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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55화 (55/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55화

“전투팀 싫어?”

“아니, 좋아.”

“그런데 왜 그래.”

“그냥? 딴지 걸어보고 싶어서.”

설여원이 두 눈을 게슴츠레 뜨며 못마땅한 표정을 짓자, 보다 못한 최현이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미안하다, 이 새끼가 원래 이래. 지 꼴리는 대로 사는 놈이라.”

이런 와중에도 뭐가 재밌다고, 전완수는 혼자 히죽히죽 웃는 모습을 보였다.

다른 일행까지 짜증 내기 전에, 난 손뼉을 치며 일행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자,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겁니다.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만 알아줘요.”

뒤이어 윤혜리는 손에 쥔 통조림을 확인하며 내게 물었다.

“오빠, 일단 점심부터 먹을까요?”

“그래, 밥부터 먹자.”

그러자 윤혜리의 옆에 있던 김희연이 뒤를 가리키며 얘기했다.

“아 참, 저쪽에 부탄가스도 있던데, 전부 가져올게요.”

식량은 깨끗하게 털렸지만, 다른 부가적인 것들은 온전한 게 많았다.

혹시 식칼도 남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주방 도구 진열대도 살폈다.

주방 도구는 쓸 만한 무기가 많아서 그런지, 식칼이나 프라이팬, 도마와 같은 물건은 깨끗하게 비워진 상태였다.

필요한 물품만 챙겨서 떠난 생존자들.

대체 어디로 간 걸까.

* * *

마트의 중앙을 깨끗하게 치운 뒤, 그곳에 버너와 그릇을 세팅하고 앉았다.

윤혜리와 김희연은 땀을 뻘뻘 흘려가며 음식을 만들었다.

두 사람이 만든 음식은 색깔은 기이했지만 구수한 냄새가 풍겼다.

된장국과 색깔은 비슷한데, 건더기는 보이지 않았다.

수저를 들고 한입 삼키자, 구강부터 퍽퍽해지는 오묘한 식감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익숙한 맛과 향이 나고, 그 속으로 달콤한 설탕 맛이 섞여 있다.

그런데 식감은 왜 이러지?

“이게 뭐야?”

입맛을 다시며 묻자, 윤혜리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건빵 죽이에요. 맛 이상해요?”

“이상한 건 아니고, 맛이 신기하네.”

신기하다는 표현이 내키지 않았는지, 윤혜리는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맛이 없는 건 아닌데…… 이게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오묘한 맛이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박재우가 헛기침과 함께 얘기했다.

“뭐, 맛만 좋은데 왜.”

“그쵸? 나름 괜찮죠?”

윤혜리가 화색을 띠며 되묻자, 박재우는 덤덤하게 고개를 끄떡이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최현은 윤혜리와 박재우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내게 상체를 기울였다.

“재형아.”

“아 깜짝이야. 왜.”

갑작스러운 귓속말에 소름이 돋았다.

본래 목소리도 굵직해서 그런지, 귓속으로 지렁이가 기어가는 기분이었다.

최현은 음흉한 미소를 짓더니,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속삭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 둘, 뭔가 있는 것 같지 않아?”

“…….”

최현의 말을 듣고 윤혜리와 박재우를 유심히 살폈다.

서로 흘깃거리며 수줍은 듯 웃거나, 민망함에 머리를 긁적이는 모습.

저 두 사람 설마…….

어처구니없는 마음에 콧방귀가 절로 나왔다.

뒤이어 최현을 쳐다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다른 사람들도 알아?”

“모를걸?”

“다른 사람들한테는 얘기하지 마. 되도록 티 내지 말고.”

“왜? 저런 건 놀려줘야 제맛…… 아악!”

설여원이 다가와 최현의 볼을 꼬집었다.

최현은 얼얼한 볼을 문지르며 설여원을 째려봤다.

그러자 설여원은 따라오라는 손짓과 함께 얘기했다.

“둘 다 따라와. 장군이도 밥 줘야지.”

“말로 하면 되지. 살 떨어지는 줄 알았네.”

최현은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여원도 윤혜리와 박재우 사이의 묘한 기류를 눈치채고 있던 건가?

나만 몰랐어?

멋쩍은 마음에 구레나룻을 긁적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트를 벗어나 버스의 짐칸을 열고 강아지 사료를 꺼내자, 뒤에 있던 설여원이 나를 불렀다.

“재형아.”

뒤를 돌아보자, 설여원은 마트를 향해 턱짓하며 얘기했다.

