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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28화 (28/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8화

그래, 혼자보다는 둘이 좋지.

춤사랑 동아리방의 방문을 열자, 양팔이 절단 난 좀비가 목젖을 갈며 이곳을 쳐다봤다.

카각- 카학!

놈은 기괴하게 머리를 비틀며 어떻게든 내 살점을 물어뜯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양팔이 없는 녀석이기에, 목줄만 확실하게 잡으면 문제없었다.

학생회관 복도의 길이는 대략 50m.

시각부터 후각, 청각, 촉각까지 모조리 파악해야 한다.

난 설여원과 함께 좀비의 목줄을 쥐고 4층으로 향했다.

3층에 있을 이정우와 최현이 놀랄 수도 있기에, 미리 상황설명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설여원은 4층 계단 난간에 밧줄을 묶으며 확실하게 고정됐는지 몇 차례 확인한 뒤, 뒤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설여원과 함께 반대편 복도 끝으로 걸어가 벽 뒤에 몸을 숨겼다.

좀비가 경계심을 풀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윽고 3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목젖을 갈며 발악하던 녀석이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놈의 행동을 파악하기 위해 살짝 고개를 내밀고 계단 쪽을 살피자, 놈은 상체를 좌우로 흔드는 행동을 반복했다.

마치 스트레스가 극심한 동물원의 동물처럼, 반복적으로 상체를 흔든다.

설여원은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물었다.

“뭐하는 거지?”

“먹잇감이 없어서 저러는 거 같은데.”

길거리의 좀비들도 인기척을 느끼기 전에는 저러고 있는 걸까?

좀비들의 생활습성도 알아두면 좋기에, 일단 놈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렇게 5분, 10분, 15분.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지만, 놈은 같은 행동만을 반복했다.

자극이 없으면 온종일 저런 행동을 반복하는 건가?

외부의 자극이 없으면 식물이나 다름없었다.

그어어어…… 어어어어…….

그 순간, 놈은 반복적인 행동을 멈추고 천장을 바라보며 공명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기겁하며 튀어 나갔다.

평범한 좀비를 잡아 온 줄 알았는데, 우리가 잡아 온 건 공명 좀비였다.

* * *

성대를 활짝 열고 일정한 간격으로 허공을 향해 우는 모습.

공명은 좀비의 인지 범위보다 훨씬 멀리까지 퍼져나가기에, 다급히 지면을 박차고 튀어 나가 바닥에 내려둔 쇠파이프로 좀비의 입을 틀어막았다.

들고 온 밧줄로 쇠파이프가 빠지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하고, 모든 감각을 청각에 집중시키며 숨죽인 채 창밖을 살폈다.

2분 정도의 피 말리는 시간이 이어졌다.

다행히 공명을 듣고 몰려드는 좀비는 없었다.

설여원은 헌팅 나이프를 고쳐 쥐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냥 죽이는 게 좋지 않아?”

공명 좀비를 데리고 실험하는 건 상당히 위험부담이 크다.

하지만 그만큼 얻는 것도 많은 법.

공명 좀비의 현재 능력을 파악해야 내가 알고 있는 좀비들의 진화 과정에 맞춰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뒤이어 입이 틀어막힌 좀비는 계단 난간에 얼굴을 비비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반사적으로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저런 사고기능도 가능한 건가?’

평범한 좀비라면 살갗이 찢어지는 한이 있어도 계속해서 발악하거나, 이가 다 빠질 때까지 쇠파이프를 물어뜯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저건…… 아무리 봐도 쇠파이프를 뱉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 * *

밤이 늦도록 실험은 계속되었다.

놈들의 시각은 생각만큼 좋지 않았다.

20m 앞의 적을 분간하는 게 한계였으며, 청각은 30m에 달했다.

청각의 인지 범위를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지만, 고막을 찌르는 듯한 파찰음에 좀비들의 인지 능력이 빨라지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에 울림소리에 가까운 파열음은 한 박자 늦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30m라는 거리도 평범하게 걷는 소리를 인지하는 범위지, 발소리를 죽인 채 이동하면 우리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후각은 안개 밖에서는 거의 작용하지 않았다.

이차적인 실험을 위해 2층으로 내려가 안개 속에서 실험을 이어나갔다.

2층으로 향할 때는 이정우도 함께했다.

이미 좀비들의 정리가 끝난 2층이지만, 안개 속에 들어온 이상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변수는 언제나 존재하니까.

