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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24화 (24/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4화

전완수는 공대 주차장에 들어서자마자 주차된 차량을 엄폐물로 이용했다.

인적이 드문 길로 왔지만, 곳곳에 지뢰처럼 깔린 좀비들로 인해 전투는 피할 수 없었다.

24시간 불이 들어오는 공대.

밤늦게까지 과제에 시달리는 학생들이 강의실과 실습실에 남아 있을 것이다.

설여원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저 멀리 보이는 공대 건물을 응시했다.

“실습실 어디야?”

“건물 맞은편으로 넘어가야 돼. 반대편에 논밭을 마주보는 쪽에 실습실이 있어.”

전완수의 설명에 옆에 있던 정진영은 눈살을 찌푸리며 혼잣말을 읊조렸다.

“쓸데없이 깊은 곳에 있네.”

주차장으로 좀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전완수는 몇 차례 숨을 가다듬으며 정진영과 설여원에게 얘기했다.

“따라오세요. 창가 잘 살피시고.”

그들은 주차장을 크게 돌아 우측 비포장도로로 향했다.

학교 끝에 지어진 공대.

배후에 산이 위치하고, 측면으로 가파른 내리막과 함께 농경지가 위치한다.

비포장도로를 따라 한참을 들어가자, 그들의 앞으로 커다란 굴착기가 나타났다.

정진영은 굴착기를 보고 전완수의 팔을 잡았다.

“야, 여기 공사 중 아니야? 길 없는 거 같은데.”

그러자 전완수는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실습할 때 쓰는 굴착기에요.”

“저걸로 무슨 실습을 한다고 그래?”

“분해하죠.”

“저걸?”

정진영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전완수는 싱겁게 웃으며 대답했다.

“바퀴 달린 건 다 분해합니다.”

이윽고 논밭을 마주보는 쪽으로 정비소처럼 생긴 실습실이 나타났다.

발소리를 죽인 채 실습실로 다가서자, 곳곳에서 좀비들의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전완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반쯤 내려온 셔터를 보고 정진영에게 얘기했다.

“저것만 내리면 돼요.”

“저걸 내리면 우린 어떻게 들어가?”

“당연히 좀비들부터 처리하자는 거죠. 셔터 내리는 소리에 실습실에 있는 좀비들이 이쪽으로 모여들 거예요.”

“살짝만 열어서 좀비들이 기어나오도록 만들자, 이거야?”

“네, 두더지 잡기처럼.”

“주변에 다른 좀비는? 바깥에 좀비들은 없어?”

“눈에 보이는 놈은 없어요.”

안개 속에서 시야 확보가 가능한 사람이 둘이나 있으니, 정진영은 손도끼를 말아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완수는 들고 있던 카타나를 칼집을 넣으며 얘기했다.

“제가 내릴 테니까, 좀비들 달려들면 형이랑 여원이랑 잡아줘요.”

두 사람은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완수는 손가락으로 접으며 하나, 둘, 셋을 세고 쏜살같이 셔터 앞으로 달려갔다.

곧 2m 높이에 있는 셔터를 붙잡고, 있는 힘껏 밑으로 내렸다.

크어어어어어!!

인기척을 느낀 좀비들이 달려들었다.

전완수는 두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뜨며 이 악물고 셔터를 내렸다.

하지만 한 달 동안 고정되어 있던 셔터는 가슴높이에서 내려가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습기를 머금은 철은 녹이 슬어 뻑뻑해진 상태였다.

정진영은 코앞으로 다가온 좀비에게 손도끼를 휘두르며 외쳤다.

“내려!”

“안 내려가요!”

전완수가 버둥거리자, 상황을 지켜보던 설여원이 셔터의 우측 모서리를 칼자루로 내려치는 모습을 보였다.

텅-!

그러자 고막을 울리는 파열음과 함께 셔터가 내려갔다.

설여원은 자세를 고쳐잡고 눈앞의 좀비에게 헌팅 나이프를 휘두르며 얘기했다.

“셔터가 기울었으니까 안 내려가지.”

비대칭을 이루고 있는 셔터를 힘으로 내리려고 하니, 더욱 어긋나기만 하고 내려가지 않은 것이었다.

무릎 높이까지 셔터를 내리자, 실습실에 있던 좀비들은 하단의 빛을 따라 기어 나오는 모습을 보였다.

세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기어 나오는 좀비들의 정수리에 날붙이를 찔러넣었다.

* * *

크어어어어!!

카하아아악!!

도서관 2층 열람실의 입구를 틀어막은 채 광기에 빠진 좀비들을 쉴 새 없이 베었다.

