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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22화 (22/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2화

“다른 애들은?”

이정우는 얼굴에 묻은 혈흔을 닦으며 물었다.

그래,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매점으로 들어간 전완수와 최현, 윤혜리의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따라오라는 손짓과 함께 한발 앞서 매점으로 향했다.

매점의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가자, 바닥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는 전완수와 최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매점에 있는 시신은 총 다섯 구.

매점 내에도 좀비가 있었던 모양이다.

동기들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다들 괜찮아?”

전완수는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을 닦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힘겨웠지만, 부상자 없이 매점을 탈환했다.

최현은 매점에 있는 식량을 쳐다보더니, 코를 훌쩍이며 얘기했다.

“이거 봐. 먹을 게 이렇게 많아.”

거의 울먹임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밖에 진열된 초콜릿은 녹았지만, 과자나 통조림 등은 지금도 먹을 수 있었다.

또한 전력이 들어오기에, 냉동식품도 온전히 보존된 것으로 보였다.

설여원은 입을 떡 벌린 채 매점에 있는 식량을 살피더니, 곧장 아이스크림 코너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멜론 맛 아이스크림을 손에 쥐더니,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허겁지겁 봉지를 뜯었다.

“와…… 와! 대박!”

어린아이처럼 화색을 띠며 아이스크림을 입에 넣었다.

찌는 듯한 더위 속에 선풍기도 없이 지내왔다.

아이스크림은 가뭄에 내린 단비와도 같았다.

그러자 모든 일행이 아이스크림 박스로 달려가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뜯었다.

이정우와 정진영은 동생들의 모습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며 싱겁게 웃었다.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계산대에 기대었다.

한동안 식량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다들 아이스크림도 좋지만 식량부터 챙기자.”

싱겁게 웃으며 일행에게 얘기하자, 너도나도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였다.

뒤이어 설여원이 내 곁으로 다가오더니, 멜론 맛 아이스크림 하나를 건네주었다.

딱딱하게 얼어 있는 아이스크림을 보고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조금 있다 먹을게.”

“즐길 땐 즐겨.”

“…….”

“뒤에 있는 오빠들! 두 분도 아이스크림부터 드세요!”

설여원은 내게 아이스크림을 건네준 뒤, 이정우와 정진영에게도 아이스크림을 건네주었다.

설여원의 해맑은 모습에 반사적으로 실웃음이 터졌다.

* * *

매점에 있는 식량을 털어서 동아리방으로 옮겼다.

동아리방 냉장고는 금세 냉동식품으로 가득 차고, 과자와 마른안주, 통조림, 초코바 등은 책상과 서랍 위에 수북이 쌓였다.

몇 번이나 2층과 5층을 오가며 물건을 옮겼지만, 반도 옮기지 못했다.

특히 냉동식품의 경우, 동아리방의 냉장고가 작아서 대부분을 매점에 보관해야 했다.

정진영은 들고 있던 수첩에 물품 목록을 정리하며 얘기했다.

“이 정도면 여유롭게 먹어도 한 달은 버티겠는데?”

여유로운 식사라…….

배불리 먹은 게 언제가 마지막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식량이 풍족해졌다고 해서 여유롭게 식사해도 되는 걸까?

설여원은 수북하게 쌓인 식량을 쳐다보며 내게 물었다.

“이제 식량도 확보했으니, 슬슬 계획부터 짜야 하지 않을까?”

모두의 시선이 설여원에게 향하자,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결국 엔딩까지 달려야 좀비들이 사라지는 거 아니에요?”

“그건 그렇지. 혹시 세워둔 계획 있어?

이정우가 묻자, 설여원은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다.

“저랑 재형이는 서울에 있는 아크로 갈 생각이에요.”

“서울? 부산에 있는 아크로 가는 게 빠르지 않아?”

이정우의 물음에 설여원은 머리를 긁적이며 내 얼굴을 쳐다봤다.

난 입맛을 다시며 얘기했다.

“퀘스트 때문에 안 돼요.”

“무슨 퀘스트?”

“저랑 여원한테 있는 S급 퀘스트요. 다들 본가를 확인하라는 퀘스트 아니에요?”

“아.”

이정우는 구레나룻을 긁적이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최현과 전완수는 경산, 이정우는 구미, 정진영과 윤혜리의 고향은 포항이었다.

머릿속으로 대한민국의 지리를 그리며 최적의 루트를 떠올렸다.

경산에서 구미로, 그 뒤에 포항, 마지막에 서울로 이동하는 게 가장 빠른 길인가?

안전가옥도 확보했고, 플레이어도 6명이 됐으니 이제 남은 건…….

‘차량 개조.’

첫 번째 에피소드 안전가옥을 클리어하기 전에 차량 개조를 통해 좀비카를 제작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필히 사망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로즈도 없는 상황에 과연 차량 개조가 가능할까?

그러다 문득, 완수의 과가 머릿속을 스쳤다.

“완수야.”

“응?”

