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44화
학생회관 뒷문으로 나서자마자 도서관 뒷문으로 향했다.
출입구 게이트의 앞으로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크르르르르…….
난 이정우의 어깨를 잡으며 속삭이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안개가 짙어서 저희가 먼저 들어가는 건 위험해요.”
“그럼 어떡해.”
“이쪽으로 불러내야죠. 앞에 출입 게이트가 있으니, 좀비들도 양껏 밀어붙이진 못할 거예요. 각자 게이트 하나씩 담당하죠.”
도서관 뒷문에는 학생증을 찍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게이트가 존재했다.
지하철에 설치된 개찰구와 비슷한 형태.
총 5개의 게이트.
일전에 도서관으로 좀비들을 유인할 때, 게이트 덕분에 좀비들의 압박을 잠시나마 저지할 수 있었다.
뒤에 있는 일행을 쳐다보자, 다들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차례 심호흡과 함께 게이트 앞으로 달려가자, 냄새를 맡은 좀비들은 목젖을 갈기 시작했다.
카학! 카하악!!
난 자세를 낮춘 채 칼자루를 고쳐 쥐며 게이트의 측면을 연달아 타격했다.
쾅! 쾅! 쾅!
크어어어어어!!
도서관 1층에 있던 좀비들이 일제히 목젖을 갈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안개 때문에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지만, 흐릿하게나마 들어오는 인영은 대략 열댓 마리.
두 눈을 홉뜨며 코앞으로 접근한 좀비를 향해 헌팅 나이프를 내질렀다.
푹!
턱밑을 뚫고 들어간 헌팅 나이프는 좀비의 뇌수를 헤집고, 뒤따라 달려온 좀비들은 게이트에 껴서 서로 버둥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모든 좀비가 이성을 지닌 건 아니고, 모든 좀비가 사고기능을 지닌 것도 아니다.
이성과 사고기능을 지닌 소수의 좀비들만 조심한다면, 승기는 우리에게 있다.
우측의 일행을 곁눈질로 살피자, 다들 침착하게 좀비의 안구에 칼날을 찔러넣는 모습을 보였다.
숙련된 조교가 좀비를 어떻게 죽이는지 가르치는 것처럼, 다들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일사불란하게 열댓 마리의 좀비를 처리하고, 청각을 곤두세운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건물 내부에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고, 오직 빗소리만이 귓가를 간질였다.
도서관에 들어찼던 수십 마리의 좀비도 사흘 전에 학생회관을 공격했으니, 대부분이 드론을 따라 미대로 이동한 것으로 보였다.
2층까지 확인할 필요 없기에, 발소리를 죽인 채 게이트 너머로 들어섰다.
도서관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우측으로 보이는 컴퓨터실은 굳게 닫혀 있었고, 2층과 지하로 통하는 계단은 개미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광장까지 직진한다.”
앞에서 이정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끄덕이며 뒤에 있는 일행을 살피자, 다들 노련한 사냥꾼처럼 사주 경계하며 따라오는 모습을 보였다.
발소리를 죽인 채 도서관 정문으로 향하자, 자욱한 안개와 쏟아지는 장대비로 인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아직 오후 5시밖에 되지 않았지만, 세상은 한밤중인 것처럼 어두웠다.
내 앞에 펼쳐진 암막이 먹구름인지 안개인지, 눈을 감고 있는지 뜨고 있는지, 오감이 마비되는 기분이었다.
설여원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허탈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래서는 어디가 종합강의동인지도 모르겠는데?”
이정우는 눈살을 찌푸린 채 을씨년스러운 세상을 바라보더니, 전완수를 쳐다보며 물었다.
“완수야, 종합강의동 보여?”
“어디가 종합강의동이에요?”
“여기서 북동쪽 방향, 대략 300m 거리.”
“……아무것도 안 보여요. 비가 너무 많이 옵니다.”
전완수도 길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난 자욱한 운무가 내려앉은 세상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도서관 외벽을 따라서 이동하죠. 벽 짚고 이동하는 게 제일 안전해요.”
“우측 벽 끝에 뭐가 있지?”
“흡연 부스랑 소나무길이 있어요. 흡연 부스만 지나면 종합강의동이 보일 거예요.”
간략하게 지형을 설명하자, 이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행에게 얘기했다.
“다들 재형이 얘기 들었지?”
일행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정우는 긴장감을 떨쳐내기 위해 어깨를 털며 얘기했다.
“가자.”
이정우가 앞장서서 장대비 속으로 들어가고, 우린 뒤처지지 않도록 그의 뒤에 바짝 붙었다.
