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11화
퍽!!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좀비의 안면이 내려앉았다.
동시에 좌측에 있던 좀비의 안구를 향해 일직선으로 멍키스패너를 내질렀다.
안구가 꿰뚫린 좀비의 상체가 뒤로 젖혀진다.
균형을 잃은 녀석이 발악하기 전에, 그대로 밀어붙여 지면에 내려찍었다.
카하아악!
우측에 있던 또 다른 좀비가 내 어깻죽지를 향해 양팔을 뻗기에, 쇠파이프를 휘둘러 놈의 하관을 가격했다.
하관이 어긋나는 소리와 함께 방향감을 상실한 좀비의 양팔이 허공을 휘저었다.
쓰러진 좀비의 안구에서 멍키스패너를 뽑으며 하관이 박살 난 좀비의 관자놀이를 가격했다.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은 건가?
멍키스패너가 두개골을 뚫고 들어가는 감촉이 느껴지지 않았다.
재빨리 오른팔을 치켜들며 쇠파이프로 정수리를 찍었다.
‘네 마리라고 했는데?’
한 놈이 보이지 않았다.
카학!
그와 동시에 등 뒤로 느껴지는 질척한 울음소리.
가깝다.
세차게 고개를 돌리는 찰나, 좀비의 양팔이 내 어깨를 붙잡았다.
다급히 오른발을 뒤로 빼며 넘어지지 않도록 무게중심을 잡았지만, 무기를 휘두르기엔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
살점과 핏물로 점철된 싯누런 치아가 두 눈에 들어온다.
오른손으로 좀비의 멱살을 잡으며 내게 붙지 못하도록 저지했다.
뒤이어 한발 늦게 도착한 설여원이 뾰족한 무언가로 좀비의 몸을 꿰뚫었다.
좀비의 목젖을 뚫고 나오는 십자드라이버.
쇠파이프만 들고 있는 줄 알았는데, 설여원에게도 뾰족한 무기가 있었다.
좀비는 전신을 파르르 떨며 지면에 무릎을 꿇었다.
경추가 끊어졌으니, 어깨 밑으로 힘이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확실하게 처리하기 위해 멍키스패너로 놈의 안구를 휘저었다.
눈앞에 있던 좀비가 종이 인형처럼 쓰러지자, 그 너머로 양손을 덜덜 떠는 설여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설여원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괜찮아?”
얼굴에 묻은 혈흔을 닦으며 묻자, 설여원은 화등잔만 해진 눈으로 내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봤다.
뒤이어 고개를 끄덕이며 어어, 하는 추임새를 붙였다.
괜찮은 척 애를 쓰지만,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좀비를 죽이는 게 익숙하지 않은 건가?
약해 보이지 않으려고 무리하는 것 같은데.
가방에 넣어둔 물을 꺼내어 설여원에게 건네주었다.
설여원은 내 손에 있는 물병을 조심스레 받아들더니, 숨도 쉬지 않고 벌컥벌컥 마셨다.
물병을 쥐고 있는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설여원을 식당까지 데려가는 건 위험할 것 같다.
“밖에서 망보고 있어. 식당은 나 혼자 확인하고 올게.”
“괜찮아.”
“안 괜찮아 보여서 그래.”
“…….”
설여원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뒤처지지 않으려는 마음은 좋지만,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나 역시 바이러스가 퍼진 초기에는 감정 기복이 심했고, 실수하는 일이 많았으니까.
결국 설여원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리의 좀비를 죽인 뒤로 미대 식당에 도착할 때까지 좀비는 발견되지 않았다.
미대 식당의 유리문을 통해 내부의 모습을 살피고, 설여원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네 말대로 좀비들이 아직 샛길에 뭉쳐 있는 거 같아. 여긴 안전하네.”
굳이 이런 말을 꺼낼 필요는 없지만, 설여원의 기운을 북돋아 줄 필요가 있었다.
잘했다고, 네 말이 맞다고, 칭찬해 줄 필요가 있었다.
설여원은 입술을 앙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기다려. 좀비들 나타나면 바로 얘기하고.”
“알겠어.”
설여원을 밖에 세워두고, 심호흡과 함께 식당 내부로 들어섰다.
안개는 실내까지 들어찬 상태였다.
차단기가 내려갔는지 형광등은 들어오지 않았고, 은은한 햇살이 들어오지만 물체를 분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긴장감으로 인해 입이 바싹바싹 마른다.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를 압박감 때문인지, 아니면 습한 공기 때문인지, 숨도 거칠어졌다.
없던 폐소 공포증이 생기는 기분.
한 발, 한 발, 신중하게 걸음을 뗐다.
조리실에 가까워지자,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태양광 패널로는 냉동실까지 돌릴 여력이 안 되는 건가?
냄새만 맡았을 뿐인데, 식량이 남아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사라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잔뜩 수축되어 있던 동공이 서서히 이완되며 어둠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보다 선명해진 시야로 조리실을 확인하려는 순간.
