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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37화 (37/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37화

왈! 왈!

동아리방으로 돌아오자, 장군이가 꼬리를 흔들며 우리를 반겨주었다.

혓바닥을 내민 채 꼬리를 흔드는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설여원과 윤혜리, 김희연은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장군이를 쓰다듬으며 오구오구, 하는 소리를 냈다.

이정우는 들고 있던 무기를 내려놓으며 우리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저 좀비들은 뭐고.”

난 소파에 앉으며 양손으로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머릿속을 울리던 경종과 이명이 사라진 자리로, 억눌려 있던 피로가 몰려왔다.

정진영은 서랍을 뒤적이며 파스 두 장을 꺼내 옆구리에 붙이고, 전완수와 최현은 라꾸라꾸에 누운 채 이마를 짚었다.

난 마른세수를 하며 입을 열었다.

“변종을 봤어요.”

이정우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뒤이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변종이, 변종이 첫 번째 에피소드에 나온다고?”

“네, 그런데 방어력이 상당합니다.”

“도끼로 머리를 쳤는데 안 뚫리더라.”

파스를 붙인 정진영이 앓는 소리를 내며 설명을 덧붙였다.

이정우는 의자에 앉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라스트아크 세 번째 에피소드까지 경험한 이정우기에, 상황을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한숨을 내쉬더니,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었다.

“설마 했는데, 진짜 변종일 줄이야.”

설마 했다고?

이에 눈꼬리를 치켜뜨며 물었다.

“형은 알고 있었어요?”

“아니, 너희가 없는 동안 우리도 알아낸 게 있거든.”

의구심에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정우는 김희연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희연아, 설명해 줘.”

“아.”

김희연은 장군이를 쓰다듬다 말고 B팀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그…… 저희가 종합강의동에 있는 사람들이랑 얘기하면서 알아낸 게 있어요.”

“종합강의동? 무슨 수로 얘기를 해.”

“저희도 글자는 적을 수 있잖아요.”

김희연은 커다란 도화지를 가리키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동아리 홍보나 공연을 위해 비축해둔 도화지.

도화지를 통해 종합강의동의 남자들과 소통한 모양이다.

계속하라고 하자, 김희연은 가볍게 목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종합강의동에 생존자는 두 명이에요. 저희가 봤던 남자 둘.”

“그 둘은 어떻게 살아남은 거야?”

“시험 기간에 총동아리연합회에서 도시락 행사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도시락 행사라는 말에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시험 기간만 되면 총동아리연합회는 도서관 앞에서 무료로 도시락을 배분했다.

이미지관리 차원에서 하는 행사였지만, 덕분에 동아리 활성화에 크게 이바지했다.

뒤이어 라꾸라꾸에 누워 있던 최현이 상체를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아 맞아. 그거 준비를 종합강의동에서 하잖아.”

“종합강의동에서?”

“어, 도시락 배분할 때 쓰는 책상이랑 의자 등등, 그런 자질구레한 것들 전부 종합강의동에 배치해두거든. 행사 시작하기 전에 샌드위치나 도시락 같은 음식도 종합강의동에 모아두는 거로 알아.”

그러자 김희연이 오, 하는 감탄사와 함께 말을 이었다.

“맞아요. 1층에 도시락이 한가득 쌓여 있어서 그 덕에 버텼다고 들었어요.”

안개가 퍼진 건 6월 중순.

기말고사를 앞둔 시점이었다.

종합강의동에 있는 생존자들은 그곳에 있는 도시락을 아껴가며 살아남은 건가?

하지만 해소되지 않은 의문이 남았다.

“보관은 어디서 하고? 도시락이 한 달 넘게 안 상해?”

“연구실에 냉장고가 있다고 들었어요. 대학원생들이 쓰는 냉장고.”

김희연은 이마를 긁적이며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더니,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것보다 괴물에 대한 얘기가 나왔어요.”

“괴물?”

“무슨 거미처럼 생긴 괴물이 이쪽으로 갔다고 그러던데…….”

거미?

이에 이정우를 쳐다보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거미처럼 생긴 괴물이라는 말에 설마 했는데, 너희가 직접 봤다면 사실이겠지.”

난 퍼석한 입술을 핥으며 물었다.

“종합강의동에 있는 사람 중에 라스트아크를 플레이한 사람이 있어요?”

“그건 모르겠어.”

알파 변종은 누가 봐도 거미처럼 생겼다.

그래서 플레이어들도 거미라는 별명을 붙였다.

거미라는 단어만 가지고 종합강의동의 남자들이 플레이어다, 생존자다, 이렇게 구분할 수 없었다.

