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8화. 흑염룡 지호 (1)
각성자 용품 도매시장 거리.
그 거리의 가장 안쪽에는 간판 하나 없이 세워진 허름한 대장간이 있었다.
이 대장간의 주인, 지호는 과거 헤파이토스의 제자이자 신 후보생이었다.
상계신의 제자가 되면 자연스레 신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신 후보생은 사실상 신과 다름없는 존재였다. 나이를 먹지 않으며 육체에 속박받지 않고, 무엇이든 할 수 있었으니.
하지만 무기를 만들어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든 죄로, 지호는 파문을 당했다.
신들에게 존경받는 신 후보생에서 평범한 인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타앙. 타앙. 타앙.
지호는 화로에서 망치를 든 채 쇠를 정련하고 있었다.
인간이 되었다 한들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신의 금속을 다루다 평범한 철을 다루게 되었고, 신들이 쓰는 도구들을 만들다가 인간이 사용하는 도구들을 만들 뿐이었다.
“후우.”
해가 뜰 무렵이 되자 작업을 마친 지호는 대장간을 오픈했다.
그가 만드는 건 주방용품이나 농기구들이었다. 하지만 입소문이 퍼진 탓에 전국에 있는 요리사들과 농사꾼들이 앞다투어 방문했다.
문제는 방문하는 자들 중에는 각성자 무리들이 있다는 점이었다.
“이봐. 무기 좀 만들어 달라고 몇 번이나 말해.”
오늘도 나노슈트를 입고 들어온 각성자 무리들이 지호를 닦달하고 있었다.
“돈은 얼마든지 준다잖아. 응?”
“싫은데요.”
“어떻게 안 될까?”
“싫어요.”
천연덕스런 지호의 표정에 각정자 무리들의 이마에 핏발이 섰다.
이들은 던전에 장기간 야영을 하던 각성자 팀이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나타난 히든몬스터에 의해 습격을 받았는데, 엉겹결에 식칼로 몬스터를 공격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식칼이 단분자 커터만큼 예리했고 강도는 더욱 우수했던 것이다.
-이 칼 대체 뭐야?
각성자들은 지호가 파는 농기구나 식칼이 뛰어난 절삭력과 강도를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게 소문이 퍼지고 퍼져, 알음알음 지호의 대장간을 찾아오는 각성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무기를 만들어 달라고 사정이나 협박을 하기도 했다. 바로 지금처럼.
“아니, 돈을 준다는데도 왜 지랄이야.”
쾅.
각성자들이 상점의 벽을 후려쳤다.
오랜 기간 사정을 했는데도 매번 문전박대를 당하자 결국 인내심이 폭발한 것 같았다.
“칼 좀 만들 줄 안다고 사람 무시하는 거야? 엉! 그냥 긴 식칼을 만들면 되잖아!”
“안 만든다고요.”
“죽고 싶어?”
지호는 오히려 빙그레 웃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인데요.”
“뭐, 임마?”
“죽고 싶지 않으면 나대지 마세요.”
“와, 이 자식 보게?”
각성자 무리들이 협박을 할 무렵, 입구 너머 머리가 하얗게 샌 노인이 들어왔다.
“어이쿠, 손님이 많네.”
얼굴엔 혈색이 가득하고 작업복을 입고 있다.
노인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활력이 넘치고 파릇파릇한 기운까지 보이고 있다.
“지호 군.”
노인은 바로 김찬원이었다.
오랫동안 복복 인테리어에서 일을 했던 그는, 장채원과 친한 지호와도 퍽 안면이 있었다.
“오랜만이여.”
한동안 일을 쉬고 여행을 떠났던 김찬원. 그는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매장으로 복귀한 것이다.
“무슨 일이 있는감?”
살벌한 분위기를 감지한 김찬원이 각성자들을 바라보자,
“너, 두고 봐라.”
그들은 오만상을 쓰며 밖으로 나갔다.
상점을 우르르 나가는 각성자 무리들을 보자 김찬원은 혀를 찼다.
“지호 군. 대체 뭐여, 저 사람들?”
“별거 아니에요. 자꾸 저한테 무기를 팔라고 하잖아요.”
“어이쿠, 그렇구먼.”
숟가락 하나를 만들어도 국보급 신기(神器)를 만들어내는 대장장이, 지호.
각성자들의 성화에 시달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만약 이대로 계속 소문이 퍼진다면, 결국 각성자들뿐만 아니라 무기상들까지도 찾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어쩐 일이세요?”
지호의 말에 김찬원이 한 손에 들고 있던 공구통을 내밀었다.
“지호 군이 돌아왔다고 해서 공구 손질이나 좀 맡기려고 했지.”
“아, 주세요. 제가 손질해 드릴게요.”
지호의 손길에 닿으면 어떤 공구도 수년간 새것처럼 쓸 수 있을 정도였다.
