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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60화 (60/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60화

박재우는 민망한 마음이 들었는지, 콧잔등을 긁적이며 얘기했다.

“뭘, 우리도 도움이 돼야지.”

“로즈의 능력만으로도 충분해.”

“그래도. 싸울 땐 다 같이 싸워야지.”

박재우의 대답에 흡족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어느새 검푸른 하늘이 천지를 물들이기 시작했다.

오늘은…… 지금의 흡족한 마음을 품고 저녁 식사를 즐겨야겠다.

챙그랑-!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예상치 못한 변수는 예고도 없이 찾아온다.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살폈지만, 좀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설여원도 소리를 들었는지, 내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방금…… 무슨 유리 깨지는 소리 들리지 않았어?”

박재우도 소리를 들었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난 박재우와 설여원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일단 들어가. 들어가서 덕록이부터 눕히고, 옥상에서 확인하자.”

일행이 있는 빌라로 걸음을 재촉했다.

* * *

라꾸라꾸 침대에 황덕록을 눕히고, 정진영에게 치료를 부탁한 뒤 옥상으로 올라갔다.

망원경으로 주변을 살피기도 전에, 저 멀리 하나의 점처럼 보이는 거리에서 좀비들과 사투를 벌이는 존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생존자다.

주변의 빌라들이 대부분 5층 높이의 건물이라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설여원은 내 손에 있는 망원경을 낚아채며 생존자들의 모습을 살폈다.

“생존자는 3명. 옥상에서 좀비들이랑 싸우고 있어.”

“상황은.”

“불안해. 소각장에 있던 좀비들이 몰려온 거 같아. 옥상 넘나들면서 싸우고 있는데…… 좀비들이 주변 빌라로 들어가고 있어.”

“저대로 두면 금방 갇힌다는 거네.”

어떻게 해야 좋을까.

저 사람들을 구출하려다가 우리의 목숨까지 위험해지는 수가 있다.

내가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자, 어느새 옥상으로 올라온 이정우가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얘기했다.

“못 본 척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야.”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일체의 흔들림도 없는 눈빛.

무리하지 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이정우기에, 나를 말리는 것으로 보였다.

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이정우는 다시 한번 또박또박 얘기했다.

“너한테 뭐라 하는 사람 없어.”

이정우의 말에 설여원과 전완수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내 얼굴을 쳐다봤다.

내게 선택하라는 건가?

난 찰나의 고민 끝에, 설여원에게 망원경을 달라고 했다.

생존자들의 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선택할 것이다.

망원경을 통해 생존자들을 확인한 순간,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좀비들의 숫자 때문도 아니었고, 위험천만한 상황 때문도 아니었다.

세 명의 남자 중 하나.

그들 사이에 내게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천호진.

3학년 방 형과 안개가 퍼진 새벽에 PC방으로 갔던 1학년 방 동생.

여태 생사도 몰랐는데, 원룸촌의 생존자들과 함께 살아남은 건가?

잡념을 떨쳐내며 생존자들의 무장 상태를 살폈다.

그들은 쇠뇌를 견착한 채 쉴 새 없이 볼트를 발사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망원경을 내려놓으며 얘기했다.

“구출하러 갑니다.”

그러자 이정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재형아. 신중하게 생각…….”

이정우가 반박하려 하기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 사람들 쇠뇌 들고 있어요. 저 사람들 구출하면 우리도 쇠뇌가 생기는 겁니다.”

“순순히 줄 것 같아? 아무리 목숨을 구해줘도 쇠뇌를 넘기지는…….”

“빼앗을 생각 없습니다. 재우랑 덕록이한테 잠깐만 보여줄 거예요.”

“…….”

박재우와 황덕록이 지닌 능력.

로즈의 능력이 지닌 한계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시도는 해볼 수 있는 거 아닌가?

어쩌면 우리 손으로 쇠뇌를 제작하고, 쇠뇌 촉을 찍어내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에겐 원거리 무기가 절실했다.

이정우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기에, 기세를 몰아 단호하게 얘기했다.

“중형차만 가져갈게요.”

“저쪽 골목길은 차가 못 들어가는 거 너도 알잖아.”

“안 들어갑니다. 물론 좀비들과 직접적인 마찰도 피할 거예요. 어디까지나 유인책입니다.”

이정우는 눈꼬리를 치켜뜨며 자세히 설명하라고 했다.

