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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53화 (53/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53화

정문으로 향하며 김희연이 알려준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했다.

설여원은 내비게이션을 통해 가는 길을 확인하더니, 신기하다는 듯이 물었다.

“여기 강도 있었어?”

“금호강 유명하잖아. 몰랐어?”

“처음 알았어.”

“목적지가 금호강 건너편이야. 가는 길에 보면 되겠네.”

“그 너머에 뭐가 있는데?”

“대단지 아파트랑 원룸촌.”

후문으로 나갈 계획이었지만, 이성을 지닌 좀비가 후문으로 이동했기에 정문을 이용하기로 했다.

대장 좀비가 교내의 모든 좀비를 수하로 거느리고 나가서 그런지, 교내는 깨끗하게 비워진 상태였다.

기다란 내리막길을 지나 정문에 다다르자, 눈앞으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첫 번째 에피소드 ‘안전가옥’을 클리어하셨습니다.

-안전가옥을 클리어한 최초의 파티를 등록해 주세요.

예상치 못한 홀로그램에 무전기를 들고 얘기했다.

“다들 홀로그램 확인했어요?”

치지직-

-확인했다 오바.

-나도 확인.

전완수와 이정우의 대답이 들려왔다.

길가에 차량을 정차하고, 차량에서 내려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윤혜리와 김희연, 황덕록은 서로 눈치 보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에게 현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한 뒤, 이정우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입력은 형이 해요.”

이정우는 잠시나마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더니, 심호흡과 함께 홀로그램으로 손가락을 옮겼다.

이정우가 파티원의 이름을 입력하자, 눈앞에 있던 홀로그램으로 또 다른 문장이 떠올랐다.

-파티 구성이 완료되었습니다.

-파티원: 이정우, 정진영, 전완수, 최현, 윤혜리, 김희연, 박재형, 설여원, 박재우, 황덕록.

-파티원을 등록한 ‘이정우’에게 파티장을 위임합니다.

-파티명을 입력해 주세요.

파티명을 입력하라는 문장이 나오자, 이정우의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파티명 뭐로 할까?”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싱겁게 웃으며 얘기하자, 주변에 있던 모든 일행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정우는 머리를 긁적이며 민망한 표정을 짓더니, 금세 엷은 미소를 지으며 파티명을 입력했다.

-파티명 ‘소리결’ 등록이 완료되었습니다.

-파티원들은 서로의 홀로그램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소리결’을 첫 번째 에피소드 클리어팀으로 등록합니다.

-최초의 클리어팀에게 특전이 주어집니다.

-플레이어로 등록되지 않은 인원에게 플레이어 등록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윤혜리, 김희연, 황덕록.

-기존의 플레이어들에게 라스트아크의 상점 이용권이 지급됩니다.

벌어지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이건 대박인데?

놀란 눈으로 일행을 쳐다보자, 다들 나와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장 놀란 사람은 윤혜리와 김희연, 황덕록이었다.

그들은 홀로그램을 보고 기겁하더니, 말까지 더듬으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윤혜리는 양손으로 홀로그램을 휘휘 저으며 물었다.

“이, 이게 홀로그램이에요? 아니 저…… 저 어떡해요? 무슨 직업 해요? 아무거나 하면 돼요?”

“워워, 진정해. 기다려.”

설여원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윤혜리의 어깨를 붙잡았다.

윤혜리가 심장을 부여잡은 채 미동도 하지 않자, 이정우는 가만히 팔짱을 끼며 내게 물었다.

“재형아, 어떻게 하는 게 좋겠어?”

“로즈랑 데니, 에덤으로 고르는 게 어때요? 저희 파티에 한 명씩밖에 없으니까요.”

그러자 황덕록이 오른손을 들며 얘기했다.

“에덤은 안 되는데?”

“응? 왜 안 돼.”

“에덤은 선택 불가로 떠.”

선택 불가?

황덕록은 캐릭터 설명을 유심히 읽으며 얘기했다.

“에덤 화이트는 최초의 클리어 직업군이라서 선택할 수 없다고 떠.”

내가 에덤 화이트로 라스트아크를 클리어했기 때문에 선택할 수 없다는 건가?

에덤 화이트로 게임을 클리어했으니, 시스템은 에덤 화이트를 가장 좋은 직업군으로 판단하여 선택 불가로 만든 모양이다.

그러자 옆에 있던 정진영이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어차피 에덤은 초반에 스탯을 높여두지 않으면 힘들잖아. 차라리 다행이지.”

“그럼…… 로즈랑 데니, 가브리엘을 추가할까요?”

“그게 좋지 않겠어?”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잠깐의 상의 끝에 황덕록이 로즈, 윤혜리가 데니, 김희연이 가브리엘을 담당하기로 했다.

직업군 선택이 끝나자, 황덕록은 윤혜리와 김희연의 홀로그램을 살피며 얘기했다.

“오, 우리도 본가 확인하라는 퀘스트 생겼어.”

