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39화 (39/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39화

화르르륵!

순식간에 불길이 일어나며 뜨거운 열기가 바리케이드 너머로 전해졌다.

윤혜리와 김희연은 불이 꺼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좀비들의 머리 위로 휘발유를 부었다.

크어어어어어!!!

절규에 가까운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건물을 울렸다.

불이 붙은 좀비들은 양팔을 허우적거리며 전신을 비틀기 시작했다.

뒤따라 올라온 좀비들에게 불이 옮겨붙자, 바리케이드의 압력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복도까지 들어찬 뜨거운 열기에 바리케이드 앞의 일행도 눈살을 찌푸리며 양팔로 얼굴을 가렸다.

윤혜리와 김희연은 밑에서 올라오는 열기로 인해 두더지처럼 일어섰다 앉기를 반복하더니, 결국 눈살을 찌푸리며 주저앉는 모습을 보였다.

도저히 난간 너머로 얼굴이나 두 팔을 내밀 엄두가 나지 않는 모양이다.

‘효과가 있나?’

불이 붙은 좀비들로 인해 뒤에서 밀려드는 좀비들도 쉽사리 전진하지 못했다.

그어어어어어어…….

하지만 계단에서 들려온 공명 좀비의 울음소리에 잠시나마 주춤거리던 좀비들은 다시금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계속 부어!”

윤혜리와 김희연에게 외치자, 두 사람은 이 악물고 휘발유를 쏟아부었다.

코를 찌르는 휘발유 냄새와 함께 지금껏 맡아보지 못한 퀴퀴한 냄새가 올라왔다.

살이 타는 냄새.

계단의 열기로 인해, 이정우와 전완수도 쉽사리 공격을 이어가지 못했다.

뒤이어 윤혜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휘발유가 없어요!”

벌써 다 떨어졌다고?

어떻게든 좀비들을 저지하기 위해선 휘발유가 필수였다.

그 순간, 머릿속으로 하나의 장면이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떠올랐다.

“춤사랑 가서 소주병 들고 와!”

“소, 소주병이요?”

“5층에 있는 모든 동아리방 확인해!”

동아리방에서 공부하는 학우도 있지만, 반대로 술판을 벌이는 학우들도 많았다.

대표적으로 춤사랑은 술을 즐기는 사람이 많았다.

몸을 쓰는 고된 활동을 많이 해서 그런지, 공연분과 내에서도 술 잘 마시는 동아리로 유명했다.

별명이 ‘술사랑’이었을 정도로.

* * *

좀비의 습성을 파악하기 위해 춤사랑 동아리방에 좀비를 가두어두었을 당시, 벽면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소주 짝을 본 기억이 있었다.

분명 빈 병이 아니라, 소주가 가득 찬 병이었다.

기말고사가 끝나면 술판을 벌이기 위해 미리 구비해둔 것으로 보였다.

윤혜리와 김희연은 다급히 5층 복도를 내달리며 모든 동아리방을 확인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소주 짝을 들고 바리케이드 앞으로 달려오는 윤혜리와 김희연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무려 일곱 짝이나 되었다.

윤혜리는 들고 온 소주 짝을 바닥에 내려두며 내게 물었다.

“재형 오빠! 춤사랑 옆 동아리방에는 대꼬리도 있는데요?”

“소주 대꼬리?”

“네!”

“전부 들고 와!”

이것들 아주 술을 쌓아두고 마셨구먼.

윤혜리가 대꼬리를 가지러 간 사이, 김희연은 소주 짝을 들고 낑낑거리며 계단을 올랐다.

곧 소주 짝을 계단난간에 걸치며 외쳤다.

“파편 조심해요!”

난간에 걸쳐둔 소주 짝을 계단에 던지자, 사방으로 유리 파편이 튀며 고막을 찌르는 파찰음이 계단을 울렸다.

픽-!

날아드는 파편이 책상과 의자 사이를 지나 내 우측 볼을 스쳤다.

파편이 박혔는지 스쳤는지, 확인할 새도 없었다.

불붙은 좀비들이 바리케이드에 달라붙고 있는데, 상처까지 신경 쓸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계속 찔러!”

이정우와 전완수에게 외치자, 그들은 왼팔로 입과 코를 가린 채 좀비들의 안구를 향해 날붙이를 내질렀다.

대체 도서관과 (구)학생회관에 얼마나 많은 좀비가 있기에 이토록 많은 수의 좀비들이 몰려온단 말인가?

대운동장에 있던 200에 가까운 좀비들이 전부 모여든 건가?

죽여도 죽여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일행의 체력은 벌써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제대로 휴식도 취하지 못했다.

근육은 팽팽하게 당기는 수준을 넘어 저리고, 뼈마디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쾅!!

그 순간, 복도를 울리는 굉음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뒤를 돌아봤다.

설마.

일행에게 바리케이드를 사수하라는 말을 남기고 다급히 복도의 반대편으로 향했다.

두두두두두두-

다수의 발소리.

뒷문으로 통하는 원형 계단을 내려다보자,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좀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조금 전의 굉음은 뒷문의 경첩이 뜯기는 소리였다.

