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280화 (280/285)

제280화. 드러나는 전말 (8)

1퍼센트.

어느덧 우리나라 각성자 100명 중 1명이 능력을 잃은 것이다.

“자, 이제 당신 차례.”

그는 이제 천마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넷스피어 프로그램을 혈혈단신으로 깨뜨린 실력을 보도록 할까.”

김수웅의 도발에 천마는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인간 중에서 가장 강한 자.

눈앞의 인간은 그런 칭호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모처럼 호기가 일어난 천마는 껄껄 웃었다.

“좋다.”

김수웅을 향해 걸어가는 그의 눈동자에선 혈염광휘가 퍼져나갔다.

마침내 진지하게 싸울 생각이 든 것이다.

-인간이 아니로군.

서로를 향해 다가가는 두 사람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천마는 김수웅의 몸뚱이에 이질적인 무언가가 섞여 있음을 파악했다. 김수웅은 천마가 평범한 인간이나 각성자와는 전혀 다른 존재라는 걸 짐작했다.

“받아봐라.

지지지직.

내공을 끌어올리자 강렬한 빛무리와 함께 천마의 몸 주변으로 푸른빛이 머물렀다.

“권마칠식, 극전혼효!”

어느덧 사 갑자에 도달한 내공은 천마대능력을 끌어올리지 않아도 초식의 본래 위력을 담아내고 있었다.

콰릉!

다섯 줄기의 강력한 권력이 김수웅의 몸을 휘감았다.

“흥.”

김수웅은 여유로운 동작으로 다섯 줄기의 권력을 피했다. 마치 모든 동작을 이미 알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천마 씨!”

그 모습을 본 한만재가 다급히 외쳤다.

“조심하세요! 시뮬레이션입니다.”

“그게 뭐냐.”

“천마 씨의 공격을 미리 예측하는 겁니다.”

“공격을 미리 예측한다고?”

천마는 흥미롭다는 듯 표정을 끄덕였다.

“과거 신검부에 그러한 무학이 있었지.”

김수웅을 내려다보던 천마가 살벌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름이 조화신격(造化神擊)이었던가.”

조화신격.

신검부의 비전절기로 적의 키와 무기, 무공 수법 등을 계산해, 적의 초수를 미리 파악하는 검학이었다.

이 조화신격에 능통하면 적의 초식을 몇 수 훤히 내다볼 수 있기에, 어떠한 공격이라도 막아낼 수 있다.

“하지만 조화신격에도 약점이 있지.”

천마가 즐거움에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번엔 무공초식을 사용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콰콰콰콰!

사 갑자의 내공이 담긴 주먹이 폭풍과도 같은 바람을 내뿜으며 김수웅을 향해 쏟아졌다.

“흠.”

이번에 김수웅은 주먹을 모두 피하지 못하고 팔을 들고 막아냈다.

방금 전, 모든 걸 예측하고 움직이던 동작이 아니었다.

천마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멀쩡한 자는 미친놈의 머리를 헤아릴 수 없는 법이지.”

인간이 창안한 모든 무학에는 일정한 법칙이 들어가 있다.

불필요한 움직임은 차단하고 간결하면서 예리한 공격을 추구하기에, 반대로 예측이 어느 정도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일정한 법칙 없이 불필요한 움직임까지 넣는 정신 나간 사람의 공격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우뚝.

갑자기 공격을 멈춘 천마는 김수웅을 바라보며 지루하다는 듯 말했다.

“이제 장난은 그만하도록 하지.”

“흠.”

김수웅이 아쉽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떤 힘을 사용하는지 파악하고 싶었는데. 아쉽군.”

김수웅은 전투를 길게 늘여, 천마가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스킬을 파악하려 했었다.

천마의 능력은 곧 협회장의 능력일 테니.

“본좌의 능력은 염라대왕에게 가서 물어보거라”

무시무시한 천마의 말에 김수웅이 엉뚱한 말을 했다.

