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273화 (273/285)

제273화. 드러나는 전말 (1)

‘전략기획실장실.’

금속으로 된 자동문이 설치된 여타 사무실과 달리 고풍스런 원목 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초홍은 문 앞에 선 채 껄끄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맨날 업무 보고를 직접 하라는 거야.’

한 달에 한 번. 업무 보고를 이유로 초홍은 언제나 김수웅과 독대를 한다.

그리고 그녀는 이 사실이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다른 팀에선 이런 거 없잖아.’

징계나 질책을 받는 것이 아니라면 전략기획실 산하 그 어떤 팀에서도 업무 보고를 위한 독대 같은 건 하지 않는다.

대체 그는 왜 이런 앞뒤 꽉 막힌 사무실에서 자신에게 독대를 요구하는 걸까?

똑똑똑.

심호흡을 한 초홍은 조심스럽게 사무실의 문을 두들겼다.

“특수대응팀장, 초홍입니다.”

달칵.

문을 열자 칼날을 연상케 하는 매끈한 몸선을 가진 중년인이 뒷짐을 쥔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전략기획실장, 김수웅이었다.

스윽.

몸을 돌리자 은테 안경 속 날카로운 눈매가 초홍을 빠르게 훑었다.

한 달 사이 길어진 머리를 단정하게 넘긴 김수웅은 초홍을 내려다보며 묘한 웃음을 지었다.

“오랜만이군.”

시선을 마주친 순간 초홍은 살짝 한기를 느꼈다.

마치 들어가선 안 되는 미지의 영역에 들어선 것만 같다.

“네.”

“별일 없었나.”

초홍은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새삼스레 웬 안부 인사를?’

“네.”

“다행이로군.”

늘 낮게 가라앉아 있는 김수웅의 눈동자에서 묘한 열기가 느껴진다.

초홍은 무언가 이상함을 깨달았지만 내색하지 않고 가져온 보고서를 내밀었다. 그곳엔 한 달 동안 특수대응팀의 업무 진행 상황이 담겨 있었다.

“그동안 고생했네.”

“네?”

책상 위에 올린 보고서를 기계적인 동작으로 훑어보던 김수웅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오늘부로 특수대응팀은 정식으로 해체될 거야.”

“무슨 말씀이신지.”

탁.

올려져 있는 보고서를 덮은 그가 다시 말했다.

“특수대응팀이라는 부서는 더 이상 협회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충격적인 발언에도 초홍의 표정은 덤덤했다.

늘 각오했던 일이었으니까. 오히려 언제 그날이 올지 궁금하던 참이었다.

“알겠습니다.”

초홍은 이유 따윈 물어보지 않았다.

김수웅의 입장에선 특수대응팀을 존속해야 할 이유는 단 한 가지도 없었다.

오히려 눈엣가시였던 부서에 새 막사를 지어주고 실드경계지역에 보낸 것이 오히려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유는 묻지 않는 건가.”

“말하면 알려주실 겁니까?”

“물론.”

김수웅은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초 팀장, 그리고 신채영 요원. 두 사람은 이제 진짜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니까.”

“해야 할 일이라뇨.”

“초 팀장과 신채영, 유은호. 이 세 사람은 박정민 실장이 어린 시절부터 키워온 인재들이 아닌가.”

초홍의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는 김수웅의 안경에선 희미한 안개 같은 게 피어오르는 것 같다.

“…….”

초홍은 눈썹을 찌푸린 채 입을 다물었다.

새삼스러운 과거이긴 하지만, 김수웅의 말대로 세 사람은 박정민 실장의 주도하에 전략적으로 키워온 인재였다.

그런데 새삼 그것을 언급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자네는 시설에서 나오자마자 장금선이라는 특수한 각성자에게 다시 훈련을 받았지. 자네가 가진 정신 스킬을 제어할 수 있는 자는 오직 그자밖에 없었으니까.”

하늘 같은 스승님을 ‘그자’라고 표현하다니.

치아를 깨문 초홍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팀이 해체되었다는 말씀이군요.”

말을 빙글빙글 돌려서 하는 김수웅의 화법엔 오래전에 질려 버린 초홍이었다.

특수대응팀이 해체되었다면 더 이상 잠자코 들을 이유가 없었다.

“그럼 돌아가 보겠습니다.”

“아직 말 안 끝났는데.”

“수다를 떨고 싶으면 다른 요원들을 불러서 떠시죠.”

초홍은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몸을 돌렸다.

“어차피 이제 전 협회 소속이 아니니까요.”

“하긴. 어차피 관둘 생각이었으니, 미련도 없는 건가.”

