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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40화 (40/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40화

“재형아!”

원형 계단에서 마지막 좀비를 처리한 순간,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여원은 좀비들의 시신과 내 모습을 번갈아 쳐다보며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일행도 바리케이드를 정리하고 원형 계단 앞으로 모여들었다.

이정우는 얼굴에 묻은 혈흔을 닦으며 내게 물었다.

“다친 곳은.”

“괜찮아요. 그보다 정문 쪽은 정리 끝났어요?”

“방금 끝났어. 아까 드론은 뭐야? 너도 봤어?”

“종합강의동에서 날아온 드론이에요.”

종합강의동이란 말에 다들 놀란 표정을 지었다.

김희연은 열기로 후끈거리는 두 팔을 주무르며 내게 물었다.

“이제 어쩌죠?”

“드론은 중앙 광장으로 날아갔어.”

“그럼 종합강의동에 있는 남자들이 위험해지는 거 아니에요?”

“더 멀리 따돌리겠지.”

“아니요, 좀비들 말고요.”

고개를 갸웃거리자, 김희연은 불안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변종이 근처에 있잖아요.”

아…….

종합강의동 옥상에서 드론을 날렸으니, 변종의 시야에 잡힐 가능성이 높아졌다.

황급히 바리케이드가 설치된 정문 계단으로 달려갔다.

옥상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정문 계단을 이용해야 했다.

학생회관 옥상에서 종합강의동의 모습을 살피자, 여전히 드론을 조종하는 남자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뒤따라 올라온 설여원은 안개 속의 좀비들을 살피며 얘기했다.

“좀비들은 드론을 따라가고 있어.”

“다른 건 안 보여?”

변종의 모습은 눈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도 없고 종합강의동에도 없다면 어디로 간 거지?

도서관 외벽에도 변종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모여드는 좀비를 보고 대피한 건가?

‘변종이 좀비를 보고 도망친다고?’

게임에서는 변종이 학살하면 학살을 했지, 결코 좀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설여원은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어깨에 손을 얹으며 얘기했다.

“아무것도 안 보여. 이제 안전해.”

설여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반면에 난…… 꺼림칙한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라스트아크에서 집착에 둘째가라면 서러운 게 알파 변종이었다.

한번 발견한 먹잇감은 무슨 일이 있어도 놓치지 않는다.

그 집착이 도를 넘기에, 유저들이 목덜미 잡고 게임을 삭제하게 만드는 주원인이 변종이란 말이다.

설여원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얘기했다.

“일단 들어가자. 들어가서 상황 정리하고 얘기하자.”

꺼림칙한 건 사실이지만, 변종의 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설여원과 함께 옥상 출입구로 향했다.

“……마.”

한발 앞서 출입구로 향하는데, 뒤에서 설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라고?”

뒤를 돌아보자, 설여원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 얼굴을 쳐다봤다.

그 찰나의 침묵이, 흐려졌던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풀어졌던 감각이 순식간에 전신을 휘감으며 경종을 울렸다.

터덕- 턱.

그와 동시에 반대편 옥상 난간 너머로 무언가 긁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의 근원지를 응시하자, 웬 도낏자루가 벽을 긁으며 서서히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저게 왜 저기…….’

한 박자 늦게 사태 파악을 마치고, 다급히 설여원의 팔을 잡아끌었다.

뒤이어 머리에 손도끼가 박힌 변종의 머리가 두 눈에 들어오고, 놈의 입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엄…… 마.”

* * *

놈은…… 처음부터 이곳을 벗어나지 않았다.

찢어질 듯 올라간 입꼬리.

이 상황이 재미나다는 듯이, 조소를 지으며 내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설마.

‘처음부터 이럴 계획이었나?’

소란을 일으키면 좀비들이 몰려들 테고, 그럼 우리가 알아서 나오리라 판단한 건가?

(신)학생회관 뒷문에서도, 알파 변종은 좀비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다.

좀비들을 이용해 우리의 체력이 떨어지기를 기다린 것이다.

건물 외벽에 붙어 실내를 확인한 것도 우리가 동아리방에서 나오지 않자 찾아나선 것이다.

건물 내부에서 우리의 인기척이 느껴지지만,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으니 비명을 질러 좀비들을 부른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나오길 기다린 것이다.

집착의 대명사와 같은 알파 변종.

모든 상황을 이해한 끝에, 난 오만상을 찌푸리며 읊조렸다.

“저 개새끼가…….”

알파 변종은 건물 외벽에 붙어서 좀비들과 사투를 벌이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알파 변종의 지능은 공명 좀비의 사고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본인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놈은 선뜻 공격을 취하지 않고 내게 발악할 시간을 주었다.

마치 먹잇감을 가지고 놀다가 잡아먹는 범고래처럼.

“뛰어!”

설여원을 향해 외치자,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옥상 출입구를 향해 박차를 가했다.

