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284화 (284/285)

제284화. 결자해지 (2)

번쩍!

땅에 착지한 천마가 눈을 뜨자, 암흑과도 같은 검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알아서 일을 진행시켜 주는군.」

천마가 흘린 목소리는, 장무극과 장채원, 그리고 동원의 머릿속을 관통하며 들려왔다.

“멸신…?”

장무극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네놈이 어떻게… 그 녀석의 몸에서 부활할 수 있는 것이냐!”

「후후.」

입꼬리를 올린 천마, 아니 멸신은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이자는 일찌감치 내가 부활할 육체로 점찍어 둔 자였다. 그런데 알아서 이놈을 찾아 씨앗까지 대령해 주더군.」

“뭐, 뭐라고…?”

그제서야 장무극은 절망적인 사실 하나를 깨달을 수 있었다.

“네놈은… 내가 저자와 접촉하기 전부터, 저자를 그릇으로 만들어놓았구나.”

장무극은 몸을 가볍게 떨었다.

멸신은 자신보다 먼저 천마를 찾아냈으며, 이미 자신의 그릇으로 만들어놓을 준비를 마쳤던 것이다.

“이럴 수가.”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동원도 몸을 떨었다.

마의 씨앗을 없애기 위해 그토록 노력을 했건만. 결국 멸신의 손아귀 안이었다니.

“어쩔 수 없지.”

장무극은 몸을 폈다.

지금까진 몸에 지녔던 마의 씨앗 때문에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마의 씨앗을 모두 내보내자 그는 전신으로서의 위용을 다시 보이고 있었다.

“줄곧 씨앗의 형태로 있었으니, 몸을 찾았다 한들 아직 완벽한 힘은 발휘할 수 없겠지.”

장무극의 눈에선 신령스런 기운이 넘실거렸다.

“그 상태로 네놈을 소멸시켜 주마!”

장무극은 한줄기 빛이 되어 천마의 몸을 하늘 위로 띄웠다.

콰릉! 콰쾅!

지구 최강의 신이 발휘하는 힘은 그야말로 뇌정만균(雷霆万鈞). 거역할 수 없는 막강한 자연의 힘과 같았다.

파스스스.

장무극의 공격을 받은 천마의 몸은 가루가 되어 허공에 흩날렸다.

파앙!

다시 한번 장무극이 손을 뻗자 강렬한 힘이 쏟아지며 그 가루마저 완전히 녹여 버렸다.

“대단하십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동원이 감탄성을 터트렸다.

장무극의 일격에는 공간마저 일그러뜨리는 힘이 담겨 있었다. 이 정도라면 멸신이라고 해도 완전히 소멸하였을 것이다.

슈슈슈슈.

그때, 천마가 소멸되었던 공간에서 빛이 나더니 까만 가루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화라라락.

까맣게 모인 가루는 하나의 형태가 되더니, 이내 다시 멸신의 형태로 바뀌어 있었다.

「애쓰는군.」

멸신이 웃으며 손가락 하나를 흔들었다.

장무극이 전력을 다한 공격에도 조금의 타격도 입지 않은 것이다.

“웃기지 마라. 나는…….”

장무극은 ‘아직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않았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사이 멸신이 손가락 하나를 튕겼다.

반짝!

동시에 검은빛 하나가 장무극의 뒤편으로 스쳐 지나갔다.

쿠르르르르.

그 순간 장무극의 뒤편에 펼쳐져 있던 도시의 풍경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이 심연은 지구에 비해 중력이 20배가 넘을 뿐만 아니라, 주변을 구성하는 모든 물질이 엄청나게 단단했다.

손가락 하나를 튕긴 것만으로 심연의 도시 절반을 파괴했다는 건, 온전한 지구 절반을 파괴한 것과 마찬가지의 위력이었다.

「육체에 적응하는 건 그저 시간문제일 뿐이다.」

멸신은 아직 천마의 육체에 적응하지 못했음에도 이러한 위력을 보인 것이다.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고.」

멸신이 낮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다시 한번…….」

하지만 그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장채원이 하얗게 눈을 뒤집은 채 하늘 위로 날아와 멸신에게 주먹을 날린 것이다.

“시끄러!”

콰앙.

멸신의 몸뚱이가 허공에서 땅으로 처박혔다.

어찌나 세게 맞았던지 몸뚱이가 떨어진 곳은 수백 미터 이상의 까만 구멍이 생겨날 정도였다.

“죽어버렷!”

장채원이 한 손을 치켜들자 심연의 하늘에서 수백 개의 운석이 떠올랐다.

쿠우우웅!

엄청난 폭음과 함께 운석들은 멸신이 빠져 있는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콰릉! 콰르르르릉! 콰앙!

