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258화 (258/285)

제258화. 대독 던전 (1)

슈우우우.

불타오르는 던전에서 나온 천마의 머리칼은 산발이 되어 있었다.

“곤란하군.”

밖으로 나오고 보니 상투를 틀었던 머리끈이 보이지 않는다.

“뭐, 이대로는 상관없겠지.”

천마는 대수롭지 않는 표정으로 던전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날 오후.

다각다각.

노트북을 바라보며 열심히 견적서를 뽑던 장채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자판에서 손을 뗀 그녀는 응접 테이블에 앉아있는 천마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라푼젤이야?”

“그게 뭐냐.”

“그러니까… 그 머리카락 말야.”

장채원은 천마의 산발이 된 천마의 머리카락을 가리켰다.

상투를 틀지 않은 탓에 쇠톱처럼 삐죽삐죽하고 거친 머리칼은 허리까지 내려와 있었고 앞머리는 더듬이처럼 변해 있었다.

“머리칼?”

“머리카락 왜 안 묶어?”

“어제 갔던 던전에서 잃어버린 것 같다. 아무리 찾아도 없더군.”

“다른 걸로 묶으면 되잖아? 머리끈 하나 빌려줘?”

장채원이 책상 서랍을 열고 머리끈을 내밀자 천마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소용없다. 그런 걸론 안 된다.”

장채원은 미간을 찌푸린 채 천마를 빤히 바라보았다.

무슨 또 신박한 헛소리를 하는가 싶어 기다리는 것이다.

“본좌는 천마다.”

“그래서.”

“머리카락도 금강지체에 이르렀지.”

“응?”

자신의 붉은 머리칼을 가리킨 천마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런 걸로 묶을 수 없다. 금세 잘라질 테니까.”

한숨을 쉰 장채원의 천마의 머리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제 주인의 성격을 닮은 듯 억센 머리칼은 쇠톱처럼 뾰족하고 날카로웠다. 억지로 묶으려면 일반 머리끈 같은 걸론 안 될 것 같았다.

“그럼 굵은 철사나 전선 같은 걸 줄까?”

“거절하도록 하지.”

“그럼 그냥 그렇게 계속 산발하고 있겠다고?”

“상관없다.”

“상관없다니. 앞이 안 보이잖아. 머리가 눈을 가리고 있다고. 그런 꼴로 일을 하거나 운전을 하면 위험해.”

“걱정 마라.”

팔짱을 낀 천마가 자신 있게 말했다.

“본좌의 예리한 초감각은 공기의 미세한 파동까지 감지하지. 눈을 감고도 무엇이든 훤히 감지할 수 있다.”

결국 장채원은 속마음을 드러내었다.

“불편해. 그런 꼴로 다니면 보는 사람도 불편하다고.”

“본좌가 알 게 뭐냐.”

“에잇, 씨!”

이 감정이 말살된 터미네이터 같은 녀석에겐 타인에 대한 배려 따윈 없다.

결국 알아먹을 수 있도록 명령을 하는 수밖에.

“묶지 않을 거면 잘라.”

“무엇을?”

“머리 자르라고.”

“지금 본좌에게 살해 협박을 하는 건가.”

“아, 미안. 내 말은 머리카락을 자르라고.”

“어째서.”

이 부분이 중요하다.

‘내 눈이 불편하잖아.’ 혹은 ‘네 면상처럼 보기 흉하니까’라는 말을 해선 설득이 안 된다.

아이처럼 흥미를 유도해야 할 뿐만 아니라, 매우 그럴싸한 이유를 내밀어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시도지.”

“새로운 시도?”

“천마, 너도 TV 잘 보잖아. 이 세계에선 각기 다른 개성을 헤어스타일, 그러니까 머리카락 모양으로 표현하거든.”

“개성을 머리카락으로 표현한다고?”

천마가 호기심을 보이자 장채원이 얼른 반색했다.

