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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5화 (5/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5화

눈에 들어오는 돌계단.

제대로 왔다.

하지만 계단 위에 뭐가 있을지 모르기에, 양손으로 쇠파이프를 쥐고 두 눈을 부릅뜬 채 계단을 올랐다.

계단 위로 올라가자, 희뿌연 안개가 자욱해서 아무런 형체도 보이지 않았다.

사방이 뻥 뚫린 기숙사 단지라는 건 알겠는데, 나아갈 방향이 잡히지 않았다.

나침반을 잃은 채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기분.

크어어어어어어!!

등 뒤로 철문을 두드리는 파열음과 함께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절규에 가까운 소리에, 마른침을 삼키며 숨을 가다듬었다.

‘집중하자.’

멀리 보지 말고, 당장 이곳을 벗어나는 일에 집중하자.

지면으로 보이는 보도블록의 줄눈에 목숨을 맡긴 채 계속해서 나아갔다.

벌써 해가 지고 있나?

안개의 농도가 점점 짙어지기 시작했다.

시야가 차단되니 청각과 후각, 촉각이 지나칠 정도로 예리해졌다.

머릿속으로 울리는 경종과 귓가로 들리는 이명에 시야가 아찔하게 일렁였다.

그럴 때마다 두 눈을 끄게 껌벅이며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정신을 다잡아야 한다.

쇠파이프를 쥐고 있는 두 손에 악력을 더했다.

푹-

이윽고 발끝으로 느껴지는 물컹한 감촉에 시선을 내렸다.

‘진흙?’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지면을 살피자, 바로 앞으로 연못의 테두리가 흐릿하게나마 나타났다.

‘연못이 나온다고?’

기숙사 단지는 총 7개의 동이 중앙의 커다란 연못을 둘러싼 형태였다.

사람의 발길이 드문 샛길로 이동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난 기숙사 정중앙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모르면 용감하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그래도 연못이 나왔다는 건 앞으로 300m만 더 가면 기숙사 단지를 벗어날 수 있다는 뜻.

크어어어어!! 카하악!!

하지만 쉬이 보내줄 수 없다는 듯이, 사방에서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건물 바깥에도 좀비들이 있었어?

두두두두- 두두두두-

근처에서 다수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의 크기로 보아, 300m를 나아가기 전에 둘러싸일 게 뻔하다.

벌써 노을이 지고 있는 이상, 오늘 안에 동아리방에 도착하는 건 무리.

가까운 건물에 몸을 숨기고 내일 아침까지 버텨야 한다.

연못에서 가장 가까운 건물이라면…….

크어어어어!!

그 순간, 좌측에서 고막을 찌르는 포효와 함께 흐릿한 인영이 두 눈에 들어왔다.

좀비와의 거리가 10m도 안 된다.

풍덩! 풍덩!

좀비들은 지면과 연못을 구분 못 하는지, 너도나도 연못에 빠지기 시작했다.

연못이 없었다면 저항 한 번 못 해보고 좀비들에게 붙잡혔을 것이다.

좀비들이 빠져나오기 전에, 서둘러 가장 가까운 건물로 달렸다.

풍덩거리는 소리가 10번 이상 들렸다.

아무리 쇠파이프를 얻었다 해도, 내 힘으로는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숫자.

붙잡히면 끝이다.

안개를 뚫고 한참을 달리자, 저 멀리 거뭇거뭇한 건물의 외벽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카하악!!

건물 앞에 다다르자, 우측에서 목젖을 가는 좀비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우측으로 시선을 돌리자, 안개 속에서 쑥 들어오는 좀비의 오른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급히 상체를 비틀어 놈의 손길을 회피하고, 그 반동을 이용해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퍽!

자세가 불편한 탓에 안면에 직접적인 타격은 주지 못하고, 좀비의 가슴을 가격했다.

분명 갈비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는데, 놈은 아무런 타격도 없다는 듯이 내게 치아를 들이밀었다.

싯누런 치아가 코앞으로 드리운다.

피할 수 없다는 걸 직시하고, 뒤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왼손에 쥐고 있던 멍키스패너를 내질렀다.

카하!!

좀비의 구강을 뚫고 들어간 멍키스패너.

하지만 경추까지 닿지 않았는지, 놈은 죽지도 않고 멍키스패너를 잘근잘근 씹었다.

묵직한 무게감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왼팔을 파르르 떨며 좀비의 하복부를 향해 발길질을 가했다.

