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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49화 (49/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49화

황덕록의 욕설에 박재우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궁상떨지 마. 여기 있는 사람 다 힘들어.”

박재우가 일행의 눈치를 보며 얘기하자, 황덕록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씨X, 아직 죽을 수 없어. 죽을 수 없다고…… 흐흑, 아직 연애도 못 해봤는데…… 내가 어떻게 죽어…….”

“…….”

황덕록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뒤이어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지더니, 황덕록의 신세 한탄이 이어졌다.

“크흑…… 죽을 때까지…… 솔로야. 흐흑…….”

구슬프게 우는 황덕록의 모습을 보고, 반사적으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미친놈인가?

이런 상황에 솔로라는 이유로 저토록 서글프게 우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당장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걸린 상황인데.

누구나 삶의 의미나 목표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연애 못 해서 천추의 한이 되었나?

박재우는 일행의 표정을 빠르게 훑더니,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미안합니다. 이 친구가 좀…… 마음이 여려요.”

“여자친구가 있으면 곧 죽어도 좋다는 거냐?”

전완수가 콧방귀를 뀌며 묻자, 황덕록은 서럽게 울며 고개를 끄덕였다.

웃으면 안 되는데, 어처구니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설여원은 고개를 저으며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었다.

이정우는 쓸데없이 사람이 좋아서, 그런 황덕록을 위로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현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도, 손가락을 접으며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도 각자의 성향은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난 이마를 짚으며 골머리를 앓았다.

박재우와 황덕록을 구출한 게 정말 옳은 판단일까.

이들이 미꾸라지가 되어 물을 흐릴지, 아니면 정체된 분위기를 환기하는 역할이 될지, 그건 지켜봐야 알 것 같다.

난 머릿속의 잡념을 떨쳐내며 일행에게 얘기했다.

“불편하더라도 몇 시간 뒤에 이동하자.”

반대를 표하는 사람은 없었다.

건물을 샅샅이 뒤져도 우리가 보이지 않았으니, 대장 좀비는 밖에서 대기하는 선택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초조한 만큼, 대장 좀비도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할 것이다.

우리가 빠져나갔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할 테니까.

* * *

그 뒤로 얼마나 지났을까.

이정우는 손목시계를 살피며 얘기했다.

“오후 1시야. 슬슬 움직이자.”

고개를 끄덕이자, 바닥에 앉아 있던 일행은 뻐근한 어깨와 목을 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충분히 휴식을 취한 것 같지만, 불편한 자세로 몇 시간을 앉아 있었다.

전신에 축적된 피로는 쉬이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난 양손을 쥐었다 펴며 악력을 확인한 뒤, 뒤에 있는 일행에게 얘기했다.

“완수랑 여원이는 사과대 정리하러 왔을 때 기억하지?”

다들 고개를 끄덕이기에, 안도하며 얘기했다.

“김희연이 안내했던 길로 이동할 거야. 나랑 여원이가 정면, 정우 형이랑 완수가 후방 살펴줘요.”

간략하게 대열을 정비하고, 일행의 표정을 살피며 탕비실 문을 열었다.

지하 1층은 여전히 자욱한 안개가 들어찬 상태였다.

좀비들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고, 코끝을 자극하는 역한 냄새만이 맴돌고 있었다.

우린 발소리를 죽인 채 일전에 사과대로 들어올 때 이용한 쪽문으로 향했다.

저 멀리, 쪽문 너머의 계단이 눈에 들어온다.

계단을 완전히 올라가지 않고, 계단 끝에서 고개만 빼꼼히 내민 채 주변을 살폈다.

희뿌연 안개만 가득할 뿐, 주변을 거니는 흐릿한 인영은 보이지 않았다.

설여원을 쳐다보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였다.

주변에 좀비가 없다는 뜻.

일행에게 따라오라는 손짓과 함께 등나무길로 향했다.

거리를 거닐던 좀비들이 깨끗하게 사라졌다.

대장 좀비가 전부 끌고 간 건가?

대장 좀비는 최대 몇 마리의 수하를 거느릴 수 있는 걸까.

명확한 숫자는 모르겠지만, 대장 좀비에게 들키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뼈저리게 느꼈다.

만약 사과대에서 놈들을 뿌리치지 못했다면…… 우린 이승의 존재가 아닐 것이다.

등나무길을 따라 이동하자, 오래 지나지 않아 은행나무 숲이 나타났다.

‘여기서 직진이었나?’

딱 한 번 와본 길이기에, 아직 숲길을 파악하지 못했다.

설여원을 쳐다보자, 그녀는 검지로 좌우를 번갈아 가리키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뒤이어 어느 한 지점을 가리키며 얘기했다.

