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274화 (274/285)

제274화. 드러나는 전말 (2)

실드경계지역, 특수대응팀 빌라.

“채영이는 왜요?”

상황실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던 유은호가 눈을 껌뻑였다.

업무 보고를 하고 돌아온 초홍이 신채영을 데리고 다시 협회로 간다고 했기 때문이다.

“김수웅, 그 양반이 채영이도 데려오래요?”

“응.”

“왜요?”

초홍은 무감정한 표정으로 말했다.

“긴급한 사안이라고 했어.”

“긴급한 사안…….”

잔뜩 인상을 쓰던 유은호는 무언가를 깨달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이번엔 팀장님과 채영이를 쌍으로 외부 업무에 돌리려는 거 아네요?”

그동안 신채영은 김수웅의 명령으로 외부 출장이 잦았다.

유은호는 이제 초홍과 신채영이 쌍으로 외부 출장을 보내는 것이라 생각하고 인상을 썼다.

“그 양반, 미친 거 아니에요? 특수대응팀이 무슨 홍보팀인 줄 아나 봐.”

“그러게.”

초홍은 고저 없는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신채영을 데리고 빌라 문을 나섰다.

“으음.”

팔짱을 낀 유은호는 이마를 찌푸렸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무언가 아주 찜찜하고 불길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팀장님…….”

지금까지 외출할 땐 언제나 웃으며 ‘다녀올게’ 혹은 ‘고생해’ 등의 인사말을 했다.

물론 그 인사는, 빌라를 짓고 가족처럼 지내고 나서부터 한 것이었지만.

“많이 갈굼 당하셨나?”

유은호는 머릿속에서 흘러나오는 묘한 예감을 털어내 버리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다음날.

상황실을 지키고 있는 유은호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 있었다.

협회로 들어간 초홍에게도, 신채영에게도 연락이 없다. 심지어 저녁 무렵, 초홍의 연락을 받고 외출을 한 한만재마저 돌아올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휴대폰이 꺼져 있는 탓에 세 사람의 위치추적이 되지 않는다.

끼익. 덜컹.

그때 차량이 멈추는 소리와 함께 빌라의 문이 열렸다.

“후우. 후우.”

거친 숨소리가 들리자, 유은호는 불길한 예감이 현실이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형님!”

현관 입구엔 곳곳에 부상을 입고 있는 한만재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은호야.”

“어떻게 된 거예요?”

“팀장님과 채영이가…….”

고개를 숙인 한만재가 이를 깨물었다.

“납치당했다.”

“뭐라고요?”

유은호는 믿을 수 없었다.

채영이야 힐러라지만, 초홍은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가는 정신 조작 능력자를 누가 납치한단 말인가.

“누가요?”

“모르겠어.”

“형님. 제대로 좀 설명해 봐요!”

유은호의 닦달에 한만재가 이를 깨물고 자신의 팔을 내밀었다.

팔뚝 아래에는 오렌지빛 무언가가 깜박이고 있었다.

“이거…….”

유은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실시간으로 위치와 이야기를 감시할 수 있는 수신기였기 때문이다.

“어제 팀장님 연락을 받고 가변던전 지역으로 가던 중에, 이상한 마스크를 쓰고 시커먼 나노슈트를 입은 놈들에게 습격당했다.”

“잠, 잠깐만요.”

유은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왜 팀장님이 가변던전 지역으로 갔는데요?”

“나도 몰라. 오라서 간 것뿐이야.”

“마스크를 쓴 사람은 누군데요?”

“몰라, 전혀 처음 보는 녀석들이었어.”

이를 꽉 깨문 한만재가 낮게 중얼거렸다.

“정체도 모르겠고, 사용하는 스킬도 전혀 모르겠어.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졌어.”

한만재의 몸은 피투성이가 된 상태였다.

탱커인 그의 몸에 상처를 입힐 정도라면 1급 각성자들이 분명했다.

“원하는 게 뭐래요.”

“천마 씨를 데리고 오래.”

“네?”