그러자 좀비의 입에서 멍키스패너가 빠지며 붉은 선혈이 쏟아졌다.

얼굴로 쏟아지는 좀비의 선혈에 심장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피가…… 뜨겁다.

불현듯 날아드는 공포심에 이성이 차단되고, 혼란이 야기되었다.

사람이 지나치게 당황하면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고 하던가?

놀라서 몸이 굳는 사람과, 몸이 알아서 반응하는 사람.

난 후자였다.

지면을 박차고 일어나 오른손에 쥐고 있던 쇠파이프로 좀비의 안면을 내려찍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저릿한 타격감과 함께 짜르르 울리는 근육 마디가 내 안의 본능을 일깨웠다.

생존본능.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크어어어어!!

뒤이어 좀비들의 울음소리와 함께 질척한 발소리가 이곳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연못에 빠졌던 좀비들이 벌써 빠져나왔는지,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난 숨도 쉬지 않고 건물 내부로 달려갔다.

내가 있던 기숙사와 달리 이곳은 정문이 열려 있었다.

좀비들이 기숙사 밖으로 나온 게 이 때문이었나?

이곳처럼 문을 열어둔 기숙사가 있기에, 좀비들이 밖으로 나온 모양이다.

기숙사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쉴 새 없이 계단을 뛰어올랐다.

무수히 많은 잡념들의 사이로 단 하나의 생각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안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

미친 듯이 계단을 뛰어오르자, 4F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어느새 안개에서 벗어난 상태였고, 좌우로 기다란 복도가 내 앞에 펼쳐졌다.

크르르르르…….

복도에 있던 좀비가 발소리를 듣고 이곳을 돌아본다.

좀비를 발견하자마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쏜살같이 좀비에게 달려가 안면을 가격했다.

‘죽어, 죽어, 죽어.’

두 눈을 희번덕이며 속으로 되뇌었다.

어떻게 안개를 빠져나왔는데, 이놈이 큰 소리로 울면 근처의 좀비들이 몰려들 것이다.

타다다닷- 탓!

카하악!

뒤이어 목덜미를 저릿하게 만드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감각이 예민해진 상태기에, 울음소리만 들어도 좀비와의 거리를 가늠할 수 있었다.

눈으로 확인할 새도 없이 상체를 비틀어 쇠파이프를 휘두르자, 내게 달려들던 좀비가 쇠파이프에 턱을 맞고 옆으로 고꾸라지는 모습을 보였다.

화장실에 있었던 건가?

동시에 복도의 끝에서 알몸의 좀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샤워하다 물렸는지, 옆구리에서 창자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알몸의 좀비도 내 모습을 발견하고는 다리 하나를 절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쇠파이프를 치켜들고, 날 선 단두대처럼 좀비의 정수리를 찍었다.

중력을 거스르는 타격감과 함께 좀비의 두개골이 함몰되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쓰러진 좀비들을 쉬지 않고 가격했다.

광기에 휩싸인 살인귀처럼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더는 복도를 거니는 좀비가 없지만,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감각은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이놈들이 바퀴벌레처럼 살아남아 내 발목을 잡을지도 모르니까.

덜컹, 텅, 덜컹.

뒤이어 4층의 기숙사 방문이 덜거덕거리기 시작했다.

방안에 갇혀 있던 좀비들이 인기척을 느낀 모양이다.

단지 초입에 위치한 기숙사 건물.

내 기억이 맞다면…… 여긴 2인실로 이루어진 기숙사다.

각 방에 좀비가 있어 봐야 2마리.

가장 시끄럽게 방문을 흔드는 401호로 향하자, 방문의 상단에 설치된 유리를 통해 좀비 두 마리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몸을 숨길 만한 장소가 필요하기에, 어떻게든 방 하나는 정리해야 한다.

방문에서 한 걸음 물러나 상단의 유리를 쇠파이프로 가격했다.

챙그랑!

유리가 깨지자, 방 안에 갇혀 있던 좀비들이 그 빈틈으로 얼굴을 들이밀기 시작했다.

유리 파편에 얼굴이 찢어지는 과정에도 쉴 새 없이 안면을 들이미는 녀석들.

광견병에 걸린 들짐승이나 다름없었다.

놈들의 안구에 멍키스패너를 찔러넣자, 격하게 머리를 흔들며 발악했다.

그 과정에 유리 파편의 일부가 내 왼손에도 박혔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나머지,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안구를 뚫은 뒤, 있는 힘껏 방문을 밀치며 들어섰다.

