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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31화 (31/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31화

소정이란 친구는…… 이미 차디찬 주검으로 전락한 상태였다.

한 차례 심호흡과 함께 나지막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지금이라도 빠질 사람은 빠져.”

설여원과 전완수, 둘 다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무기를 손에 쥐었다.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한 놈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저 둘부터 죽인다.”

분명 철민이라 했지?

형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그놈이 부회장이겠지.

어떻게 요리해야 좋을까.

대놓고 달려들면 팬티만 입고 있는 저놈들로선 도망칠 게 뻔하다.

난 설여원과 전완수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하며 속삭이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내가 2층으로 내려가서 반대편 계단으로 이동할 거야. 일부러 인기척을 내서 저놈들이 도망치게 만들 테니까, 그때 너희가 잡아.”

“저놈들이 너부터 공격할 가능성도 있잖아.”

전완수는 혹시 모를 상황을 생각하며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저놈들이 싸울 거 같아? 도망치기 바쁠걸.”

“좀비를 끌고 오려고?”

“아니, 내가 좀비인 척하면 되잖아.”

전완수는 그제야 아, 하는 탄성을 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뻐근한 어깨를 풀며 얘기했다.

“시작하자.”

* * *

2층으로 내려가 발소리를 죽인 채 반대편 계단으로 이동했다.

기다란 복도를 지나며 각 강의실의 상태를 확인하자, 예상대로 좀비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2층의 모든 문이 잠겨 있었다.

밤새 좀비가 들어와 강의실에 자리 잡을 수도 있으니, 살인귀들이 일찍이 모든 문을 잠가둔 것으로 보였다.

반대편 계단에 도착하자, 남자들의 대화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야, 근데 철민이 형은 언제 내려와?”

“몰라, 옥상에 선영이랑 같이 있는 거 아니야?”

“아직도? 어젯밤부터 둘이 같이 있지 않았나?”

“굶어 뒈져도 하고 싶나 보지.”

“푸하핫! 미친 새끼.”

“그건 그렇고 날씨 봐라. 팬티만 입어도 육수 나온다.”

평범한 병신들의 대화.

어디, 그 웃음이 얼마나 가는지 보자.

가볍게 목을 가다듬으며, 있는 힘껏 목젖을 갈았다.

“크르르르…… 하악, 칵! 카학!”

뒤이어 당혹감이 묻어나는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뭔 소리야.”

“2층에서 들린 거 같은데?”

“조, 좀비? 아직 낮인데?”

두 귀로 듣고도 믿지 못하는 건가?

다시 한번 목젖을 갈아주자, 남자들은 욕설을 내뱉으며 지레 겁먹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다급함이 묻어나는 발소리에 3층을 슬쩍 쳐다보며 놈들의 위치를 살폈다.

쭉쭉 달려서 설여원과 전완수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놈들이 반대편 계단에 다다른 순간, 계단에 숨어 있던 전완수와 설여원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칼자루로 남자들의 이마를 가격하자, 숨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뒤로 고꾸라지는 모습.

설여원은 손에 쥐고 있던 헌팅 나이프를 남자의 목젖에 갖다 대며 나지막이 얘기했다.

“움직이면 그어버린다?”

남자는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두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발소리를 죽인 채 복도를 지나 설여원과 전완수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남자들은 내 모습을 보고 얼빠진 표정을 짓더니, 뒤늦게 속았다는 걸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

난 김희연을 쳐다보며 물었다.

“이놈들 맞습니까?”

뒤에 숨어 있던 김희연은 슬쩍 고개를 내밀더니, 남자들의 얼굴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김희연을 발견한 남자들은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그녀를 노려봤다.

하지만 설여원의 헌팅 나이프가 남자의 목젖을 건드리자, 그는 씩씩거리기만 했다.

난 남자들을 쳐다보며 물었다.

“너희 대장 어디 있어.”

“왜, 왜 이러는 거야. 원하는 게 뭐야.”

원하는 거?

없는데.

바퀴벌레를 보면 인상부터 찌푸리는 게 당연하고, 바퀴벌레라는 이유로 죽이는 법.

내 앞에 있는 남자들은…… 내게 바퀴벌레나 다름없다.

난 김희연을 쳐다보며 물었다.

“김희연 씨, 이놈들이 김희연 씨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습니까?”