“가면신사는 몬스터의 왕이지. 알고 있나?”

동시에 그가 입는 옷감의 색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고급스러운 회색 정장은 검은색으로 물들고 있었고, 턱 아래서부터 하얀 마스크가 자라나듯 만들어지고 있었다.

“스마일 가면신사?”

그 모습을 바라보던 유은호의 표정이 기괴해졌다.

어떻게 인간의 몸에서, 던전 속 히든몬스터로 변신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너희가 본 스마일 가면신사들은 모두 실패작이다.”

하얗게 물든 가면을 쓴 김수웅이 눈동자가 반달처럼 접혔다.

놀랍게도 가면신사의 형태로 변했음에도 전과 다름없이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오리지널 가면신사는 몬스터가 아니라, 인간과 일치하는 존재였지. 아니, 어쩌면 인간의 최종 진화 형태인지도 모르지.”

둥실.

김수웅의 몸이 서서히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한만재가 외쳤다.

“각성체 연구소의 목적이… 가면신사의 힘을 인간에게 이식하는 것이었나?”

“뭐, 겸사겸사지.”

김수웅은 빙그레 웃으며 천마를 바라보았다.

“네놈이 요괴든, 인간이든 단숨에 없애주지.”

콰지직!

한 손을 뻗자 번개와도 같은 빛이 천마의 몸에 쏟아졌다.

콰앙.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속도다.

천마는 어쩔 수 없이 양손을 교차해서 방어했다.

치이이.

고작 공격 한번 막았을 뿐인데, 강철보다 단단한 천마의 양 팔뚝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제법이로군.”

붉게 달아오른 두 팔을 내려다보던 천마가 미소를 머금었다.

“확실히 지루하지 않겠어.”

“같잖은 여유는.”

“신마…….”

낮게 읊조린 천마의 눈동자가 점차 검게 물들었다.

동시에 검은 구체가 그의 양손에서 떠올랐다. 독문무학 신마파멸장을 펼치려는 것이다.

“느린 스킬이군. 기다려 주겠다.”

김수웅이 피식 웃을 찰나,

“…파멸장!”

천마가 손을 뻗자 검은 구체가 김수웅의 안면까지 직격으로 날아갔다.

파직!

하지만 김수웅은 날아온 신마파멸장을 한 손으로 가볍게 멈춰 세운 것이다.

“호오.”

천마의 붉은 눈동자에서 이채가 떠올랐다.

지금까지 모든 것을 파괴했던 신마파멸장을 한 손으로 막아내다니?

“이거 재밌군.”

아무리 강력한 장법이라도 적에게 닿지 않으면 소용없다.

다시 한번 내공을 끌어올린 천마가 두 팔을 밀어내었다.

지지지직.

검은 구체에서 까만 스파크가 튀었다.

신마파멸장을 밀어내는 천마의 몸엔 혈관이 모조리 튀어나왔지만, 김수웅은 여유롭게 한 팔만을 내밀고 있었다.

콰우우우.

두 사람의 힘에 충돌하던 신마파멸장의 장력이 결국 온데간데없이 소멸해 버렸다.

휘리리릭!

그 순간 천마의 몸은 어느새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이번에는 이 갑자의 내공을 얻고 개방한 독문무학, 혈뢰무쌍을 연달아 시전한 것이다.

“음속 돌파인가?”

김수웅은 천마가 초고속 이동 스킬을 발휘한다고 생각하고, 자신도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콰앙! 쾅쾅!

흐릿한 잔상이 된 두 사람이 연달아 허공에서 부딪쳤다.

놀랍게도 김수웅은 천마가 시전한 혈뢰무쌍의 속도를 따라잡을 만큼 빠르게 움직였다.

“으하하하!”

혈뢰무쌍을 펼치던 천마는 광소를 터뜨렸다.

지금까진 무림맹주 정천을 제외하곤 그 누구도 자신과 손속을 겨룰 만한 적수조차 없었다.

