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255화 (255/285)

제255화. 깊어가는 음모 (2)

주영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선우라는 아이는 왜 그런 선택은 한 걸까?

대체 무슨 사이였길래, 어린 나이에 상대방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던 것일까?

“그 일로 윗선에서도 난리가 났다. 최고의 자질을 가진, 최강의 암살자 후보였던 선우가 스스로 자결을 했으니. 그것도 가장 형편없던 울보, 유은호를 위해서 말이다.”

주영은 홀린 듯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죠?”

“당연히 선우와의 관계와 이렇게 된 그 이유를 캐내려 했다. 하지만 은호는 그때부터 울지 않고 웃더군. 아무리 고문을 해도, 심지어 자백제를 먹여도 소용없었다. 그저 웃으며 아무 말 하지 않았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남성우의 입에선 더욱 이해할 수 없는 말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이후, 유은호는 변했다. 선우가 죽은 뒤, 마치 다시 태어난 것처럼 재능이 개화했지. 그리고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잔혹한 최강의 암살 기계가 탄생했다.”

“…….”

“아직도 기억나는군. 모든 프로그램이 끝나고, 은호 녀석이 활짝 웃으며 내게 한 말이 말야.”

남성우는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말했다.

“모든 일이 끝나면, 마지막은 당신이라고.”

주영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둘 사이에 그러한 사연이 있을 줄이야.

하지만 이상한 것은, 그렇게 말한 유은호가 왜 지금까지 그는 남성우를 죽이지 않았냐는 점이었다.

“어르신께서 줄곧 고통을 받았기 때문인가요?”

깊은 생각 끝에 주영이 말했다.

“어르신의 몸이 망가져서. 매일매일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어서요?”

“글쎄.”

남성우는 피식 웃었다.

그 역시 정말로 모르고 있었다. 유은호가 왜 자신을 죽이지 않았는지.

그리고 선우가 죽은 뒤로 왜 사람이 바뀌었는지. 늘 울던 아이가 어째서 웃게 되었는지.

쿠릉.

여우비라도 오려는 것일까. 갑자기 맑았던 하늘이 흐릿해지더니 먼 하늘에서 은은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주영아.”

“네.”

“이제 은호에게 가서 전해라.”

“네?”

“죽어서도 나는 내가 한 일을 후회하지 않았노라고.”

알 수 없는 말이다.

주영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남성우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렇게만 말하면 된다.”

그 표정은 마치 귀여운 손녀딸을 보는 듯하다. 그 인자한 미소에 주영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너도 이젠 평범하게 살거라.”

“그게 무슨…….”

주영이 눈을 깜빡일 찰나,

“에이, 그렇게 허락 없이 멋대로 결정하심 안 되죠. 엄연히 이쪽 측근인데.”

비웃음이 담긴 음성이 귓가로 파고들었다.

“누구냐.”

주영이 몸을 돌리자 가게 앞으로 양복을 입은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땅속에서 솟구치듯 등장한 모습이다.

“오랜만입니다.”

그림자가 한 발짝 다가오자 그늘졌던 얼굴이 서서히 드러났다.

반달눈을 가진 청년. 언제나 음모가 벌어질 때마다 나타났던 그 청년이다.

“미리 마중을 나와 있으셨나요?”

청년은 빙글거리는 미소를 머금고 남성우를 바라보았다.

“남 교관님.”

청년은 남성우와 아무런 사이도 아님에도 그를 교관으로 불렀다.

순간, 주영은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자는 어르신의 과거를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점을 이용해 어르신의 마음을 흐트러뜨리려 한다는 것을 말이다.

“생각보다 훨씬 빠르구나.”

남성우의 중얼거림에 청년이 배시시 웃었다.

“항상 남들보다는 좀 빨라야죠. 그래야 일 좀 잘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해도 너무 빠른데.”

담배에 불을 붙인 남성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그 녀석이었나.”

“하하하. 뭐, 거기까지 생각하셨다면 왜 이렇게 되는지도 알겠군요.”

청년의 말에 남성우가 피식 웃었다.

“피를 좋아할 뿐만 아니라 상인들의 고혈을 빠는 걸 좋아하는 녀석을 거두는 것이 아니었는데.”

“입단속을 잘하셨어야죠.”

빙그레 웃던 청년의 눈이 험악해졌다.

“우리에게도 눈과 귀가 있는데.”

“그렇군.”

남성우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주영에게 말했다.

“너는 어서 가거라.”

“어르신.”

“그리고 날 죽인 저놈의 정체를 알려줘라. 그 녀석이라면 이후의 일은 알아서 할 테니.”

담배를 깊게 한 모금 빤 남성우가 빙긋 웃었다.

“그게, 너에게 맡기는 마지막 일이다.”

그 미소는 남성우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생명의 빛을 담아놓은 듯 밝았다.

