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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57화 (57/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57화

단숨에 좀비의 안구를 꿰뚫고 뒤에 있는 일행을 살폈다.

설여원은 골목에서 튀어나온 좀비를 처리하고, 전완수와 최현은 후방에서 나타난 좀비들을 처리했다.

그들의 곁으로 다가가 대열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조율하고, 설여원과 함께 길을 뚫었다.

“왼쪽 4m, 쓰레기 수거함 뒤.”

설여원의 브리핑에 따라 좀비의 위치를 파악하고, 놈들이 뭉치기 전에 일사불란하게 처리했다.

설여원은 우측을 담당하면서도 왼쪽과 정면의 좀비들을 살폈다.

“전방 5m 4마리. 환풍기 앞.”

지면을 박차며 앞으로 나아가자, 설여원이 말대로 환풍기 앞에 뭉쳐 있는 4마리의 좀비를 확인할 수 있었다.

크어어어……!

좌측 좀비의 구강을 왼팔로 틀어막은 채 그대로 벽면으로 밀어붙였다.

쿵-!

하관이 으깨지며 뒤통수가 깨지는 진동이 전완근으로 전해졌다.

동시에 오른손에 쥐고 있던 헌팅 나이프를 휘둘러 우측 좀비의 안구를 꿰뚫고, 전방에서 달려드는 놈에게 발길질을 가했다.

발길질에 맞은 녀석은 복부에서 풍선 터지는 소리가 들리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뒤따라오던 좀비는 고꾸라진 녀석에게 발이 걸려 그대로 넘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하관이 으깨진 좀비의 머리칼을 휘어잡고 목을 부러뜨린 뒤, 지면에 엎어진 좀비의 정수리에 헌팅 나이프를 박아넣었다.

순식간에 4마리의 좀비를 처리하고 뒤를 돌아보자, 설여원이 다가와 내게 물었다.

“방금 뭐야?”

“뭐가.”

“그런 소리 처음 들었어. 저 좀비 장기 터진 거 같은데?”

사실 나도 놀랐다.

복부를 움푹하게 파고 들어가는 기이한 촉감이 지금도 발끝에 남아 있었다.

근력을 강화한 뒤로 힘이 강해졌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느낀 건 처음이었다.

난 양손을 쥐었다 펴며 생각했다.

지금이라면…… 무엇이든 깨부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게다가 보호대까지 있으니, 공수전환도 수월해졌다.

지금보다 더 강해지면 헌팅 나이프가 필요 없는 수준이 될지도 모르겠다.

잡념은 여기까지.

고개를 들고 옆에 있는 설여원에게 얘기했다.

“계속 브리핑해 줘.”

대열을 가다듬고 비좁은 샛길로 들어섰다.

* * *

숨돌릴 틈도 없이 좀비들을 처리하며 길을 뚫은 끝에, 우린 대형마트에 도달할 수 있었다.

좀비들이 모여 있는 소각장과 거리가 꽤 있어서 그런가?

대형마트의 주변으론 좀비들이 보이지 않았다.

전완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내 곁으로 다가오며 얘기했다.

“오면서 공명 소리는 못 들었지?”

“어, 좀비들이 울기 전에 처리했으니 들키진 않았을 거야.”

“빠릿빠릿하게 처리하길 잘했네.”

“방심하긴 일러. 마트 내부도 확인해야지.”

다들 알겠다는 대답과 함께 정문으로 걸어갔다.

마트의 정문으로 엎어진 카트와 짓밟힌 채소, 과일, 전단지 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셔터는 반쯤 내려간 상태였고, 쌓아 올린 상자와 패널 등이 지저분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이곳에 있던 생존자들이 방어선을 구축했다가 떠나간 흔적이었다.

설여원은 눈살을 찌푸리며 얘기했다.

“여기도 털렸을 거 같은데?”

“확인은 해봐야지.”

이전과 마찬가지로, 칼자루를 들고 계산대를 타격했다.

쾅! 쾅! 쾅!

숨죽인 채 기다렸지만, 좀비들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설여원과 전완수는 좌우를 유심히 살피더니, 들어가자는 손짓을 보였다.

드륵- 끼리릭-

그 순간, 뒤에서 들리는 바퀴 소리에 놀란 눈으로 헌팅 나이프를 치켜들었다.

그러자 카트를 끌고 오던 최현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았다.

“손으로 옮기는 건 힘들 거 같아서.”

최현의 말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얘기했다.

“변종인 줄 알았잖아.”

“변종이면 내가 소리부터 질렀지.”

“어휴, 싱거운 자식.”

얄미운 마음에 최현의 등을 때리며 계산대부터 살폈다.

라이터와 담배, 껌, 종량제봉투.

