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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6화 (6/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6화

첫 번째 에피소드 중반에 다다르면 좀비들 사이에서 사고기능이 발달하는 놈들이 나타나고, 그런 놈들을 공명 좀비라 부른다.

성대를 활짝 열고 일정한 소리로 공명하는 좀비들.

놈들은 멀리까지 소리를 전달하고, 근방의 모든 좀비에게 먹잇감의 위치를 알린다.

물량으로 생존자를 압박하는 것이다.

공명 좀비가 없는 지금이, 에덤에게는 강해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방문 앞으로 걸어가 신문지를 살짝 뜯어내고 복도의 상황을 살폈다.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풍경.

한 차례 심호흡과 함께 신발장부터 치우고, 조심스레 복도로 향했다.

계단 앞에 쌓여 있는 다섯 구의 시신.

어제 이곳으로 들어오며 처리한 좀비들이었다.

시신에서 풍기는 악취 덕분에 3층이나 5층에서 좀비들이 나타나더라도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을 정리하고, 바로 옆의 402호로 향했다.

크르르르르…….

방 안을 거니는 두 마리의 좀비.

아직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는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기괴한 울음소리만 읊조리고 있었다.

난 쇠파이프를 말아쥐며 방문 상단의 유리를 향해 휘둘렀다.

챙그랑!!

크어어어어어!!

자극받은 좀비들은 일제히 목젖을 갈며 방문으로 달려들었다.

다른 방에 있던 좀비들도 소리를 듣고 목젖을 갈기 시작했다.

긴장하지 말자.

침착하게, 어제처럼만 하자.

왼손에 쥐고 있던 멍키스패너로 고개를 내민 좀비들의 안구를 찌르고, 방문을 열고 들어가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현재 처리한 좀비의 수: 12/20

어제는 두렵게 느껴지던 좀비들이, 오늘은 손쉽게 느껴졌다.

내 육체가 슬슬 몽둥이질에 적응하는 건가?

아니면 자신감이 붙은 걸까.

여전히 손은 떨리지만, 이전처럼 혼란스럽거나 망설임에 힘이 빠지는 일은 없었다.

402호를 시작으로 403, 404, 405호까지 계속해서 좀비들을 처리했다.

그리고 406호를 정리할 무렵, 시야의 우측 상단으로 반짝이는 노란불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처리한 좀비의 수: 20/20(완료)

-포인트를 회수하고 다음 지령을 받으세요.

-남은 포인트: 2

라스트아크의 배경과 동일하다면, 좀비 10마리에 2포인트가 주어져야 정상이다.

하지만 지금은 절반으로 줄어든 10마리에 1포인트.

왜지?

난이도가 증가해서 지급되는 포인트도 줄어든 건가?

“장난하나…….”

가뜩이나 초반에 살아남기 힘든 에덤인데, 지급되는 능력치도 절반으로 줄다니.

혼잣말을 구시렁거리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어디에 투자하는 게 좋을까.

현재 가장 필요한 스탯은 당연히 근력과 체력.

지금은 힘부터 높이는 게 좋겠다.

이불보를 잡고 내려올 때도, 쇠파이프를 휘두를 때도, 근육의 한계를 느끼는 순간이 많았으니까.

망설일 필요 없이 주어진 2포인트를 전부 근력에 투자했다.

-주어진 포인트를 근력에 투자합니다.

-스탯: 근력 5(+2), 체력 5, 반사 신경 5, 동체 시력 5, 정신력 10

-새로운 지령이 도착했습니다.

-현재 처리한 좀비의 수: 0/50

-남은 포인트: 0

동시에 전신으로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근력 운동을 하면 자극 부위가 뜨겁게 느껴지는 것처럼, 전신의 근섬유가 팽팽하게 당기는 기분.

갑작스러운 자극에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대로 1분 정도 지났을까?

서서히 열기가 가시기 시작했다.

몇 차례나 심호흡을 반복하며 전신의 상태를 살폈다.

팔뚝이 이전보다 두꺼워졌다.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며 근육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전완근으로 느껴지는 팽팽함.

허벅지로 느껴지는 조임.

한층 가벼워진 육체.

묵직하던 쇠파이프도 가벼워진 기분.

2라는 수치가 미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근력이 1.5배 증가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정신을 다잡으며 다시금 플레이어 정보를 살폈다.

처리해야 하는 좀비의 숫자가 20에서 50으로 늘었다.

라스트아크를 플레이할 때는 20 고정이었는데.

50마리를 처리하면 5포인트를 받을 수 있겠지만, 그 전까지 생존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중도 환전이 되는 것도 아니고, 주어진 목표치를 채워야 포인트가 주어지니까.

