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267화 (267/285)

제267화. 스카우터의 테러 (3)

무명의 외침에 천마가 오만상을 찌푸렸다.

“무슨 말이냐. 미끼라니.”

[아이들과 임산부들이 모여 있는 제3 전시장 쪽에… 폭발물이 감지됩니다. 모양과 크기를 봐선 아마도 부비스톤…….]

탁.

그 순간 고은진이 전력을 다해 제3 전시관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사실 폭발물이 터지든 말든 천마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주차장에 있는 라마스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고은진이 전속력으로 달려 나가자 경쟁심이 발동되었다.

“네놈은 가만히 있어라.”

야월극속을 펼쳐 여유 있게 그녀를 제친 천마가 제3 전시관으로 달려 나갔다.

[천마 님. 가운데 세워진 동상 내부에 있습니다.]

무명의 외침에 천마는 눈을 번뜩였다.

제3 전시관 한가운데에 세워진 거대한 아기천사 모형.

그곳에는 하얀 연기가 안개처럼 피어올랐는데, 그 주변으로 수많은 시민들이 얼어붙은 채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만약 부비스톤이 터진다면? 저 주위에 있는 사람들부터 재가 되어버릴 것이다.

[그리고 모형 속에 있는 부비스톤은 대략 천 개로 추정됩니다.]

순간 천마의 눈이 크게 커졌다.

소방관 이석기를 구할 당시, 천마는 전력을 다해 300개의 부비스톤을 간신히 하늘로 날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세 배가 넘는 부비스톤을 처리할 수 있을까?

‘본좌에겐 실패란 없다.’

파앙!

신마파멸장을 펼치기 위해 전력을 다한 천마대능력을 끌어올릴 찰나,

쿠쿠쿠쿠쿠…….

기분 나쁜 진동과 함께 모형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부비스톤에 이미 불이 붙은 것이다.

“신마…….”

지지지지직.

전력을 다해 신마파멸장을 펼치려는 순간,

“내가 처리할게.”

천마의 등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우우웅.

엄청난 진동과 함께 퍼져나가던 하얀빛이 동그랗게 응축되었다.

동시에 푸른빛에 휩싸인 그림자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동그란 빛 앞에 우뚝 서 있었다.

“점주.”

천마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림자는 다름 아닌 장채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분명 자신의 등 뒤에 있었거늘, 어느새 앞질러 이곳에 왔단 말인가.

쿠쿠쿠쿠쿠!

부비스톤 천 개의 위력.

그것은 제3 전시장을 통째로 증발시켜 버릴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장채원이 가볍게 뻗어낸 손 앞에선 그저 촛불에 불과했다.

슈우우욱.

동그랗게 만들어진 부비스톤은 장채원의 손바닥 위에 떠 있었다.

“어지간히 모아놨네.”

폭발력을 작게 응축시켰을 뿐, 에너지는 변함이 없다.

이 상태로 허공으로 날렸다간 건물이 주저앉아 사람들이 다칠 수도 있다. 결국 이 폭발에너지를 완전히 소멸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어쩔 수 없지.”

입술을 깨물던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

번쩍!

다시 두 눈을 뜨자 그녀의 발아래에서 수백만 개의 푸른 광점이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허리까지 내려오던 머리칼이 허벅지 아래까지 닿았고 커다란 눈이 조금 더 길고 가늘어졌다.

콰아아아아!

하지만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강력한 기운이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168센티미터 정도 되는 키도 십 센티 정도 커졌으며 머리칼과 눈동자가 모두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소녀 같던 그녀의 얼굴도 어느새 관능적인 미녀로 변해 있었다.

-으아아악!

-어어어어!

그러자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온 힘의 여파로 전시관 내부가 무너지고 사람들이 허공으로 날아가 버린 것이다.

슈욱.

구체를 단숨에 소멸시킨 장채원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끄으으으.”

하지만 사방에선 고통스런 신음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전시장은 폭탄을 맞은 것처럼 변해 있었고 수백 명의 부상자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결국 또 이렇게 된 건가.’

너무도 강력한 장채원의 힘.

힘을 발휘한 여파만으로 이처럼 많은 부상자들이 발생한 것이다.

“무명.”

괴로운 얼굴로 고개를 떨군 장채원이 나직이 말했다.

