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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47화 (47/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47화

음대 쪽을 바라보는 모습.

재빨리 좀비의 관자놀이에 헌팅 나이프를 찔러넣은 뒤, 놈이 바라보던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좀비들의 인영은 보이지 않았다.

뒤따라온 설여원은 쓰러진 좀비를 보고 당황하며 얘기했다.

“미, 미안. 못 봤어.”

“엎드려 있어서 안 보였을 거야.”

난 음대 방향을 응시하며 설여원에게 물었다.

“저쪽에 보이는 거 있어?”

설여원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내가 가리키는 방향을 응시했다.

“한…… 70m 앞에 좀비 하나가 어슬렁거리고 있어.”

70m면 충분히 안전한 거리.

하지만 안도감이 들기는커녕, 머릿속의 경종은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쌓인 감각이, 내게 위험하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이 좀비는 왜 바닥에 엎드려 있었던 거지?

왜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은 거지?

울지도 않고, 달려들지도 않았다.

뭔가 이상하잖아.

마치 명령을 기다리는 것처럼, 놈은 인간의 체취를 맡고도 움직이지 않았다.

기묘한 침묵에 오감이 곤두섰다.

불안한 마음에 일행을 돌아보며 물었다.

“다들 오는 길에 이상한 거 못 느꼈…….”

크어어어어어어어!!

그 순간, 천지를 울리는 좀비의 포효가 고막을 강타했다.

놀란 나머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헌팅 나이프를 말아쥐었다.

자욱한 안개를 제외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세상.

좀비가 포효를 내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으로 접근하는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어디야, 방향이 어디야.”

뒤에 있던 최현이 두 눈을 껌벅이며 물었다.

이는 전완수도 마찬가지였고, 설여원도 방어 자세를 취하며 다소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박재우와 황덕록, 이정우도 뇌리에 박힌 쩌렁쩌렁한 포효에 위압감을 느낀 것으로 보였다.

대놓고 지르는 포효는 방향감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가뜩이나 중앙 광장의 특성상 소리가 울리는데, 자욱한 안개로 인해 소리가 굴절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며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똘똘 뭉쳐 있던 무더기의 좀비들이 사라졌다.

기숙사에 있던 대장 좀비가 밤새 종합강의동을 다녀갔다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였다.

수하로 받아들이고, 본인의 꼭두각시로 사용하면 되니까.

종합강의동 앞에 있던 두 마리의 좀비, 먼발치서 들려온 좀비의 울음소리, 그리고 조금 전에 처리한 좀비까지.

‘정찰병?’

상명하복 관계라면 설명이 가능하다.

교내에 남은 대장 좀비 조성훈.

안 좋은 예감은 왜 빗나가는 법이 없을까.

장대비가 그친 지난밤, 조성훈이 김민형의 발자취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다.

대장 좀비는 수하들의 위치도 파악할 수 있는 건가?

조금 전 들려온 포효는 굉장히 먼 거리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좀비의 청각이 작용하는 범위를 훨씬 넘어선 거리.

엎드려 있던 좀비가 공명한 것도 아닌데, 대장 좀비는 우리의 존재를 알아챘다.

이는 대장 좀비가 수하들의 위치를 파악하는 능력이 있다는 말이 된다.

자체적인 GPS 기능.

식물들이 교감하는 것처럼, 대장 좀비와 수하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대장 좀비가 우리의 위치를 찾기 위해 사방에 정찰병을 뿌려둔 것 같으니, 놈이 도달하기 전에 이동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가까운 도서관은 수비에 적합하지 않고, 종합강의동은 수비에 유리하지만 퇴로가 없다.

중앙 광장과 맞닿은 건물 중에 수비와 회피에 탁월한 건물이라면…….

생각을 정리하고 일행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교양관으로 간다.”

“교양관?”

전완수는 눈꼬리를 치켜뜨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반면에 설여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발 앞서 교양관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대장 좀비의 본대가 언제 도착할지 모른다.

학생회관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야 하고, 놈들의 시선을 유도할 수 있는 장소.

교양관은 모든 교양 수업이 이루어지는 건물이기에 수많은 강의실과 각종 휴게공간, 테라스, 매점 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구조를 잘만 이용한다면 다수의 좀비가 밀려들어도 빠져나갈 구멍이 많았다.

설여원을 따라 다급히 중앙 광장을 가로질렀다.