“꼭 안개 속에서 실험을 해야 돼?”

이정우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불필요한 위험을 감수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있어야 추후 안전을 기할 수 있기에, 뜻을 굽히지 않았다.

실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이 있다면, 안개 속의 좀비는 후각의 발달 외에 큰 차이가 없었다.

시야 범위는 여전히 20m가 한계였고, 청각의 범위도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굳이 차이점이 있다면 훨씬 작은 소리까지 잡아내는 모습을 보였고, 후각의 발달로 인해 근방의 모든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안개 밖에서는 거의 없다시피 하던 후각이, 안개 속에서는 30m 거리의 냄새도 맡을 수 있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실험은 여기까지, 보다 섬세한 정보가 필요했다.

“정우 형이랑 여원이는 먼저 올라가서 쉬어요.”

“넌 계속하게?”

“네, 확실하게 하고 싶어서요.”

이정우는 손목시계를 살피며 하품을 했다.

벌써 새벽 세 시가 넘어선 시각.

“너도 올라가서 자. 뭘 더 한다고 그러냐.”

“괜찮아요. 안전하게 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먼저 올라가세요.”

“하…… 그놈의 똥고집을 누가 말려.”

이정우는 먼저 들어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기지개를 켜며 동아리방으로 향했다.

설여원은 게슴츠레 풀린 눈으로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하품과 함께 입을 열었다.

“안 졸려? 내일 하면 안 돼?”

“내일이 없을지도 모르잖아.”

“…….”

설여원은 입맛을 다시며 못마땅한 표정을 짓더니, 턱이 빠지도록 하품을 하며 말을 이었다.

“혼자 있는 건 위험해. 나도 남을게.”

“들어가서 자. 억지 부리지 말고.”

“괜찮아.”

“하품하다 입 찢어지겠다.”

설여원은 졸음을 쫓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였다.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고, 양손으로 뺨도 때리며 두 눈을 껌벅였다.

하지만 도저히 못 참겠는지, 늦지 않게 올라오라는 말을 남기고 5층으로 올라갔다.

난 3층 무도장에 홀로 남아 좀비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생각했다.

바퀴벌레도 위협을 느끼면 IQ가 대폭 증가한다는 말을 얼핏 들은 기억이 있었다.

좀비도 위협을 느끼면 달라지지 않을까?

대부분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난다.

땅바닥에 머리를 박고 위협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짐승이 있는 반면, 살아남기 위해 뛰어난 기지를 발휘하는 짐승도 존재한다.

인간도 마찬가지.

삶을 포기하고 공황에 빠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살아남기 위해 두뇌 회전이 빨라지는 사람이 있다.

난 좀비를 쳐다보며 읊조렸다.

“지금부터 살고 싶으면 최대한 머리를 굴려봐.”

레그홀스터에 넣어둔 헌팅 나이프를 꺼내며, 좀비의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 * *

다음 날 아침, 라꾸라꾸에서 일어난 설여원은 두 눈을 비비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다들 깊은 잠에 빠져든 반면, 박재형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설여원은 부스스한 머리를 손으로 쓸어넘기며 계단으로 향했다.

조심스레 3층으로 향하자, 무도장에 누워 있는 박재형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설여원은 그 모습을 보고 쏟아지던 졸음이 순식간에 달아나는 것을 느꼈다.

사방이 피범벅이었다.

박재형의 옷도 혈흔으로 얼룩져 있었고, 밧줄에 묶여 있던 좀비도 차디찬 주검으로 전락한 상태였다.

문제는 좀비를 묶어둔 밧줄이 풀려 있다는 것.

그리고 무슨 영문인지, 무도장으로 못 보던 시신이 여럿 보였다.

총 4구의 좀비 시신이 무도장에 널브러져 있었다.

‘습격받은 건가?’

불안한 마음에 후다닥 박재형의 곁으로 달려가 그의 상태를 살폈다.

“재형아, 재형아!”

박재형의 뺨을 때리며 부르자,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몇 시야.”

박재형은 피곤한 안색으로 눈살을 찌푸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설여원은 어안이 벙벙한 나머지 박재형의 전신을 눈으로 훑으며 물었다.

“너, 너 여기서 뭐…… 아니 무슨 짓을 한 거야.”

“…….”

“여기 있는 시체들 뭐냐고!”

“다 죽은 놈들이야. 걱정하지 마.”