땡그랑-
묘한 파찰음이 들려왔다.
황급히 상체를 낮추며 소리의 근원지를 살피자, 조리실 내부를 서성이는 좀비를 발견할 수 있었다.
고작 5m 거리.
크르르르르…….
물건을 떨어뜨린 좀비는 상체를 좌우로 흔들며 목젖을 갈았다.
카하악! 카학!
그러자 조리실과 냉동실에 숨어 있던 좀비들이 일제히 목젖을 갈며 모여들었다.
족히 9마리.
뒤이어 한 놈이 기이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혈흔으로 얼룩진 앞치마를 두른 녀석.
놈은 울음소리를 그치더니, 고개를 치켜들고 인상을 찌푸렸다 펴기를 반복했다.
놈의 꿈틀거리는 콧잔등을 보고, 털끝이 쭈뼛서는 것을 느꼈다.
냄새를 맡고 있다.
음식물 쓰레기 냄새와 퀴퀴한 대걸레 냄새로 체취를 숨겼지만, 100% 안전하다는 보장이 없다.
이대로 있으면 결국엔 발각될 것이다.
더 깊숙이 들어가는 건 포기해야겠다.
혼자 9마리를 처리하는 건 내게도 역부족이니까.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발끝을 세우고, 조심스레 뒷걸음질 쳤다.
모서리 부분에서 방향을 전환하는 찰나, 코앞으로 보이는 사람의 얼굴에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쉿.”
설여원이었다.
너무 놀라서 심장이 멎은 기분.
정말 코가 맞닿을 정도의 거리였다.
놀란 심장을 쓸어내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자 설여원은 내 귓가에 입술을 갖다 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좀비들, 이쪽으로 오고 있어.”
샛길에 있던 좀비들이 다시 거리를 활보하기 시작한 건가?
고개를 끄덕이며 어서 나가라고 손짓했다.
설여원도 조리실에 있는 좀비들을 확인했는지, 조심스레 방향을 틀어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설여원의 꽁무니를 쫓으며 정문에 다다른 순간, 앞서가던 설여원이 갑작스레 걸음을 멈췄다.
하마터면 부딪힐 뻔.
영문을 알 수 없는 행동에 슬쩍 상체를 들어 정면을 살피는 순간.
쿵.
유리문에 이마를 갖다 대고 있는 좀비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무턱대고 달려들지 않고 먹잇감의 유무를 확인하는 모습.
뒤이어 유리문 앞에 있던 좀비는 허공을 바라보며 입을 쩍 벌리더니, 지금껏 듣지 못한 이질적인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그어어어어어어…….
그 소리에 목덜미가 저릿해지더니, 이마 위로 식은땀이 맺혔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울음소리.
뒤늦게 라스트아크에서 들었던 울음소리가 기억났다.
사고기능이 존재하는 좀비.
공명 좀비다.
머릿속으로 울리는 경종에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리를 박차고 튀어 나갔다.
온몸으로 유리문을 열어젖히자, 턱을 부딪친 좀비는 뒤로 자빠지는 모습을 보였다.
쇠파이프를 치켜들며 있는 힘껏 좀비의 두개골을 가격했다.
퍽!! 빠각! 쩍!!
좀비의 머리가 으깨질 때까지 연달아 가격하고, 마른침을 삼키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딱 한 번 울었는데, 들켰으려나?
두두두두두두두두-
작디작은 기대를 무너뜨리기라도 하듯, 이곳으로 모여드는 다수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샛길에 있던 좀비들이 이곳으로 모이고 있다.
머리털이 곤두서고, 손바닥으로 땀이 고였다.
‘조리실.’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뒤를 돌아보자, 조리실에 있던 좀비들도 광견병에 걸린 개처럼 달려오기 시작했다.
“뛰어!”
* * *
설여원은 다급히 걸음을 떼다가 무게중심을 잃고 엎어졌다.
등에 메고 있는 텐트와 버너 등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있었다.
다급히 설여원의 곁으로 달려가 일으켜 세운 뒤, 곧장 본관 쪽으로 달렸다.
주변에 좀비가 있는지 없는지 살필 새도 없었다.
등 뒤로 수십 마리의 좀비가 쫓아오는데 하나하나 따질 시간이 어디 있어.
“옆에!”
설여원의 외침에 좌측을 돌아보자, 안개 속에서 목젖을 갈며 달려드는 좀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야구 배트 휘두르듯이 놈의 안면에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곧장 중앙도로를 건넜다.
크어어어어!!
등 뒤로 들리는 좀비들의 울음소리에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가깝다.
어깨너머로 슬쩍 뒤를 돌아보자, 양팔을 기이하게 휘저으며 달려오는 수십 마리의 인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전엔 긴장하거나 두려움을 느낄 때면 시야가 흐려졌는데, 지금은 모든 것이 선명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모든 감각이 예리하게 벼려진 상태라서 그런가?
