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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50화 (50/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50화

(신)학생회관 5층에 도달한 순간, 심장이 내려앉은 기분을 느꼈다.

바리케이드가 새까맣게 탔다.

나무판자로 이루어진 부분은 전부 잿더미가 되었고, 철 기둥은 그을린 상태였다.

그 주변으로 까맣게 타버린 좀비들의 시신이 보이고, 5층 복도에도 여기저기 좀비들의 시신이 널브러져 있었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 지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진영이 형, 진영이 형! 혜리야!!”

정진영과 윤혜리의 이름을 부르며 다급히 동아리방으로 들어서자, 의자와 책상 등은 전부 엎어져 있었다.

벽지와 지도, 도화지 등도 걸레짝이 되어 있었다.

벌써 좀비들이 휩쓸고 지나간 상태.

대장 좀비가 학생회관을 먼저 공격한 건가?

그럴 리가.

그렇다면 오는 길에 좀비들을 만나거나, 최소한 정찰병이라도 만나야 정상이다.

이정우는 동아리방의 모습을 보고 힘없이 주저앉더니, 넋을 잃은 표정으로 나지막이 읊조렸다.

“내가, 내가 나가는 게 아니었어.”

일행은 그 누구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난 이정우의 곁으로 걸어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얘기했다.

“형.”

“내가, 내가 괜히 밖에 나가서…….”

이정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뒤이어 울상을 지으며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죄책감.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다.

난 이정우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얘기했다.

“정신 차려요. 아직 진영이 형이랑 혜리, 희연이 시신 찾은 것도 아니잖아요.”

“좀비로 변했으면 어쩌려고. 난…… 그 꼴 못 봐.”

“내가 찾을 테니까 형은 정신만 차려요. 형이 대표잖아.”

이정우를 일으킨 뒤, 뒤에 있는 박재우와 황덕록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둘은 정우 형이랑 같이 동아리방 정리해 줘. 혹시라도 단서 찾으면 얘기하고.”

“단서? 어떤 거?”

당황한 건 박재우와 황덕록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발자국이든 쪽지든 뭐든 찾으면 얘기하라고.”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정우를 부축하여 소파로 옮겼다.

이정우는 아침부터 몸살 기운이 있더니, 망가진 동아리방을 보고 간신히 붙잡고 있던 이성이 무너져내린 것으로 보였다.

이정우는 힘없이 소파에 주저앉으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황덕록과 박재우는 내 눈치를 보며 바닥에 널브러진 서류와 간식들을 챙기고, 쓰러진 의자와 책상을 일으켰다.

난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남은 일행에게 얘기했다.

“다른 사람들은 밖에서 찾자. 일단 건물부터.”

뒤에 있던 전완수와 최현, 설여원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밖으로 나갔다.

나도 그들을 따라 건물 전체를 샅샅이 살폈다.

* * *

1층에서 올라오는 설여원을 보고 그녀의 손목을 잡으며 물었다.

“식당에도 없어?”

“없어.”

“냉동창고까지 확인한 거야?”

“다 찾았어. 1층 화장실에도 없고, 3층 헬스장 로커룸에도 없어.”

착잡한 마음에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설마 밖으로 나간 건가?

(신)학생회관 근처에 안전한 장소가 있나?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장소가 떠오르지 않았다.

해가 떨어진 뒤에 밖으로 나가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진데.

게다가 윤혜리와 김희연을 데리고 좀비와 싸우는 건 말이 안 된다.

설여원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횃불이라도 들고 공대로 간 거 아니야?”

“좀비들이 불을 보고 따라올 게 뻔한데 어떻게 밖으로…….”

그 순간, 머릿속으로 번뜩이는 생각이 스쳤다.

그래, 불.

손가락을 튕기며 다급히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일전에 변종과 싸울 당시, 계단에 들어찬 좀비들을 상대하기 위해 화염병을 투척한 기억이 떠올랐다.

전신에 불이 붙은 좀비들이 아무리 달려들어도, 바리케이드에 불이 옮겨붙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바리케이드가 저렇게 타버릴 정도면 고의로 불을 붙였다는 의미가 된다.

5층 바리케이드는 밑에서 올라오는 좀비들을 저지하기 위함도 있지만, 뒷문이 뚫렸을 때 옥상으로 대피하기 위함도 있었다.

즉, 정진영과 윤혜리, 김희연이 대피할 수 있는 장소는 옥상뿐이다.