난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홀로그램을 살폈다.

이전엔 보이지 않던 상점이 생성되었다.

라스트아크를 플레이하며 봤던 아이템들이 눈에 들어오고, 상점의 하단으로 교환권 1개라는 글자도 눈에 들어왔다.

이정우도 상점을 확인하더니, 일행을 돌아보며 얘기했다.

“다들 이거 봐. 보호대도 있어.”

보호대라는 말에 들뜬 마음으로 상점을 살폈다.

초기에 가장 도움이 되는 장비는 당연 보호대였다.

게임에서는 상점에서 쉬이 구입할 수 있지만, 지금은 상점이 열린 이 순간이 아니면 구매할 수 없었다.

난 보호대를 클릭하여 성능부터 확인했다.

[보호대]

-좀비의 공격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할 수 있습니다.

-자가재생기능이 존재합니다.

-80% 이상 손상 시, 12시간의 복구시간이 소요됩니다.

-내구도가 0으로 떨어지면 장비가 파괴됩니다.

라스트아크의 설정과 동일했다.

지금은 정강이와 팔뚝에 공책을 칭칭 감아둔 상태.

눅눅한 안개 속에서 제 역할을 하기 어려웠고, 한두 번 방어하고 나면 금방 뜯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보호대는 상완 보호대, 팔꿈치 보호대, 손목 보호대, 허벅지 보호대, 무릎 보호대까지, 총 5개 부위로 이루어져 있었다.

설여원은 상점을 유심히 살피더니, 콧방귀를 뀌며 물었다.

“지금 구매할 수 있는 아이템이 보호대랑 응급 키트뿐이야? 그럼 당연히 보호대 아닌가?”

“그렇지.”

망설임 없이 보호대를 구매했다.

우웅- 우우웅-

그러자 홀로그램이 사라지며 눈앞으로 은은한 빛이 맴돌기 시작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5개의 보호구가 완성되었다.

다시금 홀로그램을 열자, 상점은 눈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에피소드를 클리어해야 상점을 이용할 수 있는 건가?’

난이도가 올라가면서 상점 이용에 제약이 생겼다.

뭐, 애초에 상점은 바라지도 않았다.

완전히 사라진 기능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라도 이용할 수 있다면 좋지.

아쉬운 건 사실이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해야겠다.

지금껏 상점 없이 잘 해왔으니, 기죽지 말고 힘내자.

보호대를 착용한 뒤 앉았다 일어서기도 하고, 양팔을 접었다 펴며 신축성을 확인했다.

깃털처럼 가볍고, 고무줄처럼 잘 늘어난다.

심지어 근육을 잡아주는 느낌이 들어서 신체 능력 증대에도 효과가 있었다.

무슨 재질로 된 물건이지?

-시야에 내구도를 표시하시겠습니까?

눈앞으로 떠오르는 홀로그램.

수락을 누르자, 시야의 우측 상단으로 반투명한 홀로그램이 생성되었다.

부위별로 표시되는 내구도.

준비를 마치고 일행을 돌아보자, 설여원은 손목 보호대를 유심히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호대가 불편한 건가?

뒤이어 헌팅 나이프를 손에 쥐더니, 대뜸 본인의 손목을 찔렀다.

예상치 못한 행동에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그녀의 곁으로 달려갔다.

“뭐하는 거야!”

설여원의 팔을 잡자, 그녀는 싱겁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성능 좋네. 칼로 찔러도 내구도 10% 줄어.”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조차 보호대를 관통하지 못했다.

얼빠진 표정으로 설여원을 쳐다보자,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얘기했다.

“성능을 알아야 제대로 싸우지. 있는 힘껏 찌르면 20% 정도 줄어들 거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무슨 자해공갈단도 아니고.”

“다치면 정우 오빠한테 치료해 달라고 하면 되니까.”

설여원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혼자 방긋방긋 웃으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입맛을 다시며 이정우를 쳐다보자, 그도 못 당해내겠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띠링-!

그 순간, 또다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두 번째 에피소드: ‘방랑자’를 시작합니다.

-좀비들의 능력치를 재설정합니다.

-좀비들에게 패시브 스킬 ‘시체 먹기’가 생성됩니다.

*시체 먹기: 좀비가 시신을 먹으면 파괴된 신체 부위가 회복됩니다.

-기존 좀비들의 감각이 1.5배 발달합니다.

-업데이트를 진행합니다.

-1%, 2%, 3%, 4%…….

눈앞으로 떠오른 홀로그램의 내용을 보고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놀란 눈으로 일행을 쳐다보자, 다들 얼빠진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정우는 마른침을 삼키며 내게 물었다.

“이게 무슨 말이야? 재형이 너는 알고 있었어?”

“저도 이런 건 처음 봐요. 좀비들의 능력을 강제로 강화하는 건…… 듣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

곤란한 마음에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했다.

정진영은 내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보호대 받고 좋아할 상황이 아니었네.”