그의 마음과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감한 주영이 입술을 깨물었다.

“알겠습니다.”

“저, 저기요? 저는 아직 허락을 안 했는데요.”

청년이 장난스럽게 귀를 기울이자 남성우가 씩 웃으며 담배 한 모금을 빨았다.

“허락?”

툭.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내던진 남성우가 후후 하는 소리를 내었다.

동시에 그의 피부에선 다시 보랏빛 핏줄이 번지듯 튀어나왔고, 오른손바닥에서는 까만 연기가 천천히 피어올랐다.

“이게 허락이다.”

* * *

실드경계지역.

편의점 너머 언덕길로 올라가면 황량한 풍경이 보인다. 세이프던전으로부터 도시를 방어하는 실드가 설치된 지역이다.

부르르르릉.

고알피엠을 쓰는 엔진의 소리가 울려 퍼지는가 싶더니 작은 승합차 한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천마의 라마스였다.

“흠.”

여유로운 동작으로 운전을 하던 천마의 눈동자가 순간 응축되었다.

커다랗고 둔탁한 무언가가 라마스의 천장에 떨어지고 있음을 느낀 것이다.

[천마 님.]

느긋하게 앉아 있던 무명도 무언가를 감지했는지 눈 센서를 번뜩였다.

끼익.

천마가 핸들을 확 틀자 쿵 소리와 함께 둔탁한 무언가가 라마스의 옆으로 떨어졌다.

철컥.

차에서 내린 천마는 바닥에 떨어진 시꺼먼 물체를 바라보았다.

“하아. 하아.”

그것은 피투성이가 된 채 숨을 헐떡이고 있는 여성이었다.

나노슈트에 달린 프로텍터가 모두 파손되어 있었고 입가에선 실낱같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바로 블랙 마켓을 장악한 남성우의 보디가드이자 제자, 주영이였다.

“뭐냐.”

쓰러져 있는 주영을 바라보던 천마가 붉은 눈으로 주변의 건물을 쓸어보았다.

상황을 보니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어다니다가 추락해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 분명했다.

“부상 때문에 경공을 펼치다 떨어진 건가.”

천마가 한심한 듯한 얼굴로 말할 무렵,

[신분증, 면허증, SNS, 보험이나 대출… 전산상으론 아무런 기록도 없군요.]

주영의 얼굴을 스캔한 무명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래도 정부 특수요원이거나 혹은 협회 비밀조직에 몸을 담은 요원인 것 같습니다.]

“그런가.”

천마는 관심 없다는 듯 몸을 돌려 다시 라마스에 올라탔다.

119에 연락하려던 무명은 눈 센서를 깜빡이더니 그녀의 몸 상태를 스캔했다.

[이런…….]

구급차를 부르기에도 늦은 상황이다. 그녀는 실낱같은 호흡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빨리 응급처치를 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천마 님. 여성의 상태가 매우 위중합니다. 신속한 응급처치를 부탁드립니다.]

“무슨 상관이냐.”

천마의 이런 반응은 이미 예상한 상황이었다.

무명은 차에 올라탄 천마를 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이 여성이 이곳에서 숨지면 천마 님도 곤란해질 수 있습니다.]

“어째서.”

[이 앞은 천마 님의 거처니까요. 이곳에서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되면 천마 님께 성가신 일이 벌어질 겁니다. 어쩌면 용의선상에 오르실 수도 있고요.]

“저쪽 사람들도 있잖나.”

[그쪽은 협회 사람들이 아닙니까. 백 퍼센트 천마 님에게 혐의를 둘 겁니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전산상 기록이 없는 비밀 요원이 숨진 채 발견되었다고 천마가 용의자로 몰릴 일은 없다.

이 세계로 온 뒤 다양한 기계 문물과 문화를 접한 천마였으나, 아무래도 사회 전반적인 상식은 아직 부족한 편이었다.

[설령 아니라고 해도 여러 가지 조사를 받으라고 하겠죠. 최소한 이 여성이 이곳에서 숨을 거두는 일은 없도록 빨리 손을 쓰셔야 합니다.]

무명의 재촉에 천마는 어쩔 수 없이 손을 뻗어 주영을 진맥했다.

“호오.”

자세히 보니 죽어가는 여성의 눈과 귀에서도 검붉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상세를 유심히 살피던 천마의 눈이 번뜩였다.

“만독법왕 같은 고수가 이곳에도 있었나.”

[무슨 말씀이십니까.]

“만사금독장(萬邪禽毒掌)에 당한 것과 비슷한 증상이로군.”

천마는 그녀가 극독에 노출되어, 근육이 오그라들고 혈액이 굳어지고 있음을 대번에 알아챘다.

“으음.”

파파팍.

상세를 살피던 천마가 손가락을 뻗어 지풍을 날렸다. 그러자 주영이 웩 소리를 내며 검은 피를 토했다.

