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0화. 열혈의사 고두식 (1)
-각성자의 몸에 나노칩을 이식하는 각성자 등록법이 실행되었습니다. 스카우터의 테러로 인한…….
뉴스에선 연일 각성자들의 몸에 의무적으로 나노칩을 인식하는 법이 통과되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본래 인권침해라는 것 때문에 계류되었던 법이었다.
하지만 최근 테러를 저지른 스카우터의 테러 분자들이 대부분 각성자라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지자, 신속하게 통과된 것이다.
또한 인공지능과 로봇공학의 발달은 의학계를 변화시켰다.
인공지능은 오랜 임상경험을 축적한 의사보다 더욱 정확한 진단이 가능했다.
수술 로봇은 인간의 동작으로는 결코 해낼 수 없는 정교한 수술을 가능케 했다.
그렇다면 인간은 질병에서 해방되었는가?
오히려 의사들의 역할은 더욱 커졌다.
인공지능에도 오류는 있다. 그 판단을 전적으로 신뢰할 순 없다.
특히 생명이 달린 문제에선 기계의 이야기보다 뜨거운 피가 흐르는 의사들의 상담을 원했다.
또한 수술 로봇은 정교한 수술을 보조해 주는 수준.
돌발적인 상황이나 오류가 발생될 수도 있었기에, 반드시 의사가 필요했다.
그 사이, 각성자. 정확히 말하자면 힐러의 등장으로 또 한 번 의료체계가 바뀌었다.
손만 뻗으면 인체의 외상뿐만 아니라 심리적 치료의 효과까지 있는 치료 스킬.
그 신비한 힘을 가진 힐러들이 등장하자, 사람들은 과거의 의학 수준으로는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간편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인간은 이번에야말로 질병에서 해방될 수 있었나?
천만의 말씀이다.
때때로 심리적 치료가 가능한 스킬도 있었으나, 치료 스킬의 대부분은 인체의 외상만을 치료할 뿐이다.
암, 치매, 고혈압 등등 온갖 질병에는 효과가 없었으며, 훼손된 장기나 신체 부위를 재생시킬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만성적인 힐러의 부족이었다.
각성자 중에서도 힐러는 극히 드물게 발현되었기에, 대형병원조차도 상주 힐러를 두서너 명 두는 게 전부였다.
대형병원에 간다고 해도 반드시 힐러에게 치료를 받을 순 없다. 때문에 부자들은 개인 힐러들을 고용했고, 이는 빈부격차의 문제로까지 번졌다.
반각성자 협회, 스카우터는 이 점을 격렬히 비난하였고, 힐러들만큼은 국가에서 관리하도록 요구했다.
하지만 테러를 저지르는 단체의 요구 따윈 당연히 관철될 리가 없었다.
결국 던전과 몬스터의 등장으로 의사들은 더욱 치열하고 바쁜 직업이 되어버린 것이다.
샘 병원.
상주 힐러들이 있는 대형병원으로, 각성자 협회와도 협력하는 곳이다.
고두식.
그는 샘 병원 응급의학과 펠로우 1년 차 의사였다.
“후우.”
장기간의 장기이식 수술을 마친 그는 마스크를 벗고 수술실 밖으로 걸어 나왔다.
이제 남은 건 외과적 봉합, 즉 힐러의 힘이다. 뛰어난 힐링 스킬만 있다면 수술 후 바로 스포츠를 즐길 수 있을 만큼 회복이 빠르니까.
“수술은 잘 되었습니다.”
그러자 수술실 앞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고두식의 눈엔 다부진 체격에 각성자 전용 나노슈트를 입은 남성이 눈에 띈다.
“아, 저희 전속 힐러 분이십니다.”
각성자에게 시선이 고정된 고두식을 바라보던 환자의 아들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아버님 나오면 바로 회복시키려고요.”
“아, 네에.”
역시 돈이 많은 게 좋다.
장기이식 수술 후 일반적으로 4, 5일 정도는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힐러가 치료 스킬을 발동하면, 그 즉시 밖에서 전력 질주를 할 수 있을 만큼 즉시 회복된다.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
아들이 다시 고개를 숙이자 고두식도 고개를 숙였다.
그때 레지던트 2년 차인 박상두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선생님. 잠깐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왜?”