“미대에서 넘어왔다고 들었어. 미대 쪽이라면 재형이 네가 있던 기숙사랑 가깝잖아.”

“그렇죠. 음대 뒤편이니까.”

“아마 기숙사는…… 벌써 작살 났을 거야.”

사람이 많은 장소는 좀비도 많은 법.

가만히 턱을 매만지며 생각을 정리한 뒤, 이정우를 쳐다보며 물었다.

“형, 혹시 변종들 특징 기억나는 거 있어요?”

“특징? 어떤 거.”

“좀비랑 변종이 서로 어울리지 못한다거나, 그런 설정이 라스트아크에 있던가요?”

“과는 같아도 엄연히 다른 개체라서 동맹 관계는 아닐 거야.”

이정우의 말을 듣고 조금 전의 경험을 떠올렸다.

변종은 좀비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기이한 행동을 보였다.

언어를 구사하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던 녀석.

게임과 차이점이 있다면, 라스트아크에서는 변종이 언어를 구사하는 모습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전에 만난 변종은 배고파, 엄마와 같은 단어를 구사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차차 알아봐야겠다.

이정우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건 그렇고 벌써 알파 변종이 나왔다는 건 앞으로 베타, 감마도 나올 수 있다는 거 아니야?”

“그건 지켜봐야죠. 감마부터는 조건이 따로 있으니.”

“감마의 조건이 뭐야?”

“독 안개요. 하지만 독 안개는 세 번째 에피소드 중반에나 나오는 설정이에요. 아무리 난이도가 높아졌다고 한들, 지금 독 안개가 나오는 건 불가능합니다.”

“독 안개? 그런 것도 있어? 난 못 봤는데.”

“형은 세 번째 에피소드 초반까지 진행한 거 아니에요?”

“아, 그래서 못 본 건가?”

“네, 독 안개가 나타나면 좀비든 변종이든 급성장합니다. 그래서 세 번째 에피소드 클리어한 사람이 현저히 적은 거고요.”

독 안개라는 말에 일행의 표정으로 근심이 내려앉았다.

설여원은 입술을 깨물며 착잡한 표정을 짓더니,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그 독 안개, 인간한테는 어떤 영향을 끼치는 거야?”

“플레이어도 독 안개 속에서는 5분 이상 숨 쉴 수 없어. 5분이 지나면 전신이 마비되기 시작하거든.”

“무슨 조건이 그래? 그건…… 진짜 다 죽으라는 거 아니야?”

“그래서 아무도 못 깬 거야.”

이정우는 팔짱을 낀 채 생각을 정리하더니, 의자 등받이에 상체를 기울이며 물었다.

“그래도 클리어 방법이 있을 거 아니야. 재형이 너는 방법을 아니까 클리어한 거고.”

“능력을 각성시켜야 됩니다.”

“각성?”

“에덤은 각성 기능이 없지만 다른 캐릭터들은 각성 퀘스트가 있어요. 가브리엘의 능력을 각성시키면 안개 제거라는 능력이 생깁니다.”

“어? 잠깐, 나 기억날 거 같은데.”

“세 번째 에피소드 초반에 나오는 설정이니 형은 기억날 거예요.”

각성이라는 말에 다들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정우는 기억이 가물가물한지,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였다.

오래 지나지 않아 손가락을 튕기며 얘기했다.

“그…… 각성 퀘스트가 혹시 그건가? 소탕하는 거.”

“맞아요.”

고개를 끄덕이자, 이정우는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었다.

이에 모든 일행이 이정우를 쳐다보며 그게 뭐냐고, 무슨 소탕이냐고 물었다.

이정우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마른침을 삼키더니, 내 얼굴을 흘깃 쳐다보며 얘기했다.

“쉘터를 부수는 퀘스트야.”

이정우의 말에 다들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소파에 앉아 있던 정진영은 이해가 안 되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잠깐만, 쉘터를 부수다니? 쉘터는 생존자가 있는 곳 아니야?”

“맞아.”

“사람을 죽이는 게 각성 퀘스트라고?”

“게임에서는 문제가 있는 쉘터가 나오고, 그 쉘터를 부수는 게 각성 퀘스트로 나와.”

“쉘터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마당에 문제가 있는 쉘터까지 찾아야 한다는 거야?”

“못 찾으면…… 독 안개 속에서 죽는 거지.”

이정우의 설명에 일행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침묵이 내려앉고, 그 침묵은 쉬이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난 클리어 과정을 떠올리며 한 가지 방안을 떠올렸다.

