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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43화 (43/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43화

쏴아아아아-!

눈을 뜨기도 버거운 장대비였다.

바람은 어찌나 많이 부는지, 귀곡성과 함께 바람이 휘몰아칠 때면 상체가 기우뚱거릴 정도였다.

왼손으로 이마 위에 챙을 만들고, 오른손에 쥔 헌팅 나이프로 외벽을 짚으로 조심스레 나아갔다.

45도 아래로 고개를 숙인 채 천천히 나아가는 찰나.

훙-

쾅!

순식간에 새까만 인영이 나타나더니, 쏜살같이 내 앞을 지나 외벽에 머리를 들이받았다.

놀란 나머지 반사적으로 움찔거리고 말았다.

뒤따라오던 전완수와 최현도 소리를 들었는지, 재빨리 양손으로 카타나를 쥐며 내 옆으로 붙었다.

크…… 크어어…….

외벽에 머리를 박은 좀비가 목젖을 갈자, 전완수와 최현은 놈의 머리를 날려버리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난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동기들의 옷자락을 잡았다.

그러자 두 사람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난 마른침을 삼키며 동기들에게 얘기했다.

“공격하지 마. 기다려.”

그러자 전완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저거 좀비야 인마!”

“기다려.”

난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좀비의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크어어…… 카학……!

양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버둥거리는 녀석.

아무리 봐도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먹잇감인 인간이 앞에 있는데, 그걸 무시하고 벽에 머리를 박아?

아무리 생각해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면 충분히 우리의 위치를 파악했을 텐데?

좀비는 양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계속해서 고통에 몸서리치더니, 기이하게 머리를 비틀며 이곳을 돌아봤다.

전완수와 최현은 긴장된 모습으로 칼자루를 고쳐 쥐었다.

“언제까지 지켜볼 거야!”

최현의 물음에 난 옷소매로 얼굴을 닦으며 좀비의 모습을 가만히 응시했다.

최현은 인상을 찌푸린 채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최현도 이상하다는 걸 느낀 모양이다.

바로 앞에 살아 있는 인간이 있는데, 좀비가 선공을 취하지 않는 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뒤이어 머리를 쥐어뜯던 좀비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우리의 모습을 번갈아 쳐다봤다.

좀비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감정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눈이 왜 저래.’

좀비라 하면 도끼눈을 뜨고 우리를 씹고 뜯고 맛보기 위해 혈안이 되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녀석은…… 슬퍼 보였다.

이마에서 피를 흘리는 와중에도, 양팔을 축 늘어뜨린 채 가만히 우리를 응시했다.

뒤이어 좀비는…… 최현의 카타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니, 손목을 틀어 본인의 머리를 가리켰다.

전완수와 최현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내 얼굴을 쳐다봤다.

나도 당황한 나머지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지금…… 본인을 죽여달라는 건가?

“대장 좀비야.”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리자, 뒤에 있던 전완수가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뭐? 대장 좀비?”

“통각이 살아 있는 좀비는 대장 좀비뿐이야.”

“뭐?”

전완수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대뜸 카타나를 치켜들며 당장에라도 대장 좀비의 목을 도려낼 것 같았다.

다급히 전완수의 팔을 잡으며 진정시키자,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외쳤다.

“미쳤어? 저 새끼가 수하들 데려오면 어쩌려고 그래!”

“기다려. 나 믿고 잠시만 기다려.”

전완수를 진정시키며 대장 좀비의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태연한 눈으로 내 얼굴을 직시하는 대장 좀비.

난 퍼석한 입술을 핥으며 물었다.

“지금…… 내 말 들립니까?”

크어어어…….

좀비는 고장 난 기계처럼 삐거덕거렸다.

몇 차례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이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지능이 존재한다.

“혹시, 저희더러 죽여달라는 거예요?”

끄덕.

죽음을 원하는 대장 좀비.

“기숙사에서 왔습니까?”

“빨리…… 죽여…….”

순간, 대장 좀비의 입에서 나온 말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언어를 알아들을 뿐만 아니라, 말도 할 줄 안다.

라스트아크를 플레이할 때는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었다.

이에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레 물었다.

“말을 할 줄 알아?”

“…….”

“그럼 죽으려는 이유부터 들어보자고.”

“죽이라고!”

대장 좀비는 대뜸 언성을 높이며 목젖을 갈았다.

이에 뒤에 있던 전완수와 최현은 카타나를 쥐고 내 곁으로 붙었다.

이놈에게 최대한 많은 정보를 알아내야 한다.

그러니 자극하지 말고,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

난 심호흡과 함께 입을 열었다.

“우리에게 협조하면 원하는 대로 죽여줄게.”

