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277화 (277/285)

제277화. 드러나는 전말 (5)

그것은 마치 영화 속에서 나오는 입자병기가 발사되기 직전의 모습과도 같았다.

우웅.

천마는 서서히 내공을 끌어올렸다.

동시에 그의 몸 전신에서 희미한 빛이 흘러나왔다. 우리옷의 공능에 의해 호신강기가 발휘된 것이다.

‘은호는?’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한만재가 눈을 크게 떴다.

만약 천마가 저 폭발에서 견딜 수 있다고 해도, 유은호는 견디지 못할 것이다.

슈웃! 팟!

그 순간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하더니, 레버너스의 몸에서 빛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한 기의 레버너스의 몸에서 터져 나오는 파괴력은 부비스톤 300개와 비슷한 수준이다.

서른 기의 레버너스가 동시에 터진다면, 그야말로 핵폭탄이 터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콰아아아아!

강렬한 빛과 열기가 천마를 덮쳤다.

콰르르르르.

거대한 폭발이 불스아이 던전을 그대로 삼켜버렸다.

놀랍게도 어떤 현대 병기로도 처리하지 못한다는 던전을, 단숨에 소멸시켜 버린 것이다.

지지지직.

하지만 던전의 중심부에 우뚝 서 있던 천마는 멀쩡한 상태로 서 있었다.

그의 몸 주변에는 보랏빛의 강렬한 스파크가 튀고 있었고, 다리는 땅에서 다섯 치 정도 떠 있었다.

‘내공이 증강되었다고?’

천마는 자신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내려다보았다.

그저 폭발하는 순간, 전력을 다해 내공과 천마대능력을 끌어올렸을 뿐이다. 그런데 돌연 내공이 사 갑자로 증강되어 버리다니?

‘그렇군.’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천마는 어째서 돌연 내공이 증강되었는지를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옷에 담긴 신력.’

천마가 입고 있는 우리옷은 호광의 백년 신력이 주입되어 있다.

그런데 강렬한 폭발력을 감당할 수 없자, 우리옷에 담겨진 신력이 모조리 천마의 몸에 주입된 것이다.

쩌쩍.

사 갑자의 내공이 몸에 담기자, 천마의 피부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껍질이 떨어져 나가더니, 다시 피부에서 기이한 광채가 흐르기 시작했다.

금강불괴.

사 갑자의 내공이 담기자, 온전한 금강불괴의 몸으로 돌아온 것이다.

[천마 님!]

“걱정 마라. 두 갑자의 내공이 증강된 것뿐이니까.”

[그, 그런 건가요?]

콰우우우.

폭발에 의한 연기가 가실 무렵, 스파크와 함께 방패 모양의 환한 빛이 솟구쳤다.

그것은 바로 유은호 앞을 가로막고 있던 한만재의 실드였다.

“형님!”

눈을 뜬 유은호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한만재의 몸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으으으.”

한만재는 전력을 다해 실드를 펼쳤지만, 그 파괴력을 온전히 튕겨내지 못했다.

“끄으.”

양팔로 실드를 펼치고 있던 한만재는 신음성과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쿵.

“형님!”

유은호는 재빨리 한만재를 부축했다.

“괜찮으세요?”

온몸에 화상을 입은 그를 보자 유은호는 울먹이며 품속을 뒤졌다.

“진통제에요. 이거 드셔보세요.”

“넌… 날 원망 안 하냐?”

고통 속에서도 한만재는 터져 나오는 죄책감을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너를 배신했는데.”

“배신은 무슨. 김수웅, 그 간악한 놈한테 속은 것뿐이잖아요.”

“속은 거 아냐. 난 정말 우리 팀마저도 다 죽이려 했어.”

“헛소리 말고 약이나 삼켜요.”

유은호는 흐려져 가는 한만재의 입에 알약 하나를 넣어주었다.

“조금만 참아요. 금방 치료소로 데려갈게요.”

초고속 이동 스킬을 가진 유은호가 마음만 먹으면, 던전 입구 초입의 진료소까지 1분 안에도 주파할 수 있다.