“7번 방 수술실의 프로메테우스가 고장이 난 것 같습니다. 흉부외과의 김창욱 선생님께서 선생님을 급히 찾고 계십니다.”
고두식은 뛰어난 외과 전문의일 뿐만 아니라, 의사 중에서 수술 로봇을 수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학박사이기도 했다.
“알았어.”
고두식은 온 힘을 다해 수술실로 달려갔다.
요즘 들어 수술 로봇의 오류가 잦은 편이다.
이럴 때야말로 다양한 임상경험과 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필요한 때다. 결정적인 순간에 오류가 나버린 기계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으니까.
“고 선생.”
집도의 김창욱이 망가진 수술 로봇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갑자기 멈춰 버렸어.”
고두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수술 로봇 프로메테우스의 전자 패널을 연 고두식은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그곳엔 은빛으로 반짝이는 작은 부품에서 미세한 연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또 방열판이 과열됐잖아…….’
기계가 고성능화될수록 전력반도체의 출력 밀도 역시 향상된다.
아무리 열에너지 전달 효율을 높이고 열물성이 우수한 신소재를 사용했다고 해도, 어느 정도의 냉각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병원에선 365일 내내 프로메테우스로 수술을 하고 있으니…….
오작동이나 고장을 일으키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어쩔 수 없지. 환자, 의사 모두 수술은 수술 로봇으로 하길 원하니까.’
아무리 뛰어난 의사라고 해도 수술 로봇의 정교한 움직임은 따라갈 수 없다.
결국 병원에 있는 수술 로봇은 쉬지 않고 밤낮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선생님, 로봇 수술은 포기해요. 이건 지금 바로 못 고칩니다.”
내부를 자세히 살펴보던 고두식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늘은 직접 집도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어, 어쩌지? 다시 수술 준비하려면 늦는데.”
“뭐라고요?”
고두식은 눈을 부릅떴다.
그제서야 수술실에 간호사 한 명만 덩그러니 서 있을 뿐, 수술 도구가 하나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수술 로봇을 사용해도 준비는 하고 있어야 할 거 아닙니까?”
본래 수술 로봇을 사용해도, 비상사태를 대비해 의사는 원칙적으로 수술 준비를 모두 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 별다른 이상이 없기에, 의사들은 귀찮고 인력도 많이 드는 수술 준비를 아예 생략하고 있는 추세였다.
“내, 내가 수술할 때 고장 날 줄은 몰랐어.”
김창욱은 패닉 상태에 빠졌는지 눈에 초점이 없었다.
‘이런 미친 자식!
이렇게 놔뒀다간 바로 의료사고다.
고두식은 수술 로봇이 오픈한 부위를 살폈다. 파열된 하대정맥을 봉합했으나 계속 혈압이 떨어지고 있었다. 어디서 또 다른 출혈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출혈 부위를 찾아도 수술 준비를 하기엔 부족해!’
머리를 빠르게 회전시킨 고두식이 소리쳤다.
“힐러! 상주 힐러 선생을 불러! 빨리!”
“없습니다.”
그때 박상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상주 힐러 선생님 모두 집중치료실에 있는 환자들을 회복시키 위해 투입된 상태입니다.”
“뭐라고?”
고두식은 다시 미친 듯이 머리를 회전시켰다.
순간 아까 수술을 마쳤던 수술실 앞을 떠올렸다.
무슨 기업의 사장이라고 했던가?
수술 후 사장의 회복을 위해, 비싼 돈을 주고 고용한 힐러가 대기하고 있었다.
빨리 그 힐러를 불러온다면 이 환자를 살릴 수 있었다.
“1번 수술실 앞에 환자의 가족들이 불러온 힐러 있어. 빨리 데려와!”
“아, 알겠습니다.”
박상두는 황급히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갔다.
하지만 한참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다.
‘이 녀석.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고두식이 문을 바라볼 무렵,
“안 온답니다.”
“뭐?”
“계약되지 않은 환자에게 치료 스킬을 사용할 순 없답니다.”
“뭐라고?”
“본인 말로는 1회에 삼천만 원이라고 합니다. 아마 돈을 못 받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미친 새끼!’
욕이 절로 나온다.
힐러들은 항상 이런 식이다.
협회 소속 힐러들이 아니고서는 결코 치료 스킬을 공짜로 발동시키지 않는다.