“처리해 줄래?”

그러자 천마의 품속에 있던 무명이 눈 센서를 깜빡였다.

[이미 실행 중입니다.]

무명은 컨벤션 센터 내의 모든 CCTV, 그리고 천마와 장채원 등을 녹화했던 몇몇 시민의 휴대폰 영상을 삭제했다.

“점주.”

천마가 부르자 장채원이 쓸쓸한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안. 역시 너에게 맡길 걸 그랬나.”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천마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장채원이 서 있던 바닥.

그곳엔 거대한 사신의 낫이 휘둘러진 것처럼 긁혀 있었고, 그 주변의 집기들은 흔적도 없이 증발되어 있었다.

‘이게 점주의 힘.’

사실 천마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장채원의 힘은 내공을 완전히 회복한 자신의 힘에 버금간다는 것을.

아니, 한편으로는 능가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하지만 천마는 그 사실을 애써 외면해 왔다. 그는 여인과는 정식으로 싸우지 않으며, 다른 세계의 인간들에게 관심도 없었으니까.

“본좌도 그랬다.”

천마는 장채원이 느끼는 감정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때때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장난감처럼 느껴졌지. 본좌가 힘을 써서 안 부서지는 게 없으니.”

“그랬니?”

피식 웃은 장채원이 고단한 미소를 머금었다.

“나는 힘을 쓰면 이 세상 자체가 부서질 것만 같은데.”

순간 천마의 얼굴이 굳어졌다.

“농담이야.”

고개를 가로저은 장채원은 천마를 스쳐 덤덤히 지나갔다.

‘이거이거, 더 이상 참을 수 없군.’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천마는 가슴이 뛰었다.

그것은 남녀 간의 애정이나 호감 때문이 아니었다.

호적수.

어쩌면 장채원은 천마가 평생을 찾았던, 애타게 찾아 헤맸던 호적수인지도 몰랐다.

* * *

‘못 찾겠어.’

전능시야를 발휘해 학교 내부를 샅샅이 살피던 한호조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스킬 범위 내의 모든 것을 샅샅이 살필 수 있기에 범위가 무한정 넓어진다.

벽을 수십 개로 자른 것처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고, 천장에 설치된 조명이나 배선들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다 찾은 거야?”

황장훈의 말에 한호조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하나 남았는데… 도저히 모르겠어.”

“그래?”

배를 쓰다듬은 황장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우리 교실은 아니겠지.”

“우리 교실?”

그 순간 지잉 하는 느낌과 함께 한호조의 눈동자에서 하얀빛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커다란 삼단 도시락통 안주머니에 쑤셔 넣어져 있는 네모난 부품과 부비스톤이 보였다.

“맞아!”

“뭐가?”

“우리 교실!”

한호조가 황장훈의 손을 잡고 헐레벌떡 교실로 뛰어갔다.

이미 점심을 먹고 돌아온 아이들은 대부분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맙소사!’

다시 한번 전능시야를 발휘해 도시락통을 살핀 한호조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부비스톤이 부착된 삼단 도시락통.

그것은 하필 한호조가 거부한 이진솔의 애정 도시락이었다.

“진, 진솔아.”

한호조가 다가오자 이진솔은 시선을 피해 버렸다.

“왜 불러.”

“미안해.”

“뭐가?”

“그… 도시락 말야. 다시 나 주면 안 될까?”

“뭐?”

이진솔은 새침한 표정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싫은데?”

한호조는 도시락통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연기를 보자,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었다.

“미안해!”

진솔의 도시락통을 낚아챈 한호조.

허겁지겁 안주머니에 있는 네모진 기계 부품과 부비스톤을 뒤적거렸다.

‘아무도 봐선 안 돼.’

결국 네모난 도시락통을 열어 잘 쌓여 있는 유부초밥을 부비스톤과 한 대 뭉쳐 황장훈의 입에 쑤셔 넣었다.

“우, 우웁!”

놀란 황장훈이 목이 메인 듯 버둥거리자 한호조가 입을 틀어막았다.

“장훈아, 삼켜.”

“우, 우웁.”

유부초밥과 부비스톤을 한꺼번에 소화시킨 황장훈의 눈이 커졌다.