“안 되는 건가.”

[뭐가 말입니까.]

“장기에 고여 있는 독물은 약을 써야 제거가 가능하다. 이 정도 극독을 해독하기 위해서는…….”

말을 하던 천마가 눈을 번뜩였다.

얼마 전 던전에서 얻었던 해독의 보물, 웅담환을 떠올린 것이다.

“이거야말로 운명이로군.”

이 정도로 치밀하게 짜여진 인연이라면 반드시 살리라는 하늘의 뜻일 것이다.

천의를 느낀 천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녀를 안아 들었다.

쿵.

옥탑의 평상 위에 주영을 눕힌 천마는 방 안에 보관해 두었던 웅담환을 가져왔다.

그녀의 입을 벌렸지만 의식은 없고 입 안은 마른 피로 가득 차 있다.

천마는 어쩔 수 없이 물컵을 들고 와 웅담환을 개어 그녀의 입에 흘려 넣어주었다.

“흠.”

핏덩이로 물든 나노슈트를 바라보던 천마가 눈썹을 찌푸렸다.

튼튼하게 몸을 압박하는 옷은 외상으로부터 몸을 보호해 주지만, 독에 당했을 때는 혈행을 방해한다.

찌익. 빠가가각.

몸을 압박하고 있는 나노슈트 일부를 뜯어버린 천마가 내공을 끌어 올렸다.

그리고 그녀의 명문혈에 진기를 주입해 웅담환의 약효를 빠르게 전신으로 퍼트렸다.

“우으. 으으으.”

몸속의 극독이 천천히 제거되자 그녀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며 눈을 떴다.

“정신이 들었나.”

주영이 서서히 의식을 차리자 천마가 손을 거두었다.

“누구…….”

희미하게 눈을 뜬 주영은 눈썹을 찌푸리자 천마가 손을 내저었다.

“알 것 없다.”

천마의 재촉에 주영은 비틀거리며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휑한 옥탑방의 풍경을 둘러보던 그녀가 힘겹게 말했다.

“여긴 어디죠.”

“본좌의 거처다.”

주영은 또다시 눈썹을 찌푸렸다.

쏟아지는 고통도 고통이지만 눈앞의 남성과 말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끄으.”

비틀거리며 옥상 난간을 내려다보던 주영은 눈을 크게 떴다.

목숨을 걸고 도착하려 했던 목적지. 특수대응팀 빌라가 바로 건너편에 있지 않은가?

[어딜 가시는 겁니까.]

현관문을 열고 따뜻한 차를 내오던 무명이 놀란 음성으로 물었다.

주영은 눈 센서를 번뜩이는 나노봇, 무명을 보자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각성자였나.’

하긴 각성자가 아니라면 이런 외딴 실드경계지역에서 살 생각도, 거리에 쓰러져 죽어가는 자신을 치료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거구의 남성도 인상만 더럽지 다행히 크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가야 해.”

짧게 대답한 그녀가 비틀거리며 계단을 향했다.

무명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천마 님. 괜찮을까요?]

천마는 인상을 쓰며 말했다.

“당장 죽진 않을 게다.”

[그렇군요…….]

옥상 난간에 올라간 아래로 내려가 비틀거리며 걷던 주영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는 특수대응팀이 머물고 있는 빌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라, 협회의 사람이었나요.]

무명이 민망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럴 줄 알았다면 저쪽에 바로 연락할 걸 그랬습니다.]

…라곤 말했지만 방금 전의 주영의 상태는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아마도 무명의 신속한 판단, 그리고 천마의 응급처치가 없었더라면 그대로 숨이 끊어졌을 것이다.

“…….”

천마가 아무런 대답이 없자 무명이 머쓱한 얼굴로 몸을 돌렸다.

철커덕.

주영이 벨을 누르기도 굳게 닫힌 빌라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트레이닝복을 입은 금발머리 청년이 주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유은호였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당당하게…….”

매서운 눈빛으로 외치던 그는 주영의 몸 상태를 보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그 꼴은.”

나노슈트는 반쯤 뜯겨져 있었고 온몸엔 핏물을 뒤집어쓴 듯하다.

유은호가 손을 벌려 부축하려 하는데, 주영이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잘 들어.”

“뭐를?”

“어르신께선 그때의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어.”

그녀의 말을 곱씹던 유은호가 인상을 썼다.

“고작 그 이야기를 하려고 그 꼴로 찾아왔다고?”

“그리고 ‘빛그림자’라는 코드네임을 쓰는 인물을 찾아. 통합정보국에게 명령을 내리는 자야. 그자의 꼬리를 잡으면 모든 걸 알게 될 거야.”

“잠깐만, 뭐야. 그 양반, 죽었어?”

주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술을 깨물었을 뿐이다.

대충 상황을 파악한 유은호가 피식 웃었다.