지긋지긋하게 몰려드는 좀비들.

2층 열람실에 좀비들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3층까지 올라가려고 했지만,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맞닥뜨렸다.

계단 보수공사.

결국 열람실에 있는 좀비들부터 처리하고, 급히 책상과 진열대를 이용해 열람실 출입구를 막았다.

하지만 1층에서부터 올라오는 좀비들은 도저히 혼자서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동해야 되나?

어디로?

3층은 올라갈 수 없고, 열람실의 출입구는 하나뿐이다.

꼬리에 꼬리는 무는 잡념들이 머릿속을 배회했다.

어떻게든 들어온 길로 다시 나가야 하는데, 놈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죽여도 죽여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더 지체하면 도망칠 체력조차 남지 않을 것이다.

크르르르…… 카각!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등 뒤에서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열람실 내부에 있는 좀비들은 다 죽인 줄 알았는데, 열람실과 붙어 있는 자료실에서 좀비들이 접근하고 있었다.

하나하나 상대할 시간이 없다.

저것들을 처리하는 시간보다, 열람실의 문을 부수고 좀비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게 빠를 것이다.

살길을 도모하기 위해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찰나, 우측으로 활짝 열린 창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좋든 싫든, 내게 선택지는 없었다.

“젠장…….”

더러운 세상, 내 명줄이 얼마나 되는지 보자.

한때 체육학원 에이스라 불리지 않았는가?

심지어 최근 일주일은 하루 세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으며 틈만 나면 운동했다.

스탯으로 근력과 체력도 높였으니, 체교를 준비하던 시절보다 신체능력이 증가했을 것이다.

활짝 열린 창문을 바라보며 머릿속으로 교내지형을 떠올렸다.

열람실의 우측 창문, 저곳으로 나가면 곧장 테니스장과 연결된다.

테니스장에 있던 좀비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으니, 테니스장은 깨끗하게 비워졌겠지?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켜며 창문을 향해 박차를 가했다.

크어어어어!

간발의 차로 내게 달려드는 좀비들의 손길을 회피하고, 창틀에 박차를 가하며 자욱한 안개 속으로 뛰어들었다.

전신이 떠오르는 부유감과 함께, 자욱한 안개가 두 눈에 들어왔다.

안개 때문에 지면과의 거리를 가늠할 수 없었다.

찰나의 시간이 엿가락처럼 늘어지고, 좁혀지는 안개와의 거리가 느린 영상처럼 눈에 들어왔다.

모든 것을 감에 맡겨야 한다.

‘지금!’

입술을 질끈 깨물며 지면에 발이 닿자마자 몸을 굴렸다.

“큭!”

구르는 시기가 살짝 늦었다.

다행히 무릎에 무리는 없었지만, 발목으로 저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부러지진 않았지만, 인대가 놀란 것 같다.

크어어어어어!!

창틀로 모여든 좀비들은 이곳을 쳐다보며 목젖을 갈기 시작했다.

공명 좀비 특유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은 것으로 보아, 열람실에 공명 좀비는 없는 모양이다.

몇 놈이 창틀에 몸을 욱여넣으며 내 뒤를 쫓지만, 불안정한 자세로 떨어지며 발목과 팔, 목이 꺾이는 모습을 보였다.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샛길로 이동했다.

지금은 1층만 안개가 차오른 시간이기에, 2층 열람실에 들어찬 놈들은 모든 감각이 무뎌진 상태일 것이다.

이번엔 내가 안개를 이용할 차례다.

욱신거리는 오른발을 절며 걸음을 재촉했다.

* * *

“후…… 끝인가?”

정진영은 폐부에 들어찬 탁한 숨을 내뱉으며 전완수에게 물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던 전완수는 오른손을 휘휘 저으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설여원은 좀비들의 혈흔으로 얼룩진 셔터를 짚으며 물었다.

“몇 마리나 죽였죠?”

“하나, 둘, 셋…… 열일곱 마리.”

세 사람은 차디찬 주검으로 전락한 좀비들의 관자놀이를 다시 한번 꿰뚫은 뒤, 찌그러진 셔터를 들어 올리며 실내로 들어섰다.

아직 대낮이지만 실내는 칠흑처럼 어두웠다.

설여원과 전완수는 각자의 휴대폰을 꺼내 들고 손전등을 켰다.

실내를 둘러보던 설여원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학교에서 밀어주는 과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네.”

1층을 전부 차지하는 거대한 넓이의 실습실.