기분은 나쁘지만…… 어쩌겠는가?

투정 부려봐야 누가 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실험이나 해볼까?’

강해졌으면 실험부터 해봐야지.

곧장 407호 앞으로 걸어가 방문 상단의 유리를 깨뜨렸다.

크어어어어어!!

비좁은 틈으로 얼굴을 들이미는 좀비들.

멍키스패너로 좀비들을 찌르는 순간, 이전과 다른 감각이 손끝으로 느껴졌다.

마치 순두부를 뚫고 들어가는 것처럼 연하디연한 느낌.

‘이렇게 다르다고?’

하긴, 수치만 따지고 보면 20㎏ 아령을 들던 사람이 30㎏ 아령을 들 수 있게 된 것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두려움이 자리하던 마음으로 쾌감이 차오른다.

안전이 확보된 이곳에서 50마리를 채워야겠다.

자신감이 생기자 입가로 미소가 번졌다.

꼬르륵.

하지만 아무리 힘이 강해져도, 굶주림에 면역력이 생기는 건 아니었다.

남은 식량이 없기에, 생수로 목을 축였다.

‘슬슬 식량도 확보해야겠어.’

가까운 식량창고라면 기숙사 식당과 매점이 있다.

전력이 들어오지 않으니, 식당의 냉동고는 무용지물일 것이다.

하지만 매점에는 간식거리와 마른안주, 통조림 등이 있을 것이다.

식당과 매점이라면 여기서 50m 거리.

도로를 사이에 두고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다.

‘ㄱ’ 자 형태의 건물의 좌측 부분이 식당으로 사용되고, 우측 부분이 매점과 각종 편의시설로 사용되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려면 위협에 맞설 힘이 필요하다.

그러니 우선은…….

“좀비부터.”

쇠파이프를 말아쥐며 408호로 향했다.

* * *

태양이 중천에 떠오른 시각, 쉬지 않고 움직인 덕에 4층과 5층을 모조리 정리할 수 있었다.

50마리를 어느 세월에 처리하나 싶었지만, 벌써 36마리를 처리했다.

지금까지 어려움은 없었고, 순조롭게 진행됐다.

역시 2인실만 있는 기숙사라서 그런지, 좀비들의 압박도 거세지 않았다.

잠시 숨을 돌릴 겸, 그리고 목도 축일 겸 화장실로 향했다.

얼굴에 묻은 좀비들의 혈흔을 닦아내고,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었다.

“후…….”

세면대를 양손으로 쥐고 폐부에 들어찬 한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들고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응시하자, 웬 들짐승 한 마리가 있다.

고작 보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두 볼은 몰라보게 핼쑥해지고 머리는 덥수룩하게 자랐다.

머리의 가려운 부위를 벅벅 긁자, 온갖 불순한 물질이 손톱에 묻어나왔다.

언제 마지막으로 머리를 감았는지 모르겠다.

머리에 좀비들의 피도 묻어 있을 텐데…….

가방에 넣어둔 커터칼을 오른손에 쥐고, 엉겨 붙은 머리를 왼손으로 잡았다.

내 손으로 직접 머리를 잘라보는 게 처음이라 그런지, 아니면 좀비들을 때려잡고 여운이 남아서 그런지, 오른손이 떨렸다.

영화 속 아저씨처럼 이발기는 없지만, 커터칼로 최대한 짧게 잘랐다.

수염은 도저히 자를 용기가 안 나서 포기.

‘아, 504호에 샴푸 있었나?’

생각해 보니 좀비들을 처리하는 과정에 샴푸가 있는 방을 찾은 기억이 있었다.

504호로 들어서자, 아직 개봉하지 않은 샴푸가 2개나 있었다.

언제 어떻게 쓰일지 모르니, 하나는 가방에 넣고 다른 하나를 들고 곧장 샤워실로 향했다.

따뜻한 물은 나오지 않았지만, 워낙 날씨가 더운 탓에 찬물도 미지근하게 느껴졌다.

얼마만의 샤워일까.

그동안 지쳐 있던 몸과 마음이 사르르 풀리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이번 기회에 갈아입을 옷도 챙길까?

방은 많고, 입을 옷도 많으니까.

팬티만 입은 채 각 방을 샅샅이 살폈다.

다소 작거나, 지나치게 큰 옷이 대부분이었다.

열심히 돌아다닌 끝에, 182㎝인 내게 딱 맞은 옷을 찾을 수 있었다.

샤워하고 나와서 그런가?

옷에 남은 체취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잘 입을게요.”

