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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61화 (61/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61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무전기를 손에 들었다.

“빨리 와. 걱정했잖아.”

-으하핫!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거야!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넘치는 것으로 보아, 큰 탈 없이 성공한 모양이다.

뒤이어 마트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차량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좀비들의 혈흔으로 얼룩진 차량.

휠에 달아둔 칼날에는 살점이 너덜거리고 있었다.

유인만 하라고 했더니, 좀비들을 도륙하고 온 건가?

전완수는 차량에서 내리며 내게 열쇠를 던져주었다.

열쇠를 받으며 전완수를 쳐다보자, 그는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야, 이 차 대박이야.”

“대체 뭐하다 온 거야?”

“실험 좀 해봤지. 실전에서 효력이 얼마나 되는지.”

내가 한마디 하려는 순간, 이정우가 먼저 전완수의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는 전완수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더니,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며 미간을 찌푸렸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하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이정우.

저렇게 화난 표정의 이정우는 처음 봤다.

“내가 무리하지 말라고 몇 번 말했지?”

“에이 왜 그래요, 사람 민망하게. 결과는 좋잖아요.”

전완수가 능청스럽게 얘기하자, 이정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얘기했다.

“차량 전복되거나, 좀비들에게 둘러싸이거나, 강판의 용접이 불안정했으면 어떻게 됐을 거 같아?”

“그러니 더더욱 확인할 필요가…….”

“너 혼자였어.”

“…….”

“조금이라도 문제 생겼으면, 너 혼자 거기서 죽은 거라고.”

이정우의 눈빛에 살기가 담겨 있었다.

그제야 사태 파악을 마친 전완수는 입맛을 다시며 고개 숙였다.

난 이정우의 곁으로 걸어가 그의 팔을 잡으며 얘기했다.

“형 진정해요. 완수도 나쁜 뜻으로 그런 건 아니에요.”

“이걸 이해하라고? 무전에 대답도 안 하고,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기다리기만 하는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얘가 차에 갇혀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우리가 어떻게 아냐고.”

흥분한 이정우를 달래며 곁눈질로 전완수를 쳐다봤다.

지금은…… 이정우부터 진정시켜야겠다.

“완수야, 차량 성능 테스트는 좋아. 하지만 독단적인 행동은 위험했어.”

아무 생각 없이, 깊게 생각하지 않고 내뱉은 말이었다.

당연히 전완수가 이해하리라 생각했는데, 받아들이는 처지는 달랐다.

전완수는 까드득 이를 갈더니, 두 눈을 홉뜨며 얘기했다.

“솔직히, 독단적인 행동은 재형이 네가 제일 많이 하잖아.”

전완수의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평소와 다른 분위기의 전완수.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서 돌처럼 서 있자, 설여원이 다가와 입을 열었다.

“재형이랑 너랑 같니?”

“허이구, 여기 내 편은 없나?”

“편 나누기 하자는 게 아니잖아. 사람이 움직이는 거랑 차량으로 이동하는 게 어떻게 같아? 변수가 발생했을 때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이 다른데.”

“뭐가 다른데? 설명해 봐.”

“그야…… 사람은 건물에 숨거나, 안개 밖으로 대피하거나, 여러 방안이 있지. 하지만 차량은 대책이 없잖아. 밀고 들어갈 수 없으면 오도 가도 못 하고 죽는 거잖아.”

“밀었잖아! 성공했다고! 내가 설계하고 내가 개조한 차량이라고! 내가 내 차를 못 믿으면 누가 믿어주는데? 솔직히 다들 그렇잖아, 아니야? 여기 좀비카 성능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어? 좀비카 겉모습 보고 징그럽다, 거추장스럽다, 불평불만만 했잖아!”

전완수는 그동안 쌓아온 울분을 토했다.

전완수가 이렇게 흥분한 모습은 처음 봤다.

갑작스레 소리치니 상당히 당황스럽다.

설여원도 당황했는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며 얘기했다.

“문맥 파악 못 해? 다 같이 있을 때 성능 실험해도 되는 걸 왜 위험하게 혼자 실험했냐는 거잖아!”

상황을 지켜보던 정진영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으며 얘기했다.

“그만, 둘 다 진정해. 너무 흥분했다.”

“아니 오빠, 솔직히 내가 틀린 말…….”

설여원이 정진영을 쳐다보며 반박하려 하자, 정진영은 미간에 힘을 준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정진영의 냉정한 표정에 설여원은 시선을 회피하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바리케이드 앞으로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 어색한 침묵은, 쉬이 깨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후루룩-

뒤이어 아무것도 모른 채 라면을 먹으며 다가오는 한 남자.