“이유도 없어 팀을 해체하신 분께서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내 머릿속을 털어 정부 쪽 관련자들을 잡아낼 생각… 이었던 것 같은데. 아닌가?”

의외의 말이 튀어나오자 초홍의 눈빛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이야기는 팀원들에게 한 말이다.

빌라 내에서 도청당할 일은 거의 없으니, 팀원 중 누군가 김수웅의 스파이 노릇을 한 것이 분명했다.

“스파이…….”

잠시 고민하던 초홍이 중얼거렸다.

“한만재 요원이군요.”

초홍이 대번에 알아채자 김수웅이 피식 웃었다.

“어째서 그를 의심하는 거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오직 한만재 요원만이 당신의 더러운 꾀임에 넘어갈 수 있으니까요.”

“하하하.”

더 이상 숨길 생각이 없는 듯 김수웅은 미소 지었다.

“맞아. 그는 아내를 앗아간 범죄자들을 증오하고 있지. 그리고 그런 범죄자들을 처리할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을걸세.”

“왜 그런 짓을 한 거죠. 어차피 마음만 먹으면 저희 팀을 없앨 수 있는데.”

초홍은 분노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왜 한만재 요원을 스파이로 심어놓은 겁니까! 그 마음 여린 사람을, 왜!”

“전에 말했잖나.”

김수웅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절대 쓸모있는 개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고.”

초홍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김수웅은 지금 상황에서도 본론을 꺼내지 않은 채 빙글빙글 말을 돌리고 있다.

“길에서라도 만나지 말죠.”

이를 깨문 초홍이 김수웅을 노려보다 몸을 돌렸다.

“시도해 보지 않는 건가.”

“무슨 시도를요?”

“내 머릿속을 털어본다고 하지 않았나.”

김수웅은 그답지 않게 달콤하고 유혹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손목에 착용하고 있는 시계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띠링 하는 소리와 함께 손목시계의 테두리에 붉은빛이 들어왔다.

“지금 사무실 주변으론 아무도 없어. 그리고 나는 지금 정신방벽 기계를 껐지.”

양팔을 내민 김수웅이 빙그레 웃었다.

“내 단언하건대, 지금이 아니라면 다시는 내 머릿속을 들여다볼 기회가 없을 걸세. 평생 동안.”

“…….”

“대체 뭘 망설이는 거지?”

초홍은 말없이 김수웅을 노려보았다.

저자는 대체 무슨 꿍꿍이 속셈을 가지고 있는 걸까.

한동안 사무실에 적막이 흐르고, 결국 김수웅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쉽군.”

허탈한 미소를 머금은 김수웅은 초홍을 향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정말 기회를 준 것인데.”

그는 진심으로 초홍이 정신 능력을 사용하도록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시도하지 않았다.

이러한 행동 역시 그의 예상에 들어가 있는 걸까?

“세상 많은 사람들은 망설이다 기회를 놓치지.”

혀를 찬 김수웅이 경멸 섞인 표정을 지었다.

“사람들이 망설이는 이유를 아나?”

초홍의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김수웅이 말했다.

“바로 인의도덕을 지키려 하기 때문이야. ‘이건 옳지 않은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망설이는 거지. 사실은 그것이 가장 빠르게 성공할 수 있는 일인데 말야.”

“수다만 늘었군요.”

초홍은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다는 듯 몸을 돌려 사무실의 문고리를 잡았다.

철컥.

하지만 문은 어느새 잠겨 있었다.

초홍은 팔에 힘을 주고 문을 세게 밀었다.

3급 각성자인 그녀의 근력이라면 쇠로 만든 문이라도 단번에 찌그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

하지만 놀랍게도 원목 문은 찌그러지지도, 열리지도 않았다.

전력을 다해 문을 밀어보지만 마치 육중한 금속 문을 민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다.

설마 지금까지 원목이라고 생각했던 문이 특수처리를 한 금속 문이었던 걸까?

“그거 평범한 문일세.”

문을 힘껏 밀고 있는 초홍을 바라보던 김수웅이 피식 웃었다.

“하지만 자네는 열 수 없는 거지.”

“이게 어떻게 된 거죠?”

“내가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김수웅은 마치 예술품을 바라보는 장인처럼 초홍의 몸을 훑었다.

“이미 자네의 정신과 육체, 모두 내 손아귀에 들어와 있어.”

“헛소리하지 말고 문 여시죠.”

초홍은 허리춤에 있는 단분자 커터에 손을 대었다.

“경고는 한 번뿐입니다.”

차가운 경고에도 김수웅은 오히려 의자에 푸욱 기대어 앉았다.