쏟아지는 장대비로 인해 몸은 금세 무거워졌고, 양팔과 종아리에 감아둔 1.5㎝ 두께의 책까지 흐물흐물하게 변했다.
테이프로 겉면을 감아두었지만, 옷이 젖으니 팔에 감아둔 책은 안에서부터 눅눅하게 변해갔다.
‘위험한데.’
책이 덜렁거리니 테이프까지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만약 좀비가 팔뚝을 깨문다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빗소리가 워낙에 커서, 의사소통도 쉽지 않았다.
앞서가던 이정우는 왼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두 눈을 껌벅이더니, 정면을 응시하며 전완수에게 물었다.
“완수야!”
“네, 형!”
“저거 흡연 부스야?”
장대비 소리가 얼마나 큰지, 큰 소리로 얘기하지 않으면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전완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이정우가 가리키는 방면을 주시했다.
난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전완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테두리 같은 건 보이는데, 뭔지 모르겠어요!”
“흡연 부스처럼 생겼어?”
“모르겠습니다!”
이 정도 걸었으면 흡연 부스가 슬슬 보여야 한다.
하지만 1m도 안 되는 시계에 흡연 부스를 확인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정우는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계속해서 나아갔다.
장대비로 인해 온몸은 축축하게 젖었고, 어깨를 짓누르는 압박감마저 느껴졌다.
완전히 젖은 바지는 모래주머니라도 단 것처럼 무거웠고, 휘몰아치는 바람은 눈을 뜨는 것조차 버겁게 만들었다.
장마전선이 많이 늦는 것 같더니, 태풍이나 다름없었다.
비바람은 귀곡성이 되어 몰아치고, 설여원은 바람에 흔들려 기우뚱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전완수는 까드득 이를 갈며 지금의 심정을 토로했다.
“젠장맞을 날씨네.”
앞서가던 이정우가 걸음을 멈추고, 뒤따라가던 일행은 주춤거리며 그의 등을 쳐다봤다.
이정우는 몇 차례고 눈을 비비며 정면을 응시하더니, 내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저거 흡연 부스 아닌 거 같은데?”
이정우가 가리키는 방향을 응시하자, 반듯한 정사각형의 부스가 아닌 찌그러진 무언가처럼 보였다.
뭐지?
뭔가 커다란 덩어리처럼 보이는데…… 쓰레기더미인가?
이런 건 전완수나 설여원이 확인…….
그 순간, 설여원이 이정우와 내 팔을 잡아끌며 도서관 외벽으로 붙었다.
“왜?”
놀란 눈으로 설여원을 쳐다보자, 그녀는 안경에 묻은 물기를 닦으며 얘기했다.
“저거 흡연 부스 아니야.”
“……그럼 뭔데.”
“좀비들 뭉쳐 있는 거야.”
설여원의 말에 반사적으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이런 악천후 속에서 좀비들까지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다.
전완수는 고개를 슬쩍 내밀어 좀비 무리를 쳐다보더니,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눈꼬리를 치켜뜨며 물었다.
“저게 좀비라고? 좀비들이 저런 곳에 왜 뭉쳐 있어.”
“나도 모르지. 하지만…… 분명 뭔가가 꿈틀거렸어.”
“너 안경에 물 묻어서 잘 못 본 거 아니야?”
전완수가 의구심을 품자, 설여원은 눈살을 찌푸리며 얘기했다.
“그럼 직접 가서 확인하든가.”
설여원에게 좀비들과의 거리를 묻자, 대략 20m 정도 된다고 했다.
고작 20m 거린데, 가브리엘의 능력을 전수받은 전완수와 설여원도 육안으로 분간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전완수의 말대로 세차게 휘몰아치는 비바람 때문에 쓰레기더미가 바람에 날린 건지도 모른다.
잠깐, 바람에 날려?
사람도 휘청거릴 정도로 불어오는 바람에 쓰레기더미가 날아가지 않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좀비들은 걷는 자세부터 좋지 않았다.
흐느적거리거나, 기우뚱거리거나, 고개를 똑바로 들지 않아서 무게중심이 흐트러져 있었다.
자극을 받아서 먹잇감을 향해 달려들 때만 전력으로 뛰는 놈들.
그런 놈들이 비바람을 이겨내고 정처 없이 거리를 거니는 게 가능할까?
흡연 부스의 맞은편, 소나무숲 너머는 바람길이다.
반대편에서 부는 바람과 지금 우리의 등을 떠미는 중앙 광장의 바람.
그렇다면…… 저긴 각기 다른 방향에서 날아든 바람이 서로 얽히고설키는 장소인 것이다.