한만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 마스크를 쓴 놈들 중 한 명이 천마 씨를 불스아이 던전에 데려오라고 했어. 그러면 두 사람을 무사히 보내주겠다고.”

유은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껌벅였다.

“천마 님을 불스아이 던전에 데려오라고요? 그게 요구 조건이라고요?”

“그래.”

한만재는 팔뚝에서 반짝이는 수신기를 노려보며 말했다.

“협회에 연락하는 순간, 팀장님과 채영이를 죽일 거라고 했어. 수신기를 제거해도 죽일 거라고.”

“…….”

유은호는 이를 깨물었다.

각성자의 몸에 수신기를 부착할 정도면 평범한 자들은 아니다.

분명히 국가권력에 닿아 있거나, 혹은 국가권력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자들이 분명했다.

“그놈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스킬도, 힘도 발휘할 수 없었어. 그냥 평범한 인간처럼 말야.”

한만재는 천마가 살고 있는 옥탑방 방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빨리 천마 씨를 데려가야 해. 오늘까지 은밀히 데려오지 않으면 팀장님과 채영이가 위험해.”

한만재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나보다는 네가 천마 씨를 잘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이리 온 거야.”

“천마 님을 정말 불스아이 던전에 데려가자고요?”

“그래.”

유은호는 입을 다물었다.

만약 천마가 나서면 정말 손쉽게 두 사람을 구해줄 것만 같다.

‘하지만…….’

“은호야. 생각할 시간이 없어.”

그때 한만재가 유은호의 어깨를 붙잡았다.

“뭐가 됐든 그 사람을 불스아이 던전으로 데려가야 해.”

유은호는 입술을 깨물었다.

“알겠어요. 같이 가봐요.”

다행히 천마의 옥탑방엔 불이 켜져 있었다.

유은호와 한만재는 황급히 달려가 옥탑방의 문을 두들겼다.

“천마 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다급한 외침에 대답한 건 다름 아닌 나노봇, 무명이었다.

끼익.

낡은 철문이 열림과 동시에 하얀 눈 센서를 반짝이던 무명이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유은호 님. 한만재 님. 어쩐 일이십니까?]

“미, 미안한데 천마 님을 불러줄래?”

[아.]

무명은 곤란한 듯 둥그런 머리를 긁적거렸다.

[천마 님은 운공에 들어가면 새벽까지 꼼짝도 안 하시는 분인지라…….]

무명이 더듬거리자 한만재가 큰 소리로 외쳤다.

“천마 씨! 팀장님과 채영이가 납치를 당했습니다!”

성격대로라면 당장 안쪽으로 들어가 문을 박차고 싶다.

하지만 천마의 성격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만재는 그 충동을 억눌렀다.

“천마 님을 데려가지 않으면 두 사람을 죽이겠다고 합니다!”

간절하고 절박한 외침에도 안쪽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다.

보다 못한 유은호가 한만재를 제지했다.

“형님, 진정해요. 천마 님이 오면 제가 차분하게 설명할게요.”

달칵.

그러자 문이 열리며 안쪽에서 회색빛 민소매 도복을 입은 사내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바로 천마였다.

“무슨 소란이냐.”

[천마 님. 그것이…….]

“천마 님. 도와주세요.”

유은호가 천마를 보며 침착하게 말했다.

“팀장님과 채영이가 납치를 당했어요.”

“납치?”

“그렇습니다. 그게…….”

한만재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천마 씨를 불스아이 던전으로 데리고 오지 않으면 두 사람을 죽이겠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저희도 모르는 자들이… 팀장님과 채영이를 납치한 후, 천마 님을 불스아이 던전으로 데려오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만재가 이를 깨물고 말했다.

“협회에 연락하면 죽이겠다고…….”

그때 무명이 한만재의 팔을 바라보며 눈 센서를 번뜩였다.

[수신기가 있군요.]

“응?”

[납치범들이 한만재 님을 겁박하기 위해 설치해 놓은 건가요?]

한만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무리 나노봇이 뛰어난 로봇이라지만, 몸 안에 박힌 수신기를 어떻게 감지한단 말인가?