“흥분할 필요 없네. 어차피 곧 아무 생각도 못 하는 꼭두각시가 될 테니까.”

더 이상 대화는 무의미했다.

초홍은 허리춤에 장착한 단분자 커터를 번개처럼 뽑아 김수웅의 목에 겨누었다.

“문 열어!”

“치우게. 그리고 거기 맞은편에 좀 앉지.”

“두 번 말하지…….”

말을 잇던 초홍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녀의 의지와 달리, 몸뚱이는 단분자 커터를 다시 허리춤에 넣고 맞은편 의자에 단정히 앉는 것이 아닌가?

“이게 어떻게…….”

“말했잖나. 자네의 정신과 육체는 모두 내 손아귀에 들어왔다고.”

김수웅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원래는 이렇게 빨리 실행할 생각은 없었는데 말이야. 천마라는 알 수 없는 자가 자꾸 끼어드는 통에.”

“……!”

“모른 척할 필요까지야.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이웃이 아니던가?”

초홍은 눈이 튀어나올 만큼 놀랐다.

천마. 그 이름이 김수웅 실장의 입에서 나오다니?

“이미 자네도 알고 있는 것 같군. 그자가 협회장이 보낸 인물이라는 걸.”

“천마 씨가 협회장 쪽 인물이라고요?”

초홍은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제 미친 겁니까? 그 사람은…….”

“혹시라도 인테리어를 하는 미등록 각성자라고 말하진 말게나. 지금까지 차근차근 쌓아왔던 내 계획을 단숨에 무너뜨린 인물이니.”

놀란 초홍의 표정을 바라보던 김수웅이 낮게 콧방귀를 뀌었다.

“설마 모르고 있었나?”

“뭘 말입니까.”

“그자는 얼마 전 통합정보국이 전력을 다한 암살 작전을 혈혈단신으로 빠져나왔지. 전투에 이골이 난 1급 각성자 팀도 빠져나올 수 없는 최고의 암살 프로그램에서.”

초홍은 놀라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말도 안 되는 능력으로 던전을 휘저었던 남자.

겉으론 쌀쌀맞지만 언제나 자신을 위기에서 구해주던 남자.

인테리어 일을 근근이 하며 살아가는 미등록 각성자, 천마가 협회장의 수하였다고?

“말도 안 돼…….”

초홍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천마는 특수대응팀 팀원들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혜성처럼 등장하였다.

뿐만 아니라 스킬 마스터라고 해도 부족할 만큼 강력하고 신비한 힘을 가졌다.

미등록 각성자라기보다 차라리 협회장의 인물이었다는 게 납득이 갈 정도다.

“준비 시간이 좀 길어지는 것 같군.”

손목에 찬 시계를 내려다보던 김수웅이 한가롭게 말했다.

“조금만 기다리게나. 곧 자네를 데려갈 준비를 할 테니.”

그리고 눈을 부릅뜬 채 힘을 주고 있는 초홍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손 하나 까딱 못 할 테니 괜히 용쓸 필요 없네.”

초홍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의 말대로 스킬이 발휘되기는커녕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만약 보통 사람 같으면 안간힘을 쓰거나 풀어달라고 버럭 소리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머리는 오히려 냉철해졌다.

‘치밀하게 계획된 일이야.’

정신 조작 스킬을 가진 각성자의 몸과 정신을 지배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초홍은 김수웅 실장이 오래전부터 이러한 일을 꾸몄다는 걸 짐작했다.

“원하시는 게 뭐죠?”

감정을 억누른 초홍이 최대한 덤덤히 말했다.

이 상황은 조금이라도 정보를 얻어야만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네에게 원하는 것? 질문이 잘못되었군.”

고개를 가로저은 김수웅이 피식 웃었다.

“더 이상 원하는 게 뭐가 있겠나. 정신과 육체를 모두 지배했으니… 자네에게 원하는 건 다 가진 셈이지.”

“질문을 바꾸죠. 실장님께서 원하시는 게 뭔가요?”

“흠.”

잠시 침음을 내뱉은 김수웅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기다릴 동안 궁금증을 좀 풀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한숨을 쉰 그는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어차피 이 이후로는 자네와 이렇게 이야기할 일은 없을 테니까.”

무시무시한 호언장담을 내뱉은 김수웅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가? 그 대답을 하기 위해선 해묵은 지난 이야기를 해야겠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으니, 간단히 말해주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차분한 초홍의 눈빛을 빤히 응시했다.

“나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각성자들을 없앨 걸세.”

“뭐라고요?”

“정확히 말하면 각성자들을 원래의 평범한 인간으로 되돌리는 것이겠지만.”