최현은 라면을 우물거리며 일행의 얼굴을 살폈다.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입속의 라면을 삼키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생존자 구출했다고…… 돌아오면 바로 먹을 수 있도록 저녁 준비하라고 하지 않았어요?”

최현의 말에 대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자 최현은 머리를 긁적이며 퉁명스럽게 얘기했다.

“나 괜히 왔나? 분위기 왜 이래. 라면은 어떡하라고.”

후루룩-

* * *

모든 일행이 스터디카페에 둘러앉아 라면을 먹었다.

이덕배와 이현배, 천호진의 통성명을 제외하면…… 다른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침묵만이 맴도는 저녁 식사.

조금 전에는 서로 흥분해서 감정적으로 접근했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서운함 때문에 생긴 마찰이었다.

설여원은 전완수의 무모한 행동에 화가 난 게 맞지만, 그것도 걱정되는 마음에 화를 냈을 것이다.

관심이 없으면 애초에 화도 안 낼 테니까.

전완수도 본인이 무리한 건 알고 있지만, 그동안 좀비카에 관심을 주지 않은 동료들에게 서운함이 남은 것으로 보였다.

본인의 노고를 알아주지 않는 일행이 미웠을 것이다.

난 빈 그릇을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의 시선을 모았다.

“자, 다들 집중해 주세요.”

언제까지 축 처진 분위기로 있을 수는 없으니, 가능하면 이 자리에서 각자의 입장을 털어놓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설여원의 입장과 전완수의 입장을 제3자가 바라본 시선으로, 모두가 보는 앞에서 얘기했다.

그동안 전완수가 느꼈을 감정, 설여원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풀어내듯이 얘기했다.

“내가 얘기한 부분에 틀린 점이 있으면 둘 다 여기서 얘기해 줘.”

설여원과 전완수는 서로 멋쩍은 표정을 짓더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김희연이 일행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오른손을 들었다.

“저…… 한마디 해도 돼요?”

“당연하지. 편하게 얘기해.”

부담 느끼지 말고 편하게 얘기하라고 하자, 김희연은 쭈뼛거리며 전완수를 쳐다봤다.

뒤이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얘기했다.

“저기…… 완수 오빠.”

“왜.”

“몰라줘서 미안해요.”

김희연의 사과에 전완수는 눈꼬리를 치켜뜨며 되물었다.

“갑자기?”

“재형 오빠 얘기 들어보니, 저희가 너무 무감각했던 거 같아서요.”

“…….”

“학생회관에 있을 때는…… 거기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어요. 그냥 당연하게, 당연히 오빠가 차량 개조를 담당한다고 생각했어요.”

전완수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김희연의 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김희연은 사람들의 시선이 부끄러운지, 쭈뼛거리면서도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오빠는 자동차에 대해서 잘 아니까, 마냥 쉬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오빠가 고생한 거 몰라줘서 미안해요.”

김희연의 솔직한 말에 전완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윤혜리도 한 수 거들었다.

“맞아요, 애초에 설계도부터 완수 오빠가 구상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진두지휘하면서 고생 많았을 텐데, 항상 밝은 모습만 봐서 몰랐어요. 미안해요.”

그러자 주변에 있던 박재우, 황덕록, 정진영까지 전완수에게 수고 많았다는 말을 건넸다.

다른 사람들의 노고는 눈에 쉽게 들어오는데, 왜 전완수가 겪었을 고민은 눈에 보이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건 전완수 특유의 능청스러움 때문일 것이다.

투정도 부리지 않고, 실수도 없으니, 믿고 맡기면서 그의 노력을 당연하게 여겼다.

묵묵히 밤늦게까지 설계도를 만들고, 무게중심을 맞추고, 실습실에서 차량을 개조할 때도 남들보다 두 배는 더 일했는데 말이다.

듣고 있던 나도 반성하게 되었다.

전완수는 한 차례 코를 훌쩍이며 천장을 바라보더니, 헛기침과 함께 얘기했다.

“에이 씨…… 오글거리게.”

말은 퉁명스럽게 하지만, 김희연의 말에 감동받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김희연의 사과를 시작으로, 스터디카페의 분위기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뒤이어 김희연은 설여원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여원 언니한테도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

“솔직히…… 혜리랑 저는 이런 시대에 별로 도움 안 되는 거 알아요.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은데,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아요.”