“…….”

대장 좀비는 대답 대신 관자놀이를 누르며 상체를 흔들었다.

두통에 시달리는 모습.

이성을 지닌 대장 좀비가 죽음을 선택하려는 이유가 뭘까.

좀비의 본능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기에, 차분하게 대화를 시도했다.

“이름이 뭐야.”

놈은 이를 갈며 양손으로 머리를 쥐어뜯더니, 그 자리에 쓰러지며 전신을 파르르 떨었다.

단순히 통각으로 인한 고통이 아닌 것 같았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언제든 공격할 수 있도록 자세를 잡았다.

뒤이어 대장 좀비는 힘겹게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

“김…… 민형.”

“김민형, 기숙사에서 온 거야?”

“…….”

“네 자의로 죽으려는 거야?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으면 얘기해. 좀비의 본능이라거나. 혹은 대장 좀비도 퀘스트 같은 게 있어?”

대장 좀비가 지니는 특별한 능력이나 특성, 조건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 세상은 라스트아크의 설정을 따르지만, 모든 것이 같은 건 아니니까.

심지어 대장 좀비가 말도 할 줄 아는 것으로 보아,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존재할지도 모른다.

김민형은 손톱을 물어뜯으며 읊조렸다.

“나한텐…… 시간이…… 없어.”

“시간? 무슨 시간.”

“나도…… 곧…… 변해. 혁진이…… 처럼.”

“혁진? 그 친구는 어떻게 됐는데.”

“변종…….”

대장 좀비가 인간의 뇌를 섭취하지 않으면 변종으로 변하는 건 나도 알고 있다.

즉, 혁진이란 녀석도 대장 좀비가 됐고, 이후에 변종으로 변이됐다는 건가?

종합강의동에 있던 남자들은 변종이 미대 쪽에서 왔다고 했다.

미대는 기숙사와 붙어 있기에, 기숙사에 있던 대장 좀비 중 하나가 변종이 됐다고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플라워디자인과 건물에서 설여원이 했던 얘기도 납득이 된다.

난 두 마리의 대장 좀비를 봤지만, 설여원은 분명 세 마리를 봤다고 했다.

한 놈은 변종이 됐고, 다른 하나는 내 앞에 있다.

변종은 나흘 전에 처리했으니 생각할 필요 없고, 아직 발견되지 않은 대장 좀비는 하나.

난 김민형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

낯설면서도, 한편으로는 낯익은 얼굴이었다.

“너, 몇 주 전에 기숙사에서 다른 대장 좀비랑 말다툼하지 않았어?”

“조…… 성훈.”

“기숙사에 있는 다른 대장 좀비 이름이 조성훈이야?”

“네가…… 그걸…… 어떻게…… 알지?”

“나도 기숙사에서 왔으니까. 둘이 말다툼하는 거 봤거든. 조성훈이란 놈은 어디 있어.”

“매점에서…… 도망쳤다는 놈이…… 넌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자, 김민형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도망친 놈이…… 플레이어라고…… 들었어.”

“…….”

“너도…… 조심해. 우리처럼…… 되지 말고.”

우리처럼 되지 말라고?

설마, 이놈도 플레이어였나?

“잠깐, 당신 혹시 플레이어였어?”

김민형은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로즈.”

애타게 찾아도 보이지 않던 로즈가 여기 있었다.

멍하니 김민형을 쳐다보자, 그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성훈이…… 조심해. 걔는…… 인간을…… 증오해.”

“넌 인간의 뇌를 섭취하기 싫어서 자결하겠다는 거냐?”

“나도…… 한 번…… 섭취했어. 더는…… 그런 짓…… 하고 싶지…… 않아.”

“한 번만 섭취하고 끝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섭취하지 않으면 변종이 되는 거야?”

“대장 좀비가…… 말을 한다는 건…… 뇌를…… 섭취했다는…… 거야.”

김민형의 얘기를 듣고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재차 물었다.

“대장 좀비로 변한 네 친구들. 조성훈이랑 혁진이도 플레이어였어?”

김민형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있던 전완수와 최현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김민형의 말이 사실이라면, 플레이어가 좀비에게 물리면 대장 좀비로 변한다는 건가?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해 모인 이들이, 좀비에게 물리는 순간 반대편에 서는 것이다.

대장 좀비가 되는 조건이 플레이어라니.

이건 듣도 보도 못했다.

김민형은 까드득 이를 갈며 바닥에 주저앉더니, 입술을 파르르 떨며 얘기했다.

“빨리…… 죽여줘. 나도…… 변이…… 시작…….”

김민형은 말끝을 흐리더니,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뚝- 뚜둑- 떡- 떠걱-!

