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36화 (36/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36화

주변의 공기가 진공상태에 놓이며 시간마저 정지하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머릿속으로 선명하게 떠오르는 죽음이란 공포에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

떡!!

그 순간, 변종의 두개골을 가격하는 손도끼를 발견할 수 있었다.

“빨리 일어나!”

정진영의 입에서 터져 나온 외침에 흐려졌던 시야가 돌아왔다.

넋이 나간 정신이 돌아오자마자, 떨어뜨린 헌팅 나이프를 손에 쥐며 그대로 변종의 목젖을 그었다.

쯔득-

어찌나 살점이 질긴지, 헌팅 나이프는 변종의 성대를 꿰뚫지 못했다.

간신히 생채기를 만든 정도.

그제야 변종의 머리에 박힌 손도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손도끼도 두개골을 깨뜨리지 못했다.

놈의 근육조직은 이미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피부는 악어가죽이라도 뒤집어쓴 것처럼 질겼고, 근육과 뼈는 바위처럼 단단했다.

게임에서 겪었던 변종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단단했다.

키리리릭- 키에에에엑!

변종은 성대에 생긴 생채기에 놀랐는지, 기괴한 울음소리를 뱉으며 양팔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무차별적으로 휘두르는 양팔에 옆구리를 맞은 정진영은 종이 인형처럼 뒤로 나가떨어졌다.

동시에 반대편 팔이 내 정수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 * *

찰나의 순간, 변종의 오지가 두 눈에 들어왔다.

손끝은 굳은살이 배긴 것처럼 거칠고, 시멘트처럼 단단해 보였다.

정수리를 맞으면 뚫리거나, 최소한 사망이다.

공포와 두려움으로 점철된 마음에 세차게 채찍질을 가하며, 재빨리 바닥을 뒹굴어 단두대처럼 날아드는 공격을 회피했다.

쩍!

벽돌로 바닥을 내려찍는 소리가 들려온다.

지면을 내려찍은 손가락은 조금의 타격도 없다는 듯이, 다시금 공격 자세를 취했다.

다급히 상체를 일으키며 정진영의 상태를 살피자, 옆구리를 부여잡은 채 고통을 호소하는 정진영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날파리를 쫓듯이 휘두른 팔에 맞고 저 정도 타격이라면…… 놈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으면 뼈도 못 추릴 것이다.

난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두 팔에 힘을 주며 변종의 안면을 응시했다.

심장은 격하게 뜀박질 치며 전신에 혈액을 공급했다.

아드레날린이 폭주하며 모든 감각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놈은 성대에 생긴 생채기가 신경 쓰이는지, 이전처럼 무턱대고 달려들지 않았다.

“재형아!”

뒤이어 전완수와 최현, 설여원이 이곳으로 달려왔다.

머릿수가 많아지자, 변종은 기이하게 머리를 비틀며 한 걸음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가 들고 있는 무기를 주시하는 모습.

날붙이가 위험하다는 걸 눈치챈 건가?

라스트아크를 플레이할 때는 일단 총부터 쏘고 봐서 몰랐는데, 변종에게도 지능이 존재했다.

크어어어어어!!

그 순간, 먼발치서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변종의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듣고 주변의 좀비들이 우리의 위치를 파악한 모양이다.

변종도 버거운데, 좀비들까지 달려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이다.

비좁은 지형에서 싸우기 위해 학생회관 뒷문으로 뒷걸음질 치자, 눈앞에 있던 변종은 해괴망측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좀비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머리를 기이하게 비틀더니, 불안증세를 보이며 팔다리를 오므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괴이한 음성이 들려왔다.

“배…… 고파…….”

놀란 눈으로 일행을 쳐다보자, 다들 멍하니 입을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말을 할 수 있어?

다시금 변종을 쳐다보자, 사시나무처럼 전신을 떨며 읊조렸다.

“배…… 고파? 엄…… 마. 배고…… 파?”

변종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다급히 숲속으로 도망치는 모습을 보였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쓰러진 정진영을 일으켜 학생회관 뒷문으로 들어갔다.

크어어어어!!

근방에서 좀비들의 울음소리와 함께 발소리가 들려왔다.

일행은 쓰러지다시피 뒷문으로 들어섰다.

난 부축하고 있던 정진영을 쇠창살 내부로 던지며 다급히 잠금장치를 걸었다.

크어어어어어!!

뒷문으로 들어온 좀비들은 일제히 창살을 흔들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나머지 잠금장치를 걸자마자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살점이 뜯겼을 것이다.

뒤에 있던 전완수와 최현은 재빨리 앞으로 다가와 창살에 붙은 좀비들의 안구에 카타나를 찔러 넣었다.

그어어어어어…….