층고도 높아서 실습실 내부에 버스도 주차되어 있었다.

또한 실습실의 구석으로 지친 학생들을 위한 휴게공간 및 회의실이 위치해 있었다.

정진영도 실습실을 둘러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우리 학교에 이런 건물이 있었어?”

전완수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저희 과가 좀 잘 나가죠?”

“대박이네.”

버스와 트럭, 승합차와 소형차, 심지어 독일에서 수입해 온 차량도 여럿 있었다.

전완수는 카타나를 손에 쥐고 실습실의 구석구석을 살피며 좀비의 유무부터 살폈다.

안전하다는 걸 확인한 뒤, 정진영과 설여원의 곁으로 돌아왔다.

“저는 발전기부터 확인할게요.”

“여기 전기는 들어와?”

“여기도 태양광 패널 설치된 건물 중 하나에요.”

학교에는 총 8개의 건물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었고, 그중 하나가 이곳이었다.

온종일 부수고 고치고 연구하는 곳이다 보니, 전력 사용량이 어마어마했다.

설여원은 차량의 앞 범퍼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더니, 정진영을 쳐다보며 물었다.

“진영이 오빠.”

“어 왜.”

“재형이는 어쩌죠?”

박재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정진영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자 전완수가 뒤를 돌아보며 얘기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재형이라면 괜찮아.”

“그걸 어떻게 알아.”

“친구지만 형 같은 녀석이니까. 재형이랑 있으면 항상 든든하거든. 머리도 좋고, 임기응변도 좋고, 몸도 좋고.”

“……불안해.”

설여원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자, 전완수는 눈썹을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감성적인 것 같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누구보다 이성적인 녀석이야. 무턱대고 움직이는 것 같아도 항상 타개책을 생각해 두는 녀석이라고.”

“그 이성적인 성격이 독이 될 때도 있으니 이러지.”

본관에서 봤던 박재형의 모습이 설여원의 기억 속에서 잊히지 않았다.

좀비에게 종아리를 물렸을 때, 웬만한 사람이라면 공황에 빠져 미쳐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박재형은 저층의 좀비들부터 확인하고, 스스로 자결하려 한 사람이다.

상황에 맞춰 다음 계획을 떠올리고, 뛰어난 임기응변을 지닌 사람.

그게 독이 될 때도 있는 사람.

설여원은 한숨을 내쉬며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부디 박재형이 안전하기를.

살아서 만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 * *

전완수가 차량을 손보는 동안 설여원과 정진영은 건물 내부의 좀비들을 정리했다.

헌팅 나이프와 손도끼.

좁은 공간에서 효율적인 무기였다.

두 사람은 강의실로 통하는 계단을 책상과 의자로 틀어막고, 계단 난간을 두드리며 좀비들을 불러모았다.

2층 복도에 있던 좀비들은 소리를 듣고 모여들었다.

대략 6마리.

설여원과 정진영은 대화 한마디 없이 좀비들을 처리한 뒤, 2층의 모든 강의실을 차근차근 확인했다.

2층을 확보한 뒤, 설여원은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얘기했다.

“책상이랑 의자 다시 가져오죠.”

“3층부터는 좀비가 별로 없을 거야. 안개가 안 퍼지니까.”

“……아무런 대비책도 없이 올라가서 죽이자고요?”

“그게 빠르지 않겠어? 빨리 정리하고 완수 도와야지.”

“아니요. 재형이가 그랬어요. 좀비들의 청각은 그리 뛰어나지 않다고. 아마 3층 복도에도 좀비들이 남아 있을 거예요.”

“재형이는 그런 것도 알아?”

“매점 탈환한 뒤에 재형이가 얘기해 줬어요. 좀비들 청각이 생각보다 많이 나쁜 것 같다고. 물론 확실한 건 아니니 너무 믿지 말라고 하면서.”

설여원은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박재형은 설여원이 동아리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도록 여러모로 챙겨주었다.

토론 거리가 생기면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설여원을 불러 계속해서 말을 걸어주었고, 조를 나눌 때도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다.

설여원이 일행의 대표 격인 이정우를 어렵게 생각하는 걸 알고 B팀에 넣어주었다.

박재형은 언제나 판단이 빠르고, 내색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다소 차갑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친해지고 말을 섞어보면 누구보다 인간미 넘치고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 박재형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설여원은 세차게 머리를 흔들며 불안한 마음을 떨쳐냈다.

박재형도 박재형이지만, 지금은 건물 정리가 우선.

감정에 휘둘리지 말자고 다짐하며 헌팅 나이프를 고쳐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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