“너 자동차공학부 아니야?”

“맞아, 왜?”

난 손가락을 튕기며 완수에게 물었다.

“너 차량 개조도 할 수 있어?”

“재료만 있으면 가능하지. 어릴 때부터 아버지 밑에서 보고 배운 게 차량 뜯어고치는 건데.”

그러자 의자에 앉아 있던 이정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로즈 없이 에피소드 진행하자는 거야?”

“교내에 로즈가 없을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차라리 에피소드 진행하면서 찾는 게 빠를 수도 있어요.”

“이 근처에 차량 개조할 수 있는 장소는 있고?”

이정우의 물음에 전완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얘기했다.

“차량이야 뭐, 자동차공학부 실습실에서 개조하면 돼요.”

“네가 할 수 있는 거 맞아? 달리다가 바퀴 빠지고 그러는 거 아니야?”

“걱정하지 마세요. 저 과탑이에요. 아직 2학년인데 교수님이 석사 생각 없냐고 묻는걸요?”

“안개 때문에 시야 확보도 안 되는데 차를 타고 가는 게 가능할까?”

“저 가브리엘이잖아요.”

전완수는 의기양양하게 얘기했다.

하긴, 안개 속에서 시야 확보가 가능한 전완수가 가장 앞에서 달리고, 다른 차량이 뒤따라 이동한다면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것이다.

이정우는 팔짱을 낀 채 한참이나 고심에 잠긴 모습을 보이더니, 결국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좋아, 하지만 지금 상태로 이동하는 건 위험해. 다들 느꼈겠지만, 지금 체력으로는 살아남기 어려워.”

이정우의 말에 다들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일행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럼 여기서 정하죠. 지금 당장 실습실로 이동하거나, 보유 중인 식량을 맘껏 먹으며 운동을 통해 최소한의 체력을 보강하고 움직이거나.”

이 두 가지 방안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전완수는 당연하다는 듯이 얘기했다.

“몸부터 만들어야지. 지금은 5분만 뛰어도 죽겠는데.”

전완수는 맘껏 먹고 운동을 통해 체력을 길러야 한다고 했다.

나도 전완수의 의견에 동의했다.

에덤에게 존재하는 근력과 체력 스탯.

게임에서도 운동을 통해 수치를 높일 수 있었다.

체력이 국력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힘을 기르지 않으면 언젠가 신체가 따라주지 않아서 삶을 포기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또한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육체에서 나오는 법이니까.

정진영과 설여원이 중립을 유지하자, 모두의 시선은 이정우에게 쏠렸다.

이정우는 가만히 턱을 매만지며 골똘히 생각하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먹자. 먹고 확실하게 운동하자.”

“형, 만약의 상황은 대비해야죠. 식량이 다 떨어지거나, 운동 끝나고 지쳐 있는데 좀비들이 몰려들면 어쩌려고요?”

최현이 반박하자, 이정우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만약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만에 하나 태양광 패널이 고장 나면 냉장고에 있는 식품은 전부 상할 거야. 아끼다 똥 되는 거라고. 그리고 체력? 0에서 더 떨어질 게 어디 있어.”

“…….”

“아직 첫 번째 에피소드야. 나중에는 기회 자체가 없어. 그러니 조금이라도 여유 있을 때 어떻게든 체력을 길러야 돼.”

이정우의 말에 가만히 있던 정진영도 거들었다.

“듣고 보니 맞네. 나도 운동에 한 표.”

정진영까지 거들자, 최현은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

안건이 얼추 정리되자, 설여원은 전완수를 쳐다보며 물었다.

“체력을 기르는 건 좋아. 하지만 차량 개조가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구미랑 포항이면 거리가 꽤 되잖아, 차량 개조하면 연비는 포기해야 할 거고.”

“대한민국에 널린 게 주유소야.”

“기름이 남아 있을 가능성은?”

“없을 가능성이 더 낮다고 생각하는데?”

전완수가 싱겁게 웃으며 대답하자, 설여원은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정리하자면…… 이 동네를 확인한 뒤에 구미로 이동하고, 그 뒤에 포항, 마지막에 서울로 간다는 거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정우가 입을 열었다.

“그럼 식량 다 떨어질 때까지 체력부터 기르자.”

“그사이에 차량 개조도 진행해야 돼요. 필요한 물품도 계속 보완하고.”

전완수의 추가 설명에 모두가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로즈의 능력을 이용하면 금방이지만, 로즈가 없으니 차량 개조에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난 전완수를 쳐다보며 물었다.

“자동차공학부 실습실은 어디 있어?”

“당연히 공대에 있지.”

“공대에서도 제일 끝에 있는 건물이 자동차공학부 건물인가?

“맞아. 여기서 거의 1㎞는 떨어진 거리야.”