“이쪽으로 쭉.”

“확실해?”

“사과대 정리하고 돌아올 때 김희연이 여기로 올라갔던 기억이 있어.”

설여원을 믿고 걸음을 옮겼다.

* * *

5분, 10분, 15분.

초행길이나 다름없기에, 길을 헤맬 수밖에 없었다.

설여원의 표정은 점점 굳기 시작했다.

결국 전완수와 내 의견까지 도합해서 간신히 길을 파악하고, 20분 만에 숲을 벗어날 수 있었다.

김희연과 함께 왔을 때는 7분 만에 돌파했는데, 길잡이의 빈자리는 컸다.

숲을 벗어나면 바로 학생회관 뒷문이 보여야 하는데, 우린 실습실로 향하는 샛길로 나왔다.

일전에 변종을 마주친 장소.

설여원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이렇게 작은 숲도 길 찾는 게 어렵네.”

“산에서 길 잃으면 죽는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야.”

이정우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내 등을 톡톡 치며 얘기했다.

“재형아, (구)학생회관도 확인하고 가자.”

“지금요?”

“대장 좀비가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잖아. 무전기 챙겨두는 게 좋겠어.”

그래, 한번 들어가면 쉬고 싶다는 생각에 눕게 되겠지.

칼을 뽑은 김에 무라도 썰자.

“다들 괜찮아?”

일행에게 묻자, 다들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샛길을 지나 곧장 (구)학생회관으로 향했다.

(구)학생회관의 우측 창문에 산악회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헌팅 나이프를 손에 쥐고 실내로 들어서자,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후방을 담당하던 이정우는 휴대폰으로 손전등 기능을 켜고, 가장 앞에 있는 내게 건네주었다.

손전등을 들고 구석구석을 비추는 찰나, 빛을 발견한 몇몇 좀비가 목젖을 갈며 달려들었다.

다급히 헌팅 나이프를 치켜들고 놈들의 안구에 찔러넣고, 뒤따라 달려드는 좀비는 옆에 있던 설여원이 처리했다.

숨어 있는 좀비가 있을지도 모르기에, 손전등으로 사방을 비추며 좀비의 유무를 살폈다.

크어어어어…….

계단에서 좀비들의 육성이 들려왔다.

“불 비춰.”

최현은 한 마디를 던지고 계단으로 걸음을 옮겼다.

양손으로 카타나를 쥐더니, 계단에서 올라온 좀비들을 일도양단 내기 시작했다.

머리와 몸통이 깔끔하게 잘려나가는 좀비들.

지형이 비좁아서 그런지, 아니면 좀비의 숫자가 적어서 그런지, 1분도 되지 않아 8마리의 좀비를 처리했다.

최현은 달려드는 좀비들을 모조리 처리한 뒤, 그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계단으로 올라오는 좀비가 더 있는지 없는지, 인기척을 확인하기 위해 청각을 곤두세운 것으로 보였다.

대장 좀비의 물량 공세에 기겁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소수의 좀비 앞에서는 강한 모습을 보였다.

계단에 남은 좀비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최현은 카타나를 칼집에 넣고 이곳을 돌아보며 얘기했다.

“끝.”

간결하지만 그 무엇보다 확실한 한 마디.

지체할 필요 없이 산악회 동아리방 앞으로 향했다.

쿵- 쿵…….

크르르르르…….

문 너머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소란을 듣고 동아리방 내부에 있던 좀비들이 반응하고 있었다.

울음소리로 보아 내부에 있는 좀비는 세 마리.

문고리를 손에 쥐며 일행에게 얘기했다.

“연다.”

일행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는 힘껏 방문을 열어젖히자,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을 긁고 있던 좀비들이 뒤로 나자빠졌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은은한 햇빛 덕분에 좀비들의 모습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세 마리 모두 바닥에 고꾸라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설여원과 전완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좌우의 좀비를 처리했다.

난 가장 앞에 있는 좀비에게 달려들어 성대와 안구에 헌팅 나이프를 내질렀다.

순식간에 좀비들을 처리한 뒤, 손전등으로 동아리방을 비췄다.

“어후…… 냄새.”

설여원은 콧잔등을 찌푸리며 몇 차례 코를 풀었다.

암모니아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이곳에 있던 세 마리의 좀비는…… 안개에 면역을 지닌 생존자였을 가능성이 높다.

복도를 거니는 좀비들로 인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으니, 동아리방에서 볼일을 해결한 모양이다.

식량을 구하기 위해 밖에 나갔다가 좀비들에게 물린 건가?

물리면 좀비로 변한다는 정보가 없기에, 감염자와 함께 동아리방으로 들어온 모양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금은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손전등으로 구석구석을 비추며 동아리방의 모든 서랍을 열었다.

