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269화 (269/285)

제269화. 흑염룡 지호 (2)

의외의 말이 흘러나오자 장채원이 눈을 껌뻑였다.

“교육? 그런 걸 내가 왜 해?”

“그럼 누가 해요? 지호 군 성격으로 보면, 설령 청장님이 오신다 해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텐데요.”

“내가 말한다고 존중을 할까?”

“그게 어렵다면, 최소한 인간들에게 피해는 끼치지 않도록 교육시켜 주세요.”

장채원은 어깨를 늘어뜨리자 동원이 다시 말했다.

“만약 교육이 되지 않는다면 지호 군의 상점을 신계가 직접 관리할 수도 있어요.”

“지호 상점을 신계가 관리한다고?”

“세계의 법칙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별다른 문제는 없을 거예요.”

“이젠 평범한 인족으로 돌아왔잖아. 그리고 신계가 멋대로 관리하게 허락하겠어?”

동원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호 군이 만들어내는 도구들은 인간들이 쓰기엔 지나치게 뛰어나요. 저렇게 마구잡이로 팔다간 언제 무기상들이 몰려올 수 있고요.”

“으음.”

“누님의 교육이 먹히지 않는다면, 강제로라도 상점을 등록시킬 거예요. 신계에선 자신들의 관리와 보호를 받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장채원은 또다시 어깨를 늘어뜨렸다.

아무리 귀찮더라도 지호와의 인연, 그리고 헤파이토스의 안면을 봐서라도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알았어.”

“네?”

“알겠다고. 해볼게.”

깊은숨을 들이쉰 장채원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이야기해 볼게.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자리에서 일어난 동원이 수첩을 품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잘 부탁드려요, 누님. 솔직히 말해 저희도 지호 군과 트러블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요. 누가 뭐라 해도, 헤파이토스 제자 분이셨니까요.”

“알겠어.”

“그럼 들어가 볼게요.”

샤라라랑.

동원이 한껏 빛을 뿌리며 사라지자, 매장 내부엔 적막이 흘렀다.

“교육이라.”

무언가를 고민하던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책을 읽고 있는 천마를 바라보았다.

그녀조차도 아직 천마의 저 삭막한 세계관을 뜯어고치지 못했다. 그런데 신 후보생이었던 지호를 무사히 설득할 수 있을까?

“해볼 수밖에.”

입가에 주름을 만든 장채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며칠 후.

해질 무렵, 도심 외곽의 굴다리 밑. 낡은 포장마차.

그곳엔 던전에서 얻은 재료를 손질하고 있는 고은진의 모습이 보였다.

“은진 씨는 베테랑 용병이었어. 전 세계를 돌며 군사 임무를 수행하다가 우리나라로 와서 인테리어와 요리 공부를 병행하고 있는 중이고.”

장채원은 지호의 옆 모습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환진일족 알지? 전투 능력으로 따지면 어쩌면 상급요괴 중에 최강이야. 그런데 인간들이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에 행복해하며, 요리 공부를 하고 있다고.”

“그러네요.”

별로 감흥이 없는 듯한 표정이다.

‘으음.’

곤란한 표정을 짓던 장채원은 다시 장소를 옮겼다.

어느 아파트 인테리어 시공 현장.

위이이잉! 가아아아앙!

내부엔 먼지가 피어오르고 그라인더와 전기 커팅기가 움직이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천마는 마스크를 쓴 채 모아져 있는 공사 폐기물을 주워 담고 있었다.

콰직. 우지끈.

폐기물 마대를 끌고 천마는 사방에 널려 있는 폐기물을 열심히 주워 담고 있었다.

“봐. 천마도 저렇게 열심히 일을 하고 있잖아.”

장채원은 자신의 옆에 있는 지호에게 말했다.

“저 꼴통… 아니, 오만하고 독선적이고 인간들을 하찮게 보는 천마가, 남들은 기피하는 인테리어 시공 현장에서 묵묵히 일을 하고 있다고.”

무림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배분이 높은 천마.

그는 인간 따윈 하찮게 보고 있지만, 베테랑 인테리어 시공자 혹은 한 분야에 도통한 ‘전문가’들은 존중한다.

즉, 인간이라고 해서 모두 하찮은 존재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렇군요.”

하지만 지호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별다른 감흥이 없어 보였다.

인간보다 뛰어난 인물들이 평범하게 일을 하며 살아가는 모습.

장채원은 이러한 모습들을 보여주며, ‘특별한 존재’들도 실상은 평범한 인간들과 별다를 바가 없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별다를 바가 없네요.”

“뭐?”

“저도 인간들이 힘들어하고 기피하는 대장간 일을 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인간들과 똑같은 존재는 아니죠.”

장채원은 할 말이 없었다.

사실 이번 교육은 시작 지점부터 잘못되었다. 지호는 인간들을 경멸하거나 일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다.

‘에잇. 누굴 가르쳐 봤어야지.’

사실상 장채원도 거칠 것 없이 행동해 왔다.

그렇다고 인간을 아끼고 사랑한다면, 그것도 아니었다.