“저 둘,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하다니? 그냥 두면 되지.”

“글쎄, 난 모르겠는데? 저대로 둬도 괜찮을지.”

설여원은 팔짱을 끼며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사내 연애 금지.

그런 걸 말하고 싶은 건가?

이에 어깨를 으쓱이며 얘기했다.

“굳이 반대할 필요는 없지 않아?”

“안일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야. 물을 흐릴 수도 있다고.”

“저 둘이 연애하는 게 왜 물을 흐려.”

“목숨이 오가는 상황이 발생하면, 과연 저 둘이 소리결을 걱정할까? 아니면 서로를 챙길까.”

설여원의 물음에 가만히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그건 문제가 될 수 있다.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줘야 한 몸처럼 움직일 수 있다.

두 사람이 사사로운 감정으로 서로만을 걱정한다면…… 분명 구멍이 생길 것이다.

설여원이 어떤 부분을 걱정하는지 알기에, 난 입맛을 다시며 얘기했다.

“저 둘이 아직 사귀는 것도 아니고, 설령 사귄다 해도 그건 개인의 자유야. 우리가 그걸 방해할 권리는 없어.”

“글쎄, 그건 지켜봐야지?”

“맞아, 지켜보면 될 일이야. 둘이 연애하다가 경계에 해이해지면 그때 뭐라 해도 늦지 않아.”

“늦고 빠르고는 누가 정해? 자칫 잘못하면 팀 분열로 이어질 수 있어.”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 말이지만, 난 윤혜리와 박재우를 평범한 남녀관계로 바라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아는 윤혜리, 내가 아는 박재우로 보고 싶었다.

만약 윤혜리가 감정에 휘둘리더라도, 박재우가 잡아줄 것이다.

오랜 시간 지켜본 건 아니지만, 지금껏 내가 봐온 박재우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내성적인 것 같으면서도 충분히 이성적인 사고를 지녔고, 윤혜리와의 관계 때문에 분위기를 망칠 사람이 아니다.

본인이 해야 하는 일, 도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팀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니까.

그러니 최대한 절제하면서, 저렇게 눈치를 보며 은근슬쩍 챙기는 게 아닐까?

애초에 박재우가 답도 없는 사람이었다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사귄다고 자랑했겠지.

이러한 생각을 설여원에게 들려주자, 그녀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난 설여원의 표정을 살피며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여원이 네가 뭘 걱정하는지 알아. 너나 나나 걱정이 앞서는 사람이니 누구보다 내가 잘 알지.”

“…….”

“하지만 한 팀이라고 해서 개인의 감정까지 조종할 수는 없잖아? 이 부분은 네가 나한테 얘기했으니 더 잘 알 거 아니야.”

“……내가?”

“함께 할 수 있는 팀인지, 결국 와해될 팀인지, 그건 지켜볼 일이라고 네가 무도장에서 얘기했잖아.”

설여원은 내 말을 듣고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였다.

오래 지나지 않아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내가…… 점점 널 닮아가나 보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쳐다보자, 설여원은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뒤이어 쓴웃음을 지으며 얘기했다.

“내가…… 너무 인간미 없는 사람으로 변해가는 거 같아.”

“뭐야 그게. 내가 인간미 없었다는 거야?”

“장군이 왔을 때만 해도 그랬지?”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좀…… 단호하긴 했다.

그런 나를 바꿔준 게 이정우와 설여원이었다.

난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그럼 내가 널 닮아가면 되겠네. 그럼 조율되겠지.”

설여원은 뚱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연거푸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으며 얘기했다.

“저 둘도 현 상황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니, 그냥 지켜보자는 거지?”

“그렇지.”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시작도 하지 않은 두 사람을 방해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 게 아니라, 우려했던 일이 발생했을 때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다.

결국, 설여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타닥- 탁- 탁-

뒤이어 버스 출입구를 앞발로 긁으며 펄쩍펄쩍 뛰는 장군이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간식 냄새를 맡고 벌써 들뜬 모양이다.

출입구를 열자, 장군이는 한걸음에 달려와 내 종아리에 매달렸다.

왈! 헥헥-

난 장군이를 품에 안으며 설여원에게 물었다.

“장군이 데리고 들어갈까?”

“그러자, 어차피 실내에서 먹으니까 안전할 거야.”

얼추 안건을 정리하자,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최현은 뚱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둘이서 정할 거면 난 왜 부른 거야.”

“알아두라고 불렀지.”