“그래그래. 물론 너야 면상… 아니, 얼굴로도 충분한 개성을 표현하곤 있지만. 그래도 이 세계에 온 이상 이쪽 문화를 한번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어?”

“문화?”

“그래. 여기선 너처럼 상투를 틀고 다니는 사람은 없다고.”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천마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굳이 머리카락을 자르면서까지 개성을 표현하고 싶진 않군. 표현할 필요성도 못 느끼고.”

“아, 물론 개성은 그냥 하나의 이유일 뿐이야.”

장채원은 당황하지 않고 온갖 이유를 갖다 붙이기 시작했다.

“계절이 바뀌면 옷도 바꿔 입듯이, 헤어스타일도 오래되면 다른 스타일로 한번 바꿔보는 것도 좋아.”

“왜 바꾸나.”

“더 멋지고, 더 위엄있는 모습으로 바뀐다고 할까?”

“위엄?”

천마의 눈이 반짝이자 장채원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래. 한번 바꿔보자고.”

행여 마음이라도 바뀔까 그녀는 한마디를 더 보탰다.

“천하의 천마 나으리께서 설마 머리카락 하나 자르는 걸 두려워하는 건 아니겠지?”

“어설픈 격장지계로군.”

“아니면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 게 두려운 거야?”

장채원은 지금까지 천마의 헛소리와 궤변에 적잖이 단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그녀 또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새로운 걸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겐 발전이 없지. 천마, 넌 언제나 발전을 추구하는 거 아니었어?”

“물론이다.”

“근데 언제까지 그 고리타분한 헤어스타일을 유지할 건데.”

“흠.”

“하다못해 좀 다듬기라도 하자. 어때?”

홀린 듯 장채원의 이야기를 듣던 천마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방금 좋다고 한 거지?”

“그렇다.”

천마는 팔짱을 끼고 말했다.

“한번 가보도록 하지.”

초콜릿 이발소.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주택단지 입구에 위치한 이발소다.

지나온 세월을 말해주는 듯 외관은 허름했지만 내부는 매우 깔끔하게 꾸며져 있었다.

“실례합니다.”

천마를 데리고 온 장채원이 이발소 주위를 두리번거렸으나, 인기척이 없었다.

“이상하다. 왜 아무도 없지.”

“운영을 안 하는 게 아닌가.”

“그럴 리가. 그러면 아예 문을 닫았겠지.”

장채원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이곳은 솜씨 좋은 상급요괴가 운영하는 이발소로, 상당히 유명한 탓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방문조차 할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내부에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얼씬거리지 않다니.

그때 ‘직원 전용’이라고 적힌 문에서 훤칠한 그림자가 걸어 나왔다.

“아, 어르신, 안녕하…….”

인사를 하려던 장채원이 입을 벌렸다.

원래 이곳을 운영하는 헤어디자이너는 멋스러운 은발을 짧게 친 노년의 신사였다.

그런데 문을 열고 나온 남성은 촌스러운 리젠트 컷을 하고 있는 중년의 남성이었다.

“어서 오세요.”

웃으며 걸어온 남성은 몸에 착 달라붙은 가죽바지를 입고 눈에는 짙은 화장을 하고 있었다.

마치 여성 복장을 즐겨 입는 소조신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혹시 주인 분이 바뀌셨나요?”

장채원의 물음에 남성이 빙그레 웃었다.

“네.”

“그, 그러셨군요.”

장채원은 어색한 눈빛으로 남성을 힐긋 바라보았다.

물론 외모로 실력을 평가할 순 없다. 하지만 눈앞의 남성이 천마의 취향에 맞게 머리를 깎아줄 거란 기대가 들지 않았다.

“커트하러 오셨나요?”

“아, 제가 아니라 여기 저희 직원이 깎을 거긴 한데…….”

“아, 그러시군요.”

반짝이는 눈으로 천마의 몸을 훑은 남성이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럼, 이쪽으로 앉으세요.”