식량을 넣을 봉투가 필요하기에, 종량제봉투는 눈에 보이는 대로 전부 꺼냈다.

라이터도 여러모로 쓰이는 곳이 있으니 챙기고, 껌도 챙겼다.

담배는…….

‘정우 형 것만 챙길까.’

한평생 술 담배를 멀리하던 이정우는 안개가 퍼진 뒤로 담배를 태우기 시작했다.

우수에 잠긴 표정으로 옥상에서 담배를 태우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적당히 챙겨가야겠다.

“재형아!”

뒤이어 설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달려가자, 설여원은 진열대를 가리키며 화색을 띠었다.

“여기 대박이야.”

웬만한 식료품들은 그대로 방치된 상태였다.

음료수도 많고, 군것질거리도 많았다.

덥고 습한 날씨 때문에 이온 음료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 번 들었는데, 여긴 남아도는 게 이온 음료였다.

최현을 불러 카트에 각종 식료품을 담고, 계산대로 돌아와 종량제봉투에 모조리 담았다.

마음 같아서는 카트를 끌고 가고 싶지만, 바퀴 소리가 요란해서 좀비들에게 들킬 게 뻔하다.

정신없이 물건을 담고 있는데, 최현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야, 완수 어디 갔냐.”

그러고 보니 전완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전완수를 찾아 마트 깊숙이 들어가자, 주방 도구 진열대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전완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완수야, 거기서 뭐 해.”

전완수를 부르자, 그는 바닥에 놓인 기다란 막대기를 들고 내 얼굴을 쳐다봤다.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보이는 모습.

전완수가 들고 있는 기다란 막대기를 확인한 순간, 나도 반사적으로 눈꼬리가 올라갔다.

저건…… 화살?

“그거 어디서 찾았어.”

“이거 봐봐.”

전완수가 가리키는 방향을 살피자, 셀 수 없이 많은 화살이 진열대에 가득한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평범한 활에 사용하는 화살이 아니었다.

전체적인 길이가 짧고, 깃도 짧은 편이었다.

이건…… 마치 쇠뇌에 사용하는 화살처럼 보였다.

예전에 TV에서 나온 다큐멘터리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한국인이 활의 민족이라 알려졌지만, 활만큼이나 많이 사용한 것이 쇠뇌라는 것을.

거기서 봤던 화살과 비슷한 생김새를 지녔다.

전완수는 들고 있던 화살을 내려놓으며 진지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아무래도 여기 평범한 마트 아닌 거 같다.”

나도 동감이다.

여긴…… 무기고나 다름없다.

이렇게 많은 화살을 두고 갔다면, 이렇게 많은 식량을 두고 갔다면, 분명 다시 찾으러 올 것이다.

“완수야, 그거 두고 나와.”

“두고 간다고?”

“쇠뇌도 없이 화살만 있으면 뭐해.”

“기다려. 화살이 있으면 쇠뇌도 있겠지.”

전완수가 창고까지 확인하려 하기에, 다급히 그의 어깨를 붙잡으며 얘기했다.

“우리 쇠뇌 찾으러 온 거 아니잖아.”

“그래도…….”

“우리 목적은 식량이야. 욕심부리지 마.”

생존자들이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

근방에 좀비들도 보이지 않았으니, 어쩌면 정찰을 나간 새에 우리가 들어온 건지도 모른다.

정찰을 나간 생존자들은 쇠뇌를 지녔고, 여분의 화살이 있다면 우리에게 승산은 없다.

우리를 좀비로 오인하고 오발하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르는 것이다.

안개 때문에 시야 확보가 어렵다 보니 충분히 가능한 상황.

내가 생각한 가설을 전완수에게 설명하자, 그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계산대로 걸어갔다.

치지직- 칙- 삑.

-재형아, 재형아 들려?

그 순간, 무전기에서 이정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무전기를 손에 쥐고 입술로 가져갔다.

“네 형, 말씀하세요.”

-전원 켜둔 거 보니 주변에 좀비는 없나 보네.

“네 안전합니다. 무슨 일이에요.”

-다른 게 아니라, 재우가 일기를 찾았어.

“일기요?”

-어, 되도록 빨리 돌아와. 할 얘기가 많다.

“지금 갈게요.”

무전을 마치고 일행을 쳐다보자, 다들 양손 가득 종량제봉투를 들고 나갈 채비에 나섰다.

그러거나 말거나, 설여원은 볼펜을 들고 계산대 위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뭘 저리 열심히 적나 싶어서 쳐다보자, 쪽지를 남기고 있었다.

-남은 식량은 계산대 밑에 둡니다.

쪽지에 적힌 글귀였다.