“각성 퀘스트를 클리어하지 못해도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무슨 방법?”

“아크로 가면 됩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1억을 벌기 위해선 2억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랑 뭐가 달라.”

“아크에는 안개를 제거하는 장치가 있어요. 아크가 2개나 있는 이유, 다들 궁금하지 않아요?”

모두를 쳐다보며 묻자, 다들 의구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전완수는 팔짱을 낀 채 고심에 잠긴 모습을 보이더니, 곧 목덜미를 문지르며 물었다.

“맞네? 라스트아크에 원래 아크가 2개였나?”

“아크가 하나 더 있다는 설정은 네 번째 에피소드에 나오는 설정이니 모르는 게 당연해. 여기서 네 번째 에피소드까지 진행한 사람 있어요?”

일행을 돌아보며 묻자, 이정우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없어. 내가 제일 많이 갔는데, 세 번째 에피소드 초반이 끝이었어.”

“게임에서는 여러분이 아는 아크에 도착하면 이미 파괴된 거로 나와요. 네 번째 에피소드에 그 사실이 밝혀지죠. 그래서 다섯 번째 에피소드에 들어서면서 마지막 남은 아크로 이동하는 최종 퀘스트가 주어져요. 그래서 게임의 이름도 라스트아크고요.”

“…….”

“그런데 지금은 어때요?”

“서울이랑 부산에 아크가 있다고 시작부터 알려줬지.”

이정우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자, 그는 뒤늦게 이해하고 이마를 짚으며 아, 하는 탄성을 뱉었다.

뒤이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네 번째 에피소드에 나오는 내용을 왜 시작부터 알려준 거지?”

“그 이유를 저도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이제야 답을 알 것 같아요.”

“뭔데.”

“확률이요.”

“확률?”

“지금은 게임이 아니고 현실입니다. 쉘터의 유무도 알 수 없는데, 문제가 있는 쉘터를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깝죠. 이런 상황에 아크를 2개나 알려준 건 선택지라고 생각해요.”

“무슨 선택지.”

“각성을 못 할 경우, 2개의 아크 중 가까운 곳으로 가서 안개 제거기를 사용하라는 뜻이겠죠.”

뒤이어 라꾸라꾸에 앉아 있던 최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따지면 또 다른 경우의 수가 있네.”

“무슨 경우의 수?”

“게임에서는 첫 번째 아크가 파괴된 거로 나온다며? 아크도 따지고 보면 쉘터 아니야?”

“…….”

“어쩌면…… 현실에 있는 아크 중 하나를 우리 손으로 파괴하라는 뜻인지도 몰라.”

최현의 말에 머릿속에서 스파크가 터지는 느낌을 받았다.

맞네?

게임에서는 명확하게 표기되지 않은 아크의 파괴 이유.

그 사건의 중심에 우리가 흘러 들어갈지도 모른다.

최현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아크를 파괴하는 것도 쉘터를 파괴하는 거니까, 그걸 통해 각성하게 될지도 모르고.”

동아리방에 있던 일행은 너도나도 붕어처럼 입을 벌린 채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설여원이 세차게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미친 거 아니야? 만약 현이 말대로 진행된다면…… 이 게임을 만든 사람은 이미 모든 경우의 수를 만들어뒀다는 거야?”

게임 제작자의 이름이 ‘신’으로 나온 이유.

지금의 미쳐 버린 세상이 신의 바람이라면, 그는 인류의 멸종을 바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들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난 일행이 동요하지 않도록 태연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너무 깊게 파고들지 말자. 아직 본가를 확인하라는 퀘스트도 클리어 못 했으니, 스토리를 진행하다 보면 또 다른 선택지가 나올 거야.”

“차라리 본가를 확인하라는 퀘스트 포기할까?”

“S등급 퀘스트는 포기가 안 돼. 메인 퀘스트 격이라서.”

S등급의 퀘스트는 삭제할 수 없고, 실패하면 페널티가 아니라 게임 오버로 이어진다.

현실에서 게임 오버는 곧 죽음이다.

난 일행의 얼굴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일단 S등급 퀘스트부터 공유하죠.”

“아니야, 잠깐.”

이정우는 다급히 오른손을 들며 반대를 표했다.

이정우를 쳐다보자, 그는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S등급 퀘스트는 공유하지 말자. 만약을 대비해서.”

이정우의 말에 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어차피 클리어해야 하는 거, 공유하고 클리어하면 보상도 같이 받는데요?”

“S등급 퀘스트를 공유하면 한 명이 실패하는 순간 다 같이 끝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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