장채원의 공격으로 인해 도시는 완전히 평지로 변해 있었고, 땅은 용암처럼 녹아 흐르기 시작했다.

휘이이잉.

멸신이 있던 자리에 거대한 구멍을 바라보던 동원이 반색했다.

“해, 해치운 건가요?”

그가 흔한 부활 클리셰 대사를 외치자 장채원이 오만상을 찌푸렸다.

“너, 지금 부활 주문을 외우냐?”

“죄송합니다.”

동원이 머리를 긁적이며 미소 지었다.

“하지만 정말 놀라서요. 누님의 힘이 멸신에게도 통할 줄이야…….”

쿠르릉.

그때 운석이 떨어진 깊은 구덩이 속에서 진동 소리가 흘러나왔다.

동시에 까맣게 물든 그림자가 다시 허공으로 치솟았다.

“흐흐흐.”

천마의 몸을 차지한 멸신은 전혀 타격을 입지 않은 모습이었다.

‘역시 안 되는 건가.’

동원은 까만 눈을 번뜩이는 멸신을 보자 입술을 깨물었다.

“오냐. 한번 제대로 붙어보자!”

그때 장채원이 손발을 둥둥 걷어붙이자, 동원이 앞으로 나섰다.

“누님. 아무리 누님이라도 멸신은 무린 것 같습니다.”

“내가 질 것 같아?”

「흐흐흐.」

천마의 눈은 이미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조금만 시간이 지난다면 완전히 멸신이라는 존재로 바뀔 것이다.

“저 상태로 계속 놔뒀다간 완전한 멸신이 될 것이다.”

장무극의 눈에서 막강한 투기가 솟구쳤다.

콰앙! 파앙!

한줄기 빛으로 변한 장무극이 멸신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강력한 힘으로 때려도 멸신은 끄덕하지 않고 장무극의 공격에 우뚝 서 있었다.

“나도 도울게!”

장채원 역시 멸신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아빠는 마의 씨앗을 몸에 받아들일 만큼 강력한 전신.

딸은 그 전신의 힘을 태생적으로 초월하는 강력한 반신반요.

콰앙! 쿠웅!

두 줄기 푸른빛으로 변한 장채원과 장무극은 연달아 멸신의 몸을 파괴하고 있었다.

안개처럼 다시 재생하고 또 재생했지만, 두 사람의 주먹이 닿을 때마다 멸신의 몸은 점차 작아지고 있었다.

‘어쩌면, 이길 수도 있어.’

그 모습을 바라보던 동원이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장무극과 장채원은 지구뿐만 아니라 우주에서도 손꼽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이 두 신이 힘을 합치니 그 위력은, 심연을 소멸시키고 그 여파로 다른 세계로 가는 공간마저 열릴 지경이었다.

쿠르르르르.

뜨겁게 달궈진 심연의 땅이 녹아내리고 땅으로 내려온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었다.

그 모습은 이 세상의 모든 악귀를 처리하고 내려온 천신(天神)의 모습이었다.

‘처리한 건가?’

동원은 활짝 웃으며 장채원에게 다가가려 했다.

하지만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그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어르신. 누님.”

우뚝 서 있는 장채원과 장무극의 몸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쭈그러져 있었다. 심지어 피부는 말라버린 땅처럼 쩍쩍 갈라졌다.

쿠웅.

두 사람은 전신의 뼈가 사라진 것처럼 녹아내리듯 바닥으로 쓰러졌다.

멸신은 단독으로 전 우주의 신을 상대할 만큼 전지적인 존재. 장채원과 장무극의 힘으로는 도저히 당해낼 수 없던 것이다.

“으으.”

간신히 정신을 차린 장채원이 장무극을 부축했다.

“아빠.”

하지만 장무극은 제대로 정신을 차릴 수 없는 듯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재미없군.」

멸신은 까만 안개가 피어오르는 눈으로 장채원과 장무극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손가락 하나를 펴기 시작했다.

쩌적.

장채원과 장무극의 피부가 더욱 가늘게 갈라지고 있었다.

손가락이 완전히 펴지면, 이 세상에 있다는 흔적조차 소멸하여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멈춰!”

다급히 수첩을 펼친 동원이 큰 소리로 말했다.

“그 이상 행동했다간 심연 자체를 닫아버리겠다.”

「흐흐흐.」

멸신이 미소 짓자 동원이 눈을 번뜩였다.

“농담인 것 같나.”

애당초 장무극이 심연 속에 갇혀 산 이유도 이런 경우를 예상해서였다.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지만.’

심연을 닫는다고 해도 멸신이 이곳을 빠져나오지 못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장채원과 장무극, 두 신이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갈 시간이라도 벌길 바랄 뿐이었다.

“어르신! 누님! 어서 이곳을 떠나세요!”