담배 냄새가 다른 건물로 날아가지 못하도록, 일부러 저곳을 흡연 부스로 만든 것이다.
‘다 이유가 있구나.’
좀비들이 저곳에 뭉쳐 있는 이유.
지능이 떨어지는 평범한 좀비들은 바람을 따라 한데 뭉치는 낙엽처럼 저곳에 뭉친 것이다.
내가 생각한 가설을 일행에게 들려주자, 다들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정우는 코를 훌쩍이며 내게 물었다.
“그럼 어떡해. 대각선으로 움직일까?”
“네, 대각선으로 움직이는 게 안전해요.”
“바람이 좀비들 쪽으로 불잖아. 우리 냄새를 맡고 달려들면?”
“이런 악천후에 체취를 맡는 건 불가능합니다.”
“비가 오면 좀비들도 진화하잖아. 정보가 틀릴 수도 있어.”
그래,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처음의 계획과 달리, 중앙 광장을 가로질러 이동하기로 했다.
비바람을 뚫고 종합강의동을 향해 대각선으로 나아갔다.
회색빛 운무에 가려진 세상.
아까는 외벽이라도 짚으며 나아갔지만, 대각선으로 길을 뚫으려니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다.
망망대해에서 폭풍우를 만나 조난당한 기분이었다.
의지할 엄폐물 하나 없이, 서로를 의지하며 길을 뚫었다.
* * *
제대로 나아가고 있는 게 맞나?
스스로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러한 근심 걱정은 120m가량 이동한 뒤에 말끔히 사라졌다.
서서히 눈앞으로 드리우는 거대한 건물 형체에 안도감이 들었다.
제대로 찾아왔다.
이정우도 안도감이 들었는지, 재빨리 처마 밑으로 달려갔다.
머리에 묻은 물기를 털며 우리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했다.
이정우를 따라 처마 밑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이정우의 좌측에서 날아드는 검은 인영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깝다.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다급히 이정우의 곁으로 향했지만, 검은 인영이 이정우를 덮치는 게 한발 빨랐다.
난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놈의 정수리에 헌팅 나이프를 박아넣고, 바닥에 쓰러진 이정우의 상태를 살폈다.
“형 괜찮아요? 안 물렸어요?”
“윽…….”
이정우는 오른팔을 부여잡은 채 미간을 찌푸렸다.
물린 건가?
설마 하는 마음에 조심스레 이정우의 오른팔을 살피자, 테이프와 1.5㎝ 두께의 책이 떨어져 나간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물린 자국을 확인하기 위해 이정우의 옷소매를 걷어 올리자, 천만다행으로 핏자국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 눅눅하게 젖은 테이프와 책이었지만, 일격을 막아주었다.
“하…….”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앉자, 이정우는 오른팔을 휙휙 돌리며 생채기가 없는지 살폈다.
한발 늦게 들어온 설여원과 전완수, 최현은 주변을 경계하며 이정우의 모습을 흘깃 살폈다.
설여원은 이정우와 내 팔을 잡아끌며 얘기했다.
“빨리 일어나요. 건물로 들어가서 확인해요.”
설여원은 종합강의동 1층의 모습을 눈어림으로 살피더니,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좀비들이 전부 흡연 부스에 몰려 있는 건 아닌 것 같네.”
“왜.”
“저쪽 끝에 7마리.”
“위층에는.”
“안 보여.”
설여원의 말에 칼자루로 지면을 찍으며 좀비들의 청각을 자극했다.
크르르르…… 크어어어어!
그러자 복도 반대편에 있던 좀비들이 일제히 목젖을 갈며 이곳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좀비들의 발소리가 거리를 말해준다.
‘10m, 7m, 5m.’
머릿속으로 좀비들의 거리를 가늠하며 헌팅 나이프를 말아쥐었다.
마침내 3m 앞까지 다다르자, 그제야 흐릿한 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설여원의 말대로 정확히 7마리.
이정우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일제히 좀비들에게 난도질을 가했다.
순식간에 좀비들을 처리하고, 얼굴에 묻은 혈흔을 닦으며 설여원에게 물었다.
“소리가 울리는 거 같은데?”
“건물의 중앙이 뚫려 있어. 1층에서 7층까지 훤히 보이는 구조야.”
“계단은 어디 있어.”
설여원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뒤이어 어느 한 점을 가리키며 얘기했다.
“저기.”
내 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학교의 중심에 지어진 종합강의동은 교내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다.
설여원과 전완수는 서로 시선을 교환하더니, 우리에게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안개 속으로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