“뭘 걱정하지 마? 설마 밖에 나가서 좀비들 잡아 온 거야?”

“새벽에 어떻게 혼자 나가. 그 정도 생각은 있어.”

박재형은 입이 찢어지도록 하품을 하더니, 게슴츠레 풀린 눈으로 뒤에 있는 시신을 훑었다.

뒤이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얘기했다.

“1층 계단에 있는 놈들만 데려온 거야.”

설여원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자, 박재형은 투정 부리듯이 얘기했다.

“나 너무 피곤해. 조금만 더 자고 일어나서 얘기하자.”

“……여기서 자겠다고?”

그러거나 말거나, 박재형은 등을 돌리고 누웠다.

설여원은 멍하니 입을 벌린 채, 박재형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 * *

그 뒤로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코끝을 자극하는 비릿한 냄새에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좀비 시체는 깨끗하게 정리된 상태였다.

“일어났냐.”

옆에서 이정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모든 일행이 바닥청소를 하고 있었다.

전완수는 내 얼굴을 보고 혀를 끌끌 차며 구시렁거렸다.

“어떻게 이런 곳에서 꿀잠을 자냐.”

“쟤는 후각이 마비됐나 보지.”

최현도 한 수 거드는 모습을 보였다.

다들 냄새가 역한지, 두건으로 코와 입을 가린 상태였다.

나도 코를 훌쩍이며 검지로 인중을 문질렀다.

설여원은 손에 쥐고 있던 대걸레를 내게 건네며 얘기했다.

“너도 일어나서 일해.”

일어나자마자 청소라니.

하지만 내가 어지른 걸 일행이 치우고 있으니, 군말 없이 대걸레를 손에 쥐었다.

비몽사몽 간에 청소를 시작하고, 대략 30분의 대청소 끝에 3층은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하지만 여전히 가시지 않은 비릿한 피 냄새.

정진영은 2층 매점에서 들고 온 방향제를 구석구석 뿌리더니, 여전히 가시지 않은 악취에 콧잔등을 찌푸리며 방향제를 바닥에 부어버렸다.

“재형아.”

등 뒤로 설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설여원은 일행을 가리키며 얘기했다.

“어제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제 말해줬으면 하는데?”

군말 없이 모든 일행을 불렀다.

다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내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역시나 이정우였다.

“여원이 얘기 들어보니 뭐 좀 알아낸 모양이던데, 어떻게 된 거야?”

어디서부터 어떻게 알려줘야 좋을까.

머릿속으로 이야기를 정리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시각, 청각, 후각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타격 부위에 따른 좀비의 사망 시간도 얘기해 주었다.

관자놀이와 안구를 공격하면 즉사하지만, 목을 베거나 심장을 찌르면 20초가량 숨이 붙어 있는 모습을 보였다.

다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안구와 관자놀이를 공격해서 일격에 처리하는 게 좋다.

또한 좀비의 사고기능에 관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좀비들은 위협을 느끼면 사고기능이 활성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정우는 그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일반 좀비도 공명 좀비처럼 변한다는 거야?”

“네, 다만 바로 활성화되는 게 아니고 위협을 느낀 상태에서 시간이 꽤 지나야 돼요.”

그러자 옆에 있던 전완수가 손가락을 튕기며 얘기했다.

“저수지에서 우리가 본 것처럼?”

“맞아, 다짜고짜 달려들던 놈들이 어느 순간 길목을 막고 달려들지 않은 것도 지형을 인지해서 그런 거야.”

위협을 느낀 좀비들은 물체에 대한 인식, 타개책에 대한 기능이 활성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도구를 사용할 정도로 발달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본인에게 해가 되는지 아닌지, 파악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정진영은 의구심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라스트아크에서도 그랬나?”

“아니요. 게임에서는 일반 좀비와 공명 좀비, 대장 좀비의 구분이 확실했죠.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프로그래밍 된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니까.”

“게임에서는 좀비들의 진화에 필요한 조건이 뭐였지?”

“비나 눈이 와야 진화했죠. 하지만 지금은 조건을 따지지 않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물론 비가 오면 더 빠르게 진화할 가능성도 있고요.”

덤덤하게 얘기하자, 다들 암담한 표정을 지으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라스트아크를 플레이할 때는 이러한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공명이나 청각의 자극이나, 게임에서는 차이점을 느끼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섬세한 차이점이 명확하게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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