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화
겁이 없는 건가?
아니면 허세가 정신을 지배하는 건가?
층장의 모습을 두 눈으로 보고도 나올 생각을 한다고?
그가 성큼성큼 층장에게 다가가자,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층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헬스 중독자, 소위 헬창이라고 불리는 그에게 달려들었다.
헬창은 층장의 얼굴을 보고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였지만, 금세 가드를 올리고 하체에 힘을 실었다.
층장이 코앞까지 다다른 순간, 헬창은 망설임 없이 층장의 허벅지에 발길질을 가했다.
떡!
“어우…… 씨.”
반사적으로 육성이 터져 나왔다.
저 정도면 뼈 부러졌겠는데?
듣기 거북한 소리에 꼬리뼈부터 시작된 소름이 목덜미까지 타고 올라왔다.
층장은 나풀거리며 쓰러지는 모습을 보이더니, 양팔로 헬창의 옆구리를 잡았다.
“아악!”
힘이 얼마나 센지, 헬창의 옆구리를 파고 들어가는 손가락이 보였다.
헬창은 까드득 이를 갈며 층장의 머리에 주먹을 내질렀다.
퍽! 퍽! 퍽! 퍽!
저토록 두꺼운 팔로 쉬지 않고 주먹을 내지르는데, 층장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곧 헬창의 하복부를 깨물며 세차게 머리를 비틀기 시작했다.
먹잇감을 잡은 악어처럼, 전신을 비틀며 헬창의 복부를 헤집었다.
“끄악! 으아악!!”
헬창은 층장을 떨쳐내기 위해 발악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층장은 들짐승이나 다름없었다.
난…… 그 모습을 보고 방문을 열어젖혔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겠다.
아니, 생각하기에 앞서 몸이 먼저 반응했다.
그리고 손에 쥐고 있던 몽둥이로 있는 힘껏 층장의 머리를 가격했다.
빡!!
손끝으로 느껴지는 묵직한 타격감에 오른팔이 덜덜 떨렸다.
크어어어…… 카각!
웬만한 사람이면 쓰러져야 정상인데, 층장은 세차게 머리를 비틀며 나를 노려봤다.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데, 놈은 죽지 않았다.
그 끔찍한 모습을 보고 있으니 심장이 두근거리고, 이마에 식은땀이 맺히는 걸 느꼈다.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다.
이건…… 지금 내 앞에 있는 놈은…… 괴물이다.
난 젖 먹던 힘을 다해 층장의 머리를 연달아 가격했다.
그냥 휘두르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박살을 내겠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내려쳤다.
빡! 빡! 팍! 퍽!
“재형아, 재형아!”
장병철이 내 양팔을 붙잡고 뜯어말린 뒤에야, 난 제정신을 되찾을 수 있었다.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두 팔.
격하게 뜀박질치는 심장의 고동이 잠시나마 끊어졌던 이성을 불러왔다.
숨은 거칠고, 머릿속은 어지러웠다.
시야가 한 차례 일렁이더니, 속에서부터 역한 기운이 용솟음쳤다.
“우웁!”
결국, 속을 게워내고 말았다.
다리에 힘이 풀린 나머지 양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계속해서 올라오는 역한 심정을 토해냈다.
“괘, 괜찮으세요?”
“뭐야, 무슨 일이야?”
“경찰, 경찰 불러!”
굳게 닫혀 있던 4층의 방문들이 열리며, 학생들이 복도로 나왔다.
그들은 복도에서 일어난 참극을 목격하고 새하얗게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 누구도 선뜻 다가오지 않았다.
유일하게 이성을 유지하던 장병철이 내 팔을 부축해 401호로 끌고 들어갔다.
난 장병철의 손에 이끌려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초점이 똑바로 맞춰지지 않았다.
지나치게 긴장한 탓인가?
시야의 테두리를 따라 검은 장막이 펼쳐진 것처럼, 점점 좁아지는 시야에 불안한 마음이 차올랐다.
내가, 내가 사람을 죽였다.
아니, 내가 죽인 게 사람이 맞나?
내가 뭘 죽인 거지?
죽여?
몽둥이로 층장의 머리를 깨부수던 순간이 한 장의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머릿속에 선명히 떠올랐다.
두개골을 뚫고 나오던 뇌수와 낭자하던 선혈.
머리가 찌그러진 와중에도 내 살점을 탐하던 층장의 몸짓.
귓가로 들리는 이명과 머릿속으로 울리는 경종, 불규칙적으로 뜀박질치는 심장이 머릿속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책상 앞으로 걸어가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영문을 모르겠지만, 지금은 어머니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지금은 연결할 수 없습니다. 통화권 이탈…….