“고맙구먼.”
“잠시만 기다리시겠어요.”
“으응.”
지호가 안쪽 대장간으로 들어가자 김찬원이 상점 내부를 쓰윽 살폈다.
다양한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는 이 상점의 물건은 어느 것 하나 명품이 아닌 게 없었다.
“다 됐어요.”
그때 금세 대장간에서 나온 지호가 다시 공구통을 내밀었다.
“오 년 정도는 새것처럼 쓰실 수 있으실 거예요.”
“고맙구먼. 아 참.”
공구통을 받아든 김찬원이 배시시 웃었다.
“지호 군은 이제 성인 맞지?”
순간 지호가 눈을 깜박였다.
너무 어린 시절부터 신 후보생이 되었기에, 나이라는 개념 따윈 잊고 산 지 오래된 것이다.
“글쎄요.”
“신분증 같은 건 없어?”
“아.”
대한민국으로 돌아올 때 신계에서 신분증을 만들어주었다.
지호는 주섬주섬 지갑을 꺼내 주민등록증에 새겨진 날짜를 들여다보았다.
“올해로… 스물두 살이네요.”
“어이쿠, 이제 성인이구먼.”
김찬원은 눈가의 주름이 피어나도록 웃었다.
“그럼 성인이 되었으니 이제 술 한잔할 수 있겠구먼.”
“술이요?”
지호는 눈을 깜빡였다.
가끔 드라마나 영화에서 술을 마시는 걸 본 적은 있으나 직접 마셔본 적은 없다.
줄곧 대장간 일에만 몰두한 탓에 술을 마실 만큼 여유를 가져본 적조차 없었다.
“다음에 꼭 한잔하자고.”
“네, 생각해 볼게요.”
지호의 표정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타인의 말을 흘려듣는다고 해야 할까? 해맑게 웃고 있지만, 세상 무심한 지호의 눈동자가 김찬원은 마음에 걸렸다.
공구통을 받아 든 김찬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호 군.”
공구통을 받아 든 김찬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힘들진 않어?”
“제가요? 아뇨, 전혀요.”
“그래? 아까도 저런 불한당 같은 놈들이 매장에 찾아오고…….”
김찬원의 말에 지호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저런 하잘것없는 ‘인간 따윈’요.”
“응?”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죽을 텐데요.”
해맑게 웃고 있는 지호를 응시하며 김찬원은 눈을 껌뻑였다.
‘설마, 지호 군은 아직도…….’
어린 시절부터 신 후보생으로 살아왔던 지호.
그는 파문을 당했지만 여전히 자신을 신 후보생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끼어들 일은 아닌 것 같구먼.’
씁쓸하게 고개를 저은 김찬원이 품속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고맙구먼. 이건 사례비여.”
“감사합니다.”
“그럼 내는 가볼게. 고생혀.”
김찬원이 손을 흔들자 지호가 뒷짐을 진 채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다른 사람이 그 모습을 봤다면 예의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신 후보생으로 살았던 지호는 인간들의 감사와 인사를 받는 것에 매우 익숙해져 있었다.
“야, 너 이리 나와 봐!”
그런데 김찬원이 나간 지 얼마 채 되지 않아, 큰 소리와 함께 각성자 무리들이 다시 상점으로 들이닥쳤다.
달칵.
아예 상점 문을 걸어 잠그는 것으로 보아, 단순한 협박으로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자식이 말야. 너 아까 뭐라고 했어.”
“뭐가요?”
“죽고 싶지 않으면 나대지 말라고?”
각성자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덩치 큰 남성이 치아를 드러내자, 지호가 빙그레 웃었다.
“네. 그러다 정말 죽을 수도 있으니까요.”
“아놔, 정말 이 자식이…….”
덜컹.
그때 잠겼던 문이 열리고 밖으로 나갔던 김찬원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김찬원은 엄숙한 눈으로 각성자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아니, 이게 지금 뭐 하는 짓들이여? 엉!”
“뭐야? 이 눈치 없는 노인네가…….”
덩치 큰 남성이 김찬원을 노려보며 몸을 돌릴 무렵,
탁.
호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낸 지호가 각성자 발아래 던졌다.
고개를 숙여 보니 발아래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거무튀튀한 쇳덩이 하나가 놓여 있었다.
“지금 뭐 한 거냐?”
덩치 큰 남성은 지호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고작 이 쇳덩이로…….”
푸욱!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닥에 떨어진 쇳덩이는 수십 개의 금속 가시가 되어 덩치 큰 남성의 몸을 꿰뚫었다.
“으아아악!”
남성이 비명을 지르자 지호가 혀를 차며 말했다.
“제가 말했잖아요. 죽고 싶지 않으면 나대지 말라고…….”
“이 자식이!”