하지만 유은호는 쉽사리 이동하지 못했다.

한만재의 피부가 대부분 뭉근하게 녹아 있다. 잘못 손만 대도 견디지 못하고 숨이 끊어질 것만 같다.

“은호야.”

유은호의 속내를 파악한 한만재가 한숨을 내쉬었다.

“명색이 암살 업무를 맡았던 녀석이… 그렇게 정이 많아서 어쩔 거냐.”

“그래서 관뒀잖아요.”

파리한 한만재의 얼굴을 바라보던 유은호가 이를 깨물었다.

“그러니까 죽지 마요, 형님.”

한만재의 나노슈트는 대부분 녹아 있었고, 전신에는 3도 화상을 입고 있었다.

그야말로 숨만 간신히 붙어 있을 뿐, 눈빛은 이미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미안하다, 은호야.”

한만재의 눈동자에선 눈물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저 아내를 앗아간… 미등록 각성자들이 싫었을 뿐이야. 그런데 김수웅, 그자가 미등록 각성자들을 모조리 없애준다고 해서…….”

“알았으니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마요.”

유은호는 심호흡을 했다.

이대로라면 한만재는 고통 속에서 숨을 거둘 것이다. 어떻게든 던전 초입의 진료소까지 이동하려고 마음먹은 것이다.

“임마. 난 틀렸어.”

한만재는 덤덤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천마 씨가 저렇게 강하니까… 팀장님과 채영이를 구할 수 있을 거야.”

“두 사람, 어디 있는지 아시는 거예요?”

“각성체 연구소에 있어.”

몸에서 피어오르는 지독한 고통을 삼킨 한만재가 엷게 미소 지었다.

“애당초 김수웅은 절대 팀장님과 채영이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약속했지. 하지만 이제 알겠어.”

“형님.”

“그자는 절대 약속을 지키지 않을 거야. 지금 날 죽이려고 하는 것처럼.”

이를 깨문 한만재가 낮게 중얼거렸다.

“은호야. 네게 큰 짐을 지워서 미안하다.”

“형님.”

“정말 미안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으로 보아 숨은 아직 끊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곧 한만재는 생명의 불꽃이 다하게 될 것이다.

[천마 님!]

그 모습을 지켜보던 무명이 황급히 말했다.

[한만재 님을 구해주시면 안 됩니까?]

천마는 한 갑자의 내공을 회복할 때마다 신묘한 독문무학을 사용할 수 있었다.

지금은 두 갑자에 가까운 내공을 얻었다고 하니, 무명은 한만재를 살릴 수 있는 비법이 분명 있을 거라 판단한 것이다.

“거절한다.”

천마는 냉정한 목소리로 손을 내저었다.

“기껏 열린 기혈로, 고작 남을 치료하는 무학을 선택하란 말이냐.”

그 소리를 들은 유은호는 귀가 번쩍 뜨였다.

‘천마 님이 치료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고?’

용수철처럼 몸을 일으킨 그는 천마에게 말했다.

“천마 님! 만재 형님을 치료해 주세요!”

“거절한다.”

“네?”

“본좌의 목숨을 끊으려 했던 자가 아니더냐.”

천마는 눈을 감은 채 숨을 헐떡이는 한만재를 가리켰다.

“애당초 던전에 들어올 때부터 알고 있었지. 본좌를 죽이기 위한 죽음의 함정을 꾸몄다는 것을.”

“그, 그건… 만재 형님은 그냥 이용만 당한 거예요.”

“사냥을 다한 사냥개는 솥에 삶아지지. 그건 당연한 이치다.”

“천마 님!”

유은호는 입술을 깨물었다.

천마의 말은 무엇 하나 틀린 것이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후회를 하지 않았습니까.]

보다 못한 무명이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그리고 천마 님에게 사죄를 드린다고 하였습니다.]

“알 게 뭐냐.”

그때 한만재가 숨을 헐떡거리며 말했다.

“은호야, 나는 괜찮아. 그리고 천마 씨의 말이… 다 맞아.”

힘겹게 천마에게 시선을 돌린 한만재가 다시 힘겹게 말했다.