“그럼 차량 개조는 일주일 뒤로 미루고, 지금은 휴식 겸 체력부터. 다들 어제오늘 무리해서 지쳤으니.”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꾸준히 운동한 사람에게 일주일은 큰 영향이 없지만, 지금처럼 숨만 쉬고 산 사람들은 일주일만 운동해도 눈에 보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한때 체교를 준비하던 내게, 식량만 충분하다면 몸 만드는 건 일도 아니었다.

휴식 겸 준비 기간.

좀비를 처리하는 데 사용한 운동기구부터 정리해야겠다.

계단에서 무턱대고 굴렸으니 망가진 기구도 있을 것이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준비해야 한다.

* * *

목표가 생긴 뒤로 다들 활력을 되찾았다.

2층을 탈환하면서 얻은 자신감, 풍족한 식량에서 오는 안도감, 나아갈 방향이 생겼다는 목표의식, 서로에게 짐이 되기 싫은 마음까지.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노력했다.

우린 효율을 높이기 위해 팀을 나누어 행동했다.

이정우와 최현, 윤혜리가 A팀.

정진영과 나, 설여원, 전완수가 B팀이 되었다.

다 같이 아침을 먹고 A팀이 운동을 시작하면 B팀이 보초를 서고, 점심을 먹은 뒤에 B팀이 운동을 시작하면 A팀이 보초를 선다.

저녁을 먹은 뒤에는 공대까지 가기 위한 최적의 길을 논의하거나, 각자 휴식시간을 가졌다.

꾸준한 운동을 통해 내 스탯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스탯: 근력 6(+2), 체력 6(+5), 반사 신경 5, 동체 시력 5, 정신력 10

기존 스탯에서 근력과 체력이 한 단계씩 증가했다.

그렇게 약속한 일주일이 지나고, 이정우는 책상 위에 커다란 지도를 펼치며 일행을 불러모았다.

설여원이 만든 지도.

지도 덕분에 최적의 루트를 짜는 것도 수월했다.

이정우는 책상 앞에 모인 일행을 가볍게 훑으며 얘기했다.

“다들 살이 좀 붙었네.”

“살이라뇨. 근육입니다.”

전완수의 장난기 가득한 말에 다들 싱겁게 웃었다.

몸과 마음이 단련되고, 망해버린 세상에 서서히 적응하면서 농담할 여유도 생겼다.

이정우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지도를 가리켰다.

“내일 아침에 여기로 움직일 거야.”

“이제 실습실로 가는 거예요?”

“일주일 동안 다들 쉬었으니, 괜찮지?”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난 가만히 팔짱을 끼며 물었다.

“다 같이 이동하나요?”

“그 부분을 얘기하려고 부른 거야. 개인적으로 A팀이든 B팀이든, 한쪽만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교내에 우리 말고 다른 생존자가 있을 확률도 있으니까.”

“안개가 퍼진지 한 달이나 지났는데 살아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혹시 모를 일이지. 그리고 너희가 얘기한 대장 좀비도 마음에 걸리고.”

설여원과 내가 기숙사 매점에서 봤던 남자들.

설여원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대장 좀비와 접점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매점에 있던 남자들은 설여원을 아지트로 안내하지 않고 대장 좀비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으니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대장 좀비는 이성을 지니고 있기에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이정우는 볼펜을 손에 쥐며 지도에 줄을 긋기 시작했다.

학생회관 뒷문의 샛길을 통해 공대로 들어가는 루트.

좌측으로 도서관 뒷문과 테니스장, 족구장이 위치하고 우측으로 경사가 가파른 숲이 위치한다.

이정우는 족구장 너머의 공터를 볼펜으로 톡톡 치며 얘기했다.

“족구장을 지나면 여기, 주차장으로 쓰이는 공터가 나올 거야. 원래 식당이 있던 곳인데 올 초에 건물을 허물고 방치된 상태야. 여기서부터 안전해.”

“공터 뒤에는 뭐가 있어요?”

“아무것도 없어. 공대로 이어지는 뒷길이야. 바람길이라고 부르는 게 가장 좋겠지.”

“그럼 여기, 공터 뒤로는 전부 나무에요?”

“300m 정도 가로수만 심어진 길이야. 그 뒤에 공대 주차장이 나오고.”

이정우는 지도를 유심히 살피더니, 가만히 턱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문제는 공터까지 가는 길인데…… 안전하게 이동하는 방법 없을까?”

“도서관 뒷문 때문에 그러는 거죠?”

“어, 도서관 뒤편에도 좀비들이 바글거릴 텐데.”

“뭉쳐 있진 않을 거예요. 좀비들도 안개 속에서는 정처 없이 돌아다니거든요.”

한창 계획을 짜고 있는데, 창가에 앉아 있던 윤혜리가 이정우를 불렸다.

“오빠, 정우 오빠!”

“왜.”

이정우가 다가가자, 윤혜리는 안절부절못하며 창밖을 가리켰다.

“저기 좀 보셔야 할 거 같아요.”

어딘지 모르게 다급해 보이는 윤혜리.

윤혜리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자, 대략 700m 정도 떨어진 건물의 옥상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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