키에에에에엑!!

뒤따라 옥상 철문을 향해 박차를 가하자, 등 뒤로 변종의 외마디 비명이 들려왔다.

어깨너머로 뒤를 돌아보자, 태양광 패널을 도미노처럼 넘어뜨리며 접근하는 변종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건물로 들어오게 만들면 안 된다.

넘어지듯 계단에 들어서며 철문에 발길질을 가했지만, 변종의 기다란 팔이 문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5층에 있던 일행은 변종의 울음소리를 들은 다급히 계단으로 달려왔다.

정진영은 변종의 머리에 박힌 손도끼를 보고 두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옆에 있는 김희연과 윤혜리에게 외쳤다.

“대꼬리 들고 와!”

날붙이로 변종을 죽이는 건 불가능하기에, 태워죽일 모양이다.

내가 구르다시피 계단을 내려가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변종은 철문을 열어젖히며 쏜살같이 계단으로 접근했다.

뒤이어 난간을 훌쩍 넘어 단숨에 5층으로 향하는 길목을 막아섰다.

퇴로마저 막힌 상황.

피할 수 없다면 사생결단(死生決斷)의 마음으로 싸워야 한다.

변종의 약점이 어디더라?

라스트아크를 플레이하며 몇 번이고 처리한 알파 변종 거미.

게임에서 총기가 없는 상황에 변종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경추.’

모든 생물의 약점.

변종의 뼈가 아무리 단단하다 한들, 경추만 끊으면 승산이 있다.

문제는 경추까지 접근하는 것.

‘어떻게든 공간을 만들어야 돼.’

얼굴을 공격하면 빈틈이 생길 것이다.

변종의 안면을 향해 헌팅 나이프를 휘두르자, 놈은 고개를 비틀어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재빨리 사이드스텝을 밟아 후면으로 이동하려는 찰나, 비틀어졌던 변종의 머리가 기괴하게 꺾이며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카가각!

내 옆구리를 노리는 줄 알았는데, 변종은 단단한 치아로 칼날을 물어뜯었다.

일전의 경험을 통해 날붙이가 위험하다는 걸 파악한 건가?

치악력이 얼마나 강한지, 단 5초도 버티지 못하고 헌팅 나이프로 균열이 생겼다.

까드드득-! 쩡!

그토록 단단한 헌팅 나이프가 유리구슬처럼 깨졌다.

뒤이어 칼자루를 쥐고 있는 내 오른손으로 변종의 치아가 날아들었다.

두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뜨며 재빨리 회피하자, 동시에 변종의 오른팔이 내 관자놀이를 향해 날아들었다.

본능적으로 상체를 숙이자, 변종의 오른팔이 내 목덜미를 스치며 그대로 벽면에 박혔다.

얼마나 뼈가 단단하면 시멘트벽을 뚫고 들어간단 말인가?

속도만 빠른 게 아니라, 파괴력도 보통이 아니었다.

변종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았다. 변종의 속도에 눈도 깜박일 새가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모든 감각이 예민하게 반응한다.

말초신경까지 선명하게 깨어나는 기분.

키에에에엑!

변종은 비명을 내지르며 왼팔로 내 하복부를 노렸다.

뒤로 넘어지다시피 구르며 변종의 움직임을 직시했다.

어떻게든 빈틈을 찾아야 한다.

키리릭- 키릭-

변종은 벽에 박힌 오른팔을 뽑기 위해 전신을 들썩이더니,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발악하기 시작했다.

팔이 빠지지 않는 건가?

지금이다.

박차를 가하며 달려들자, 변종은 괴성을 내지르며 왼팔을 치켜들었다.

변종의 팔이 날아드는 방향을 계산하며 멈추지 않고 달려들었다.

쾅!!

간발의 차로 어깨를 비껴간 변종의 왼팔.

그대로 변종의 면상까지 접근해 머리칼을 휘어잡았다.

왼손으로 머리칼을 휘어잡자마자 뒤로 젖히고, 오른손으로 놈의 하관을 붙잡았다.

한순간의 선택이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상황.

망설임은 치명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흡!”

숨을 들이켜며 있는 힘껏 변종의 머리를 비틀었다.

뚝!

손끝으로 느껴지는 둔탁한 감촉.

현재 내 근력은 일반인의 3배에 달한다.

뼈를 뚫을 수 없다면 부러뜨리면 그만.

다른 뼈도 아닌 경추라면, 지금의 근력으로도 가능할 것이다.

변종은 위협을 감지했는지, 목에 힘을 주어 저항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돌리면 되는데.

유연성부터 남다른 녀석이라 그런지, 90도로 목이 꺾인 상황에도 저항하는 힘이 보통이 아니었다.

뜨득!

변종의 머리칼을 쥐고 있던 왼손에서 힘이 빠졌다.

힘이 빠져?