“왜…….”

“왜 그런 짓을 하냐고?”

쓴웃음을 머금은 김수웅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세상에 던전이 나타난 것도, 모두 각성자라 불리는 이능력자들이 태어난 탓일세. 만약 이 세상의 모든 각성자들이 없어진다면, 이 땅에 생겨난 던전도 모두 사라질 거야.”

“그런 일은 없어요.”

“아니, 있네.”

김수웅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와 신채영은 박정민 실장이 만들어낸 최고의 결과물이야. 이 땅의 모든 각성자들을 평범한 인간으로 되돌려 줄 테니까.”

“결과물이라뇨. 우리는…….”

“모르고 있었나.”

김수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박정민 실장은 오래전에 각성자들의 능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각성 물질을 개발했지. 하지만 그 각성 물질은 모든 이에게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었어.”

그는 초홍의 눈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태생적으로 강인한 육체와 정신을 갖고 있는 열 살 미만의 각성자.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만이 통했지.”

시계를 슬쩍 바라보던 김수웅이 다시 말을 이었다.

“말은 쉽지만,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이었어. 그 수많은 실험체들 중 세 명만이 성공했으니까.”

“세 명.”

“그래. 운 좋게도 치료, 이동, 정신 조작. 각기 다른 스킬을 가진 세 명의 실험체였지.”

치료, 정신 조작. 초고속 이동.

그것은 각성자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세 가지 스킬이다.

“실험의 성공으로 박정민 실장은 모든 각성자들을 재각성시킬 물질을 개발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그것이 실현되기 전에 관둬야 했지만 말야.”

“그게 사실이라면 왜 나는 모르고 있죠?”

“자네만 모르고 있는 거지. 장금선, 그 양반이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초홍은 어지러움이 느껴지고 구역질이 올라왔다.

‘스승님이? 어째서…….’

“자네가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좋을 게 없으니까.”

그녀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김수웅이 말했다.

“아무것도 기억 못 할 테니, 내 다시 설명해 주지.”

초홍은 혼미한 정신을 붙잡으려 이를 깨물었다.

그래야 김수웅의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있을 테니까.

“나는 그 각성 물질을, 반대로 각성자들이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는 해독제로 만들 수 있다는 걸 발견하였네.”

김수웅은 각성자들을 평범한 인간으로 만드는 것을, ‘해독’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 점만 보더라도 김수웅은 각성자라는 존재 자체를 해로운 것으로 판단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군요. 어째서…….”

초홍은 ‘어째서 각성자인 실장님이 각성자들을 증오하나?’라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김수웅은 그 말을 자르고 멋대로 해석했다.

“간단한 방법일세. 각성 물질이라는 건 ‘S1’이라고 불리는 돌연변이 세포를 더욱 강화시켜 주는 것이거든. 그러니까 반대로 S1 세포를 평범한 세포로 만들어준다면, 각성자들은 평범한 인간으로 되돌아올 수 있는 것이지.”

각성이라는 건 갑작스럽게 발현된다.

하지만 그것이 돌연변이 세포로 인한 능력이었다니?

띠링.

그때 책상에 있는 인터폰에서 붉은 불이 들어왔다.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낮은 목소리가 들리자 김수웅이 초홍을 보며 미소 지었다.

“아쉽지만 대화는 여기까지로군.”

결국 이야기에서 알아낸 것은 많지 않았다.

다급한 마음에 초홍이 크게 소리쳤다.

“대체 절 어떻게 제압한 거죠?”

“아, 그게 궁금했나.”

김수웅은 미묘한 웃음을 머금었다.

“세뇌라는 건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지. 게다가 강력한 정신 조작 능력을 가진 각성자의 정신을 함락시키기 위해선 더더욱.”

순간 초홍의 머릿속엔 김수웅 실장이 해왔던 여러 가지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열두 명으로 구성된 특수대응팀을 쪼개고, 예측 불가능한 임무를 주었다. 각기 팀원들을 고립시키고 폐쇄적인 환경에서 지내게 하였다.

이후, 네 명만이 남은 특수대응팀에 실드경계지역에 막사를 지어주고 초홍에겐 스킬 제약 장치를 걸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어두운 사무실에서의 독대… 빙빙 돌리는 이해할 수 없던 말들.

그 모든 것이 초홍을 세뇌시키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이제 궁금증이 대충 풀어진 것 같군.”

멍하니 앉아 있는 초홍을 응시하던 김수웅이 몸을 일으켰다.

“곧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걸세.”

“…….”

“자네들의 희생으로 말이야.”

김수웅의 입가엔,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달콤하고 부드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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