“아니, 저 근데…….”

머뭇거리던 장채원이 나직이 말했다.

“저희 직원이 성격이 좀 까다로워서…….”

“괜찮아요. 취향을 맞춰드리는 건 어렵지 않으니까요.”

남성의 복장은 기괴했으나, 담담한 미소와 친절한 응대는 전문가다운 분위기가 폴폴 풍겼다.

‘이런 분들이 실력은 좋을 수도 있지.’

그 유명한 초콜릿 이발관을 인수한 남성이다. 그렇다면 분명 그에 걸맞는 실력을 갖추고 있을 거란 기대가 들었다.

“그렇군요. 천마야, 여기 앉아.”

장채원이 의자를 가리키자 천마가 군말 없이 의자에 앉았다.

“어떻게 깎아드릴까요?”

남성이 자신의 듬직한 어깨를 주물주물 매만지며 묻자 천마가 말했다.

“기분 나쁘군. 점주, 이자를 때려도 되겠나.”

“아니, 안 돼.”

손을 휘휘 저은 장채원이 천마에게 물었다.

“머리 어떻게 깎을 거야?”

“글쎄.”

턱을 쓰다듬던 천마가 시원하게 말했다.

“추천한 건 점주니, 점주에게 맡기도록 하지.”

“그래? 나도 딱히 생각한 건 없는데.”

“그럼 제가 시뮬레이션을 돌려드릴게요.”

철컥.

남성이 의자 버튼을 누르자, 천장에서 둥그런 물체가 튀어나오더니 천마의 얼굴을 샅샅이 스캔했다.

지이이잉.

실낱같은 녹광이 훑고 지나가자, 정면의 거울이 스크린으로 바뀌더니 천마의 얼굴이 화면에 띄워졌다.

“요즘 유행하는 헤어스타일 순서대로 보여드릴게요.”

찰칵. 찰칵.

남성이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천마의 얼굴에 새로운 헤어스타일이 덧씌워졌다.

하지만 화면을 바라보는 장채원의 얼굴은 갈수록 어두워졌다.

‘하나도 안 어울려!’

암벽처럼 단단하고 도깨비처럼 험악하게 생긴 천마의 얼굴에는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이라던가, 짧은 머리가 딱히 어울리지 않았다.

달칵. 달칵.

오히려 버튼을 누를수록 화면에 뜬 천마의 얼굴은 더욱 괴상해지거나, 혹은 더욱 험악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상투를 트는 게 최선이었어?’

아무리 여러 가지 스타일로 바꿔보아도, 상투를 튼 머리보다 나은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마음에 드는 게 없으신가요?”

“으음, 그게…….”

남성의 물음에 장채원은 침음을 내었다.

아무래도 이럴 땐 전문가의 손길을 받는 게 최선이다.

“아무래도 인상이 좋다고 할 순 없어서요. 가능한 저 험악한 얼굴을 부드럽게 바꾸고 싶은데.”

“부드럽게요?”

“네. 사나운 얼굴을 조금이라도 부드럽게 중화시킬 수 있는 헤어스타일이 있을까요?”

“사나운 얼굴을 중화…….”

잠시 고민하던 남성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이 시뮬레이션에는 없는 스타일이긴 한데… 한번 맡겨주시겠어요?”

“어떤 건데요?”

“장담컨대, 절대로 인상이 나빠 보이진 않을 거예요.”

자신감 있는 남성의 미소를 보자 장채원은 무한한 신뢰감이 솟았다.

“네, 그럼 한번 해주세요.”

철컹.

불꽃이 튀기자, 허리까지 내려오던 천마의 붉은 머리칼이 단박에 절단되었다.

남성도 상급요괴인지, 단단한 천마의 머리칼을 능숙하게 절단하며 손질을 하고 있었다.

철컹. 철컹. 지이이잉.