옥상 앞에 도착하자, 굳게 닫힌 철문 앞으로 네 마리의 좀비 시신을 엎어져 있었다.

역시, 이곳에 좀비들의 시신이 있다는 건 옥상으로 대피했다는 뜻이 된다.

난 마른침을 삼키며 헌팅 나이프를 뽑아 들었다.

철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다.

부디 좀비가 아닌, 나의 일행이 있기를.

쿵- 쿵.

“진영이 형.”

철문을 두드렸지만,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이에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한번 철문을 두드리고, 일행의 이름을 불렀다.

“진영이 형! 혜리야! 희연아!”

터벅.

그 순간, 철문 너머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일정한 걸음걸이가 아니라, 절뚝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굳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우려했던 상황이 발생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마로 철문을 치며 까드득 이를 갈았다.

머릿속으로는 괜찮다고 하지만, 마음은 준비되지 않았다.

도저히 좀비로 변한 일행을 눈뜨고 지켜볼 자신이 없었다.

내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옆에 있던 설여원이 내 옷소매를 잡으며 헌팅 나이프를 뽑았다.

“내가 처리할게.”

설여원에게 맡겨도 괜찮을까?

일전에 사과대에서 봤던 설여원의 표정이 눈앞을 스쳤다.

이성을 다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모습.

더는 그런 경험을 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훅, 하고 숨을 뱉었다.

그리고 설여원을 쳐다보며 괜찮다고, 괜찮으니 뒤로 물러서라고 했다.

철문은 예상대로 굳게 잠긴 상태였다.

경비 아저씨가 옥상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항상 잠가두지만, 우리 동아리 사람이라면 누구나 간단하게 여는 방법을 안다.

걸쇠가 헐겁기에, 날카롭고 뾰족한 도구로 문틈을 찔러 슬슬 밀면 문이 열린다.

마음을 다잡고 조심스레 헌팅 나이프를 찔러 넣은 순간.

“……오빠? 재형 오빠예요?”

반쯤 잠긴 목소리.

분명 윤혜리의 목소리였다.

난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입을 열었다.

“혜리니? 혜리야? 너 괜찮아?”

“오빠아아아.”

윤혜리는 금세 울먹이는 목소리를 내며 잠금장치를 풀고 철문을 열어주었다.

뒤이어 꾀죄죄한 몰골의 윤혜리가 내게 덥석 안겼다.

얼빠진 표정으로 옥상을 살피자, 저 멀리 환풍기 뒤에서 걸어 나오는 정진영과 김희연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김희연은 장군이를 품에 안고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다.

정진영도 얼굴을 붉히더니, 후다닥 우리 곁으로 달려왔다.

“야 인마! 살아 있었구나!”

정진영도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는지, 얼굴을 붉히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옆에 있던 설여원도 얼빠진 표정을 짓더니, 윤혜리와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아니 이게 무슨…….”

“언니이이…… 흐어엉.”

윤혜리는 눈물 콧물을 쏟으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 같이 동아리방으로 돌아오자, 이정우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정진영과 윤혜리, 김희연의 모습을 꼼꼼히 살폈다.

이정우의 눈에도 닭똥 같은 눈물이 고였다.

항상 강한 모습을 보이려고 하지만, 이정우는 마음이 여린 사람이었다.

착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인간을 사랑하고 정이 많아서 그런 것도 있었다.

자초지종을 듣고 싶지만, 지금은 일행이 감정을 추스를 때까지 기다리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어 있자, 누군가가 내 정강이를 흔드는 느낌이 들었다.

헥, 헥헥, 헥.

장군이.

싱겁게 웃으며 장군이를 들어 올리자, 녀석은 쉴 새 없이 내 얼굴을 핥았다.

장군이의 앞발과 털에도 좀비들의 혈흔이 묻어 있었다.

“너도 고생 많았다.”

왈!

장군이의 애교에 긴장감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설여원은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키우지 말자고 할 때는 언제고, 제일 좋아하네?”

“귀엽잖아.”

“장군아 물어! 이 아저씨 물어!”

설여원의 말장난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집에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 * *

정진영을 통해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새벽 어스름이 서서히 가시는 시각, 좀비들 몇 마리가 안개를 뚫고 5층까지 올라왔다고 한다.

우리가 종합강의동을 출발할 때와 얼추 비슷한 시각.