연결할 수 없다는 소리만 연거푸 반복되었다.
두 손을 벌벌 떨며 계속해서 전화를 시도했다.
“재형아.”
“흐흑…….”
“재형아!”
장병철이 내 어깨를 흔드는 바람에,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을 놓치고 말았다.
갓난아기처럼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심장을 옥죄어온다.
장병철은 내 어깨를 지그시 누르며 침대에 눕혔다.
침대에 누운 채 서럽게 울었다.
“재형아, 나 봐봐. 형 봐봐 이 새끼야!”
“형…….”
장병철은 내 볼을 어루만지며 얘기했다.
“쉬어, 뒷일은 형한테 맡기고 쉬어.”
“형…… 나, 나 사람 죽였어. 내가, 내가 사람 죽였다고.”
격해진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서럽고, 억울하고, 화가 나면서도 무서웠다.
두려움일까? 혹은 죄책감일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눈물만 쏟아졌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사지가 떨렸다.
장병철은 내 손을 잡으며 얘기했다.
“잘했어. 너 잘한 거야.”
“나, 나 사람 죽였다고. 흐윽…….”
“아니야, 너 사람 살린 거야.”
지금의 역한 심정을 눈물로 달랬다.
오른팔로 눈물을 훔치며 통곡하자, 장병철은 내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리고 요람에 누운 아이를 달래듯이, 나를 토닥여주었다.
“걱정 말고 쉬어.”
“형…….”
“너 진짜 잘한 거야. 저 밖에 있는 사람들, 네가 다 살린 거라고.”
“헬창은 어떡해? 걔, 걔, 층장한테 물리는 거 형도 봤잖아.”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 넌 다른 생각하지 말고 쉬어.”
장병철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내 뺨을 가볍게 때렸다.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지난 21년이, 내가 살아온 인생이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 * *
짹- 짹짹- 짹-
반쯤 열린 테라스에서 불어오는 따스한 바람, 지저귀는 참새들의 울음소리.
평소와 다름없는 안락한 아침.
“헉!”
악몽이라도 꾼 것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울다 지쳐 나도 모르는 새에 잠든 건가?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제의 충격적인 장면들이 사진처럼 하나하나 선명히 머릿속에 떠오른다.
‘병철이 형, 병철이 형은?’
장병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찾아 나서기 위해 지면에 발을 갖다 대는 순간.
찰박.
촉촉한 감촉이 발바닥을 적셨다.
바닥으로 시선을 내리자, 갈색빛의 얼룩이 눈에 들어왔다.
방바닥에 찍힌 수십 개의 발자국, 방문을 가로막은 신발장과 서랍.
방 안에는 5개의 양동이가 놓여 있었고, 그 속에는 찰랑거리는 물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리고 책상 위에 놓인 각종 간식거리.
그 모습을 보고 반사적으로 몸이 굳었다.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난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바닥에 찍힌 발자국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부지런하게 돌아다닌 흔적의 끝에, 테라스로 걸어 나간 발자국을 발견할 수 있었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고작 발자국을 확인했을 뿐인데, 정신이 번쩍 들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오른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흔적을 따라 테라스로 나갔다.
테라스 난간에는 붉은 손바닥 자국이 두 개 찍혀 있었다.
‘설마.’
난간에 묻은 혈흔을 쓸어내리자, 아직 굳지 않은 끈적한 핏물이 손끝으로 묻어났다.
손끝에 묻은 피를 보고,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었다.
떨리는 두 팔에 힘을 주어 난간 너머의 세상을 살폈다.
1층을 내려다보자, 짙은 안개 사이로 바닥에 엎어진 인간의 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미동도 하지 않는 형체.
얼굴은 명확하게 확인할 수 없지만, 그가 입고 있는 셔츠는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아…… 안 돼. 안 돼애……!”
안 된다는 말만 연거푸 흘러나왔다.
목이 누렇게 변할 때까지 매일 입고 다니기에 애착 셔츠냐고 놀린 게 바로 어제였다.
그런 녹색 셔츠가, 갈기갈기 찢긴 채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 * *
며칠이나 지났을까.
복도에서 들리는 기괴한 울음소리는 하루가 멀도록 매일같이 들려왔다.
좀비, 괴물, 구울.
저 밖에 있는 놈들이 뭐가 됐든, 그런 명칭은 중요하지 않았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더 이상 내가 알던 세상은 없다.
밤마다 들리던 비명과 살려달라는 애원, 외침, 절규, 삶을 외치는 각양각색의 목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았다.
난 쥐 죽은 듯이, 살아 있는 시체처럼 방 안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몸에서 악취가 진동하고, 머리는 기름져 잠시도 긁지 않으면 미칠 지경이었다.