병원에 소속되어 있는 힐러들도 책임감이나 사명감 때문에 일을 할 뿐이다.
만약 돈이 목적이라면 차라리 던전에 가던가, 부자들의 전속 힐러가 되는 게 나을 테니까.
‘한시가 급한 응급환자를 살리자고 하는데 돈을 따져?’
“내가 책임지고 줄 테니까 당장 오라고 해!”
“알, 알겠습니다.”
“또 혈압이 떨어졌어.”
김창욱이 절망적인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삐.
하지만 수술실 내부에는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출혈이 너무 심해 쇼크 상태가 온 것이다.
‘안 돼!’
고두식은 몇 번이고 환자를 다시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
하지만 환자는 결국 숨을 거두었다. 결국 의료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난리가 났다.
수술실 앞은 처절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고, 김창욱은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
그 모습을 뒤로 한 채 터덜터덜 걷던 고두식.
복도에 설치된 TV에선 불현듯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반각성자 단체인 스카우터의 테러 소식이었다.
‘이해가 간다.’
고두식은 불현듯 스카우터의 테러가 이해가 갔다.
아무런 노력 없이 얻는 각성과 스킬을 오직 자신의 영달만을 위해 사용하는 각성자들.
그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힘에 대한 책임이 없다.
정말 스카우터들의 말대로 각성자들은 모조리 국가로 귀속시켜 죽도록 노동을 시켜야 할 공공재인 것이다.
“저, 저 녀석.”
그런데 그때 반대편 복도에서 걸어 나오는 각성자가 보였다.
바로 아까 수술실 앞에서 본 힐러였다.
멋들어진 나노슈트를 입은 남성은 마치 백조라도 되는 양, 우아한 걸음걸이로 걸어오고 있었다.
“너, 이 새끼!”
고두식은 미친 듯이 달려갔다.
저 번들번들한 힐러 놈의 멱살이라도 쥐지 않으면 분이 풀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깟 돈 때문에 사람을 죽여?”
“…….”
양손을 뻗은 채 달려드는 고두식을 바라보던 각성자가 손가락을 튕겼다.
퍽.
그 순간 압축된 공기가 고두식의 앞으로 쏟아졌다.
콰당.
결국 미친 듯이 달려오던 그는 힐러의 손가락 하나에 수 미터 밖으로 나동그라졌다.
“정신 나간 의사로군.”
힐러가 짜증스럽게 중얼거리자, 고두식이 벌떡 일어나 외쳤다.
“이 나쁜 자식! 저길 봐! 네가 바로 도와줬으면 환자는 안 죽었어!”
“환자가 죽은 게 내 탓이라고 말하는 겁니까?”
“그럼 아니냐?”
버럭 소리치는 고두식의 말에 힐러는 덤덤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사용하는 치료 스킬은, ‘생명력 공유’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게 뭔데?”
“내 생명력을 기반으로 펼치는 치료 스킬이라고요. 펼치는 순간 제 생명력과 체력을 상대에게 전해주는 겁니다.”
남성 힐러는 고두식을 바라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만약 그쪽 환자를 돕다가, 내 고객이 잘못되면. 그때 당신이 책임질 겁니까.”
고두식은 잠시 멈칫했다.
어린 시절부터 각성자들에 대해 관심이 없던 탓에 그들의 능력이나 스킬에 대해선 잘 모른다.
“무슨 말을 하려는진 알겠습니다만. 힐러라는 이유로 무작정 사람을 구할 순 없는 겁니다.”
고두식을 내려보던 힐러가 차갑게 돌아섰다.
“그러다 제 고객도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제 커리어도 망가지게 될 거고요. 아시겠습니까.”
“하지만 해볼 순 있잖아.”
“……?”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어떻게든 해볼 순 있잖아.”
“열혈의사 납시셨구만.”
힐러는 들을 만한 가치도 없다는 듯 걸음을 옮겼다.
멀어져 가는 남성을 바라보던 고두식이 버럭 소리쳤다.
“사람을 구하는 것보다 중요한 게 어딨어!”
하지만 그것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복도에 울려 퍼질 뿐이었다.
이 세상은, 각성자들은, 타인을 구하겠다는 사명감 따윈 없다. 그저 자신의 능력으로 돈을 벌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