죽지 않은 좀비들이 방바닥에 엎어지며 버둥거린다.

뒤집힌 바퀴벌레를 보는 것처럼 속에서부터 거북함이 올라왔다.

쇠파이프를 고쳐 쥐며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놈들의 안면을 가격했다.

두개골이 함몰되었지만, 시신경이 죽지 않은 좀비들은 연달아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아직이다.

아직 쉴 수 없다.

두 구의 시신을 끌고 복도로 나갔다.

계단 초입에 시신들을 쌓아 체취를 차단하고, 방 안으로 들어가 가방 속의 신문지를 꺼냈다.

신문지로 깨진 유리 부분을 가리고, 박스테이프를 뜯어 빈틈없이 봉쇄했다.

마지막으로 신발장을 이용해 방문이 열리지 않도록 만들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발악하느라 몰랐는데, 심장과 폐는 이미 한계를 넘어선 상태였다.

목에서 쇠 맛이 느껴지고, 불규칙적인 호흡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찔한 현기증과 함께 몸에서 힘이 빠지자, 사지가 덜덜 떨렸다.

본능이 지배하던 육신에 이성이 돌아오자, 뼈마디와 근육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크르르르…… 크어어어…….

옆방에서 목젖을 가는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더는 저항할 힘이 없기에,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애써 놈들의 울음소리를 외면했다.

제발 인기척이 사라지기를, 놈들이 사냥을 포기하기를.

그렇게 10분 정도 흐르자, 더는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 * *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주머니에 넣어둔 초코바 2개를 먹고 잠에 빠진 건 기억이 나는데, 쪽잠을 자려던 마음과 달리 창밖은 아침노을이 번지고 있었다.

피로에 젖은 나머지, 10시간이나 숙면을 취했다.

천천히 상체를 일으키자, 반사적으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온몸이 저리다.

살도 많이 빠지고, 근력도 예전 같지 않았다.

음식이라도 잘 챙겨 먹었다면…….

최근에 먹은 거라고는 과자와 초코바가 전부였다.

양손으로 뺨을 때리면서 몽롱한 정신을 다잡고, 뻐근한 어깨를 주무르며 플레이어 정보부터 확인했다.

-캐릭터 이름: 에덤 화이트

-능력: 강화

-스탯: 근력 5, 체력 5, 반사 신경 5, 동체 시력 5, 정신력 10

-좀비를 처리하여 포인트를 획득하세요.

-현재 처리한 좀비의 수: 10/20

-남은 포인트: 0

벌써 10마리나 죽였나?

좀비들을 처리한 건 좋지만, 어제 같은 돌발상황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

보다 섬세한 계획이 필요하다.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책상 위에 놓인 공책과 볼펜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정리부터 해야겠다.

책상 앞에 앉아 어제 경험했던 일들을 천천히 적어 내려갔다.

좀비들의 현재 능력치를 정리해야 추후 진화에 따른 변화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좀비들의 청력은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4층에서 일어난 소란에 3층의 좀비들이 반응하는 일은 없었다.

후각은 안개 속에서만 작용하기에, 시야에 포착되지 않도록 조심하면 안전할 것 같다.

라스트아크를 플레이할 당시, 이런 사소한 내용은 귀 기울이지 않았다.

좀비 게임이 다 거기서 거기라 생각하며 소총을 얻은 뒤로 냅다 갈기기만 했으니까.

내가 게임을 통해 알게 된 좀비의 특징이라면, 매 에피소드가 진행될수록 좀비들이 진화한다는 것.

아직 시간이 많으니, 생존에 집중하며 강화부터 해야 한다.

기숙사에서 동아리방이 있는 (신)학생회관까지는 족히 1㎞.

밖에 나가기 전에 어떻게든 20마리를 채워서 강화권을 얻고 싶은데, 무슨 좋은 방법 없을까?

그러다 문득, 신문지로 막아둔 부위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여긴 2인실만 존재하는 기숙사고, 어제처럼 방문 상단의 유리를 이용해서 좀비들을 처리하면 안정적이지 않을까?

생각을 정리하고 바닥에 내려둔 쇠파이프를 손에 쥐었다.

막무가내처럼 보일 수 있지만, 지금 망설이면 앞으로 강해질 기회는 없다.

라스트아크를 플레이하며 128번의 죽음 끝에 깨닫지 않았는가?

에덤이 가장 약한 첫 번째 에피소드가, 실은 가장 강하게 만들 수 있는 기회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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