[천마 님. 한만재 님의 말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초홍 님과 신채영 님을 납치하고, 구원 요청을 하지 못하도록 몸 안에 수신기를 박아 넣었습니다.]

이미 TV에서 이와 비슷한 내용이 나오는 첩보영화를 수없이 본 천마.

그는 무명의 말을 대번에 알아들었다. 그리고 초홍의 무능함을 탓했다.

“역시나 무능한 우두머리였군.”

언제나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초홍을 떠올린 천마가 인상을 썼다.

“돌아가라.”

“천, 천마 님.”

“본좌는 운공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자 한만재가 황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천마 씨를 빨리 데려가지 않으면 두 사람을 죽이겠다고…….”

“뭐 어쩌란 말이냐.”

“네?”

“너희들이 본좌의 부하더냐.”

천마는 한심하다는 듯 한만재와 유은호를 바라보았다.

“너희들의 일에 본좌가 왜 나서야 한단 말이냐.”

“천마 님.”

“가거라.”

유은호와 한만재는 충격을 먹었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벌리고 있었다.

보다 못한 무명이 조심스럽게 나섰다.

[천마 님. 초홍 님과 신채영 님을 납치할 정도라면, 국가권력 혹은 국가권력에 준하는 힘을 가진 자일 겁니다.]

천마의 성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무명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몬스터도 아닌 인간이 그 정도 실력을 가졌다니… 구미가 당기시지 않습니까?]

“흠.”

순간 천마의 굵은 눈썹이 잔뜩 찌푸려졌다.

“강하단 말이군.”

무명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말했다.

[그렇습니다. 협회 소속의 각성자를 납치할 정도라니… 지금까지 천마 님이 봐왔던 자들 중에서 아마 가장 강할 것 같습니다.]

천마는 다시 몸을 돌려 유은호에게 말했다.

“불스아이 던전이라고 했느냐.”

“네? 맞습니다.”

“한번 가보도록 하지.”

원래대로라면 유은호는 뛸 듯이 기뻐하며 감사를 표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야 깨달았다.

-지금까지 우리가 착각한 거야.

지금까지 천마는 자신들을 구해준 것이 아니었다.

그의 말대로 그저 우연히, 그곳을 지나치다 엮이듯 도와준 것뿐이었다.

늘 무심하고 냉담한 척을 했지만, 실제로는 다정할 거라 생각했던 천마.

하지만 실제 그의 성격은 차갑고 냉혹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때 한만재가 고개를 숙였다.

멍하니 서 있던 유은호 역시 정중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답답한 목소리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천마 님.”

그때 무명이 천마의 방 한켠에 놓여 있는 무언가를 가리켰다.

[이걸 가져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것은 헤파이토스가 지호에게 남긴 유산, 강추였다.

은총, 즉 내력만 희생하면 신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무기다. 하지만 천마는 처음 쓴 이후 한 번도 강추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것은 천마 스스로 만들어낸 힘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그러한 선물 같은 힘은 언제고 덧없이 사라질 것이다.

“흥.”

물끄러미 강추를 바라보던 천마는 낮은 코웃음 소리를 내었다.

불스아이 던전.

호빵을 뒤집어 놓은 듯한 둥그런 과녁이 설치된 가변던전이다.

이 던전이 위험한 이유는 과녁이 돌아갈 때마다 던전의 미로가 바뀔 뿐더러, 내부에 극독 같은 기운이 흘러나온다는 점이다.

푸르르릇.

파공음과 함께 회색빛 그림자가 불스아이 던전 앞으로 착지했다.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을 가릴 듯한 우람한 체구, 어둠 속에서 빛나는 붉은 눈동자, 어깨에는 둥그런 나노봇을 매달고 있다.

바로 천마였다.

휘익.

그때 예리한 바람 소리와 함께 나노슈트를 입은 그림자가 천마의 곁에 섰다.

바로 유은호였다.

‘제법이군.’

천마는 눈을 가늘게 떴다.

칠 할의 천마대능력을 사용했음에도 유은호는 여유 있게 따라왔다. 아마 전심전력을 다했어도 넉넉히 따라왔을 것이다.

