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250화 (250/285)

제250화. 블랙 마켓으로 간 유은호

암시장(暗市場). 블랙 마켓.

흔히 법에 저촉되는 물건을 암암리에 사고파는 곳을 뜻한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블랙 마켓. 하지만 이 세계에 던전이 생기자 그 의미가 조금 달라졌다.

결코 유통되어선 안 되는 위험한 물품. 그리고 값어치가 상상을 초월하는 물품들이 던전에서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결국 던전이 생긴 뒤, 국내의 암거래 시장의 규모는 급속도로 커져갔다.

결국 당국에선 블랙 마켓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시작했지만, 던전과 미등록 각성자들이 모두 사라지지 않는 이상 애당초 암시장을 뿌리 뽑는 것은 불가능했다.

어느덧 전국 각 지역엔 은밀한 블랙 마켓이 생겨났고, 그 의미도 일반 암시장이 아닌 던전에서 나오는 유물과 재료들을 불법 거래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도심 외곽지역 어느 뒷골목.

번쩍번쩍한 금색 크롬 필름을 입힌 바이크 한 대가 골목에 멈춰 섰다.

달칵 소리와 함께 사이드를 내린 청년이 헬멧을 벗었다. 순간 어두운 골목이 환하게 바뀐 느낌이다.

“후우.”

햇살이 내려앉은 수면처럼 반짝이는 눈동자, 갸름한 턱선, 오뚝한 콧날.

얼핏 보면 여성으로 보일 만큼 수려한 용모의 미청년이다.

체구는 마른 듯하지만 단단하여 가슴 부근의 셔츠엔 대흉근이 불룩 솟아 있었다. 바로 특수대응팀의 딜러, 유은호였다.

“어휴, 여기가 무슨 슬럼가야.”

골목 곳곳에 웅크린 채 바이크를 노려보며 군침을 삼키는 노숙자들을 보자 유은호가 혀를 찼다.

띠링.

바이크 경보기능을 켜자 바퀴의 디스크 로터 부분에서 작은 금속이 튀어나왔다.

그걸 본 순간 노숙자들은 흥미 없다는 듯 이내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

“아주 기가 막힌 곳에 자리를 잡았구만.”

이 어두운 골목엔 속칭 ‘블랙 마켓’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특히나 이곳은 환각을 일으키는 약물을 주로 취급하는 곳으로, 인생을 포기한 망나니들이나 혹은 정신이 망가진 각성자들이 주로 찾는 곳이기도 했다.

골목 끝자락에 있는 어느 담배가게.

어슬렁거리며 골목을 둘러보던 유은호는 그 담배가게에 멈춰 섰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화공약품 냄새가 코를 찌른다.

내부엔 나무로 만든 낡은 매대와 장식장이 채워져 있었고, 환각을 일으키는 던전 재료로 만든 사제 담배들이 즐비하게 꽂혀 있었다.

“미친, 아주 약쟁이를 만들려고 작정했구만.”

매대에 꽂혀 있는 담배 하나를 집어 들고 냄새를 맡은 유은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담배에 말아 넣은 재료가 메스암페타민과 동일한 효과를 가진 던전 재료, ‘쾌락풀’이었던 것이다.

“이것들의 뿌리를 뽑으려면 블랙 마켓의 뒤를 봐주는 놈들부터 싸악 족쳐야 하는데.”

낮게 중얼거린 유은호는 가게 안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좁은 통로 사이로 낮은 불이 켜져 있는 쪽방이 보였다.

그리고 그곳엔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남성이 의자에 웅크려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생기 없는 눈동자와 너절한 옷차림은 담배가게 주인보다는 오히려 노숙자에 더 가까웠다.

“와, 안 믿겨져!”

뒷방 안으로 들어간 유은호는 추레한 중년남성을 보고 감탄성을 터뜨렸다.

“사상이라는 자가 이런 퇴물들이 모여 있는 곳에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다니. 그러니까 사람들이 못 찾지.”

사상(死商).

블랙 마켓의 제왕. 전국에 거미줄처럼 퍼져 있는 상인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죽음마저 사고팔기에, 혹은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위험한 물건들을 팔기 때문에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확실한 건, 블랙 마켓을 장악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고, 또 많은 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 물건을 거래한다는 점이었다.

전국의 블랙 마켓을 휘어잡는다는 죽음의 상인이 바로 저 추잡한 차림의 남성이란 말인가?

“세금은 내고 장사하는 건가?”

유은호의 외침에도 중년남성은 미동도 하지 않고 TV 화면만 바라보았다.

텅 비어 있는 남성의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던 유은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거, 명줄 더럽게 기네. 아직도 안 뒈지고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으니.”

“…….”

“계속 벙어리인 척하려고?”

여전히 대답이 없자 유은호가 담배가게 주변을 쓰윽 둘러보더니,

“이런 식으로 나올 거면 어쩔 수 없지. 일단 이 약쟁이 소굴부터 불태워 버리고…….”

다시 중년 사내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비밀 장부랑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는 중간책들부터 싸그리 처리하고 다시 오겠수.”

유은호가 미련 없이 몸을 돌리자 웅크리고 있던 중년남성이 입을 열었다.