설여원은 싱겁게 웃으며 최현과 내 팔뚝을 잡고 마트로 걸음을 옮겼다.

* * *

간단히 점심 식사를 마치고, 버스로 돌아와 각자의 역할을 배정했다.

전력이 충전될 동안 수비 진영을 구축할 필요가 있었다.

이정우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대형마트 맞은편에 위치한 5층짜리 빌라를 가리켰다.

“저기 어때? 예전에 스터디카페 있던 곳인데.”

지금이야 안개 때문에 건물의 외관을 확인할 수 없지만, 내 기억 속에도 선명히 남아 있는 건물이었다.

1층에는 식당이 있고, 2층에는 스터디카페, 3층부터 5층까지 주거공간으로 사용되는 건물이었다.

주변에 햇빛을 가리는 건물도 없고, 근방에 좀비도 없으니 전력 보충에 최적화된 건물이었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일행을 돌아봤다.

“태양광 패널 들고 따라와요.”

남녀 구분 없이 모든 일행이 태양광 패널을 건물 앞으로 옮기고, 난 한발 앞서 건물 내부부터 살폈다.

건물 내부는 최근까지 사람들이 생활한 것으로 보였다.

먼지도 별로 없고, 폐건물 특유의 퀴퀴한 냄새도 없었다.

각 층을 돌며 안전부터 확보한 뒤, 일행과 함께 태양광 패널을 옮겼다.

박재우와 황덕록에게 태양광 패널의 세팅을 부탁하고, 윤혜리와 김희연은 1층 식당에서 다 먹은 그릇들을 설거지했다.

이정우와 정진영은 건물 내에 바리케이드 공사를 시작하고, 수색대도 방어선 구축을 도왔다.

얼추 수비 진영이 완성되고, 난 최현을 불러 대형마트의 위치를 물었다.

최현은 창가로 걸어가 대각선 방향을 가리키며 얘기했다.

“여기서 700m 정도 들어가야 돼.”

“꽤 먼 곳에 있네.”

“차 타고 가면 금방이지.”

“차 타고 간다고?”

걸어갈 생각이었는데, 최현은 당연하다는 듯이 얘기했다.

“차도 없이 식량을 어떻게 들고 오려고? 양손에 짐 들고 좀비랑 어떻게 싸워.”

“나는 길부터 확보하고 손으로 옮기려고 했지. 그리고 저기에 차가 어떻게 들어가? 예전부터 원룸촌 골목 비좁은 거로 유명했잖아.”

“중형차 끌고 가면 충분하지 않을까?”

“개조한 것도 생각해야지. 차량 측면에 이것저것 잔뜩 달았잖아.”

“완수가 운전하면 되지. 완수는 시야 확보되잖아.”

“아니 시야 문제가 아니라니까?”

뒤이어 상황을 지켜보던 설여원이 최현과 나를 중재하며 차분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걸어가는 게 맞아. 가뜩이나 속도도 높일 수 없는 골목이잖아. 좀비들한테 둘러싸이면 퇴로도 막혀.”

그러자 설여원의 뒤에 있던 전완수도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나도 동의. 오는 길에 시체들도 그렇고, 이것저것 부서진 흔적으로 봐서는 여기 있던 생존자들이 바리케이드 설치했을 가능성도 있어. 차로 들어가는 건 위험해.”

전완수의 대답에 설여원은 신기하다는 듯이 그를 쳐다봤다.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전완수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뭐야, 왜 그렇게 쳐다봐.”

“웬일로 완수 네가 옳은 소리를 하네.”

“뭔 소리야. 내가 언제 틀린 말 하는 거 봤어?”

“틀린 말 하는 건 못 봤지. 하지만 쓸데없는 소리 하는 건 많이 봤지.”

“…….”

설여원과 전완수는 서로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이유 없는 눈싸움을 시작했다.

뒤이어 전완수는 한쪽 눈꼬리를 치켜뜨며 내게 물었다.

“이거 칭찬이냐 욕이냐. 왜 찝찝하지.”

“칭찬이야.”

“허허…… 거참 기분 묘하네.”

전완수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다시금 최현을 쳐다보자, 그는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과반수 의견에 따라야지 뭐. 나한테 선택지가 있나.”

난 최현의 등을 토닥이며 이정우와 정진영의 곁으로 걸어갔다.

“형, 저희는 슬슬 출발할게요.”

“마트 가려고? 무전기 챙겼어?”

“네, 여기 있습니다.”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얘기하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다녀와.”

형들에게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뒤에 있는 일행을 불렀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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