이에 전완수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완수야, 너한테 부탁 좀 해도 될까?”

“나한테? 무슨 부탁.”

“네가 중형차 타고 좀비들 좀 유인해 줘.”

전완수는 입술을 마름모꼴로 벌린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

“불편하게 거절해도 돼. 강요하는 건 아니니까.”

“어디로 유인하라고.”

“우리가 잘 아는 곳으로. 좀비들 가둬두기 좋은 곳.”

전완수는 가만히 턱을 매만지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되물었다.

“공대?”

“그렇지.”

“경적 울리면서 좀비들 유인하면 되는 거지?”

“어, 공대 주차장에서 좀비들 떨쳐낼 수 있겠어?”

“당연하지. 적당히 속도 조절하다가 주차장에서 전부 따돌리면 되는 거 아니야?”

차를 타고 공대로 들어가는 길을 하나뿐이었다.

그곳에서 좀비들을 처리해도 되고, 아니면 미로처럼 생긴 공대의 구조를 이용해서 좀비들을 떨쳐내도 된다.

전완수는 입꼬리를 말을 이었다.

“죽기 전에 BMO 한번 몰아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몰아보는 건가?”

전완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중형차 열쇠를 받아갔다.

옆에 있던 설여원은 내 곁으로 한 걸음 다가오며 물었다.

“내가 할 일은?”

“좀비들이 차량에 붙으면 우린 생존자들 쪽으로 이동할 거야.”

“만약 우릴 좀비로 오인하고 쇠뇌를 발사하면?”

“우리 손전등 있지? 그걸로 신호할 거야.”

손전등이란 말에 설여원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곧장 2층으로 내려갔다.

마지막으로 이정우를 쳐다보자,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얘기했다.

“대기하고 있을 테니까, 무슨 일 생기면 바리케이드로 뛰어.”

“고마워요, 형.”

내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믿어주기에, 못 이기는 척 따라주는 모습을 보였다.

이정우는 대답 대신 2층에 있는 수비팀에게 전투를 준비하라는 무전을 보냈다.

상황을 정리하고, 우린 일사불란하게 각자의 위치로 이동했다.

1층으로 내려가 설여원을 쳐다보자, 그녀는 안개 속을 응시하며 가장 빠른 루트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뒤이어 맞은편 빌라를 가리키며 안개 속으로 스며들었다.

어스름이 내려앉은 세상.

앞으로 20분 이내에 세상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식될 것이다.

그 안에 생존자들을 구출해야 한다.

* * *

빵-! 빵빵-!

전완수가 운전하는 차량이 경적을 울리자, 빌라를 에워싸고 있던 좀비들이 일제히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크어어어어어!!

뭉쳐 있던 좀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대로변으로 이동하고, 그 틈을 이용해 설여원과 난 골목에 남은 좀비들을 처리하며 길을 뚫었다.

근방의 빌라에 들어서자, 계단에 남아 있던 좀비들이 발소리를 듣고 이곳을 돌아본다.

“위에 세 마리. 동시에 온다.”

설여원의 설명에 난 헌팅 나이프를 고쳐 쥐며 자세를 낮췄다.

크어어어!

코앞으로 드리운 좀비의 목젖을 왼손으로 잡고, 우측을 비집고 들어오는 좀비의 안구에 칼날을 찔러넣었다.

동시에 목을 쥔 좀비를 방패로 이용해 뒤에 있는 좀비를 넘어뜨렸다.

쓰러뜨린 좀비들의 안구를 연달아 쑤시고, 설여원과 함께 곧장 옥상으로 향했다.

옥상에 도착하자마자 맞은편 빌라 옥상을 타고 이동하며 생존자들의 곁으로 이동했다.

쉴 새 없이 옥상을 타고 넘은 끝에, 생존자들과의 거리는 40m로 좁혀졌다.

지금 당장 생존자들의 곁으로 접근하는 건 위험하기에, 옥탑방에 몸을 숨기고 손전등을 꺼냈다.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좀비들이 줄어들자, 생존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정확한 대화 내용은 들을 수 없었지만, 자동차 경적을 듣고 혼란에 빠진 모습을 보였다.

난 그들의 모습을 유심히 살피며 손전등을 점멸했다.

번-쩍.

어둠이 내려앉은 시각, 반짝이는 불빛은 생존자들의 시선을 유도하기에 적합했다.