“저, 저한테 인육…… 인육 먹이려고 했어요. 그래서 안 먹겠다고 했더니…….”

김희연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감정을 주체하기 버거운지, 두 주먹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파렴치한 짓을 저지른 모양이다.

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김희연에게 물었다.

“김희연 씨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네?”

“이놈들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요.”

“저는…….”

김희연은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더니, 두 남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한이 담긴 목소리로 얘기했다.

“죽여 버리고 싶어요.”

김희연의 대답을 듣고, 난 헌팅 나이프를 고쳐 쥐며 두 남자의 앞으로 다가갔다.

슥-

“잠깐.”

헌팅 나이프를 내지르려는 찰나, 김희연이 말리는 모습을 보였다.

눈꼬리를 치켜뜨며 뒤를 돌아보자, 김희연은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제가, 제가 할게요.”

“…….”

정신을 한 번 놓았던 여자다.

김희연에게 칼을 줘도 괜찮을까?

남자들의 표정을 슬쩍 살피자, 두 사람은 혼비백산한 표정으로 김희연에게 사정하기 시작했다.

“희, 희연아. 우리도 고의로 그런 게 아니야. 살려면, 살려면 어쩔 수 없었어.”

“철민이 형, 철민이 형이 시켜서 그런 거야! 너도 알잖아? 그때 다들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통하지도 않을 변명.

남자들의 반응 덕에 확신이 생겼다.

나이프를 건네주자, 김희연은 양손으로 칼자루를 쥐며 덜덜 떨었다.

제압된 남자들이 발악하자, 설여원의 칼날이 목을 조였다.

꾀죄죄한 목선에 생채기가 생기고, 붉은 선혈이 흘러내렸다.

전완수도 또 다른 남자의 머리칼을 휘어잡으며 카타나를 들이밀었다.

“히익! 히이익!”

“살려줘, 살려줘!”

두 남자는 실성한 사람처럼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소란을 일으켜선 안 된다.

남자들의 입을 틀어막으며 김희연을 쳐다보자, 그녀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남자의 명치에 헌팅 나이프를 찔러넣었다.

“읍! 으읍! 읍!”

두려움에 잠식된 나머지 어설프게 쑤신 모양이다.

남자는 고통을 호소하며 격하게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남자의 목에 칼날을 들이밀고 있던 설여원이 까드득 이를 갈며 그대로 목을 그어버렸다.

설여원의 얼굴로 남자의 선혈이 튀자, 설여원의 동공으로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희연은 손에 쥐고 있던 헌팅 나이프를 떨어뜨리고,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전신을 떨었다.

난 바닥에 떨어진 헌팅 나이프를 재빨리 손에 쥐고, 또 다른 남자의 복부에 칼끝을 찔러넣었다.

좀비를 쑤시는 것과 똑같은 감촉.

하지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이질감이 전신을 더듬었다.

피가…… 뜨겁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뜨거운 선혈에 나 역시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짜르르 울리는 두 팔의 전율에 두 눈을 부릅뜨며 남자의 얼굴을 쳐다봤다.

공포에 질린 남자의 표정이 두 눈에 들어온다.

절망에 사로잡힌 인간의 표정.

죽어가는 사람의 눈빛이 이토록 무서울 줄이야.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칼날을 비틀자, 그는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뱉으며 피를 토했다.

“엄, 마…….”

남자가 죽기 전에 내뱉은 말이었다.

귓바퀴를 맴도는 엄마라는 단어가 뇌리에 박혀 떠나지 않았다.

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충분히 다짐하고, 결의를 굳혔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가 내 심장을 거친 사포로 긁은 것처럼, 마음이 먹먹해졌다.

차마 헌팅 나이프를 뽑지 못하자, 뒤에서 남자의 머리칼을 휘어잡고 있던 전완수가 있는 힘껏 남자의 목을 그었다.

깨끗하던 복도는 순식간에 선혈이 낭자 하는 지옥도로 변하고, 단말마가 울려 퍼진 자리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 누구도 쉽사리 입을 열지 않았다.

* * *

아직 끝나지 않았다.

철민과 선영, 그 외에 다른 여자들을 찾아야 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폐부에 들어찬 거북한 숨을 토하며 일행을 돌아봤다.