아니면 시야의 우측 상단에서 반짝이는 노란불 때문일까.
공명 좀비를 처리하면서 조건인 50마리를 모두 채웠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포인트를 찍고 싶지만, 홀로그램을 켜면 시야 확보가 어렵다.
몸부터 숨기고 포인트를 분배해야 한다.
“저쪽!”
옆에서 설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돌리자, 설여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본관의 테두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검은 장막처럼 보이던 본관이 서서히 뚜렷해진다.
망설임 없이 본관의 정문으로 몸을 날렸다.
유리문을 부술 기세로 열어젖히고, 설여원과 함께 계단을 뛰어올랐다.
2층, 3층, 4층, 마침내 5층까지 올라서 가장 가까운 방문을 열어젖혔다.
드넓은 거실과 중앙에 배치된 ㄱ자 모양의 소파, 그 뒤로 보이는 책상과 의자.
교무처장실이었다.
교무처장실에 들어서자마자 방문부터 걸어 잠그고, 벽에 몸을 기댄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설여원은 가슴을 부여잡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난 복도의 상황을 슬쩍 살핀 뒤, 다급히 홀로그램을 열었다.
-현재 처리한 좀비의 수: 50/50(완료)
-목표를 달성하여 5의 포인트가 주어집니다.
-남은 포인트: 5
-포인트를 회수하고 다음 지령을 받으세요.
지금 당장 필요한 건 당연히 체력.
체력에 5개의 포인트를 투자했다.
-주어진 포인트를 체력에 투자합니다.
-스탯: 근력 5(+2), 체력 5(+5), 반사 신경 5, 동체 시력 5, 정신력 10
-남은 포인트: 0
-새로운 지령이 도착했습니다.
-현재 처리한 좀비의 수: 0/100
※100마리를 달성할 시 스킬이 개방됩니다.
체력이 증가하자 숨이 고르게 내쉬어지며 심장의 고동이 잔잔해지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폐가 터질 것 같았는데, 선선한 공기로 환기한 것처럼 상쾌해졌다.
체력이 2배나 증가했으니 당연한 결과.
그건 그렇고 스킬?
라스트아크를 플레이할 당시, 에덤 화이트에게는 스킬이 존재하지 않았다.
다른 캐릭터처럼 각성도 존재하지 않았고, 끊임없이 좀비를 처리하고 포인트를 높이는 것 말고는 강해지는 방법이 없었다.
이것도 난이도가 올라가면서 새로이 도입된 시스템인가?
아니면 이게 홀로그램에서 얘기한 이스터에그?
크어어어어어!!
뒤이어 5층 복도를 내달리는 좀비들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상체를 숙이고, 숨죽인 채 설여원을 쳐다봤다.
설여원은 오른손을 덜덜 떨며 여전히 가슴을 부여잡고 있었다.
숨이 고르지 않았다.
난 설여원의 상태를 살피며 물었다.
“야, 괜찮아?”
“수, 숨이…… 숨이 안…….”
지나치게 놀란 상태에서 전력 질주까지 했으니, 몸이 버티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나 봐, 여원아. 나 봐봐.”
설여원의 눈이 반쯤 풀렸다.
흐려진 눈빛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비관적인 심정이 엿보였다.
난 설여원의 손을 잡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여긴 안전해. 마음 편하게 가져.”
“밖…… 밖에 좀비들…….”
“안개 밖이잖아. 공명 좀비는 내가 죽였고, 시야에 발각되지 않으면 안전해.”
좀비들은 안개 밖에서 체취를 맡지 못한다.
지금처럼 문 뒤에 숨어서 상황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면 된다.
“나 따라 해. 천천히 숨 쉬어. 스으읍, 후…….”
설여원의 손이 차갑다.
날씨도 더운데, 혈액순환에 문제가 생긴 건가?
이마 위로 맺힌 식은땀과 창백해진 안색만 봐도,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설여원은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천천히 심호흡을 반복했다.
가쁘게 내쉬던 숨이 천천히 진정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크르르르르…….
복도에서 들려오는 좀비의 울음소리.
방금 지나간 좀비들은 그대로 복도를 통과해 4층으로 내려간 줄 알았는데, 한 놈이 내려가지 않았다.
방문에 부착된 유리로 조심스레 복도의 상황을 살폈다.
좌우로 고개를 돌리며 연신 콧잔등을 찌푸리는 좀비.
그 모습을 보고 다급히 상체를 숙였다.
안개 밖에서는 냄새를 맡지 못할 텐데?
다시 한번 고개만 살짝 내밀어 좀비의 행동을 응시했다.
콧잔등을 찌푸리던 좀비는 기이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바닥에 납작 엎드리더니, 개처럼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사냥감을 놓치지 않겠다는 집념.
평범한 좀비들보다 뛰어난 감각.
공명 좀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