듣는 이는 없지만 나지막한 목소리로 감사 인사를 전한 뒤, 곧장 휴게실로 향했다.

휴게실에 얼마 남지 않은 간식으로 굶주린 배를 채우고, 소파에 앉아 생수를 마시며 생각했다.

좀비를 마냥 두려운 존재로 생각할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공포심에 맞서자 길이 열렸다.

다소 느리더라도, 한 단계씩 차근차근 나아가며 엔딩까지 달성해야 한다.

‘다음은 3층인가.’

내가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층은 3층 이상.

1층은 안개가 사라지지 않기에 위험하고, 2층은 밤만 되면 안개가 차오르기에 다소 부담감이 있다.

3층은 안개가 차오르지 않기에, 여기서 조금만 쉬다가 3층도 정리해야겠다.

3층까지 정리를 마치면…….

‘50마리 채울 수 있어.’

생수를 단숨에 목구멍 너머로 넘기고, 화장실로 걸어가 빈 페트병에 물을 받았다.

그리고 쇠파이프의 손잡이 부분을 박스 테이프로 칭칭 감았다.

좀비들의 혈흔이 묻거나, 손아귀에 힘이 빠지면 쇠파이프가 미끄러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모든 준비를 마친 뒤, 한 차례 심호흡과 함께 3층으로 향했다.

50마리를 채운 뒤에 주어지는 5개의 포인트는 어디에 투자하는 게 좋을까.

첫 번째 에피소드는 현재 근력으로도 충분하니, 조금 뒤에 얻을 5개의 포인트는 체력에 투자해야겠다.

지금은 너무 쉽게 지치다 보니, 활동에 제약이 많았다.

한층 차분해진 마음으로 3층으로 내려갔다.

크르르르르…….

3층 복도에서 목젖을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쇠파이프를 말아쥐며 3층 복도로 고개를 내밀었다.

쾅!!

갑작스레 고막을 강타하는 파열음.

누군가 내 몸을 붙잡은 것도 아닌데, 복도를 울리는 둔탁한 소리에 반사적으로 주춤거리게 되었다.

‘뭐야.’

차마 고개를 내밀지 못하고, 숨죽인 채 쇠파이프를 말아쥐었다.

내 인기척을 느낀 건가?

그럴 리가.

지금은 안개 밖이고, 난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는데?

크어어어어어!!!

뒤이어 복도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포효가 들려왔다.

난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지금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진정시켰다.

좀비는 먼저 자극받지 않는 한 저렇게 울지 않는다.

저런 식으로 소리 지르는 놈은…….

설마 하는 마음에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어 복도의 상황을 살폈다.

3층 복도의 끝으로, 좀비 두 마리가 서로를 바라보며 윽박지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저건…… 누가 봐도 언쟁을 벌이는 모습.

좀비들끼리 소통은 불가능한데?

공명 좀비도 공명을 통해 먹잇감의 위치는 알릴 수 있지만, 저렇게 대화하는 능력은 없다.

저렇게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건…….

‘대장 좀비?’

그럴 리가.

공명 좀비도 나오지 않았는데 어떻게 대장 좀비가 벌써 나와.

혼란스러운 마음에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었다.

공명 좀비는 기본적인 사고기능이 존재하고, 대장 좀비는 사고뿐만 아니라 이성이 존재한다.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건, 계획적으로 인간을 사냥할 수 있다는 뜻.

대장 좀비는 두 번째 에피소드에 진입해야 나오는 설정인데?

아직 동료들도 찾지 못했는데 대장 좀비라니.

이건 밸런스 붕괴잖아.

‘죽든 말든 상관 없다, 이건가?’

게임의 제작자 GOD.

라스트아크는 자유도 높은 로그라이크 게임.

아무리 자유도가 높아도 게임은 게임이다.

프로그램을 따라 흘러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은 현실이기에, 상황에 따라 무슨 변수가 발생할지 모른다.

대장 좀비도 변수 중의 하나였다.

3층을 정리하고 매점을 확인할 생각이었는데, 이러면 어떻게 해야 하지?

‘긴장하지 말자. 분명 답이 있을 거야.’

아무리 현실이라도 기본적인 틀은 라스트아크.

라스트아크의 설정을 따른다면, 대장 좀비는 일반 좀비에 비해 월등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

안개 밖에서도 자유롭게 행동하며, 오감이 발달한 존재.

무엇보다 대장 좀비가 위험한 이유는…… 일반 좀비들을 수하로 부릴 수 있는 특수 능력이 있다는 것.

매점에서 식량을 확보하는 과정에 대장 좀비라도 맞닥뜨리게 되면 거기서 끝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흐르자,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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