가위가 닿을 때마다 철사보다도 질긴 천마의 머리칼이 우수수 잘렸다. 요괴 이발소답게 엄청나게 날카로운 가위와 헤어클리퍼가 구비되어 있었다.

“너무 많이 깎는 거 아닌가.”

거울을 바라보던 천마의 중얼거림에 장채원이 활짝 웃었다.

“새로운 시도. 새로운 시도.”

“흠.”

불만스런 표정을 지은 천마는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다 됐어요.”

눈을 뜬 천마는 얼어붙었다.

그저 그런 짧은 머리를 했을 거라 생각했건만, 거울에 비친 천마는 지금까지 상상할 수 없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이게 뭐냐.”

“자칫 사나워 보일 수도 있는 고객님의 인상을 부드럽게 바꿀 수 있는 유일한 헤어스타일입니다.”

남성의 말에 장채원은 침을, 그리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꿀꺽 삼켰다.

정면 거울에 보이는 형태.

그곳엔 트로트 가수도 하지 않는 이 대 팔 가르마를 탄 머리를 한 천마가 있었던 것이다.

“푸흐…….”

결국 틀어막은 입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확실히 파괴력이 있는 머리다. 산도깨비 뺨을 후려칠 만큼 인상이 더러웠던 천마가, 어느새 동네 바보형처럼 순박해 보이기까지 했으니까.

“그렇군.”

거울을 바라보던 천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점주, 이자를 죽이겠다.”

“뭐? 왜?”

“이자는 분명 정파에서 보낸 암살자가 분명하다.”

“무슨 헛소리야.”

눈동자에서 혈염광휘를 쏟아낸 천마가 손을 주물럭거렸다.

“분명 본좌의 위엄을 헤쳐, 웃음거리로 만들려는 속셈이겠지.”

“잠, 잠깐만요.”

분노한 천마를 바라보던 남성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이, 이건 아직 완성된 게 아니에요. 샴푸 후에 스타일링을 해줄 거예요.”

“스타일링?”

“네. 우선 이쪽으로 오세요.”

진땀을 닦은 남성은 천마를 이끌고 열심히 머리를 감기고 말렸다.

그리고 양손에 포마드를 듬뿍 묻혀 천마의 머리에 발라주었다.

“…푸흐.”

그 모습을 바라보던 장채원은 결국 또 웃음을 터뜨렸다.

본격적인 이 대 팔 가르마에 포마드까지 바르자, 완벽한 근육질 트로트 가수가 탄생한 것이다

“마, 마음에 안 드시나요?”

“…….”

천마는 말없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몸에 걸려 있던 천을 주섬주섬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파앙!

천마대능력을 펼치자 시뻘건 광채와 함께 사방으로 폭풍과도 같은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진정해!”

놀란 장채원이 남성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고작 머리카락을 자른 것 가지고… 푸흐.”

“죽이겠다.”

“잠깐만.”

철썩!

자신의 뺨을 힘껏 때린 장채원이 심호흡을 하고는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건 모두 내 잘못이야. 진정하라고.”

“본좌더러 이 꼴로 밖을 돌아다니란 말인가.”

“맘에 안 들면 모자 있잖아, 모자. 내가 사줄게.”

“저놈의 머리 가죽을 잘라 뒤집어쓰고 다니도록 하지.”

살기가 뚝뚝 떨어지는 말에 장채원이 버럭 화를 냈다.

“말이 너무 심하잖아!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그렇게 심한 말을 해!”

“죄송합니다.”

그때 남성이 앞으로 나서며 고개를 숙였다.

“마음에 안 드신다니 전적으로 제 잘못입니다. 고객님의 인상만 중화시키려고 했지, 고객님의 취향을 고려하지 않았어요.”

진심 어린 사과에도 천마의 눈동자에서 흘러나오는 혈염광휘는 더욱 짙어졌다.

“그래서.”

“원래의 머리카락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어떻게.”

“대독 던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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