그런데 다른 세계의 인간이 자신과 대등하게 싸우고 있다니.

“저게 가능한 일인가.”

천마와 김수웅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던 한만재의 눈꼬리가 떨렸다.

“저들은… 인간이 아니야.”

한만재는 초고속 이동 스킬을 가지고 있는 유은호의 움직임을 줄곧 지켜봤다.

하지만 지금 천마와 김수웅의 스피드는 유은호조차 비할 수 없을 만큼 빨랐다.

“천마 씨, 정말 요괴인 걸까?”

한만재가 낮게 중얼거리자 유은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네가 어떻게 알아.”

“그냥 느낌이에요.”

유은호의 눈동자엔 확신이 가득했다.

“천마 님은 그냥 강한 거예요.”

콰우우우! 빠지지직!

점점 속도가 빨라지자 천마의 몸에선 붉은빛이 번뜩였다.

마침내 천마대능력까지 사용한 것이다.

번쩍!

잔상조차 보이지 않는 두 그림자가 전력으로 부딪치기 시작했다.

쿠릉! 콰앙!

천마와 김수웅은 허공에서 끊임없이 부딪치고 떨어지기를 반복하였다.

이 실험실 내부는 던전을 구성하는 금속보다도 단단한 물질로 만들어져 있음에도, 과자처럼 부서져 나갔다.

쿠웅!

전력으로 부딪친 두 사람은 동시에 번개처럼 뒤로 물러나 동작을 멈췄다.

“아무래도 이런 건 스킬이 아닌데.”

천마를 바라보는 김수웅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역시 요괴였나.”

“흐흐흐.”

잠시 손을 멈춘 천마의 입에선 만족스런 웃음이 흘러나왔다.

김수웅은 무려 사 갑자의 내공을 가진 천마의 힘을 능가하고 있었다.

주먹과 주먹이 부딪칠 때마다 심장이 터질 듯하고 피가 끓어오른다. 하지만 천마는 기뻐서 춤을 추고 싶을 정도였다.

이것이 얼마 만에 느껴보는 고양감이던가!

“아주 좋군.”

빙그레 웃은 천마는 전력으로 천마대능력을 끌어올렸다.

비록 온전한 힘을 되찾는 건 아니지만, 모든 힘을 쏟아부을 상대를 만났다.

“길게 끌 것 없겠지.”

화르르륵.

십이 성의 천마대능력을 끌어올리자 천마의 몸은 한줄기 붉은빛으로 변했다.

쩌저저적.

두 다리가 내딛고 있는 바닥이 거미줄 같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동시에 지진이 난 것처럼 실험실 내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꽤나 요란하군.”

피식 웃은 김수웅의 스마일 가면에서 검은 광채가 흘러나왔다.

지이잉.

검은 빛무리에 몸을 휘감은 김수웅이 외쳤다.

“이번에 끝내주지.”

한줄기 붉은빛으로 변한 천마와 가면에서 검은빛을 내뿜는 김수웅.

두 사람의 시선이 부딪치는 순간,

파앗!

붉고 하얀 두 줄기의 빛이 서로를 향해 부딪쳤다.

파앗!

두 빛이 허공에 부딪치는 순간, 눈이 멀어버릴 것만 광채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쿠웅.

마침내 빛이 사라지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육중한 그림자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름 아닌 천마였다.

“퉷.”

천마는 입에서 밤톨만 한 핏덩이들을 대여섯 개나 뱉어내었다.

[천마 님!]

줄곧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무명이 외쳤다.

사 갑자 내공을 이룩한 천마는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힘과 강력한 위용을 보이고 있었다.

천마대능력을 전력으로 사용했음에도 김수웅이라는 각성자 하나를 꺾지 못하다니?

“후우. 후우.”

낮은 숨을 몰아쉬던 천마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완벽한 내외금강신(內外金剛身)을 이뤘군.”