“와, 정말 맛있다.”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화가 난 이진솔이 도시락통을 낚아채며 울먹였다.

반 친구들에게 쏟아지는 살벌한 비난의 시선을 전능시야로 샅샅이 느낀 한호조의 안색이 변했다.

‘가만히 있으면 나, 전학 가야 할지도 몰라.’

“미안해!”

한호조가 두 손을 모은 채 이진솔에게 말했다.

“너무 맛있어서… 장훈이에게도 자랑하고 싶었어.”

“뭐?”

“지금까지 먹었던 도시락이 너무 맛있어서 말야. 장훈이에게 꼭 먹여주고 싶었거든.”

이진솔의 시선을 느낀 황장훈도 어색하게 웃었다.

“맞, 맞아. 나도 정말 먹고 싶었다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이진솔.

한호조는 어쩔 수 없이 애절한 표정으로 두 손을 모았다.

“앞으로도… 도시락 계속 싸줄래?”

* * *

-자칭 반각성자 연합, 스카우터에서 시내 곳곳에 폭탄 테러를 저질렀습니다. 오늘 오전 11시경…….

뉴스에는 연일 스카우터의 테러 소식이 보도되고 있었다.

전국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스카우터의 폭탄테러는 수천 명의 사상자를 발생시켰다.

게다가 놀라운 점은 이번 폭탄 테러를 저지른 스카우터의 인물들은 모두 각성자라는 점이었다.

다만, 천마와 장채원, 고은진의 활약으로 클로버 컨벤션의 테러는 저지되었다.

만약 그 테러가 성공하였다면 사상자는 지금의 수 배가 넘었을 것이다.

-각성자 학교에도 폭탄 테러 시도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협회 측에서 이를 미연에 발견하여…….

한호조의 활약으로 각성자 학교의 폭탄 테러는 완벽히 저지되었다.

미리 아버지 휴대폰으로 교무부장 박학식의 테러 행위를 알린 것이다.

그로 인해 그가 스카우터의 인물이라는 충격적인 사실도 밝혀졌다. 하지만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반각성 단체, 스카우터의 인물들이 대부분 각성자라고 합니다.

-특히 이번 스카우터 테러 사건으로 인해 각성자들의 관리에 허점이 발견되었는데요. 이로 인해 협회에서는 미등록 각성자들의 범죄를 방지하기 위해, 각성자들의 의무적으로 나노칩을 휴대해야 하는 신(新) 각성자 등록 법안을…….

놀랍게도 각성자의 영리활동을 반대하는 테러단체 스카우터 구성원들이 대부분 각성자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이로 인해 각성자들의 관리와 등록제도의 보완성 문제가 대두되었고, 협회에서도 관련 법안을 다시 발의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 * *

어두운 밀실.

의자에 깊숙이 앉아 스크린에 뜬 뉴스를 바라보던 그림자가 덤덤히 중얼거렸다.

“절반의 성공인가.”

그림자가 손을 젓자 팟 하는 소리와 함께 스크린이 꺼졌다.

“다행히 여론은 원하는 대로 조성되었지만…….”

하지만 그림자가 원한 컨벤션 센터와 각성자 학교의 테러는 몽땅 실패로 돌아갔다.

임산부와 아이들이 죽어야 사람들이 더욱 공분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 개화하지 못한 어린 각성자들이 죽어야 더욱 일이 쉽게 풀렸을 것이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두 곳의 테러는 성공하지 못했다. 아니, 미연에 정보가 샌 것처럼 완벽히 실패하였다.

“협회장…….”

두 주먹을 꽉 쥔 그림자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정말 그자가 이 일을 주시하고 있다는 건가.”

쾅.

책상을 내리친 그림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렇게 된 이상, 느긋하게 차근차근 계획을 진행시킬 순 없다.

무작정 밀어붙여서라도, 무리를 해서라도 일을 진행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어쩔 수 없지.”

뿌드득.

다시 한번 이를 간 그림자가 낮게 말했다.

“이 몸이 전면에 나설 수밖에.”

위잉, 철컥.

꽉 닫힌 밀실을 열자 은은한 빛이 그림자의 몸을 휘감았다.

음영이 진 어둠 속에서 눈을 번뜩이는 그림자.

그는 바로 전략기획실장, 김수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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