정문 계단도 벅찬 수준인데, 뒷문까지 방어할 여력이 없다.

“무슨 일이야!”

복도 반대편에서 설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쩌지?

나 하나 빠져도 바리케이드 사수는 버거운 수준인데.

지원을 요청할 수 없다.

조금이라도 체력이 남은 내가, 어떻게든 원형 계단을 막아야 한다.

난 까드득 이를 갈며 외쳤다.

“혜리랑 희연이도 바리케이드 지켜! 뒷문은 내가 본다!”

헌팅 나이프를 뽑아 들며 원형 계단을 막아섰다.

계단을 뛰어오르는 좀비들은 서로를 밀치며 비좁은 통로에 몸을 욱여넣었다.

압력을 버티지 못한 몇 놈은 난간 밖으로 떨어지고, 바닥에 엎어진 녀석은 발판이 되어 짓밟히는 모습을 보였다.

헌팅 나이프를 부서질 듯 말아쥐며, 벌벌 떨리는 사지에 힘을 주었다.

내가 뚫리면, 복도에 있는 일행도 전멸이다.

카하아악!!

5층까지 올라온 좀비가 목젖을 갈며 달려들었다.

이 악물고 놈의 복부를 향해 발길질을 가하자, 가장 앞에 있던 녀석은 발길질에 맞고 뒤로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대로 도미노처럼 쓰러질 줄 알았는데, 좀비들의 광기는 내 예상을 넘어서고 있었다.

쓰러진 좀비들을 난간 너머로 밀치며 노도와 같이 달려드는 좀비들.

재빨리 백스텝을 밟으며 코앞으로 다가온 좀비의 성대를 사선으로 그었다.

카하악!

좌측에서 또 다른 좀비가 치아를 들이밀었다.

칼자루로 놈의 콧잔등을 으깨버리고, 다시금 사선으로 칼날을 휘둘러 우측 좀비의 목젖을 그었다.

나 혼자 뒷문을 막겠다고 의기양양하게 외쳤지만, 뒤늦게 돌아온 이성은 내 안의 공포심을 일깨웠다.

‘못 막는다.’

좀비들의 공세를 저지하려 했지만, 뒷걸음질 치는 속도만 빨라지고 있었다.

득달같이 달려드는 좀비들과 정신을 갉아먹는 공포심에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수건 하나로 파도를 막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놈들을 어떻게 홀로 상대하란 말인가.

턱!

등 뒤로 딱딱한 벽면의 감촉이 느껴졌다.

더 이상 뒤로 물러설 곳이 없다.

크어어어어!!

하지만 상황을 봐줄 턱이 없는 좀비들은 굶주림에 시달리는 맹수처럼 달려들었다.

바로 앞에 있는 좀비의 구강에 왼팔을 들이밀며 계단 쪽으로 밀어붙였다.

“큭!”

왼팔에 감아둔 종이책을 잘근잘근 씹으며 양손으로 내 멱살을 흔드는 좀비.

치악력이 어찌나 강한지, 조금이라도 힘을 빼면 균형을 잃고 쓰러질 것 같았다.

이 악물고 버텼지만, 눈에서 실핏줄이 터지며 따끔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두 팔은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안면근육에서 경련이 일어났다.

정문을 담당하는 일행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나?

하지만 정문도 녹록지 않은 상황인데?

한 명이라도 빠지면 그대로 바리케이드가 넘어갈 것이다.

‘철문.’

문득, 좌측의 철문이 눈에 들어왔다.

좀비들을 직접 처리할 게 아니라, 2층에서 그랬던 것처럼 문으로 통로를 막는 게 최선일 것이다.

왼팔을 물어뜯는 좀비의 안구에 헌팅 나이프를 찔러넣고, 쓰러지는 좀비에게 발길질을 가했다.

그 찰나의 빈틈을 이용해 양손으로 철문을 당겼다.

쾅!

철문에 머리를 박은 좀비들이 뒤로 넘어간다.

빗자루로 먼지를 쓸 듯이, 온몸으로 철문을 밀치며 좀비들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통로를 막아버렸다.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지, 좀비들의 압력을 나 홀로 막아내는 건 역부족이다.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든 다음 수를 떠올려야 한다.

크어어어어어어!!

연이어 들려오는 좀비들의 울음소리.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

대체 도서관에 얼마나 많은 좀비가 쌓여 있었던 거야?

시험 기간만 되면 도서관이 북적이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고, 그곳에 있던 학생들은 전부 좀비가 되었다.

혼자만의 힘으로 좀비들의 압력을 버텨내는 건 한계가 있었다.

1분도 버티지 못했는데, 벌써 밀리기 시작했다.

차라리 철문이 닫히면 안전할까?

아니다.

다른 층과 달리 5층의 철문을 경비 아저씨가 항상 열어두는 이유.

경첩이 틀어져서 문이 제대로 닫히기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 밑에는 사고기능이 존재하는 공명 좀비도 있지 않은가?

문고리를 열고 들어올 것이다.

그 순간, 시야의 우측 상단으로 반짝이는 노란불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재빨리 홀로그램을 열고 처리한 좀비들의 숫자를 확인했다.