“후우. 후우.”

그리고 한참 뒤에야 가쁜 숨소리와 함께 단단한 체구의 중년 사내가 도착했다.

바로 한만재였다.

“이곳에 본좌를 찾는 자들이 있다… 라.”

낮게 코웃음을 친 천마가 불스아이 던전으로 성큼 걸어갔다.

그러자 유은호가 황급히 달려갔다.

“저희가 앞장서겠습니다.”

“필요 없다.”

천마는 산보를 하듯 느긋이 걸어갔다.

미로처럼 이어지는 길을 자기 집 드나들듯 걷던 천마는 어느새 던전의 중심부에 이르렀다.

‘흐음.’

천마는 던전 미로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기묘한 구조물들을 발견하곤 눈을 가늘게 떴다.

벌써 이 불스아이 던전에 세 번이나 들어왔지만, 저러한 구조물을 본 적은 없다.

‘재밌는 짓을 하는군.’

천마는 기관진식의 달인이다.

그는 잠시 생각을 한 것만으로 미로 벽에 박혀 있는 구조물들의 용도를 단숨에 파악했다.

[천마 님. 이것들은…….]

그 사이 무명도 구조물의 용도를 파악했는지 입을 열려 했다.

하지만 천마가 냉정히 말을 잘랐다.

“본좌도 알고 있으니 설명할 필요 없다.”

[하지만 이대로 간다면…….]

“한마디만 더 하면, 돌아가겠다.”

천마는 절대 허언을 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무명은 즉시 입을 다물었다.

-위험합니다. 천마 님, 이건 함정입니다!

무명은 이렇게 경고하려 했다.

하지만 지금 천마에겐 그 ‘위험’이 필요했다.

줄곧 솟구치는 여러 가지 감정을 억눌러 왔던 천마. 오히려 그는 목숨마저 장담할 수 없을 만큼 위태로운 전투가 간절한 것이었다.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그때 한만재가 조심스럽게 다가오자, 천마가 묘한 웃음을 떠올렸다.

그 미소를 보자 한만재는 가슴이 떨려왔다.

“뭐가 있습니까?”

“아무것도 아니다.”

천마는 다시 느긋한 걸음걸이로 앞으로 나아갔다.

만약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그가 산보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독이 없어졌군.’

원래 불스아이 던전엔 산공독과 비슷한 독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떤 것도 피어오르지 않았다.

“천마 님.”

던전 중심부에 다다르자 유은호가 말했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됐다.”

천마는 고개를 돌려 유은호가 한만재를 바라보았다.

“본좌는 이곳에 여러 번 들어왔었지.”

“네?”

한만재가 눈을 껌뻑이자 천마가 피식 웃었다.

“이곳은 항상 산공독이 피어오를 뿐 아니라, 미로의 구조가 일정치 않다.”

붉게 반짝이는 천마의 눈동자는 한만재의 몸 안쪽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까 보니 재밌는 기관을 설치했더군.”

“기관이요?”

한만재가 눈을 껌벅였다.

“무슨… 기관 말입니까.”

텅 빈 던전 중심부를 바라보던 천마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던전을 거대한 함정으로 만들 수 있도록, 출구를 모두 막아버리는 기관 말이다.”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 한만재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걸 알면서 왜…….”

천마는 대답 대신 천천히 던전 중심부 안으로 들어갔다.

쿠웅.

마침내 중심부에 들어서자 묘한 진동 같은 것이 울려 퍼졌다.

“형님.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철컹, 쿠쿵. 쿠쿠쿠쿠.

유은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낮은 진동음과 함께 던전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천마가 들어간 던전 중심부의 입구가 닫히기 시작했다.

“천, 천마 님!”

유은호가 스킬을 펼쳐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안 돼, 은호야!”

황급히 달려온 한만재가 그를 제지했다.

“들어갈 수 없어! 저 안에는 가면신사가 있단 말야!”

“뭐라고요?”

쿠웅.

그때 던전으로 들어가는 문이 완전히 닫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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