어쩌면 중앙 광장에서 들었던 먼발치서 들려온 울음소리가 (신)학생회관을 공격한 좀비들의 울음소리인지도 모르겠다.

정진영과 윤혜리, 김희연은 바리케이드에서 버티고 버티다가, 뒷문으로 올라오는 좀비들을 보고 옥상으로 대피했다고 한다.

정진영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미안하다. 좀비들 막으려고 바리케이드를 태웠어. 다른 방법이 없어서.”

“잘하셨어요. 살아남는 게 중요하죠.”

바리케이드가 문제인가?

일행이 살아남았다는 게 중요하지.

활활 타는 바리케이드로 인해 좀비들을 저지할 수 있었고, 해가 뜰 때까지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고 한다.

결국, 정오가 되어서야 기절하듯 잠들었다고 한다.

철문 두드리는 소리에 가장 먼저 윤혜리가 깨어나서 문을 열어준 것이었다.

철문 너머에서 들려온 절뚝이는 발소리는 윤혜리가 신발 하나를 잃어버린 탓이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뒤, 우리가 겪은 일도 들려주었다.

정진영은 몇 차례고 감탄사를 터뜨리며 고생 많았다는 대답을 들려주었다.

다들 피곤한 안색을 하고 있었다.

(신)학생회관에 있던 일행도, 종합강의동에서 돌아온 일행도.

오늘은 재정비도 할 겸, 휴식시간을 가져야겠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며 얘기했다.

“다들 꼴이 말도 아닌데, 일단 씻고 올까요?”

“동아리방부터 정리하고 씻자.”

이정우의 의견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 * *

청소와 정리, 샤워를 마치고 3층의 로커 룸으로 향했다.

로커에는 도복뿐 아니라 일상복도 들어 있었다.

예봉각 동아리원들이 운동을 마친 뒤에 갈아입을 여벌의 옷을 갖춰둔 상태였다.

설여원은 여자 이름이 적힌 로커를 열더니,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뭔가 귀중한 물건이라도 발견한 표정을 지었다.

“뭐라도 찾았어?”

설여원의 곁으로 다가가자, 그녀는 황급히 로커를 닫으며 나를 노려봤다.

뭐지?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나.

설여원은 헛기침을 하며 얘기했다.

“어허, 어딜 보려고.”

“아…… 미안.”

나도 모르게 사과부터 나왔다.

아무것도 못 봤는데 꾸중부터 들었다.

그러자 설여원의 뒤에 있던 전완수가 입을 열었다.

“방금 그거 생리대 아니야? 혜리랑 희연이도 주면 되겠네.”

설여원은 전완수의 말을 듣고 움찔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전완수의 옆에 있던 최현이 그의 뒤통수를 때리며 혀를 끌끌 찼다.

전완수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최현을 노려보며 구시렁거렸다.

“인마는 왜 나만 가지고 그래?”

“어휴, 눈치 없는 새끼.”

“필요한 사람 쓰라는 게 죄야?”

최현과 전완수가 또다시 옥신각신하자, 이정우는 해탈한 사람처럼 고개를 저었다.

보다 못한 설여원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입 다물어줄래? 둘 다 똑같거든?”

설여원의 말에 전완수와 최현은 투덜거리며 각자 필요한 물품을 챙기기 시작했다.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네가 잘했니, 내가 잘했니, 하며 싸운다.

난…… 괜히 멋쩍은 마음에 구레나룻을 긁적이며 남자 이름이 적힌 로커들을 살폈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던 로커라 그런지, 간편한 추리닝이 많았다.

팔뚝에 V 모양의 로고가 박힌 추리닝을 입고 뒤를 돌아보자, 다들 편의성이 좋은 추리닝을 입고 있었다.

뒤이어 구석에서 조용히 옷을 갈아입던 박재우와 황덕록도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이정우는 박재우와 황덕록의 모습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다들 옷 갈아입었으면 어서 올라가자. 저녁 먹어야지.”

이정우의 말에 너도나도 힘차게 대답하며 5층으로 향했다.

하지만 박재우와 황덕록은 눈치를 보며 쉽사리 걸음을 떼지 못했다.

이에 이정우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박재우와 황덕록의 곁으로 걸어갔다.

“아까는 민망한 모습 보여서 미안하다.”

“아, 아니에요. 오히려 저희가 감사하죠.”

“앞으로 잘해보자.”

이정우가 박재우와 황덕록의 어깨에 팔을 걸치자, 두 사람은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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