일 외엔 딱히 인족들을 만나지 않으며, 그들이 무얼 하든 상관하거나 신경 쓰는 편은 아니었다.

“흠.”

그때 모든 일을 마친 천마가 곤란해하는 장채원에게 성큼 다가왔다.

“일전에 말한 교육인가?”

“어? 으응.”

무심한 듯 책만 읽고 있었지만 천마 역시 동원과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터였다.

“어차피 누군가에게 귀감이 될 만한 삶을 살아온 게 아니잖나.”

“뭐?”

“타인에게 본보기를 보여줄 수 없다면, 따끔한 교훈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장채원은 그 ‘따끔한 교훈’이 무엇인지를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천마가 송곳니를 드러낸 채 주먹을 주물럭거리고 있었으니까.

“됐어. 그게 교육이냐?”

“물론이다. 효과도 바로 나타나지.”

“됐어! 그런 건.”

“다른 좋은 방법이 있단 말인가.”

“그건…….”

지호의 위아래를 쓰윽 바라보던 천마가 덤덤히 말했다.

“말로 하기엔 이미 늦었다. 시기가 늦었을 땐 이 방법밖에 없다.”

천마는 대번에 지호가 제대로 된 교육받을 시기를 놓쳐버렸다는 걸 짐작했다.

하지만 장채원은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건 결코 원치 않았다.

“차라리 본좌에게 맡겨라.”

“뭐?”

“이건 건 본좌 전문이니.”

천마가 빙글빙글 웃자 장채원은 오기가 생겼다.

“됐어. 내가 알아서 할 거야.”

“그러든지.”

“흥.”

코웃음을 친 장채원은 심호흡을 했다.

‘좋아. 이럴 땐 그냥 다이렉트로 말할 수밖에.’

“지호야.”

“네?”

큰 결심한 한 듯, 심호흡을 한 그녀가 지호에게 말했다.

“우리 잠깐 조용히 이야기나 할까?”

시내 어느 조용한 커피숍.

“후우.”

구석 자리에 앉은 장채원이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유리창 밖으로 밤하늘엔 구름 한 점 없고 반짝이는 별들만이 점멸을 반복하고 있었다.

“지호야, 이걸 좀 볼래.”

동원에게서 받은 나노칩을 휴대폰에 꽂은 장채원이 화면을 지호 앞으로 내밀었다.

화면 속에는 부상당한 채 신음하고 있는 각성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거, 네가 저번에 다치게 한 각성자들이야. 기억해?”

“네에.”

“이 사람들, 네가 던진 무기 때문에 크게 다쳐서 육 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한대.”

“들었어요.”

지호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장채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 각성자들이 너에게 위협을 가한 건 잘못된 행동이 맞아. 하지만 이 정도로 크게 다칠만한 죄는 아니야.”

“만약에 제가 먼저 무기를 던지지 않았으면요?”

“뭐?”

지호는 스크린의 각성자들을 무심히 바라보며 말했다.

“저, 이제 평범한 인간의 몸이 되었어요. 배도 고프고 가끔은 몸도 아파요. 그런데 제가 저 각성자들을 공격 불능 상태로 만들어두지 않았으면요?”

탁자에 올려진 차를 한 모금 마신 지호가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저 병원에서 신음하고 있는 건 저였을걸요.”

“지호야.”

“호신용 무기 위력을 많이 낮출게요.”

지호는 해맑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럼 되는 거죠?”

“으음.”

장채원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더 이상 빙빙 돌려서 말하는 건 옳지 않은 방법이었다.

“아니, 안 돼.”

“네?”

“인간들이 위협한다고 네가 만든 무기를 사용해선 안 돼. 그리고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쳐서도 안 되고.”

“그게 무슨 말이죠.”

“지호야, 이제 너도 인간이야. 인족이라고.”

장채원은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너도 인간세계에 적응하면서 살아야 해. 더 이상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해서는 안 돼.”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니, 인간들을 깔아보고 있잖아. 인간들의 운명 따윈 내 알 바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잖아.”

지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잘못된 건가요?”

“인간들은 서로 돕고 살아야 해.”

“저는 그냥 제 할 일만 하고, 조용히 살아갈 건데요.”

“지호야.”

장채원의 표정이 엄해지자 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뭐를.”

“누나 말대로 할게요. 인간들의 몸에 손을 안 대면 되는 거죠?”

“정말?”

“벌레가 문다고 생각하면 되죠, 뭐.”

장채원은 입을 벌렸다.

지호는 어린 천마가 아니었다. 그냥 천마였다.

‘천마랑 아예 똑같잖아?’

어떠한 질문에도 환한 미소를 머금지만, 대답하는 내용은 거의 천마의 사상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인간을 불신하고 하찮게 본다.

동정심 따윈 없으며 타인의 일에 관심조차 두려 하지 않고 있었다.

“걱정 마세요. 약속한 이상, 인간들의 몸엔 손을 안 댈 테니까요.”

굳은 장채원의 표정을 바라보던 지호가 빙긋 웃었다.

“그럼 되는 거죠?”