100m 정도 쉴 새 없이 뛰었을까?

서서히 교양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두두두-

동시에 오감을 자극하는 다수의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우측 45도 방향.

음대 쪽에서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

확실해졌다.

좀비들이 일제히 이곳으로 달려온다는 건, 대장 좀비가 수하들의 위치까지 인지할 수 있다는 방증이나 다름없었다.

설여원은 소리의 근원지로 시선을 돌리더니, 곧 얼빠진 표정을 지으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너, 너무 많아.”

음대에서 중앙 광장까지 전속력으로 달리면 1분도 안 되는 거리.

내부를 살필 새도 없이 교양관으로 몸을 날렸다.

* * *

너나 할 것 없이 넘어지듯 교양관으로 들어섰다.

다급히 정문을 걸어 잠그고, 내부의 모습을 살폈다.

좀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자욱한 안개와 티끌 먼지만이 가득했다.

두두두두두두두!!

크어어어어어어!!!

유리문 너머로 들려오는 좀비들의 포효.

숨죽인 채 유리문 너머의 상황을 살피자, 수많은 인영이 게걸스럽게 내달리며 중앙 광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저토록 많은 좀비가 교내에 남아 있었다니.

뒤이어 무수히 많은 좀비들이 지나간 자리로, 허전한 걸음으로 나아가는 인영을 발견할 수 있었다.

태연한 걸음걸이.

다른 좀비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게 아니라, 홀로 고귀한 듯이 나아가는 걸음.

‘저놈이다.’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저놈이 대장이라는 것을.

크르르르르르…….

광장으로 향하던 놈은 갑자기 우뚝 멈춰서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난 재빨리 벽 뒤로 몸을 숨기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안개 속에 우리의 체취가 남아 있는 건가?

슬쩍 고개를 내밀어 바깥 상황을 살피자, 이곳을 뚫어지게 응시하는 붉게 충혈된 안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황급히 고개를 틀어 일행의 얼굴을 쳐다봤다.

다들 긴장한 모습이었다.

설여원은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숨까지 참는 것으로 보였다.

카타나를 쥐고 있는 전완수와 최현의 손이 잔잔하게 떨리고, 박재우와 황덕록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 양손으로 귀를 막고 있었다.

이정우는 퇴로를 찾기 위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이대로 시간을 지체해 봐야 좋을 게 없는데, 지금 계단으로 향했다가는 대장 좀비의 시야에 발각될 것이다.

하필이면 교양관 정문에서 계단의 위치가 보이는 구조라서, 지금은 숨죽인 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터벅- 터벅-

문 너머 지옥에서 대장 좀비의 발소리가 들려온다.

터벅.

기다란 인영을 늘어뜨리며, 이곳으로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쿵-

유리문에 이마를 갖다 대고 내부를 살피는 대장 좀비.

우린 벽면에 밀착한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크르르르르…….

귓가를 간질이는 탁음에 목덜미가 서늘해진다.

덜컹- 덜컹덜컹-

놈은 유리문 손잡이를 쥐고 앞뒤로 흔들기 시작했다.

평범한 좀비에게 존재할 수 없는 행동.

지능이 존재하기에, 본인의 앞을 가로막은 게 ‘문’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유리문을 부수고 들어오면 어떡하지?

크어어어어어!!

그 순간, 광장 쪽에서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교양관을 살피던 대장 좀비는 부하들의 울음을 듣고 문고리에서 손을 내려놓았다.

터벅- 터벅-

서서히 멀어지는 발소리.

이윽고 발소리가 들리지 않자, 모든 일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 또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심장을 부여잡았다.

“간 거야?”

반대편에 있던 전완수가 내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안개 속에서 시야 확보가 가능한 건 본인이면서, 차마 유리문 너머로 고개를 내밀지 못하고 내게 묻는다.

나도 사람인지라, 지금은 바깥을 살피는 게 무서웠다.

불안한 마음을 떨쳐내기 위해 심호흡과 함께 얘기했다.

“혹시 모르니 밖이 조용해지면 움직이자.”

설여원과 이정우는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그 자리에 주저앉는 모습을 보였다.

전완수와 최현만이 계속해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1분, 2분, 3분.

밖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기에, 쉬고 있는 일행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슬슬 움직이자.”

“어디로 가?”

“일단 교양관 옥상으로 올라가서 정오가 될 때까지 기다리자.”