이정우의 휴대폰을 내가 사용하고 있기에, 내가 동아리방을 확인하는 동안 이정우와 전완수, 최현은 바깥 상황을 살폈다.

“어? 찾았다!”

설여원의 목소리에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곳으로 쏠렸다.

설여원이 확인한 서랍에서 4개의 무전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 * *

벽돌보다 작고, 한 손에 잡히는 크기.

박재우는 무전기를 보고 두 눈을 빛내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얘기했다.

“어? 에이콤 무전기다.”

에…… 뭐?

그렇게 말해도 모른다.

내 눈엔 그냥 직사각형의 무전기일 뿐.

다들 나와 비슷한 생각인지, 어벙한 표정으로 박재우를 쳐다봤다.

난 박재우를 쳐다보며 물었다.

“기종까지 알아?”

“나도 모르지. 내가 전문가도 아니고.”

“방금 에이콤이라며.”

“나는 몰라도 로즈는 다르지.”

모든 전자기기를 통달한 로즈.

이게 로즈의 능력인가?

가만 생각해 보면 종합강의동에 설치한 덫도 일반인의 지식으로는 불가능한 게 많았다.

전부 로즈의 지식이었다.

난 무전기에 쌓인 먼지를 털며 박재우에게 물었다.

“이거 어떻게 쓰는지 알아?”

“아직은 떠오르는 게 없어. 만지작거리다 보면 로즈의 능력이 발현될 테니 걱정 마.”

그러자 옆에 있던 황덕록도 고개를 슬쩍 내밀며 얘기했다.

“나도, 나도 볼래.”

설여원이 무전기를 보여주자, 황덕록은 오, 하는 탄성과 함께 얘기했다.

“2000s 모델이네.”

황덕록의 입에서 나온 말에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너는 어떻게 알아? 너도 플레이어야?”

“아니 난…… 그냥 전자기기 좋아하는데.”

“아, 그래.”

황덕록은 무전기를 유심히 살피더니, 입맛을 다시며 얘기했다.

“이전 모델은 내가 써본 적이 있어. 지금 들고 있는 게 아마 최신 모델일걸.”

황덕록의 설명에 박재우도 서랍에 있는 무전기를 꺼내 들고 앞뒤로 살피며 입을 열었다.

“덕록아, 이거 업무용 아니냐?”

“업무용이지. 그거 4W일걸.”

“이런 걸 동아리에서 써도 돼? 4W면 신고하고 써야 되잖아. 법적으로 제한이 있을 건데.”

“산악 동아리니까 쓰는 거 아닐까? 산에서만 슬쩍 쓰면 누가 어떻게 알겠어. 전파 감시국 차량 돌아다녀 봐야 도시에서 쓰는 것만 잡히겠지.”

“애들 장난감 같은 무전기만 있을 줄 알았는데, 이 동아리 제대로네.”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난 헛기침을 하며 물었다.

“그렇게 좋은 거야?”

“대박이지. 이건 채널도 100개 넘을걸? 주파수대역은 400대일 거고, 어? 벨트 클립이랑 가죽 케이스도 있네.”

박재우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처럼 해맑게 웃었다.

황덕록도 옆에서 기웃거리며 장비를 만지작거리더니,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기계는 내 분야가 아니니 궁금한 것만 물어야겠다.

“수신 거리가 얼마나 돼? 최소한 600m는 나왔으면 좋겠는데.”

“600m? 장난해? 이건 최소 ㎞ 단위로 시작해야지.”

“그렇게 길어?”

“당연한 거 아니야? 이건 업무용이라니까?”

“……다룰 줄 아는 거지?”

“아까 말했잖아. 만지다 보면 금방 알게 될 거야.”

박재우는 이것저것 누르며 전원은 들어오는지, 작동은 제대로 되는지, 하나하나 살피는 모습을 보였다.

실험은 나중에 하고, 지금은 소리결 동아리방으로 돌아가는 게 먼저다.

정진영과 윤혜리, 김희연은 밤새도록 우리를 기다리며 밤잠을 설쳤을 것이다.

“재우랑 덕록이는 무전기랑 관련된 장비 챙기고, 우린 생존에 관련된 장비들 챙기자.”

일행에게 얘기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동아리방을 살피기 시작했다.

산악 동아리라서 그런지, 구급상자만 3개가 나왔다.

그 속에 붕대와 약품이 가득 들어 있었다.

무전기와 구급상자만 해도 흡족한 소득이지만, 클립과 밧줄, 정과 망치 등도 챙길 수 있었다.

필요한 물품을 모두 챙긴 뒤, 서둘러 동아리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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