김희연이 시무룩한 표정을 짓자, 설여원은 말없이 그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김희연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저는 알아요. 사과대에서 직접 겪으면서…… 현시대에 남녀가 어떻게 구분되는지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꼈어요. 그리고 여원 언니는…… 제가 진짜 존경하는 언니예요.”

존경한다는 말이 민망했는지, 설여원은 옆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시선을 회피했다.

뒤이어 구시렁거리듯이 입을 열었다.

“나도 뭐…… 살려고 하는 거지.”

“그게 멋있어요. 저는 하루에도 수백 번 죽고 싶다는 생각만 했는데, 언니는 살 생각을 하잖아요. 직접 행동으로 옮기고. 몸소 보여주고…… 그게 멋있어요.”

김희연이 수줍은 듯이 얘기하자, 설여원은 귀여운 강아지를 본 것처럼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김희연을 안아주었다.

뒤이어 전완수와 설여원은 서로에게 미안하다며 화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완수는 이정우에게도 사과하는 걸 잊지 않았다.

“정우 형, 아까는…… 제가 죄송합니다.”

“나도 몰라줘서 미안하다.”

이정우의 표정에도 생각이 많아 보였다.

전완수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으니, 대표로서 생각이 많을 것이다.

구수한 라면 냄새만큼이나 훈훈해진 분위기.

상황을 지켜보던 천호진은 인중을 긁적이며 내게 얘기했다.

“재형이 형, 형이 왜 만날 동아리방에서 놀았는지 알 것 같아요.”

“왜.”

“사람들이…… 다 착하네요.”

난 천호진의 말을 듣고 일행의 모습을 살폈다.

일행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절로 미소가 번진다.

그래, 천호진의 말대로였다.

소리결 사람들, 일명 ‘결인’들.

난 자리에서 일어나며 얘기했다.

“결인들, 오늘은 과자도 뜯을까?”

“네!”

윤혜리는 오른손을 번쩍 들며 화색을 띠었다.

이정우를 쳐다보자, 그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을 지켜보던 최현은 혼자 콧방귀를 뀌며 얘기했다.

“뭐야 이거. 이런 분위기 교회에서 많이 본 거 같은데.”

최현의 농담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정진영은 양손을 가지런히 모으며 최현에게 얘기했다.

“우리 최현 형제님도 고생 많았습니다.”

“아이고, 우리 정진영 형제님도 고생 많았습니다.”

“아멘!”

“에이멘.”

작은 마찰은 어느 집단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소리결 사람들과 함께라면 헤쳐나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 * *

천호진은 과자가 들어 있는 종량제봉투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어? 형, 혹시 저 앞에 있는 마트 형이 다녀갔어요?”

“어떻게 알았어?”

“쪽지 남긴 게 형이었어요?”

“쪽지?”

쪽지라는 말에 계산대에서 봤던 설여원의 모습이 떠올랐다.

설여원이 남은 음식은 계산대 밑에 두고 간다고 쪽지에 적는 걸 본 기억이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설여원을 쳐다보자, 그녀는 내 곁으로 다가왔다.

이야기를 엿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설여원은 천호진을 쳐다보며 물었다.

“말 편하게 해도 되지?”

“네? 아, 네.”

“내가 남긴 거야. 우리가 다 들고 오는 건 미안해서.”

손이 부족해서 전부 들고 오지 못한 거지만, 설여원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둘러 얘기했다.

천호진은 탄성을 뱉으며 옆에 있는 이덕배와 이현배에게 얘기했다.

“거봐요, 아저씨들. 식량 가져간 사람들 나쁜 사람은 아닌 거 같다고 제가 그랬잖아요.”

이덕배는 바닥에 놓인 과자를 집어 먹으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눈치 보는 건가?

하긴, 우리가 목숨도 구해주고 식량까지 주었으니 당연히 눈치 봐야지.

그러다 문득, 이덕배의 눈 밑에 있는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눈 밑의 상처, 그리고 쇠뇌.

어디서 들어본 거 같은데?

난 이덕배를 쳐다보며 물었다.

“성함이 이덕배라고 하셨죠?”

그는 시선을 외면한 채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덕배 아저씨 눈 밑에 있는 상처, 혹시 쇠뇌 연구하면서 생긴 상처 아니에요?”

그러자 이덕배는 두 눈을 홉뜨며 내 얼굴을 직시했다.

뒤이어 손에 쥐고 있던 과자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혹시 이예정이라고……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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