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3화. 천마, 서유리를 떠나보내다
그제서야 천마는 지금까지의 일이 모조리 머릿속에 떠올랐다.
“지금 뭘 하는 거냐.”
황급히 일어나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서유리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자신의 몸을 단단히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빛은 천마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와 피부와 장기, 그리고 손상된 세포들까지 서서히 소생시키고 있었다.
“지금… 뭘 하고 있는 거냐.”
“미안해요. 저도 처음 사용해 보는 거라, 많이 어렵네요.”
서유리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천마 씨의 몸은 방사능에 세포까지 손상된 상태일 거예요.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완벽히 치료가 될런지는…….”
“본좌를 눕혀두고 뭘 하는 거냐고 물었다.”
천마의 엄한 눈빛을 마주하자 서유리는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이게 저번에 극한각성 때 얻었던 새로운 스킬이에요. 그냥 가벼운 치료 스킬 같은 거죠.”
거짓말이다.
천마는 자신의 몸속에 흘러 들어오는 빛이 원정진기, 즉 인간이 갖고 있는 근원의 생명력임을 짐작했다.
무림에서도 더러, 죽음에 이른 제자나 지인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원정진기를 주입하는 고수들이 있다.
그런데 고금제일인인 천마에게 원정진기를 주입하다니.
“괜찮아요.”
천마의 생각을 모두 읽은 것처럼, 서유리가 미소 지었다.
“어차피 저는 죽었어야 하는 상황인걸요.”
쿠웅! 쿠웅!
그때 빛이 흘러나오는 벽 뒤로 커다란 진동이 흘러나왔다.
서유리의 무한방벽을 깨기 위해 진성령과 부하들이 스킬을 쏟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만들어낸 무한방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천마 씨라면, 몸이 다 회복되지 않아도 저들을 따돌리고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겠죠?”
서유리는 어딘가 초점 없는 눈빛으로 말했다.
“이곳을 빠져나가면 당분간 통합정보국에선 천마 씨를 건드리지 못할 거예요. 넷스피어가 통하지 않는 강자에다, 협회 쪽 사람이라고 착각하니까…….”
“그만!”
천마는 버럭 소리쳤다.
서유리가 자신의 몸 안의 생명력을 모두 자신에게 쏟아부은 채 죽어가고 있었다.
“본좌는 멀쩡하니, 진기 주입을 멈추란 말이다!”
우드득.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된 천마는 강제로 힘을 써 서유리의 몸을 밀어내었다.
“후우. 후우.”
몸을 일으킨 천마는 또다시 가쁜 숨을 들이쉬었다.
서유리가 전력을 다해 치료를 해주었지만 팔찌에서 주입된 독은 여전히 몸속을 파고들었다.
게다가 방사능 무기 탓인지, 내공은 온데간데없이 소멸된 상태였다.
만약 서유리의 치료가 없었더라면, 천마는 그대로 절명했을지도 모른다.
“본좌는…….”
침중한 표정을 지은 천마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빙그레 웃던 그녀의 눈과 귀에선 새빨간 피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금속탄에 의해 치명상을 입은 채 전심전력으로 천마에게 생명력을 전해주었던 서유리.
그녀의 생명은 불꽃을 다한 채 서서히 꺼져가고 있던 것이다.
“천마 씨.”
“말하라.”
“그때 봤던… 아가씨 말이에요. 정말 잘 어울리던데.”
아마도 신채영을 말하는 것이리라.
천마는 아무 대답 없이 서유리의 눈을 응시했다.
“그분도 당신을 좋아하고 있는 것 같아요.”
“쓸데없는 말 말고 정신 차려라.”
혈염광휘를 번뜩인 천마가 에너지 블록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부터 본좌가 저 바깥에 있는 놈들을 쳐 죽이고, 이곳을 빠져나갈 테니까.”
내공은 바닥났고 독기는 아직도 몸속을 타고 돌았다.
아직도 실드는 멀쩡히 작동되고 있으며, 방사선 무기도 3기나 남았다. 하지만 천마는 반드시 그들을 무찌를 자신이 있었다.
“제 손을… 잡아주시겠어요?”
하지만 천마는 그럴 수 없었다.
서유리의 몸이 싸늘히 식어가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지.”
천마는 스스럼없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흔들리는 눈빛으로 천마를 바라보던 서유리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차를 타고 오면서, 천마 씨와 결혼을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봤어요.”
따스한 천마의 손을 꽉 붙잡은 서유리가 속삭이듯 말했다.