“정말 미안… 합니다, 천마 씨.”

이미 한만재는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만약 지금 손을 쓰지 못하면 천마가 아니라, 대라신선이 온다고 해도 그를 구하지 못할 것이다.

[천마 님!]

보다 못한 무명이 큰 소리로 말했다.

[천마 님께서는 아직도 사람의 목숨을 가벼이 여기시는 겁니까?]

“뭐라.”

[벌써 서유리 님을 잃으셨잖습니까? 또 가까운 사람들이 죽어가도록 내버려 두실 거냔 말입니다.]

서유리의 이름이 입에 담긴 순간, 천마의 눈동자에서 불꽃이 튀었다.

“네놈이 간이 부어터졌구나! 감히 본좌에게…….”

[천마 님!]

무명은 전에 없던 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할 수 있다면 해야 하지 않습니까? 구할 수 있다면 구해야 하지 않습니까? 어째서 죽어가는 사람을 외면하시는 겁니까?]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본좌를 죽이려 한 자를 구하라고?”

천마는 오히려 코웃음을 쳤다.

“본좌가 수십 배로 되갚아주는 것이 호의뿐인 줄 아느냐.”

천마는 받은 것은 반드시 수십 배로 돌려준다.

그것이 호의든, 적의든 말이다.

[호의…….]

나직이 중얼거리던 무명은 갑자기 눈 센서를 번뜩였다.

[천마 님은 한만재 님에게 빚이 있습니다.]

“무슨 헛소리냐.”

무명은 주황빛 몸으로 반짝이는 천마의 몸을 가리켰다.

“지금의 폭발로 인해 천마 님은 강력한 내공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모두 한만재 님의 덕택 아닙니까?”

솔직히 이것은 무명의 억지였다.

한만재는 그저 죽음의 함정을 준비했을 뿐이고, 천마는 폭발에서 살아남아 내공을 얻었을 뿐이다.

[압니다. 제 말이 억지처럼 들린다는 것을요.]

“알면 다물어라.”

[하지만 천마 님께서 말씀하시길, 이 세상에 천마 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고 하셨습니다. 분명 한만재 님은 천마 님의 내공을 증진시킬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천마 님께 조금이라도 도움을 준 것입니다.]

천마는 입을 다물었다.

무명의 말은 궤변이다. 하지만 분명 내공 증진의 기회를 얻게 해준 것은 사실이었다.

“궤변을 늘어놓는구나.”

[천마 님께서도 궤변을 즐겨하시지 않으십니까. 모든 건 천마 님에게 배운 겁니다.]

무명은 천마의 발아래 엎드렸다.

[그것도 부족하다면 지금까지 천마 님을 보필한 저의 노력을 조금만 보태면 안 되겠습니까?]

지금까지 무명은 천마를 보필하면서 단 한 번도 엎드려 사정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다른 이를 살리기 위해, 무명은 애절한 마음으로 간절히 빌었다.

[천마 님.]

“…….”

무릎을 꿇은 무명을 보자 천마는 희미한 기억이 떠올랐다.

마기자와 함께 강호를 잠시 둘러보다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한 마을에 들렀을 때였다.

-부디 이들을 살려주십시오.

마기자는 신음 속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천마에게 애원했다.

-천마 님의 공력이라면 이들을 모두 살릴 수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천마는 당연히 거절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공력을 쓰는 것도 귀찮을 뿐더러, 이들을 치료해 줘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이들은 죄 없는 양민입니다. 만약 천마 님께서 이들을 구한다면, 살아 있는 동안 천마 님을 종생토록 칭송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꿈쩍을 하지 않자, 마기자는 천마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것도 부족하다면 지금까지 천마 님을 보필한 저의 노력을 조금만 보태면 안 됩니까? 부디 저들을 도와주십시오.

만마집궁의 총사로 임명되었을 때도 대례를 하지 않고 깊게 읍을 했던 마기자였다.

충심으로 조언을 하기 위해선 절대자에게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니라, 나란히 서 있어야 한다면서 말이다.

회상에서 깨어난 천마.

그는 자신의 발아래 엎드려 있는 무명을 바라보았다.