이곳의 모든 식량을 종량제봉투에 담을 수 없기에, 들고 갈 수 있는 만큼만 챙겼다.

뒤이어 설여원은 묵직한 종량제봉투를 어깨에 짊어지며 얘기했다.

“짐은 나랑 완수가 들 테니, 재형이랑 현이가 앞뒤로 좀비들 봐줘.”

설여원의 말에 레그 홀스터에 넣어둔 헌팅 나이프를 뽑으며 얘기했다.

“가자.”

* * *

소각장에 있던 좀비의 일부가 골목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난 설여원의 브리핑에 따라 접근하는 좀비들을 처리하고, 가까운 빌라의 옥상으로 이동했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돌아갈 때도 옥상을 타고 이동했다.

마음 같아서는 대각선으로 길을 뚫고 싶지만, 종량제봉투를 들고 있는 설여원과 전완수가 전투에 참여할 수 없으니 회피 기동할 수밖에 없었다.

설여원과 전완수가 버거운 기색을 보이면 최현과 내가 번갈아 가며 짐을 들었다.

마지막에는 내가 모든 식량을 들고 옥상을 뛰어다녔지만 말이다.

이윽고 좀비카를 정차해둔 주차장에 도달하자, 설여원이 다가와 내 옆구리에 있는 무전기를 손에 쥐었다.

“아아, 정우 오빠, 들려요?”

-어 여원아, 얘기해.

“저희 지금 들어가요. 바리케이드 좀 치워주세요.”

-내려갈게.

바리케이드를 설치해둔 빌라 앞에 도착하자, 흐릿한 인영이 계단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정우와 황덕록.

황덕록은 내 옷에 묻은 검붉은 혈흔을 보고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가는 길에 좀비들 많아?”

“가급적이면 골목은 들어가지 마. 잘못 들어가면 못 나온다.”

황덕록은 덤덤한 표정으로 수색대를 살피더니, 마른침을 삼키며 내게 얘기했다.

“나도.”

“응?”

“나도…… 싸우는 법 알려줘.”

말은 우물쭈물하게 하지만, 표정은 단호했다.

황덕록의 표정에서 짐이 되기 싫다는 마음이 엿보였다.

팀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

그 마음이 기특해서, 엷은 미소를 지으며 손에 쥐고 있는 종량제봉투를 건네주었다.

“이것부터 들어줘.”

“아, 그래.”

이정우를 따라 스터디카페로 들어서자, 책상 앞에 둘러앉아 일기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일행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윤혜리와 김희연은 후다닥 달려와 설여원과 전완수의 손에 있는 짐을 들어주고, 정진영은 생수를 건네주며 수고 많았다는 말을 남겼다.

뒤이어 설여원이 입을 열었다.

“일기장 찾았다더니, 저거에요?”

“어, 너희도 와서 봐봐.”

이정우가 건네주는 일기장을 들고 수색대와 함께 찬찬히 읽어내려갔다.

[6월 15일. 하룻밤 사이에 온 세상이 안개에 뒤덮였다. 새벽만 되면 안개가 짙게 깔리는 동네에서 평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시큼한 냄새. 머리가 어지러운 것 같다.]

안개가 퍼진 시기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된 일기.

내용은 길지 않지만, 상황을 유추하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다.

[6월 16일. 엄마가 변했다. 저 밖에 있는 괴물들처럼…… 엄마가, 우리 엄마가 변했다.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괴물한테 물린 엄마를 보고 멍청하게 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6월 20일. 화장실에서 기괴한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매일, 시도 때도 없이. 내가 알던 엄마의 목소리가 아니다.]

[6월 21일. 아빠가 나더러 방에서 나오지 말라고 했다. 난…… 하지 말라고 말렸는데, 119가 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했는데, 아빠는 괜찮다는 말만 남기고 나를 방에 가두었다. 괜찮다면서 왜 나를 가둬? 괜찮다면서 왜 야구 배트를 쥐고 있는데? 괜찮다면서…… 괜찮다면서 왜……. 아빠를 말리고 싶은데, 말릴 용기도 없다. 구석에 앉아 두 귀를 막고 흐느껴 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퍽, 퍽, 퍽…….

방문 너머로…… 아빠가 엄마를 때려죽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6월 23일. 이틀간 아빠랑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빠는 식탁에 앉아 싱크대만 쳐다보고 있다. 이틀간 움직이지도 않고, 싱크대를 쳐다보며 울다가 웃고, 또 울다가 웃는다. 아빠가 미친 거 같다. 아빠가…… 무섭다.]

[6월 24일. 어제오늘은 이불에 누워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창밖의 세상도 무섭고, 거실의 핏자국도 무섭고, 아빠도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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