아니, 한주먹 뽑힌 변종의 머리칼을 보고 시간이 느려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머리칼이 뽑히며 변종의 머리는 자유를 되찾았고, 곧 두 눈을 부라리며 내 얼굴을 응시했다.

꽈득!

“커헉!”

동시에 옆구리로 날아드는 통증에 헛숨을 터져 나왔다.

변종의 왼팔이 내 옆구리를 붙잡은 채 악력을 더했다.

장기가 터질 것 같은 통증에 숨도 쉴 수 없었다.

키에에에엑!!

분노한 변종은 비명을 내지르며 내 가슴팍으로 치아를 들이밀었다.

“재형아!”

상황을 지켜보던 이정우가 달려와 날카로운 창끝으로 변종의 관자놀이를 향해 내질렀다.

딱!!

하지만 이정우의 창끝은 변종의 두개골을 꿰뚫지 못했다.

변종은 걸리적거린다는 듯이 괴성을 내지르며 발악하기 시작했다.

거추장스러운 액세서리를 털어내는 것처럼 세차게 왼팔을 흔들었고, 상상을 초월하는 변종의 힘에 난 계단 난간에 등을 부딪치며 헛숨을 토했다.

인간의 무게를 한 팔로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변종의 힘은 장사였다.

전신으로 느껴지는 통증에 사지가 덜덜 떨리고, 폐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숨이 막혔다.

눈살을 찌푸리며 변종을 바라보자, 놈은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치아를 들이밀었다.

물리면 죽는다.

눈살을 찌푸리며 다급히 상체를 뒤로 젖혔다.

간신히 변종의 공격을 회피했지만, 계단 난간 밖으로 반쯤 나간 상체를 다시금 일으키는 건 무리였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 양손으로 난간을 쥐고 변종의 모습을 살피자, 변종은 다시금 고개를 쭉 내밀며 내 하복부를 향해 치아를 들이밀었다.

‘못 피한다.’

까드득!

그 순간, 변종의 등에 올라탄 이정우가 손에 쥐고 있던 창으로 변종의 구강을 틀어막았다.

그러자 변종의 뒷다리가 기이하게 꺾이며 이정우의 등으로 날아들었다.

도저히 다리라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움직임.

뼈마디가 인간보다 많은 건가?

마치 전갈의 꼬리를 연상케 하는 움직임이었다.

변종의 뒷다리가 이정우의 흉추를 노리자, 최현과 전완수가 카타나를 뽑아 들고 이곳으로 달려왔다.

팔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다리를 전완수와 최현이 저지하자, 이정우는 까드득 이를 갈며 내게 외쳤다.

“빨리 나와!”

여기서 어떻게 나가.

상체는 반쯤 난간 밖에 나가 있고, 두 다리는 변종의 복부에 깔려서 뺄 수가 없는데?

난간을 쥐고 상체를 일으키는 찰나, 이정우의 창이 두 동강 나며 변종의 머리가 해방됐다.

코앞으로 드리운 변종의 안면.

깊이를 알 수 없는 칠흑 같은 안구가 나를 직시한다.

이전처럼 웃음기는 보이지 않았고, 변종도 분노에 치민 표정이었다.

빠져나갈 수 없고, 주먹을 내지르는 것도 소용없다.

그 찰나의 순간, 무의식적으로 레슬링에서 봤던 기술이 떠올랐다.

고민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다급히 변종의 목을 겨드랑이에 넣고 길로틴 초크를 시도했다.

뜨득! 뜩! 떡!

팔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을 감내하며, 변종의 목을 뽑아버린다는 마음으로 덤벼들었다.

그러자 변종은 짓밟힌 지렁이처럼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변종의 왼팔이 날아들자, 최현과 전완수, 이정우가 안간힘을 쓰며 달려들었다.

푹!

뒤이어 설여원이 달려와 변종의 어깻죽지에 헌팅 나이프를 쑤셔 넣었다.

최현과 전완수는 변종의 하체를 마비시킨다는 각오로 쉴 새 없이 허벅지를 베었다.

모두가 안간힘을 쓰며 달려들었지만, 변종이 버둥거릴 때마다 우린 세찬 파도에 휩쓸린 난파선처럼 전신이 들썩였다.

빡!

뒤이어 변종의 왼팔이 이정우의 옆구리를 가격하고, 최현과 전완수는 변종의 발길질을 맞고 5층까지 굴러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마지막까지 버티고 있던 설여원마저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진흙탕 싸움의 승기는 변종의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다들 비명을 토하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일행의 모습을 살피자, 전완수는 다리가 부러지고 최현은 어깨가 탈골된 것으로 보였다.

이정우와 설여원의 입에서는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다들 뒤로 빠져!”

뒤이어 정진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만상을 찌푸리며 정진영을 쳐다보자, 소주병에 신문지를 욱여넣고 그 끝에 불을 붙인 정진영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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