뒤이어 김민형의 등에서 척추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깻죽지도 기이하게 꺾이더니, 팔다리가 축 늘어지기 시작했다.

뼛조각이 새롭게 맞춰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헌팅 나이프를 휘둘렀다.

뜨득!

헌팅 나이프는 김민형의 경추를 뚫었지만, 차마 성대까지 뚫지 못했다.

표피가 악어가죽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질긴 고기를 썰 듯이, 연달아 헌팅 나이프를 휘둘렀다.

힘으로 머리와 상체를 분리시키자, 김민형의 머리는 쏟아지는 장대비와 함께 차디찬 아스팔트 위로 떨어졌다.

붉게 충혈되어 있던 안구에서 서서히 초점이 흐려지고, 바닥에 고인 빗물은 금세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변종을 처리했습니다. 카운트 50점이 주어집니다.

-현재 처리한 좀비의 수 100/200

눈앞으로 떠오르는 홀로그램.

하지만 홀로그램의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김민형이 남기고 간 얘기가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그 누구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침묵이 내려앉은 거리로, 무심한 빗소리만이 들려왔다.

* * *

물에 빠진 생쥐 꼴로 동아리방에 돌아오자, 모든 일행이 기다렸다는 듯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이정우는 우리의 모습을 눈으로 훑더니,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레 물었다.

“진짜 대장 좀비야?”

난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의자에 앉아 생각을 정리한 뒤, 내가 보고 들은 모든 것을 들려주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일행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좀비에게 물렸을 때, 대장 좀비로 변이되는 조건이 라스트아크 플레이어라는 건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니까.

난 팔짱을 낀 채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장대비를 응시했다.

한참이나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한 뒤, 심호흡과 함께 입을 열었다.

“종합강의동, 지금 가죠.”

“뭐?”

이정우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내 얼굴을 쳐다봤다.

모든 일행이 갑작스러운 내 의견에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비가 저렇게 오는데 지금 나가자고?”

“학교에 대장 좀비가 하나 남았어요. 방금 죽은 녀석의 말이 사실이라면…… 남은 대장 좀비는 상당히 위험한 놈입니다. 시간이 없어요.”

“아무리 그래도…….”

“장대비는 좀비들의 후각과 청각도 마비시킵니다.”

이정우는 가만히 턱을 매만지며 바깥 상황을 살폈다.

한참이나 장대비를 응시하더니, 퍼석한 입술을 핥으며 내게 물었다.

“가능하겠어?”

“1층에 내려갔을 때 좀비들의 인기척은 없었어요. 비가 그치면 기숙사에 있는 대장 좀비가 활개 칠 수도 있으니, 지금 움직이는 게 맞아요.”

이정우는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자 가만히 있던 설여원이 입을 열었다.

“전 찬성이에요. 장마 시작한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대장 좀비 하나가 밖으로 나왔다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아요.”

그러자 전완수도 오른손을 들며 얘기했다.

“나도 찬성. 보름은 장마가 이어질 텐데, 빨리 움직여서 뭐라도 정하는 게 마음 편하지.”

최현과 정진영, 윤혜리와 김희연도 찬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모두의 의견이 내 쪽으로 쏠리자, 이정우는 마른세수와 함께 입을 열었다.

“그럼 진영이랑 혜리, 희연이는 여기를 지켜줘.”

이정우의 말에 정진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너도 움직이려고?”

이정우는 대답 대신 손도끼를 손에 쥐며 훅, 하고 숨을 뱉었다.

일전에 사용하던 창은 변종이 부러뜨렸기에, 이정우도 손도끼를 사용하게 되었다.

이정우는 밖에 나갈 사람들을 쳐다보며 경계 방향을 정해주었다.

“정면은 나랑 완수, 측면은 현이랑 재형이, 후방은 여원이가 담당한다.”

이정우의 말에 반박하는 사람은 없었다.

안개 속에서 시야 확보가 가능한 전완수와 설여원을 앞뒤로 두는 게 맞다.

또한 측면을 담당하는 사람은 앞이든 뒤든, 언제든 지원이 가능한 전투 인력이 들어가는 게 효율적이었다.

헌팅 나이프를 손에 쥐자, 칼자루에 묻은 김민형의 혈흔이 두 눈에 들어왔다.

인간성을 상실하기 전에 자결을 선택한 대장 좀비.

많고 많은 건물을 두고 굳이 (신)학생회관을 찾아온 이유가 뭘까.

김민형은 이곳에 생존자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건가?

그렇다면 조성훈이라는 대장 좀비도 우리의 위치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어쩌면…… 김민형이 이곳을 찾아온 건 우리에게 경고를 하기 위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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