“매일같이 인테리어 일을 한다고 땀에 절어서 오겠죠. 저녁을 차리고 있으면 당신은 씻고 밥을 먹을 거예요. 그리고 저와 TV를 보며 잡담을 하다 다시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겠죠.”
그녀의 눈동자는 초점이 없었다.
하지만 천마는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서유리의 눈을 응시했다.
그저 지금은 그녀를 바라보는 것. 그리고 행복한 넋두리를 들어주는 것이 최선이었으니까.
“그리고 당신을 닮은 잘생긴 사내아이를 낳을 거예요. 성격은 제 아비를 닮아 무뚝뚝하지만 너무나 사랑스럽겠죠.”
서유리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환상에서 깨어난 듯 맑은 눈물방울을 흘렸다.
“하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이었어요.”
왈칵.
서유리의 입에선 내장 조각이 흘러나왔다.
천마는 침중한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저 상태라면 대라신선이 와도 살릴 수 없다. 아니, 원정진기를 모두 쏟아낸 그녀의 몸은 생명의 빛을 잃은 상태였다.
“더 이상 말하지 마라.”
천마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오직 하나.
그녀의 손을 붙잡은 채 체온을 전해주는 것뿐이었다.
“천마 씨…….”
죽음이 다가오는 듯 눈앞이 깜깜해진다.
사방이 어두운 빛으로 물들어가자 서유리는 떨리는 손으로 천마의 손을 꽉 붙잡았다.
“부탁이 있어요.”
“말하라.”
“찬원 삼촌에겐 오늘 있었던 일… 말하지 말아주세요.”
김찬원은 한없이 따뜻하고 정이 많지만, 강력한 힘을 가진 풍령일족의 요괴이기도 했다.
만약 서유리가 정부 요원들의 손에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김찬원은 모든 걸 바쳐 관련자들을 추적해 사살할 것이다.
비록 요괴라는 사실은 모른 채, 힘을 가진 미등록 각성자라고 알고 있지만.
그녀는 김찬원이 이와 같은 음모에 휘말려 양손에 피를 묻히는 걸 원치 않는 것이다.
“그러지.”
서유리의 마음을 헤아린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 말하지 않겠다.”
“…그리고 소원이 한 가지 있어요.”
소원(所願). 바라고 또 원하는 일.
아마도 그녀가 원하는 건 복수일 것이다.
천마는 다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하라.”
하지만 서유리의 소원은 그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다.
“행복하세요, 천마 씨.”
서유리는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작게 속삭였다.
“꼭이요.”
순간 천마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서유리.
그녀는 생명력을 모두 쏟아내어 자신을 지켰고, 죽어가면서까지 자신의 행복만을 바라고 있었다.
부모의 얼굴조차 모른 채 삭막한 세상을 떠돌며 지금까지 살아왔던 천마.
그는 비로소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는 것을 받아본 것이다.
“…오늘 하루도 조금 더 절 좋아하게 되었나요?”
순간 천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헤어지던 순간, 늘 그녀가 물어봤던 질문. 천마는 언제나 해주지 않았던 대답.
그리고 오늘은 내기의 마지막 날.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서유리는 천마에게 ‘좋아하게 되었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군요.”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서유리의 눈동자는 차갑게 식어갔다.
그 순간,
“서유리.”
천마가 낮은 목소리로 다시 한번 말했다.
“서유리.”
그는 처음으로 서유리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아니, 이 세계에 온 뒤로 누군가의 이름을 똑바로 불러준 것이다.
또르륵.
그 순간, 서유리의 눈동자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천마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었다는 것. 그것이 어떤 의미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대답 잘 들었어요.”
초점 없던 서유리의 눈동자에서 생기가 피어오르더니, 입가에 만족스런 미소가 떠올랐다.
마침내 그녀는 천마의 마음속에 겹겹이 쌓인, 두꺼운 얼음을 깬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결코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을 테니까.
“시간이 더 있었으면… 천마 씨의 마음을 완전히 빼앗을 수 있었을 텐데.”
서유리의 눈동자에선 진주 같은 눈물방울이 흩어져 내렸다.
그것은 원망의 눈물이었다.
왜 하늘은 진정한 사랑을 만나게 해주고, 다시 이별을 고하게 하는 걸까?
“천마 씨.”
엷은 미소를 머금은 그녀의 몸은 어느새 싸늘히 식어 있었다.
눈을 감은 채 엷은 미소를 띠고 있는 서유리의 모습은 평화로워 보였고, 또 슬퍼 보였다.