“갈 때도 아주, 예술로 가시는구만.”

“말조심해라.”

주영은 입술을 깨물었다.

“네놈은 아무것도 몰라. 그분은 많은 사람들을 돕기 위해 블랙 마켓을 장악하신 거야. 그리고…….”

말을 하던 그녀는 현기증을 느끼고 무릎을 꿇었다.

천마가 어느 정도 해독을 해주긴 했지만, 그 건 말 그대로 응급처치일 뿐.

혈액 속에 녹아든 독은 여전히 그녀의 생명력을 좀먹고 있었다.

“그 양반 이야긴 됐수다.”

주영의 몸을 위아래로 살피던 유은호가 팔을 뻗었다.

“들어오셔. 집 앞에서 송장 치울 것 같으니까.”

“걱정 마. 이곳에선 죽지 않을 테니까.”

유은호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죽긴 왜 죽어? 채영아! 여기 사람 죽어간다!”

뒤를 돌아보며 버럭 소리치자 뚜벅뚜벅 소리와 함께 신채영이 내려왔다.

“무슨 헛소리야. 저 사람은 또 누군데?”

눈썹을 찌푸린 신채영의 말에 유은호가 쩝 소리를 내었다.

“남성우 교관 밑에서 일하는 누난데… 내가 찾아가서 뒤통수 맞았나 봐. 이 꼴로 찾아왔네.”

신채영의 눈에서 은은한 광채가 뻗어 나왔다.

주영은 그 빛이 힐러들이 갖고 있는 특유의 광채라는 걸 알고 고개를 저었다.

“소용없어. 어차피 내 장기는 반쯤 녹아서…….”

신채영은 말없이 손을 뻗었다.

그녀의 치료 스킬, 힐링 팩터가 펼쳐진 것이다.

우웅.

밝은 빛이 몸을 휘감더니 몸속을 좀먹고 있던 극독이 서서히 엷어지는 것을 느꼈다.

순식간에 고통이 사라지자 흐릿해져 있던 주영의 눈이 번쩍 떠졌다.

“뭐, 뭐야, 이거.”

“몰랐어? 하긴 허구한 날 사람만 잡으러 다니니 알 턱이 있나.”

유은호는 진지한 표정으로 정중하게 신채영을 가리켰다.

“우리나라에서 전 속성 분야에 통하는 치료 스킬, 힐링 팩터 사용자 신채영 님이시다.”

“힐링 팩터?”

“그래. 어디 가서 말하지 마. 자랑하는 거 싫어하니까.”

주절주절 떠드는 사이 신채영이 손을 거두었다.

“다 됐어.”

“뭐야. 치료하려면 제대로 해줘야지?”

유은호가 민망한 얼굴로 신채영에게 말했다.

중독 증상은 사라졌지만, 주영의 몸 곳곳에 있는 상처투성이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다.

“흥.”

코웃음을 친 신채영은 주영의 상처를 쓱 보더니 차갑게 몸을 돌렸다.

“나머진 알아서 고치라고 해.”

“야, 실컷 자랑했는데 그럼 내 체면이 뭐가 되냐?”

소리쳐도 신채영은 쑥 들어가 버린다.

입맛을 다신 유은호는 할 수 없이 그녀에게 팔을 뻗었다.

“자자자, 내가 꼬매줄게. 들어오셔.”

“꿈도 꾸지 마.”

중독 증상이 사라지자 주영은 또렷한 눈빛으로 몸을 거뜬히 일으켰다.

활활 타오르는 눈동자를 바라보던 유은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기껏 살려놨더니, 또 죽으러 간다고?”

“복수를 하는 거다.”

“복수? 사람 잡는 도살자 주제에 복수는 무슨 복수?”

한껏 비웃음을 머금은 유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죽고 싶으면 가던가. 남성우, 그 양반 곁에서 순장 당하는 게 소원이라면 가야지.”

비웃음을 들은 주영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설령 멀쩡한 상태라고 해도 그 청년을 이길 순 없다. 이 상태로 가봤자 개죽음이다.

곰곰이 생각하던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서야 왜 남성우가 유은호를 찾아가라고 했는지를 깨달은 것이다.

“그래. 어르신은 널 믿고 있었구나.”

심호흡을 하던 그녀는 창밖으로 보이는 달빛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너라면 반드시 그놈을 없앨 수 있겠지.”

“뭔 소리야.”

“내가 할 일은 따로 있어.”

“그게 뭔데.”

주영은 대답하지 않고 출입구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제 서로 볼 일은 없겠지.”

고개를 살짝 돌려 유은호를 바라보던 그녀는 조용히 특수대응팀의 빌라를 빠져나왔다.

떠나가는 주영의 모습을 바라보던 유은호는 직감할 수 있었다.

정말 그녀를 볼 일은 없을 거라는 것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