김수웅은 몸뚱이 하나만큼은 온전한 내공을 지닌 천마의 금강지체와 비견될 만큼 단단했다.

즉, 어떠한 공격을 하더라도 몸에 타격을 입힐 수가 없었다.

“흐음.”

김수웅은 실망스런 표정으로 천마를 바라보았다.

“기술만 독특하지, 능력은 다른 각성자들과 별다를 바가 없는 것 같은데.”

둥실.

허공으로 떠오른 그는 왼손을 서서히 앞으로 내밀었다.

“보아하니 협회장도 그 나물에 그 밥이겠어.”

우웅.

점차 빛무리가 손바닥에 모여지더니 하나의 구체 모양을 만들어냈다.

“이 빛은 던전에 사용하면 던전 구조를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이걸 생명체에 직접 쏟아내면 무엇이든 파괴할 수 있는 무기가 되지.”

-던전의 구조를 바꿀 수 있고, 무엇이든 파괴한다.

가쁜 숨을 몰아쉬던 천마가 혈염광휘를 번뜩였다.

“무엇이든 파괴할 수 있다고?”

낮게 중얼거린 천마가 갑자기 입술을 씰룩였다.

“흐흐흐… 하하하하하!”

무학의 극에 도달했던 그 자신조차 할 수 없었던 말.

그러한 말을 고작 한낱 몬스터와 결합한 인간이 내뱉다니.

허공에서 천마를 내려다보던 김수웅이 눈썹을 찌푸렸다.

“뭐가 우습지?”

“네놈도 벼락부자였나.”

“음?”

“던전의 구조를 바꾸고, 무엇이든 파괴할 수 있는 힘이라.”

천마는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김수웅은 자신의 힘을 과시한 것뿐이었으나, 천마의 입장에선 스스로 자신의 약점을 주절주절 이야기한 것과 다름없었으니.

“그 힘을 얻기 위해 네놈은 뭘 했지?”

질문 의도를 파악한 김수웅이 비웃음을 머금었다.

“태어날 때부터 먹이사슬의 정점에 도달해 있는 존재들이 있지.”

그는 자신의 양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최강 몬스터인 가면신사와 결합한 것만으로, 나는 만물의 정점에 선 것이다.”

“힘이라는 건 스스로 얻어내지 않으면 덧없이 사라진다.”

혈염광휘를 번뜩인 천마가 차갑게 말했다.

“그것이 남의 힘을 빌려다 쓴 자들의 결말이지.”

“헛소리를 하는군.”

“스스로 쟁취한 것이 아니라면 필연적으로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몸을 다시 꼿꼿이 세운 천마의 몸에선 푸른빛과 붉은빛이 넘실거렸다.

“그리고 그 힘을 잃어버리면 비참한 모습으로 돌아가지. 힘을 잃어버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다시 한번 천마대능력과 내공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것이다.

우웅.

동시에 천마의 손가락에서 넘실거리는 생명력과도 같은 빛줄기가 흘러나왔다.

한만재를 구하기 위해 개방한 무학. 관혈투골대구술을 끌어올린 것이다.

“허튼수작.”

차갑게 미소 지은 김수웅이 왼손을 뻗어냈다.

파앗!

김수웅이 뻗어낸 검은빛과 천마가 연달아 뻗어난 세 줄기의 관혈투골대구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한쪽은 모든 것을 부수는 파괴광선, 한쪽은 모든 것을 회복시키는 생명광선이다.

마침내 서로 다른 두 개의 힘이 부딪쳤다.

치이이익.

검은 광선에 노출된 천마의 머리 위에서 하얀 연기가 흘러나왔다.

김수웅이 쏘아낸 광선은 천마의 머리를 통째로 녹이려는 것이다.

“큿.”

천마가 낮은 신음을 내자, 김수웅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이제 끝이다!”

자신만만하게 웃은 김수웅이 세차게 광선을 쏘아낼 무렵,

꾸르르르르.