그들은 일제히 불빛이 날아드는 방향을 살폈고, 설여원과 내가 있는 옥탑방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들은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이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다가오는 생존자들의 모습을 보고, 옆에 있는 설여원에게 얘기했다.

“혹시 모르니 여기 있어.”

“혼자 나가려고?”

“저 사람들 아직 흥분 상태야. 경계할 게 뻔해.”

뒤이어 생존자들이 도달하고, 난 방문을 열고 그들을 마중 나갔다.

예상대로 세 명의 남자는 내게 쇠뇌를 겨누며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선두에 있던 남자는 마른침을 삼키며 내게 물었다.

“방금 불빛, 자네가 그런 거야?”

“목숨 구해준 사람한테 쇠뇌부터 겨누는 건 예의가 아니죠?”

눈꼬리를 치켜뜨며 태연하게 얘기하자, 뒤편에 있던 천호진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입을 열었다.

“혀, 형? 재형이 형?”

“오랜만이다. 호진아.”

엷은 미소를 지으며 천호진의 이름을 부르자, 그는 쇠뇌를 내려놓고 양팔 벌려 내게 다가왔다.

울먹이는 표정으로 내게 안기는 녀석.

서글서글하니 성격도 좋아서, 학교에서 1학년 과대도 하고 있던 동생이다.

천호진의 모습을 보고 두 명의 남자는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난 천호진의 등을 토닥이며 맞은편에 있는 남자들에게 얘기했다.

“두 분도 쇠뇌 내려놓고 얘기하죠.”

“…….”

40대 남자들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천호진이 나서서 그들을 설득했다.

“덕배 아저씨, 현배 아저씨, 이 형님은 믿어도 돼요. 진짜예요.”

천호진의 말에도 두 남자는 경계심을 거두지 못했다.

선두에 있던 남자는 의구심 가득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학교에서 내려왔습니다. 학생회관에서 자급자족하면서 버텼죠.”

“학교? 말도 안 되는 소리. 학교에서 그 괴물이 내려왔는데?”

“그 부분도 설명 드리겠습니다.”

“설명?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설명해? 설마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거냐? 그 괴물이 여기를 공격할 거라는 걸?”

예민해진 이덕배는 내 말을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덜컥.

그러자 상황을 지켜보던 설여원이 미간을 찌푸리며 옥탑방에서 나왔다.

“아저씨들, 지금 상황파악이 안 돼요?”

“……너희 몇 명이나 되는 거야. 언제부터 우릴 지켜본 거지?”

여전히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는 아저씨들.

조금 전까지 생사의 갈림길에 있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반면에 설여원은 그런 사사로운 감정까지 맞춰줄 사람이 아니었다.

“궁금한 거 많은 건 알겠는데, 일단 쇠뇌부터 내려놓는 게 예의 아닌가? 물에 빠진 사람 살려놨더니 왜 구해줬냐고 하는 거랑 뭐가 달라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얘기하는 설여원의 모습에 이덕배와 이현배는 서로 눈치 보는 모습을 보였다.

오래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쇠뇌를 내려놓았다.

뒤이어 이덕배의 질문이 이어졌다.

“너희는…… 생존자 몇 명이나 되지? 방금 자동차 경적은 또 뭐고.”

“들어가서 얘기하죠. 여기서 밤새 떠들 것도 아니잖아요.”

한발 앞서 이동하며 얘기하자, 이덕배는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이현배가 이덕배의 등을 쓸어내리며 진정하라는 말을 건네 뒤에야, 그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었다.

그런 아저씨들의 모습을 보고, 난 무전기를 들고 얘기했다.

“생존자 만났습니다. 돌아갑니다.”

* * *

바리케이드 앞에 다다르자, 손도끼를 쥐고 있는 이정우와 정진영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찍이 무전을 받고 바리케이드를 열어둔 상태였다.

이정우는 곧장 머릿수를 확인하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물었다.

“완수는 어디 있어. 같이 있는 거 아니었어?”

“따로 움직였는데 당연히 모르죠. 아직 안 왔어요?”

중형차를 타고 후문으로 올라갔다면 진즉에 내려왔어야 정상이다.

설마 공대에서 좀비들에게 둘러싸인 건가?

번-쩍.

완수에게 무전을 보내려는 찰나,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차량의 전조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몇 차례 불빛을 점멸하며 다가오는 중형차.

치지직- 치직- 삑.

-아아, 다들 도착했나?

옆구리에 차고 있는 무전기로 전완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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