“남자는 옥상에 있는 거 같고, 여자들의 위치는 지금부터 찾아야 돼.”

“그걸 어떻게 알아.”

전완수가 되묻기에, 얼굴에 묻은 핏물을 닦으며 대답했다.

“아까 계단에서 들었어.”

“여자들은 어떻게 할 거야? 지금처럼 다 죽일 거야?”

전완수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애써 괜찮은 척을 하고 있지만, 나도 심장이 두근거려서 머릿속이 멍했다.

그러자 설여원이 마른세수를 하며 입을 열었다.

“다 똑같은 놈들인데 뭐가 문제야. 다 죽여.”

설여원의 표정을 살피는 순간, 나도 모르게 두려움이 엄습했다.

눈이…… 이상하다.

이대로 두면 위험할 것 같다.

난 김희연과 설여원을 번갈아 쳐다보며 얘기했다.

“여원아, 네가 김희연 씨 챙겨줘.”

“왜, 내가 못 할 거 같아? 나도 할 수 있어.”

지나치게 휘둥그레진 눈.

경직된 근육.

이성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한계에 다다른 감정은 광기로 변해가고 있었다.

난 계단에 배치된 전신 거울을 가리켰다.

설여원은 내 손가락을 따라 거울을 쳐다보더니, 움찔거리는 모습을 보이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두 눈으로 본인의 현재 모습을 확인한 뒤에야, 본인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설여원은 두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한 표정을 지었다.

설여원과 김희연은 안정이 필요하다.

옆으로 보이는 310호 강의실에 설여원과 김희연을 넣어주고, 전완수와 함께 다시금 복도로 나왔다.

전완수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달싹였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뭔데, 지금 얘기해.”

내게 먼저 묻자, 전완수는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입을 열었다.

“재형아, 이거 맞아?”

“…….”

“우리 잘하고 있는 거 맞지?”

전완수의 안색이 창백하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듯한 표정.

본인이 저지른 행위가 그릇되지 않았다는 믿음이 필요한 것으로 보였다.

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전완수는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를 기이한 표정을 지으며 이마를 짚었다.

뒤이어 얼굴을 붉히더니, 울먹임에 가까운 목소리로 물었다.

“나…… 죽으면 지옥 가겠지? 나도 죽으면…… 지옥에서 저 사람들 다시 만나겠지?”

성격은 불같지만, 전완수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착잡한 마음에 전완수의 시선을 회피했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전완수의 얼굴을 슬쩍 쳐다보자, 그는 무슨 말이든 좋으니 대답해 달라는 표정이었다.

씁쓸한 마음에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얘기했다.

“여기가 지옥이야.”

* * *

설여원과 전완수에게 너무 버거운 짐을 맡긴 것 같다.

전완수도 불안한 모습을 보이기에, 함께하기를 청할 수 없었다.

결국 계단을 내려오는 살인귀가 있으면 잡아달라는 말을 남기고, 나 홀로 4층으로 향했다.

살인귀.

내 입으로 얘기하고도 모순적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사과대에 있는 놈들과 난 뭐가 다른 걸까.

인육을 먹지 않았다는 것?

내 나름대로 합당한 정의를 가지고 행동했다는 것?

모르겠다.

결국, 사람을 죽였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폐부에 찌꺼기가 가득 찬 기분이다.

아무리 심호흡을 반복해도,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죄의식은 씻어낼 수 없었다.

4층에 올라 발소리를 죽인 채 모든 강의실을 확인했다.

복도는 고요하고, 강의실은 전부 비어 있었다.

분명 철민이란 남자와 선영이란 여자는 옥상에 있다고 했으니, 남은 두 명의 여자가 슬슬 모습을 드러내야 하는데…….

설마 죽은 남자들의 단말마를 듣고 옥상으로 대피한 건가?

벌써 대책을 마련해둔 상태면 어쩌지?

생각이 많아질수록 불안하고, 초조했다.

난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훅, 하고 숨을 뱉었다.

인간의 두려움은 머릿속에서 더 거대해진다는 말이 있다.

깊게 생각하지 말자.

아직 5층도 남았으니까.

땀으로 흠뻑 젖은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러 닦고, 칼자루를 말아쥐며 5층으로 향했다.

계단 끝에 도달하자마자 고개만 슬쩍 내밀고 복도의 모습부터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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