“…행복하라고?”
서유리의 얼굴을 바라보던 천마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부탁은 들어줄 수 없겠군.”
고개를 떨군 천마의 눈동자에서 핏빛보다 더 진한 혈염광휘가 치솟았다.
“앞으로 본좌의 손엔 피가 가득 묻혀질 테니까.”
서유리는 대답이 없다.
그저 꿈을 꾸는 듯 조용히 미소 짓고 있을 뿐이다.
천마의 표정은 암흑보다도 더 어두워져 있었다.
“손에 피가 마르지 않는 무인은 행복해질 자격이 없지.”
휘이이이…….
갑자기 천마의 발밑에서 수백만 개의 붉은 광점들이 허공으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의 몸은 다시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분노.
그것은 천마가 생애 처음으로 느끼는 감정이었다.
자신을 이유 없이 공격했던 정파의 고수들로 인해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어도, 수족 같은 부하들이 죽어 나갔어도… 한 번도 그는 화를 내지 않았다.
무인이란 본래 그리 덧없이 죽어가는 것.
천마 본인조차도 언제든 죽어도 이상하지 않는 삶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뿌드드득.
하지만 자신의 생명력까지 모두 던지며 자신을 지켜주고 사랑해 준 서유리의 죽음을 보자, 분노를 느꼈다.
‘그녀를 살릴 수도 있었다.’
도로에서 안개가 퍼져나갔을 때도, 팔찌를 차기 전에도 천마는 이 모든 것이 함정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는 여봐란듯이 그들의 수작에 어울려 주었다.
만약 서유리를 지키려 했다면, 은밀히 몸을 움직여 이들을 몰살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지.’
조금 더 강한 적이 나타나고, 조금 더 위협적인 상황이 벌어지길 바랐으니.
천마는 적들에게 분노한 것이 아니었다.
이 상황을. 모든 걸 주재하고, 통제하지 못한 절대자의 분노였던 것이다.
“모두 죽여주지.”
쩌쩌쩌쩍.
가슴속에 터져 나오는 분노가 몸을 휘감자, 피부가 갈라지며 그 안에서 붉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독 기운에 의해 발휘할 수 없었던 천마대능력이 발동되었다.
파앙!
붉은 기운이 전신을 휘감자 천마의 눈동자에서 쏟아지는 혈염광휘가 더욱 짙어졌다.
치이익.
온몸을 타고 들던 독이 손끝에서 배출되더니,
우우우우웅!
낮은 진동음과 함께 천마의 몸에서 청록빛 광채가 터져 나왔다.
분노에 의해 막혔던 혈도가 모조리 뚫리자, 돌연 내공이 이(二) 갑자를 돌파한 것이다.
지지지지직.
청록빛 불꽃을 몸에 휘감은 천마의 눈동자에선 묘한 빛이 어렸다.
내공이 또다시 한 갑자를 더 돌파하자 끊어진 기혈 하나가 더 이어진 것이다.
“하나 약속하지.”
천마는 잠들어 있는 듯한 서유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저승길 가는 길이 결코 외롭지는 않을 거라고!”
파아아앙!
수십 명의 각성자들도 부수지 못했던 서유리의 무한방벽 뒤쪽을 단번에 부순 천마가 하늘 위로 솟구쳤다.
“나왔다!”
폐공장 공터에 몰려 있는 수십 명의 각성자들이 하늘에 멈춰 있는 천마를 올려다보았다.
“비행 스킬도 있었던가.”
청록빛 불꽃에 휘감겨 있는 천마를 올려다본 진성령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실드와 방사선 무기를 다시 작동시켜.”
구우웅! 지지지직!
커다란 진동음과 함께 천마의 머리 위로 둥그런 실드가 펼쳐지더니,
지이이잉!
요란한 기계음이 잠시 울려 퍼졌다. 실드 밖으로 설치되어 있는 방사선 무기가 천마를 다시 조준한 것이다.
보이지도 않고 느낄 수도 없는 방사선 무기를 내려다보던 천마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혈뢰(血雷)… 무쌍(無雙)!”
다시 한 갑자의 내공을 얻어 끊어진 기혈이 이어지자, 천마는 또다시 새로운 무공을 선택했다.
살수의 대종(大宗) 사제(死帝)의 극살밀기(極殺密技).
바람과 바람 사이를 가를 수 있을 만큼 빠르게 움직이며, 인간을 가장 고통스럽게 죽일 수 있다는 살수무학, 혈뢰무쌍을 사용한 것이다.