“정오가 되면 뭐가 달라져?”

“해가 뜨면 지금보다 시야가 트일 거야. 아니면 비가 다시 내릴지도 모르고.”

새벽 어스름이 가시지 않은 건지, 하늘에 잔뜩 낀 먹구름 때문인지, 세상은 울적한 회색빛에 잠식되어 있었다.

전완수의 옆에 있던 최현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주야장천 내리던 비는 왜 갑자기 그치고 지랄이야.”

“투덜거린다고 달리는 건 없어. 일단 옥상으로 이동하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수긍하는 모습을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현은 훅, 하고 숨을 뱉으며 가장 먼저 계단으로 걸음을 옮겼다.

타다다다다닥!

최현이 계단을 향해 나아가는 찰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쿵!!

유리문을 가격하는 울림에 전신의 털끝이 곤두섰다.

순식간에 실내의 공기가 진공상태에 놓인 듯, 머릿속이 멍해지고 이마 위로 식은땀이 맺혔다.

마른침을 삼키며 뒤를 돌아보자, 유리문에 바짝 붙어 실내를 살피는 좀비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반달 모양으로 휜 눈웃음.

히죽거리며 우리의 표정을 눈여겨보는 좀비.

뒤이어 좀비의 입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까꿍.”

* * *

‘설마…….’

대장 좀비는 광장으로 이동한 게 아니었다.

처음부터 이곳에 생존자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독 안에 든 쥐를 가지고 놀듯이, 우리가 긴장을 풀 때까지 안개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생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 것 같다.

“이 개새끼가…….”

빠드득 이를 갈며 읊조리자, 녀석은 한걸음 물러서며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켰다.

크어어어어어어어어!!!

두두두두두두두두-

대장 좀비의 포효와 함께 바깥에서 들려오는 다수의 발소리.

풀어졌던 긴장감이 전신을 옥죄어오고, 흐려졌던 경종이 다시금 뇌리에 울려 퍼졌다.

죽음의 그림자는 우리의 발목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뛰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치자, 넋을 잃고 있던 일행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을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쾅!! 콰광! 챙그랑!

유리문은 잠시도 버티지 못하고 산산이 조각나 버렸다.

동시에 거대한 쓰나미처럼 좀비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앞서 올라가던 최현은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어떡해! 계속 올라가?”

“올라가야지 어떡해!”

“옥상에 갇히면 나가지도 못하잖아!”

옥신각신하는 최현과 전완수.

옥상에 화재 시 대피하기 위해 설치된 사다리가 있지만, 좀비들의 숫자가 저리 많다면 오도 가도 못 하는 상황이 될 것이다.

묘수가 필요하다.

임기응변이 필요한 순간, 머릿속으로 번뜩이는 방안이 떠올랐다.

난 황급히 상의를 벗으며 얘기했다.

“남자들 상의 탈의.”

“뭐?”

“상의 탈의!”

가장 먼저 상의를 탈의하고, 3층 복도를 내달리며 빈 강의실에 집어 던졌다.

크어어어어어어!!

건물을 울리는 쩌렁쩌렁한 울음소리.

늦장 부릴 여유가 없다.

일행은 망설임 없이 상의를 탈의하며 복도를 내달렸다.

각자 좌우로 보이는 강의실에 상의를 벗어 던지고, 내 뒤를 따랐다.

난 3층 복도 끝에 다다른 뒤, 뒷문으로 통하는 계단을 쳐다보며 청각을 곤두세웠다.

‘아직이야.’

좀비들의 발소리가 2층 반대편 복도 끝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좀비들이 정문으로 쏟아져 들어왔으니, 뒷문으로 향하는 계단은 아직 안전할 것이다.

내 곁으로 다가온 일행은 초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뭐해? 안 가?”

“기다려. 좀비들이 3층으로 올라오면 내려간다.”

“내려간다고?”

“좀비들이 3층까지 올라오면 그때 내려가야 돼.”

다들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바로 뒤에서 좀비들이 쫓아오는데, 태연하게 행동하는 내 모습에 당황한 것으로 보였다.

아무리 급해도 성급하게 움직여선 안 된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뒤이어 설여원도 상의를 탈의하더니, 4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향해 집어 던졌다.

남자들은 기겁하며 고개를 돌렸다.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 남자들은 설여원의 탈의에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행히 설여원은 티셔츠 속에 민소매 티를 입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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