갑자기 우리옷이 꿈틀거리더니, 절반 정도가 허물 벗겨지듯이 흘러내렸다.

동시에 우뚝 선 천마의 형태로 변해 광선을 막아내고 있었다.

“네놈이 사용하는 힘은, 이 세계에 존재하는 힘.”

입꼬리를 올린 천마가 혈염광휘를 번뜩였다.

“그리고 그 힘을 잠깐만 차단시켜도 네놈은 형편없는 인간이 되어버리지!”

벼락같은 노성와 함께 천마는 회선비기(回旋祕技)의 수법으로 관혈투골대구술의 힘을 쏘아냈다.

지이잉.

완만한 곡선을 그린 관혈투골대구술의 광채가 허공에 떠 있는 김수웅의 등 뒤를 파고들었다.

“크억!”

처절한 비명 소리와 함께 김수웅이 허공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지지직.

뿐만 아니라 관혈투골대구술의 힘이 닿자, 스마일 가면과 양복이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으으으… 모든 걸 튕겨내는 이 육체를 어떻게…….”

“부순 게 아니라 치료를 해준 거다.”

팔짱을 낀 천마는 덤덤히 말했다.

“남의 것을 빌려 덧씌운 네놈의 육체를 원래대로.”

김수웅의 육체는 내외금강체에 버금갈 만큼 단단하고 강했다.

하지만 천마의 관혈투골대구술은 막아내지 못했다.

육체를 부수거나 망가뜨린 것이 아니라, 비정상적으로 변한 육체를 원래의 순수하고 온전한 몸으로 되돌려 주는 것이었으니.

쩌저적.

결국 김수웅의 가면은 반 조각이 나버렸고, 손에서 나오던 검은 광선도 서서히 사라졌다.

“그, 그만.”

몸속에 가득 채워져 있었던 가면신사의 신비한 힘이 사라져감을 느끼자 줄곧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던 그의 얼굴에 조급함이 떠올랐다.

“그만해!”

김수웅의 얼굴엔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가 부하들을 내보내고 이레이져 프로젝트를 단독으로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가면신사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만 명의 각성자들이 몰려와도 처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것이 무너지자 김수웅의 얼굴을 뒤덮고 있던 오만함이 점차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이레이져 프로젝트를 중단하겠다!”

이 음모를 모두 계획한 주모자, 끝판왕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비굴하고 처참한 모습이다.

쉽게 힘을 얻고, 다시 그 힘을 잃어버린 자.

그런 자의 결말은, 천마의 말대로 비참하고 처량맞기 짝이 없었다.

“본좌와 관계없는 일이다.”

“초 팀장은 내 명령에만 따른다. 그녀가 죽어도 좋단 말이냐?”

비명과도 같은 외침을 낸 김수웅이 다급하게 외치자 천마가 코웃음을 쳤다.

“그녀가 죽든 말든 본좌와 무슨 상관있단 말이냐.”

“그럼 왜… 왜 네 녀석은 이곳에 온 거지? 초 팀장을 구하러 온 것이 아닌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소리치자 천마가 피식 웃었다.

“네놈이 인간 중에 가장 강하다고 하더군.”

“뭐라고?”

“궁금했다. 인간 중에 가장 강한 자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고작 그런 이유로… 나와 목숨을 걸고 싸웠단 말이냐. 고작!”

절규하는 김수웅을 보자, 천마는 실망스런 표정으로 혀를 찼다.

“네놈도 결국 흔하디흔한 자에 불과했군.”

‘흔하디흔한’이라는 단어를 내뱉자 천마의 눈빛이 잠시 어두워졌다.

그는 본래 그러한 단어를 쓰지 않는다. 우연히 만났던 한 여성이 쓴 단어를 빌어 표현한 것뿐이다.

-흔하디흔한 연인 관계죠.

“서유리.”

그 단어는 짧은 시간, 자신을 너무나 사랑해 준 한 여인, 서유리가 쓴 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