지이잉. 쿠우우웅.
갑자기 낮은 기계음과 함께 방사선 방출기와 이동식 실드 발생 장치가 작동을 멈추었다.
“뭐지?”
이상함을 느낀 진성령이 눈을 깜빡였다.
하지만 천마는 청록빛에 물든 채 허공에 떠 있었다.
“갑자기 왜 실드가 꺼진…….”
진성령이 귀에 연결된 무전기에 대고 소리칠 무렵,
파아아아!
그녀의 곁에 서 있던 각성자들이 갑자기 피보라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대체 이게…….”
놀란 그녀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으으으으! 어어어어어! 살려줘!
그리고 고통스러운 신음과 비명 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마치 지옥에서 고통받으며 울부짖은 죄인들의 비명 소리 같았다.
파파파파파파파! 파아아아아…….
처절한 비명 소리는 연달아 피보라가 치는 소리와 함께 멈췄다.
폐공장에 있던 모든 요원들이 피안개가 되어 허공으로 흩날린 것이다.
후두두두두둑.
하늘에서 붉은 비가 내렸다.
그것은 이 암살 작전에 투입된 모든 요원들의 피로 만들어진 핏물이었다.
“…….”
핏물을 뒤집어쓴 진성령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초록빛 눈동자를 번뜩인 채 하늘에 떠 있던 천마는 천천히 그녀 앞으로 내려왔다.
“아, 아아아.”
천마와 시선을 마주친 순간, 진성령의 입에선 헐떡이는 비명과 숨소리가 함께 터져 나왔다.
혈뢰무쌍.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고통을 선사하며, 피와 살이 있는 육체를 단숨에 피안개로 만들어내는 사제의 극살지학.
천마는 자신에게 굳이 필요치도 않은 살학을 이 갑자에 이어진 기혈로 개방했다.
오직 서유리를 죽인 이자들을 잔혹하고 고통스럽게 벌하기 위해.
“살, 살려…….”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뻗은 진성령의 안구가 점차 부풀기 시작하더니.
파아!
또다시 피안개가 되어 허공에 흩날렸다.
사라라락.
모든 요원이 죽자, 기다렸던 것처럼 서유리가 있던 무한방벽이 스르르 사라졌다.
뚜벅뚜벅.
천마는 무심한 표정으로 서유리에게 다가갔다.
아까와 달리 어딘가 모르게 슬픈 미소를 머금고 있는 듯하다.
“…….”
말없이 서유리의 얼굴을 바라보던 천마는 아주 조심스럽게 그녀를 안아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끼익.
천마가 떠난 후, 요란한 브레이크 소리가 들리더니 커다란 몬스터 트럭 한 대가 폐공장 앞에 섰다. 바로 천마를 뒤따라왔던 신채영이었다.
“대체 이게.”
주위를 둘러보던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전쟁이라도 난 건가.”
한 대에 수백억이 넘는다는 소형 실드 발생기와 지향성 방사선 방출기가 널브러져 있고, 곳곳엔 핏물이 뿌려져 있다.
특히 차량의 운전석이나 방사선 방출기 내부 조작실과 같은,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 부근엔 어김없이 핏방울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신채영은 천마를 뒤따라가던 중, 갑자기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안개 속에 갇혔다.
던전용 차량이기에 자동항법 장치 같은 것이 없는 터라, 그녀는 어쩔 수 없이 한편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안개가 걷히는 도중, 이상한 괴음이 울려 퍼져 이곳으로 온 것뿐인데…….
“설마 아저씨와 관계있는 건 아니겠지.”
살벌한 풍경을 살피던 신채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닐 거야.”
그는 언제나 몰래 던전에 들어가 사람들을 구해내는 다크나이트 같은 사람이 아니던가?
절대로 이런 일과는 관련이 없을 것이다.
“이럴 때가…….”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린 그녀는 천천히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서유리의 장례식.
그곳은 수많은 협회 사람들과 그녀가 몸담았던 길드원들로 붐볐다.
하지만 가족도 절친한 친구도 없던 그녀였기에, 장례식장 내부는 얼마 지나지 않아 텅 비었다.
“유리가, 우리 유리가…….”
밝게 미소 짓는 그녀의 영정사진이 걸려 있는 빈소 앞엔 아직도 김찬원이 오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천마가 무심하게 앉아 있었다.
마치 이 모든 것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처럼.
그렇게 그는 서유리의 마지막을 지켜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