허공에 떠 있는 멸신을 노려보던 동원이 수첩을 매만졌다.

“제가 멸신을 조금이라도 이곳에 가두겠습니다!”

번쩍!

동원의 수첩에서 빛이 솟구치더니 장채원과 장무극 주변으로 다시 기다란 통로를 만들어냈다.

「못 간다.」

콰직.

하지만 멸신이 주먹을 꽉 쥐자 동원이 만들어낸 통로가 완전히 사라졌다.

쩌쩌쩍.

동시에 동원의 몸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으으.”

동원 역시 상계신 못지않게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멸신 앞에서는 단 몇 초의 공격도 버틸 수 없었다. 이제 곧 자신의 존재는 소멸할 거라는 걸 직감했다.

‘어라?’

그런데 이상하다.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멸신, 그러니까 천마의 눈동자가 서서히 붉게 타오르고 있지 않은가.

“천마 님…….”

의식이 멀어지자 시야조차 뿌옇게 흐려져 갔다.

“그곳에 계셨군요.”

희미해져 가는 의식을 간신히 붙잡은 동원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일어나세요!”

슈우우우!

나직한 동원의 외침과 동시에 멸신의 몸에서 붉은빛이 솟구치더니,

파앙! 화르르르르!

폭음과 함께 멸신의 등 뒤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커다란 그림자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천마였다.

“천마… 님.”

몸을 옭아매던 힘이 사라지자 동원은 정신을 차리며 외쳤다.

“역시 그 안에 계셨군요.”

천마는 멸신에게 육체를 지배당하고 있음에도, 의식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리자 몸이 두 개로 분리되더니, 또 하나의 천마가 생겨난 것이다.

“이놈이 멸신인가.”

천마는 멸신의 몸 안에서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터였다.

“본좌의 몸을 차지하겠다고?”

쌍둥이처럼 서 있는 멸신을 바라보던 천마가 코웃음을 쳤다.

“해봐라.”

파앙!

천마가 천마대능력을 끌어올리자 사방에서 광풍이 불어오며 붉은빛의 거대한 신의 형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멸신의 힘을 일부 가져오자, 천마 역시 강력한 신력을 사용할 수 있던 것이다.

「역시 나의 그릇.」

천마가 자신의 몸에서 분리되었음에도, 멸신은 오히려 기꺼운 듯한 태도를 보였다.

「와라.」

화르르르.

하늘 끝까지 닿을 듯 거대한 모습으로 변한 멸신.

하늘에서 힘의 폭풍우가 내려오더니,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힘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파아아아아.

하늘을 뒤덮은 채 내려오는 힘을 바라보던 천마는 오른 주먹을 비틀어 쥐었다.

그러자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그의 주먹에 맺혔다.

콰릉!

마치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폭음과 함께 두 힘이 부딪치자, 검붉은 광채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흐읍.”

멸신이 쏟아낸 힘을 모두 받아낸 천마는 힘껏 땅을 박찼다.

한줄기 붉은빛이 된 그가 하늘로 솟구치자 멸신이 오른팔을 내밀었다.

솨르르륵.

수천, 수만 개의 빛무리가 천마의 몸으로 쏟아졌다.

하지만 천마는 그 빛을 모조리 쳐내어 멸신과 사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콰앙! 파앙!

몸과 몸이 부딪치는 육탄전이 벌어지자, 심연의 모든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티잉. 쿵.

동시에 다시 땅으로 내려온 천마와 멸신.

엄청난 육탄전을 벌였음에도 두 사람 모두의 몸에는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그런 건가.”

멸신의 껍데기에서 깨어난 뒤로, 머릿속에는 엄청난 파괴의 욕구가 솟구쳤다. 심지어 그 파괴의 힘은 자신의 손아귀에 있다.

숨을 깊게 쉬는 것만으로 단숨에 이 공간을 모조리 파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 모습을 바라보던 장무극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리 천마가 대단한 존재라고 해도, 설령 신이 되었다고 해도 단독으로 멸신과 상대할 순 없다.

“천마 님과 멸신이 동화되었군요.”

천마를 바라보던 동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육체만 분리되었을 뿐, 애당초 하나의 몸이 된 겁니다.”

“천마가… 멸신과 하나가 되었다고?”

장채원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그렇다는 건 천마 자체가 우주를 파괴할 수 있는 또 다른 존재가 된 것이 아닌가?

철컥. 휘이이잉.

그때 기계음과 함께 잠들어 있던 무명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무명?”

장채원이 눈을 깜빡였다.

아버지 장무극이 분명 신력으로 전원을 차단했건만, 어떻게 다시 정신을 차릴 수 있었을까?

[저에게…….]

다시 눈 센서를 반짝인 무명이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천마 님과 저 멸신을 분리시킬 수 있을 방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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