딱, 딱, 딱, 딱.
손톱을 깨물며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봤다.
울리지 않는 휴대폰, 오지 않는 구조대.
정신을 좀먹는 두려움과 고독함, 공포와 초조함에 병들어가고 있었다.
‘물…….’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앞으로 걸어가자, 어느새 남은 양동이는 하나뿐이었다.
수북하게 쌓여 있던 간식거리도 얼마 남지 않았다.
퀭한 눈으로 벽면에 표시한 작대기를 살폈다.
하나, 둘, 셋, 넷…….
벌써 보름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구조대가 오기를 기다리며 식량을 최대한 아꼈다.
하지만 이제 남은 건 초코바 10개와 과자 2봉지, 그리고 양동이 하나가 전부였다.
“제기랄…….”
아끼고 아껴도 일주일 정도 버틸 수 있는 식량.
보름이면 진즉에 구조대가 도착해야 정상 아닌가?
다 뒈진 게 틀림없다.
그래, 다 죽은 거야.
다 죽어서 아무도 없는 거야!
“제기랄 놈들…… 빌어먹을 새끼들…….”
욕설을 중얼거리며 두 주먹을 파르르 떨었다.
이렇게 살 바에 나도 장병철을 따라가는 게 옳지 않을까?
그래, 그만 끝내자.
살아서 뭐해.
고통뿐인 인생, 이쯤에서 벗어나자.
자리에서 일어나 테라스로 향하자, 난간에 굳은 핏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장병철은……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본인이 괴물로 변해가는 걸 알고, 내게 필요한 식수와 식료품을 구해다 주었다.
어떤 마음으로 그런 행동을 했을까.
나를 살리고 싶었던 걸까?
장병철의 손자국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약해진다.
난 이마를 짚으며 울상을 지었다.
지난 보름간 너무 울어서 더는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감정의 기복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영상 40도까지 올라가는 지역 특성 때문에 더더욱 맨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선풍기도, 에어컨도, 시원한 물도 없는 찌는 듯한 더위 속에 놓여 있다.
끝도 없이 펼쳐진 안개를 바라보며, 난 다짐을 굳혔다.
내 앞에 펼쳐진 미래가 죽음뿐이라면, 저승길 비참하게 홀로 가지 말자고.
“다 죽여 버릴 거야.”
바닥에 놓인 몽둥이를 들고, 401호를 막아선 신발장을 응시했다.
아, 그래.
갈 때 가더라도 배는 채우고 가야지.
과자를 뜯어 거침없이 입에 욱여넣고, 초코바도 5개나 털어 넣었다.
그리고 양동이에 얼굴을 파묻고 맘껏 물을 들이켰다.
“캬…….”
남은 초코바 5개는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툭.
날씨 때문에 다 녹아서 그런가, 미끄러진 초코바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침대 밑으로 들어갔다.
“에이씨…….”
구시렁거리며 바닥에 납작 엎드려 침대 밑을 살피자, 초코바와 함께 A4용지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무의식적으로 A4용지를 쳐다보자, 그 위에 빼곡하게 적힌 글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용지에 적힌 글자를 보고 숨이 턱, 하고 막히는 것을 느꼈다.
혈흔이 묻은 종이.
첫 문장에 적힌 내 이름.
장병철의 유서였다.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다급히 종이와 초코바를 손에 쥐었다.
[재형아, 인사도 못 하고 이렇게 떠나는구나.]
유서의 첫 문장이었다.
[네가 잠든 뒤에 헬창이 정신을 차렸어. 분명 탕비실로 옮겼는데…… 힘이 장사라 그런지 문을 부수고 밖으로 나오더라.]
[화장실에서 물 받는 사이에 복도는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나도 물렸어.]
오른손으로 장병철의 유서를 쓸어내렸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지난 보름 동안 나를 살아 있게 해준 형님.
그는 마지막까지 나를 위해 애써주었다.
유서에 적힌 내용에 따르면 좀비에게 물린 뒤로 공격받지 않았다고 한다.
좀비로 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0분.
그사이 식량을 챙기고, 화장실에서 최대한 많은 식수를 준비했다고 한다.
방문을 봉쇄하고 신문지로 유리를 가린 뒤, 지금의 유서를 작성한다고 적혀 있었다.
유서의 마지막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타지 생활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거 알아. 그리고 고향 사람 만나는 게 얼마나 반가운 일인지 너도 알 거야.]
장병철과 내가 친해진 이유, 심한 농담을 건네면서도 서로에게 의지하게 된 이유.
장병철의 고향은 서울의 압구정, 내 고향은 잠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