그때 옆에 서 있던 각성자가 번개처럼 달려와 단분자 커터를 지호의 머리에 휘둘렀다.
챙!
그런데 지호가 입고 있던 낡은 옷에서 빛이 나더니, 단분자 커터가 갑자기 부러졌다.
“뭐, 뭐야.”
어느새 지호의 낡은 옷이 마치 커다란 방패 형태가 되어 머리 위에 만들어진 것이다.
“하아.”
한숨을 쉰 지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런 취미는 없지만, 제대로 안 해두면 또 귀찮게 굴 테니.”
지호는 주머니에서 있던 조약돌 같은 금속을 꺼내 들더니 하얀 이를 드러냈다.
“당신네들에겐 제대로 된 교훈을 내려야겠네요.”
* * *
“뭐어? 지호가?”
복복 인테리어 내부.
장채원은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동원을 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지호가 왜?”
“글쎄. 시비를 걸어왔던 각성자들을 모두 꼬챙이로 만들어놓았더라고요. 다행히 김찬원 님이 먼저 연락해 준 덕택에 검찰에 넘어가기 전 저희 신계에서 손을 써… 어찌어찌 무마는 시켰는데요.”
동원이 한숨을 내쉬며 서류를 내밀었다.
“경질화 스킬을 가지고 있는 각성자들을 나뭇가지에 꿴 개구리처럼 만들었더라고요. 상점에 있던 각성자들은 육 개월간 꼼짝없이 병원 신세를 져야 하고요.”
전치 육 개월.
한마디로 숨만 붙여두고 아작을 냈다는 뜻이다.
미간을 찌푸리며 동원이 내민 서류를 바라보던 장채원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근데 지호가 무슨 힘으로? 이젠 신 후보생도 아니잖아? 대체 어떻게…….”
“흑로요.”
“흑로? 아.”
모든 걸 깨달은 장채원이 입을 벌렸다.
신의 금속을 다룰 수 있는 화로이자, 지호의 생명과 연결된 신비한 화로, 흑로.
그것이 지호에게 있는 이상, 각성자들을 벌레처럼 눌러 죽일 수 있는 무기는 셀 수 없이 만들어낼 수 있었다.
“심지어 지호 군이 흑로를 다루는 솜씨는 헤파이토스 님 저리 간다고 하더군요. 아마 마음만 먹으면 대장간에서 핵폭탄 같은 것도 만들 수 있다고…….”
황당하지만 가능한 일이다.
신의 금속을 다룰 수 있는 흑로를 사용한다면, 도시 하나 정도는 우습게 날릴 수 있는 폭탄을 만드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니.
“이번에는 어찌어찌 그냥 넘어갔다고 쳐도…….”
말끝을 흐린 동원이 장채원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윗선에선 더 이상 지호 군을 가만 놔두고 볼 순 없나 봐요.”
“가만 놔두고 볼 수 없다니?”
“신 후보생도 아닌데, 상계신의 물건을 지니고 있잖아요. 그러니 신계에서 지호 군을 주시할 수밖에요.”
헛기침을 한 동원이 품속에서 수첩을 꺼내었다.
“그리고 혹시 몰라 인성 테스트를 해봤더니, 심각하더라고요.”
“심각하다니.”
장채원은 응접 테이블에 멀뚱히 앉아 있는 천마를 힐끔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말인데.”
“우선 일단 보시죠.”
동원이 수첩을 펼치자 허공에 하얀 스크린이 펼쳐졌다.
그리고 상점의 테이블에 앉아 있는 지호와 동원의 대화 장면이 실행되었다.
-지나가는 아이가 차에 치이려 한다면요?
-그건 아이의 운명이죠.
-그럼 지호 군은 눈앞의 아이를 구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본다는 건가요?
-물론이죠.”
지호는 덤덤히 말했다.
-인간들의 운명에 결코 다른 이가 개입해서는 안 되니까요.”
-으음.
침음을 한 동원이 다시 물었다.
-그럼 지호 님은 본인이 인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요?
빙그레 웃은 지호가 뺨을 긁적거렸다.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턱.
동원이 수첩을 덮자 허공에 떠 있던 스크린이 사라졌다.
“어떤 상황인지 잘 아시겠죠.”
“으음.”
장채원이 입술을 한 일 자로 만들었다.
‘이거… 완전 어린 천마잖아?’
지호는 인간 사회에 대해 무지하다. 그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인간들의 운명은 인간들의 것. 결코 다른 이가 개입해서는 안 되니까요.
심지어 이러한 생각은 상계의 신들이 갖고 있는 사상이다.
결코 스물두 살의 젊은 인간 남성이 할 말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왜 날 찾아온 거야?”
장채원의 물음에 동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누님에게 부탁드리러 왔어요.”
“뭐를?”
동원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호 군이 인간들을 존중할 수 있도록 교육시켜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