쇠창살 앞으로 좀비들의 시신이 쌓이기 시작하자, 몇 놈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공명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이마 위로 식은땀이 맺히는 것을 느꼈다.

“저것들부터 죽여야 돼!”

“저걸 무슨 수로 죽여 인마!”

일행에게 소리쳤지만, 이미 창살을 닫은 마당에 공명 좀비를 처리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리가 소지한 무기는 전부 근거리 무기.

공명하는 놈들을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공명 좀비의 울음소리가 5초간 이어지자, 도서관에서 좀비들의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얼추 눈어림으로 살펴도 50마리가 넘는 숫자.

단단한 철문도 아니고, 쇠창살이 버티는 건 한계가 있다.

놈들이 일제히 창살을 흔들면 테니스장의 펜스처럼 넘어갈 것이다.

생각하자.

어떻게든 최악의 상황을 모면해야 한다.

창살이 넘어가지 않도록 책상이나 의자 등으로 막으면 괜찮을까?

아니, 책상을 쌓기 전에 창살이 먼저 무너져내릴 것이다.

난 뒤에 있는 설여원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여원아, 동아리방 가서 밧줄이랑 마이크 선 들고 와.”

“밧줄? 그걸로 어쩌려고.”

“묻지 말고 빨리!”

다급하게 얘기하자, 설여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계단을 뛰어올랐다.

전완수와 최현이 창살을 막는 동안, 난 재빨리 2층으로 올라가 계단과 복도를 구분 짓는 철문의 상태를 살폈다.

문이 안에서 밖으로 열리는 구조.

철문을 열고 2층 복도로 좀비들을 몰아야 하나?

아니, 좀비들이 복도에 들어차면 정문으로 향하는 계단까지 이어질 것이다.

그럼 간신히 탈환한 매점을 다시 빼앗기는 꼴이고, (구)학생회관의 좀비들이 모여들지도 모른다.

“재형아!”

뒤이어 밧줄과 마이크 선을 들고 설여원이 돌아왔다.

뒤따라오는 이정우와 윤혜리, 김희연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굳이 의자와 책상으로 계단을 막을 필요는 없다.

정지선만 만들어도 놈들의 발목을 묶을 수 있다.

계단 난간과 반대편 창틀에 밧줄이 교차하도록 묶고, 난간의 하단과 상단의 밧줄을 엮어서 거미줄처럼 만들었다.

20m 길이의 밧줄이 3개 정도 있기에, 모든 밧줄을 이런 식으로 만들었다.

마이크 선은 2층 철문 문고리에 묶고, 설여원에게 마이크 선을 건네며 2층과 3층 사이로 올라가라고 했다.

선을 잡아당기면 철문이 열리며 계단을 올라온 좀비들을 뒤로 밀칠 것이다.

뜨드득- 뜩- 끼익-

좀비들의 압력이 점점 거세지자, 창살이 거센 파도처럼 출렁이기 시작했다.

“완수랑 현이! 빨리 뒤로 와!”

두 사람은 쇠창살을 포기하고 쓰러지다시피 계단을 뛰어 올라왔다.

거미줄처럼 엮인 밧줄 때문에 올라오는 데 어려움이 있어 보였다.

전완수와 최현의 욕설을 들으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능이 있는 두 사람도 올라오기 어려운 계단이니, 좀비들은 서로 얽히고설키며 살점이 쓸려나갈 것이다.

떵-!

전완수와 최현이 안전지대까지 올라온 순간, 쇠창살이 무너지며 좀비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밧줄에 걸린 좀비들은 서로를 짓밟으며 계속해서 올라왔다.

앞다투어 앞만 보고 달리는 좀비들.

좀비들의 압력에 밧줄은 더욱 팽팽해지고, 줄에 걸린 좀비들은 계단에 엎어지고 허우적거리며 난장판을 만들었다.

난간과 창틀이 얼마나 버틸지 모르지만, 덕분에 현저하게 느려진 좀비들의 속도.

난 헌팅 나이프를 손에 쥐며 설여원에게 얘기했다.

“내가 당기라고 하면 잡아당겨.”

분부를 내리고 2층 철문 앞으로 향하자, 간신히 올라온 좀비들이 양팔을 휘저으며 내게 달려들었다.

이미 밧줄에 쓸리고 긁히며 살점이 너덜거리고 있었다.

성인 한두 명이 서면 꽉 차는 계단.

내가 물러서지 않는 한 좀비들은 올라올 수 없다.

두 눈 부릅뜨고 좀비들의 안면에 헌팅 나이프를 휘둘렀다.

크어어어어어!!

2층까지 올라온 좀비들이 점점 많아진다.

이에 핏대를 세우며 설여원에게 외쳤다.

“당겨!”

기다렸다는 듯이 설여원과 윤혜리, 김희연이 마이크 선을 잡아당겼다.