‘설마 네놈과 마기자가 이어져 있단 말이냐.’

어처구니없는 상상이다.

그는 다른 세계의 무림인이었고, 눈앞의 무명은 신의 손에서 태어난 기계생명체일 뿐.

하지만 왜 이런 기억들이 자주 겹치는 걸까?

“흥.”

낮게 코웃음을 친 천마는 무명을 지나쳤다.

“네놈이 본좌에게 한 거라곤, 언제나 쓸데없는 말을 한 것뿐이지.”

그리고 죽어가는 한만재에게 다가가 그를 빤히 내려보았다.

“네놈도 그 정도 상처 가지고 유언 따위 남기지 마라.”

“네?”

“운이 좋구나.”

천마의 식지와 중지가 청록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본좌가 사 갑자의 내공을 회복한 탓에 관혈투골대구술을 사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관혈투골대구술.

마선(魔仙)의 구음관혈비방(九陰貫穴祕方)을 참고로 다시 창안한 무학이다.

음양이기를 모두 내포한 반극진기를 이용해 생명력을 극대화시키는 것으로, 그야말로 숨만 붙어 있으면 모든 것을 ‘원상복구’ 시킬 수 있다.

자연의 힘과 비슷한 반극진기를 이용한 것으로, 이 세계 각성자들의 치료 스킬을 아득히 뛰어넘는 힘이었다.

지지지직!

독문무학을 사용할 수 있는 기혈을 개방하자 천마의 눈에선 신광이 폭사되었다.

동시에 몸이 땅에서 여섯 치 정도 떠오르기 시작했다.

으드드드. 꾸르르르.

천마의 뼈와 장기가 살아 있는 생물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른 이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선 자신의 몸부터 정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타악.

다시 땅으로 내려온 천마의 전신에는 청록빛이 머물러 있었다.

인간의 몸을 내공으로 강제로 정화, 치료시키는 관혈투골대구술의 힘이었다.

파앗!

천마가 손가락을 뻗자, 청록빛이 연달아 한만재의 몸속을 파고들었다.

“웨엑.”

그 순간 다 쓰러져 가던 한만재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주먹만 한 핏덩이를 토했다.

“퉤!”

치이이이.

뱉어낸 핏덩이에는 몸을 태우고 있었던 화독(火毒)이 담겨져 있었다.

어찌나 그 화독이 지독한지, 용암처럼 땅을 뚫고 내려가다 하얀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하아. 하아.”

한바탕 피를 토하자 한만재의 안색은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동시에 흐물흐물하게 내려앉았던 뼈도, 피부도 다시 윤기가 흐르고 있었다.

“형, 형님!”

유은호는 환호성을 질렀다.

다 죽어가던 한만재가 대번에 정신을 차리고 몸이 멀쩡해지다니?

“괜찮으세요?”

“으, 으응.”

정신을 차린 한만재는 천마의 앞으로 걸어가 무릎을 꿇었다.

다 죽어가기 전까지 천마와 무명의 이야기를 모두 들었기 때문이다.

“저, 저어…….”

한만재는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그 자신은 김수웅의 명을 받고 천마를 죽이기 위한 함정을 팠다. 하지만 천마는 오히려 죽어가는 자신의 몸을 치료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한만재는 천마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정말로… 죄송합니다.”

“본좌에게 감사할 필요 없다.”

천마는 코웃음을 치며 무명을 가리켰다.

“무명의 억지롤 들어준 것뿐이니.”

만약 평소였다면 한만재는 그 말에 의아함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는 깨달았다.

저 둥그런 나노봇은 일반 기계가 아니다. 우리 인간과 똑같은 감정을 지닌 생명체였다. 그리고 천마와 가장 가까운 존재였다.

“고, 고맙다…….”

한만재가 더듬더듬 인사를 하자 무명이 두 손을 내저었다.

[별말씀을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몸을 일으킨 한만재는 다시 한번 천마에게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천마의 눈을 똑바로 뜨고 말했다.

“그리고 한 번 더 저를 도와주십쇼.”

“뭐라?”

“팀장님과 채영이가 위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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