현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여기야.”

“뭐가?”

“내 본가.”

“…….”

“완수랑 나, 이 아파트 살아.”

실개천 너머의 생존자들이 은신처로 사용한 아파트가 전완수와 최현의 본가라니.

최현은 망가진 삶의 터전을 보고 허탈한 표정을 짓더니, 멍하니 입을 벌린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생각하게 두면 안 된다.

이런 상황에 생각이 많아지면 절망뿐이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난 최현의 어깨를 토닥이며 애써 태연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걱정하지 마. 부모님 안전할 거야. 금호강 건너로 이동했을지도 모를 일이고.”

뒤이어 전완수가 다가오더니, 애써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재형이 말이 맞아. 단서부터 찾자고.”

전완수도 심적으로 힘들 텐데, 오히려 팀원을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최현은 전완수의 뒷모습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한 차례 심호흡과 함께 본인의 양 볼을 짝! 소리가 나도록 때렸다.

윤혜리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내 곁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오빠, 장군이는 어떡해요?”

“버스에 둬야지. 지금 데리고 나오는 건 위험해.”

아직 주변 일대의 안전을 확보하지 못했다.

괜히 데리고 나왔다가 시끄럽게 짖으면 낭패기에, 장군이는 버스에 두고 주변부터 정리해야 한다.

전완수와 이정우, 정진영, 박재우, 황덕록은 바리케이드 수리를 담당하겠다고 했다.

난 나머지 일행에게 지시를 내렸다.

“혜리랑 희연이도 바리케이드 공사 돕거나, 아니면 주변에 시신들 정리해 줘. 혹시라도 움직이는 녀석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네네. 걱정하지 마세요.”

윤혜리와 김희연은 식칼을 쥐고 주변 정리에 들어갔다.

“현이랑 여원이는 나랑 아파트단지 돌면서 단서 좀 찾아보자. 실내에 좀비들 있는지도 확인하고.”

헌팅 나이프를 손에 쥐고 이동하려는 찰나, 이덕배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오른쪽으로 돌 테니, 자네는 왼쪽으로 이동해.”

“아니요, 여긴 저희한테 맡겨주세요.”

“부탁이 아니고 통보야.”

이덕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우측으로 이동했다.

천호진은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후다닥 이덕배의 뒤를 따랐다.

이덕배와 이현배, 천호진은 라스트아크를 플레이하지 않았다.

나처럼 아무것도 안 보일 텐데, 저들에게 정찰을 맡기는 게 옳은 일인지 모르겠다.

뒤이어 설여원이 내 곁으로 다가오며 얘기했다.

“딸이 안 보이잖아. 마음이 급할 거야.”

“…….”

이덕배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내가 이덕배라도, 뭐든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은 마음이 들 테니까.

착잡한 마음을 한숨으로 달래고, 설여원과 최현에게 경계 위치를 정해주었다.

내가 선두에 서고, 그 뒤에 설여원, 후방을 최현이 담당했다.

“가는 길에 사람들 이동한 흔적 보이면 얘기해.”

“오케이.”

발소리를 죽인 채 바닥을 살피며 나아갔다.

총 4개의 동으로 이루어진 아파트였다.

동서남북으로 각각의 동이 위치하고, 단지의 중앙으로 지상 주차장이 존재했다.

작은 소리에도 소리가 울리는 구조지만, 지금은 백색 소음만이 맴돌았다.

덥고 습한 공기,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둑한 세상, 사방에서 느껴지는 압박감까지.

마치 다른 차원에 뚝 떨어진 기분이었다.

“재형아, 저기.”

뒤에서 설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여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자, 서서히 어둠에 적응한 두 눈으로 자그마한 쪽문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단지의 뒷길로 통하는 쪽문으로 보였다.

본래 철문이 달려 있던 흔적이 보이지만, 지금은 흔적만 남았을 뿐 아무런 가림막도 없었다.

쪽문 앞으로 다가가자, 경첩이 뜯겨 지면에 엎어진 철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누군가가 강제로 뜯어낸 모습.

이곳에 있던 생존자들이 뜯어낸 게 아니다.

철문이 쓰러진 방향도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방향이었고, 철문에는 손톱으로 긁고 주먹으로 내려진 흔적이 가득했다.

곳곳에 혈흔이 묻어 있는 것으로 보아, 다수의 좀비가 이곳으로 들어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손가락으로 혈흔을 쓸어내리자, 아직 굳지 않아서 끈적끈적했다.

10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다들 조심해. 아파트 내부에 좀비들 남아 있을 수도 있으니.”

손에 묻은 혈흔을 바지에 닦고, 헌팅 나이프를 고쳐 쥐며 계속해서 나아갔다.

103동과 102동의 현관 유리문은 온전하게 붙어 있었다.

좀비들이 달려들었다면 진즉에 깨졌을 텐데, 손바닥 자국만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은 공격받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이덕배의 일행이 이동한 우측 101동과 104동이 생존자들의 은거지로 사용된 건가?

101동과 104동의 배후로 경사가 가파른 뒷산이 위치하기에, 뒤편에 있는 101동과 104동에서 생활하는 게 안전할 것이다.

크르르르…….

화단을 지나는 찰나, 지면에서 목젖을 가는 기이한 음성이 들려왔다.

헌팅 나이프를 고쳐 쥐며 지면을 살피자, 하체가 절단된 좀비가 이리로 기어오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좀비의 정수리에 헌팅 나이프를 박아넣고, 좀비의 겉모습을 확인했다.

깨끗하게 잘려나간 하체.

절단면에 흙먼지가 별로 묻어 있지 않았다.

이는 하체가 잘린 지 오래되지 않았다는 뜻.

뒤이어 안개 속에서 일렁이는 흐릿한 인영이 이곳으로 접근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인기척을 느끼고 헌팅 나이프를 치켜드는 찰나, 안개 속에 있던 인영은 격하게 손사래 치며 외쳤다.

“저, 저예요!”

천호진이었다.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왜 흐느적거리면서 걸어? 좀비랑 헷갈리잖아.”

“형 찾으려고 기웃거렸죠. 잘 안 보이는 걸 어떡해요.”

“왜.”

“저쪽에 이상한 게 있어요. 와서 봐봐요.”

이상한 거?

천호진을 따라 이동하자, 101동의 앞으로 담벼락이 무너져내린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뒷산과 연결되는 담벼락.

또한 101동의 현관 유리문은 산산이 조각난 상태였다.

최현은 무너진 담벼락과 101동의 유리문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불안한 눈빛을 보였다.

최현의 표정을 보고 설마 하는 마음에 물었다.

“현아. 혹시 여기가 네 집이야?”

“어.”

“몇 호.”

“704호.”

“……담벼락부터 확인하고 내부작업 들어가자.”

최현은 애써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에 이덕배는 담벼락의 상태를 유심히 살피며 고민에 잠긴 모습을 보였다.

뒤이어 이덕배의 옆에 있던 이현배가 입을 열었다.

“고의로 부순 것 같죠? 좀비랑 싸운 흔적도 없고.”

난 그들의 대화를 듣고 무너진 외벽의 상태를 살폈다.

혈흔이 묻어 있지만, 좀비들의 시신은 보이지 않았다.

좀비들이 억지로 밀고 들어왔다면 찢긴 살점이 붙어 있거나 뼈마디가 으스러진 시신이 있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눈 씻고 찾아도 좀비의 시신은 보이지 않았다.

이덕배는 가만히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이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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