장채원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게 실패한 건지, 아니면 성공한 건지 확신할 수 없었다. 다행인 것은 지호는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성격이라는 점이다.

신 후보생이든 인간이든 간에 말이다.

“그래. 그럼 되는 거야.”

억지로 미소 지은 장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들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건 실패했지만, 더 이상 피해는 끼치지 않을 테니까.

며칠 후.

각성자 용품 도매시장 골목, 지호의 상점.

그 앞에는 여러 무리들이 상점 내에서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이번에도 소문을 듣고 찾아온 각성자들이다.

“안 팔아요. 나가요.”

느긋하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지호를 보며, 한 각성자가 눈을 뒤집었다.

“뭘 쳐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거야!”

퍼억.

가볍게 주먹을 날리자 지호가 상점 안으로 나뒹굴었다.

“크으.”

비틀거리며 일어나자 코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나가요. 무기 같은 거 안 파니까.”

의연하면서도 덤덤한 모습이다.

각성자들은 지호가 설령 때려죽여도 협박 따윈 통하지 않는 성격이라는 걸 깨달았다.

“쳇, 가자.”

각성자 무리들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상점 밖으로 나갔다.

‘누님이 제대로 교육시켰구나.’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동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교육시켰어. 약속을 했으니까 설령 피해를 받는다고 해도 인족들은 손대지 않을 거야.

며칠 전 동원은 장채원에게 연락을 받았다.

하지만 그 말을 믿고 넘어가기에는 개운치 않았다.

누가 뭐래도 저 소년 같은 외모의 인족은 ‘흑로’라는 무시무시한 신기를 갖고 있지 않은가?

“저 정도 행패도 웃으며 넘길 수 있으면… 앞으로도 괜찮겠지.”

동원은 결국 각성자들을 시켜 돌발하고 시험해 보았다.

하지만 폭력을 당하면서도 지호는 각성자들을 건드리지 않았다. 시험 결과는 나름 통과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누님에게 맡기길 잘했어.”

상점 안쪽으로 걸어가는 지호를 바라보던 동원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탁.

수첩을 접고 몸을 돌릴 찰나, 무슨 생각인지 다시 고개를 돌렸다.

“화를 삭이려고 일을 하려는 걸까?”

터벅터벅.

그 상점을 지나 대장간으로 걸어 들어온 지호.

그는 조심스럽게 흑로가 있는 창고의 잠금장치를 열었다.

이것은 신의 금속으로 직접 만든 잠금장치로, 신이 아니고서는 파괴할 수 없을 만큼 튼튼했다.

철컥.

경쾌한 소리와 함께 열리자 안쪽에서 둥그런 알 같은 형태의 금속이 반짝이고 있었다.

“흐흐흐.”

낮게 웃음을 터뜨린 지호가 흑로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망치를 들고 둥그런 알 형태의 금속을 조금씩 매만지기 시작했다.

“손만 대지 않으면 된다, 이거지.”

두 눈에 광기를 내뿜는 지호가 붉은빛을 번뜩이는 알을 매만졌다.

그리고 한없이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세상을 산산이 파괴하는 죽음의 신이 되었도다.”

“아.”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동원이 탄성을 내었다.

그리고 품속에서 휴대폰을 꺼내 단축번호를 눌렀다.

“네, 동원입니다. 그 지호 님의 대장간 건 말입니다. 네네, 영지로 바로 지정해 주시죠. 네, 지금 당장요.”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묵묵히 듣던 그가 말했다.

“바로는 안 된다고요?”

-흐흐흐.

광기 어린 미소를 머금고 있는 지호를 바라보던 동원이 다시 말했다.

“당장 영지로 등록할 수 없다면, 복복 인테리어 산하 협력업체로 등록시켜 주세요. 네? 왜냐고요? 지금 어떤 미친놈이 핵폭탄을… 아니! 그냥 좀 바로 하라고요! 당장!”

꾸욱.

종료 버튼을 누른 동원의 이마에선 땀방울 하나가 흘러나왔다.

초점 없는 눈빛으로 수첩에 무언가를 열심히 쓰던 그가 다시 휴대폰을 열었다.

그리고 장채원에게 긴 문자를 보냈다.

-대장간도 누님의 영지 산하로 들어갔습니다.

아 참, 그리고 별거 아닌데…….

지호 님이 개인 금고에 도시를 날려버릴 폭탄 제조 중이거든요? 좀 말려 주시겠어요?

꾹.

문자를 전송한 동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 도시에 누님과 천마 님이 있어서 다행이야…….”

손을 대지 말라고 했더니, 손을 대지 않고 도시를 통째로 날려버릴 무언가를 만든 지호.

만약 이 도시에 장채원과 천마가 없다면, 저 광기 어린 미친놈을 결코 막지 못할 것이다.

탁.

다시 수첩을 덮은 동원이 땀을 닦으며 미소 지었다.

“복복 인테리어 산하 협력업체로 등록했으니 알아서 하겠지, 뭐.”

이걸로 됐다.

더 이상은 내 알 바가 아니다.

변비가 해결된 듯한, 시원한 표정을 지은 동원의 몸이 빛과 함께 허공으로 사라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