-캐릭터 이름: 에덤 화이트

-능력: 강화

-스탯: 근력 6(+2), 체력 6(+5), 반사 신경 5, 동체 시력 5, 정신력 10

-현재 처리한 좀비의 수: 100/100(완료)

-남은 포인트: 10

-포인트를 회수하고 다음 지령을 받으세요.

※100마리를 달성하여 새로운 스킬이 생성됩니다.

※요구조건이 달성되지 않아 스킬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요구조건: 변이바이러스 흡입(0/1)

변이바이러스 흡입?

그게 뭐야.

설마 베타 테스트를 클리어하고 주어졌다는 이스터에그인가?

변이바이러스를 흡입하면 에덤에게 스킬이 생기는 거야?

그럼 변이바이러스가 뭔지 설명을 해줘야 할 거 아냐!

스킬이고 뭐고, 지금은 좀비들부터 어떻게 해야 한다.

철문의 압력을 버티기 위해서는 더욱 강한 힘이 필요했다.

오만상을 찌푸리며 모든 포인트를 근력에 투자했다.

-스탯: 근력 6(+12), 체력 6(+5), 반사 신경 5, 동체 시력 5, 정신력 10

-현재 처리한 좀비의 수: 0/200

-남은 포인트: 0

“커헉!”

모든 스탯을 근력에 투자해서 그런가?

전신이 덜덜 떨리고, 인두로 전신을 지지는 듯한 고통이 몰려왔다.

살갗이 찢어지는 고통에 숨도 똑바로 쉴 수 없었다.

드드득-

고통으로 인해 몸에서 힘이 빠지자, 철문이 밀리기 시작했다.

막아야 하는데, 어떻게든 막아야 하는데.

고통으로 인해 고개조차 들 수 없었다.

젖 먹던 힘을 다해 이 악물고 헌팅 나이프를 치켜드는 순간.

빠! 빠, 빠빠빠, 빠빠라! 밤밤!

귓가로 기상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고통으로 인해 맛이 간 건가?

갑자기 무슨 기상나팔 소리?

점점 가까워지는 기상나팔 소리에 혼란스러운 마음을 떨쳐낼 수 없었다.

뒤이어 철문을 밀어붙이던 좀비들의 압력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야?

좀비들도 기상나팔 소리를 들은 건가?

위이이이이잉-

그와 동시에 창가에서 점멸하는 붉은빛을 확인할 수 있었다.

드론.

드론에 매달린 휴대폰이 기상나팔 소리를 울리며 좀비들의 시선을 유도하고 있었다.

드론은 내 모습을 확인하더니, 곧장 1층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계단에 들어찬 좀비들은 요란하게 울리는 드론을 따라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몇몇 사고기능이 발달한 좀비들은 드론을 쳐다보며 콧잔등을 찌푸리더니, 생명체가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계속해서 계단을 뛰어올랐다.

올라오려는 좀비와 내려가려는 좀비들이 뒤섞여 한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하는 원형 계단.

난 바닥에 내려둔 헌팅 나이프를 손에 쥐며 덜덜 떨리는 다리에 힘을 주었다.

전신이 타들어가는 고통으로 인해 정신을 다잡기도 버거웠지만,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철문을 방패처럼 이용하며 계단을 올라온 공명 좀비들의 안구를 꿰뚫었다.

서서히 고통이 옅어지고, 뜨겁게 타오르던 근육 다발이 촘촘하게 엮이기 시작했다.

근력 운동을 하면 자극 부위가 뜨겁게 느껴지는 것처럼, 근섬유가 팽팽하게 당기는 기분.

고통이 가신 자리로,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힘이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오른손에 쥐고 있는 헌팅 나이프가 마치 종이를 들고 있는 것처럼 한없이 가볍게 느껴졌다.

폭발적으로 증가한 근력은, 나 역시 적응되지 않았다.

좀비의 안구를 향해 헌팅 나이프를 내지르자, 순두부를 으깨는 기분이 들었다.

눈앞의 좀비들을 쏜살같이 처리한 뒤, 아래층의 상태를 살폈다.

대체 누구지?

어디서 날아온 드론이란 말인가.

‘설마.’

뒤늦게 종합강의동에 있던 남자들이 떠올랐다.

학생회관 뒷문에 있던 드론은 정문으로 이동하더니, 정문에 있는 좀비들까지 모아서 중앙 광장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정확한 숫자는 파악할 수 없지만, 일렁이는 안개의 표면으로 보아 족히 60마리 이상의 좀비를 이끌고 중앙 광장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종합강의동 옥상에서 드론을 조종하는 남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남자의 모습을 살피자, 한 명은 드론을 조종하고 다른 한 명은 망원경으로 이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망원경을 보던 남자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대뜸 오른손을 높이 들고 좌우로 흔들기 시작했다.

노을 빛을 받아 선명하게 보이는 그의 몸짓에, 나도 모르게 울컥하는 마음이 차올랐다.

[실례지만 저희 좀 구해주시겠어요?]

생각지도 못한 그들에게 우리가 도움받게 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