“설마 에피소드 끝날 때마다 좀비들 강화되는 건 아니겠죠?”

전완수가 심란한 표정을 지으며 묻자, 정진영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마당에 더 놀랄 것도…….”

-두 번째 에피소드 ‘방랑자’의 클리어 조건을 재설정합니다.

정진영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또 다른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클리어 조건을 재설정한다고?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서 에피소드 진행 현황을 살폈다.

-40명 이상의 생존자가 생활하는 쉘터를 찾아야 합니다.

*현재 찾은 쉘터(0/3)

-가까운 아크로 이동해 아크의 비밀을 밝히세요.

정진영은 클리어 조건을 확인하고 허탈하게 웃으며 얘기했다.

“놀랄 일 앞으로도 많이 남은 것 같네.”

이정우는 클리어 조건을 확인하며 내게 물었다.

“재형아, 두 번째 에피소드 ‘방랑자’에 쉘터 찾으라는 조건은 원래 없었지?”

“네, 쉘터 찾으라는 직접적인 얘기는 없었고, 대신 타이머가 있었죠. 게임 시간으로 석 달 동안 아크를 찾아 이동하면서 살아남는 게 원래 미션이었어요.”

“그럼 쉘터를 찾는 것 말고…… 또 달라진 건 없는 건가?”

“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습니다.”

“어떤 거?”

“아크의 비밀을 밝히라는 거요. 이런 건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러자 이정우의 옆에 있던 정진영이 입을 열었다.

“그거 아니야? 게임에서는 4번째 에피소드에 들어서면 우리가 찾던 아크가 파괴된 거로 나온다며? 우리가 아크를 파괴하는 게 아크의 비밀 아니야?”

“충분히 가능한 얘기죠. 그래서 마음에 걸린다는 겁니다.”

“뭐가?”

“여러분의 가족을 데리고 부산에 있는 아크로 가야 하는데, 우리 손으로 부산을 파괴하면 어떡해요?”

정진영은 순간 놀란 표정을 지으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설여원이 입을 열었다.

“내 생각은 달라. 지금까지 홀로그램은 모든 미션을 직설적으로 얘기했잖아.”

계속 설명하라고 하자, 설여원은 일행의 표정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아크를 우리 손으로 파괴해야 한다면 굳이 아크의 비밀이라고 얘기하지 않고 부산에 있는 아크를 파괴하라고 직설적으로 얘기했겠지.”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확신할 수도 없었다.

난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으며 물었다.

“만약 아니면, 그땐 감당할 수 있겠어?”

“내가 지레짐작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게임 설정이 달라진 거 아닐까?”

게임 설정이 달라져?

각 에피소드의 배경을 말하는 건가?

설여원의 말을 듣고 생각에 잠겼다.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변종이 나왔고, 두 번째 에피소드는 클리어 조건 자체가 달라졌다.

그러자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정우가 되물었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에피소드의 설정이나 게임의 진행 방식이 달라진다, 이거야?”

“네, 좀비에 대한 설정까지 달라지고 있잖아요. 좀비들의 감각이 1.5배 발달하는 설정, 아무도 못 봤잖아요?”

“…….”

“아크도 마찬가지예요. 어쩌면 파괴하지 않고 2개를 운용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도박성이 짙었다.

조금 전까지 보호대를 받고 기뻐하던 일행은 설여원의 얘기를 듣고 고심에 잠긴 모습을 보였다.

정진영은 일행의 표정을 살피더니, 오른손을 휘휘 저으며 입을 열었다.

“에이, 됐어. 생각해 봐야 답도 안 나오는데 괜히 진 빼지 말자고. 일단 포항까지 이동한 뒤에 부산이든 서울이든 정하면 되는 거 아니야? 굳이 목적지를 지금 정할 필요는 없잖아.”

정진영의 의견에 반박하는 사람은 없었다.

서로 눈치 보는 모습을 보이자, 정진영은 미간을 좁히며 얘기했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모인 것도 솔직히 게임 설정이랑 다른 거 아니야?”

“그렇죠. 게임에서는 다섯 명의 캐릭터로 스토리를 진행하지만, 우린 플레이어만 10명이니까요.”

어깨를 으쓱이며 얘기하자, 정진영은 손뼉을 치며 말을 이었다.

“그래! 그러니 다들 기죽지 말고! 확인 끝났으면 슬슬 출발하자고. 갈 길이 멀잖아.”

정진영은 연달아 손뼉을 치며 일행에게 어서 차량에 탑승하라고 했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그의 노력이 엿보였다.

하지만 모든 에피소드를 아는 나로서는…… 도저히 심란한 마음을 해소할 수 없었다.

정말 각 에피소드의 구성이 변했다면, 세 번째 에피소드에 나오는 독 안개가 두 번째 에피소드에 나올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닌가?

가브리엘이 각성하지 않으면 모두가 죽는 수가 있다.

어쩌면 쉘터를 찾으라는 클리어 조건이, 우리에게 제한 시간을 부여한 것과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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