굳게 닫혀 있던 2층 철문이 활짝 열리며 계단으로 올라온 좀비들을 쓸어갔다.

간신히 2층까지 올라왔던 좀비들은 다시금 뒤로 나가떨어지며 밧줄에 얽혔다.

난간 밖으로 떨어진 놈들은 1층으로 추락하며 듣기 거북한 파열음을 전해왔다.

애써 태연한 척을 했지만, 난 한걸음 물러서며 마른침을 삼켰다.

‘위험했어.’

철문이 열리는 반경을 잘못 계산했다.

한 걸음만 앞에 있었으면 나도 같이 쓸려갔을 것이다.

보다 안정적인 위치에서, 침착하게 좀비들의 안구와 관자놀이에 헌팅 나이프를 찔러넣었다.

1분, 2분, 3분.

계속되는 싸움에 양팔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변종과의 싸움, 쓰러진 정진영을 끌고 들어온 악력, 쉬지 않고 휘두르는 헌팅 나이프.

운동을 통해 근력과 체력을 많이 되찾았고, 스탯을 통해 강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근력과 체력을 높여도, 다수의 좀비를 상대하는 건 역부족이었다.

모든 관절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크어어어!!

좀비 하나가 비좁은 틈으로 몸을 날리며 달려들었다.

다급히 왼팔로 좀비의 구강을 틀어막았지만, 놈은 왼팔을 감싸고 있는 1.5㎝ 두께의 책과 테이프를 물어뜯으며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관자놀이에 헌팅 나이프를 찔러넣어야 하는데, 한계에 다다른 육체는 놈의 움직임에 따라 나풀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균형을 잃고 쓰러지자, 위에 있던 여자들은 다급히 마이크 선을 잡아당겼다.

철문이 열리며 1층에서 올라오는 좀비들을 차단하자, 이정우가 달려와 내 전신을 짓누르는 좀비의 머리에 창끝을 찔러넣었다.

“교대.”

난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두 팔로 바닥을 짚으며 3층으로 향했다.

계단에 누워 거친 숨을 몰아쉬자, 설여원이 슬쩍 고개를 틀어 내 전신을 살피며 물었다.

“괜찮아? 안 물렸어?”

“괜찮아.”

말은 괜찮다고 했지만, 솔직히 위험했다.

심장은 격하게 뜀박질 치며 생명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불을 지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살피자, 인상을 찌푸린 채 벽에 기댄 정진영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형 괜찮아요?”

정진영이 아니었으면 진즉에 죽었을 것이다.

변종의 치아가 콧잔등까지 다다른 순간, 이대로 끝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으니까.

정진영은 대답 대신 대충 오른손을 저었다.

보아하니 레이첼의 능력으로 상처 부위를 치료하는 것으로 보였다.

정진영의 능력이 레이첼이 아니었다면 위험했을 것이다.

걱정 어린 마음에 정진영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상태를 살폈다.

갈비뼈를 손으로 더듬자,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얘기했다.

“아으으! 아파 인마. 누르지 마.”

“어디요, 여기가 아파요?”

“야, 그림이 좀 이상하다.”

“이 상황에 농담이 나와요?”

“곧 죽어도 웃으면서 가야지.”

정진영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썹은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농담할 기운이 남은 것으로 보아, 죽을 고비는 넘긴 모양이다.

난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멍들어서 아픈 느낌이에요? 아니면 뭐가 찌르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정진영은 오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내게 되물었다.

“간지러우면 뭐냐?”

“아이 씨, 그럼 꾀병이지!”

난 정진영의 팔뚝을 때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떵!! 챙그랑!

그 순간, 압력을 버티지 못한 창틀이 떨어져 나가며 거미줄처럼 엮어둔 밧줄이 힘없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3층에서 숨을 고르고 있던 전완수와 최현은 황급히 2층으로 달려가 이정우를 도왔다.

여자들은 2층 철문이 닫히지 않도록 있는 힘껏 밧줄을 잡아당겼다.

여자들이 밀리는 모습을 보이기에, 나도 밧줄을 붙잡고 온 힘을 다해 잡아당겼다.

어느새 남은 좀비는 10마리 남짓.

이정우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주저앉자, 전완수와 최현은 쏜살같이 남은 좀비들을 정리하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4분 정도 지나자, 원형 계단으로 울려 퍼지던 좀비들의 육성이 잦아들었다.

계단이 비좁은 덕에 막아낼 수 있었다.

모든 좀비를 정리하고, 전완수와 최현은 뒷문을 걸어 잠근 뒤 이곳으로 돌아왔다.

다들 바닥에 주저앉아 서로의 얼굴을 돌아봤다.

습하고, 열기로 가득한 계단으로 거친 숨소리만이 들려왔다.

다들 지치고 피곤한 안색이었지만, 입가로 엷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