“죽고 싶어서 온 거냐.”

기이한 목소리다.

듣는 순간 진득하고 혐오스런 무언가를 삼킨 듯한 역겨움이 밀려온다. 마치 인간이 아닌 미지의 생명체가 말을 하는 것 같다.

귀를 후비적거린 유은호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이런 곳에 처박혀 있는 뒷방 늙은이에게 퍽이나 죽겠네.”

척.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유은호는 턱 아랫부분이 싸늘해졌다.

언제 어디서 튀어나온 것일까?

시선을 슬쩍 아래로 내려다보니 한 소녀가 발톱 모양의 칼을 자신의 턱에 겨누고 있었다.

예리한 칼날이 유은호의 턱 밑을 살짝 파고들자 중년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놔둬라.”

그 말에 싸늘한 시선으로 유은호를 노려보던 소녀가 천천히 칼을 갈무리했다.

“아니, 또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거야!”

그런데 소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유은호가 분노에 찬 시선으로 중년남성에게 외쳤다.

“아직도 어린애들을 데려다가 암살자로 만들고 있어?”

그러자 중년남성 옆에 시립해 있던 소녀가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헛소리하지 마. 누가 어린애야.”

“이 꼬맹아. 그럼 네가 어른이냐?”

유은호가 엄한 눈으로 쏘아붙이자 중년남성이 덤덤하게 말했다.

“주영이는 서른 살이다.”

“뭐? 거짓말하지 마.”

“의심나면 직접 물어봐라.”

중년남성의 말에 유은호가 소녀를 바라보았다.

앳된 얼굴에 눈동자에선 십 대 청소년들에게나 보이는 천진하고 반항적인 기운이 흐른다.

아무리 많이 쳐줘 봐야 십 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이 소녀가 서른 살이라고?

“꼬마야. 혹시…….”

“꼬마 아니라고 했지.”

소녀가 차갑게 말을 잘랐다. 독살스런 눈빛을 보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와아, 누나. 너무 동안이시다.”

유은호가 넉살 좋게 말을 돌리자 소녀, 아니, 주영이라 불린 여성이 버럭 소리쳤다.

“누가 니 누나야?”

“아이 참. 그러지 말고 통성명이나 해요. 이름이 주영이에요?”

“용건이 뭐냐.”

주절주절 떠드는 유은호의 말을 자른 중년남성이 품속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물었다.

치익.

손도 대지 않았는데 담배 끝부분에선 저절로 불길이 솟아올랐다.

“보아하니 죽고 싶어서 온 건 아닌 것 같고.”

담배를 깊게 한 모금 빨아들인 중년남성이 중얼거리자, 배실배실 웃던 유은호가 차갑게 말했다.

“내 얼굴 보면 떠오르는 거 있을 텐데.”

“후우.”

자욱이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 속에서 가려진 중년남성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역시…그것 때문이었나.”

“알았으면 빨리 이야기나 풀어놔 보슈.”

“꿈도 크군.”

“피차 피곤하게 이러지 마십시다.”

중년남성이 피식 웃자 유은호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팔짱을 끼었다.

“나도 처음엔 그냥 밑바닥부터 싹 다 조지려고 했으니까. 당신 얼굴 꼴 보기 싫어서.”

“…….”

“근데 막말로다가 밑에 애들이 무슨 죄야? 당신 같은 쓰레기 밑에서 돈 몇 푼 벌자고 목숨 거는 불쌍한 애들이잖아? 그냥 몇 마디 나누면 끝날 일인데. 안 그래?”

담배 연기를 후우 하고 내뱉은 중년남성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날 자극하지 마라, 유은호.”

“자극을 한 건 그쪽이 먼저였지. 남성우 교관.”

순간 중년남성, 남성우의 눈이 잠시 흐려졌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은 모르는 비밀이었다.

블랙 마켓을 움직이는 죽음의 상인. 사상이라 불리는 그는 과거, 국가 비밀조직의 암살자를 양성하는 훈련 교관이었다는 것을.

“그러길래 쥐 죽은 듯이 살고 있는 사람을 왜 건드려? 실드경계지역에 처박혀, 순찰이나 돌고 있는 사람을!”

버럭 소리친 유은호는 하아 하는 소리를 내었다.

“아, 흥분했네.”

심호흡을 한 유은호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방긋 웃으며 말했다.

“남 교관. 아니, 남 교관님. 그냥 쉽게 가자고요.”

남성우에게 한 발짝 더 다가온 그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타일런트. 그거 누가 풀었어요?”

“…….”

“통합정보국을 수족으로 돌리는 수준이란 건 알고 있으니까 책임자만 말해봐요. 꼬리 말고 몸통 말고, 확실한 대가리.”

“말할 것 같냐.”

“한마디 말만 해주면 쉽게 끝나는데? 이렇게 힘들게 일궈놓은 사업, 다 쑥대밭으로 만들 거예요?”

“재밌겠군.”

남성우가 담배를 비벼 끄자 유은호가 미련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협상은 결렬.”

몸을 돌린 그는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지만, 한편으로는 악마처럼 잔혹해 보이는 미소를 머금었다.

“앞으로의 벌어지는 일은 모두 남 교관이 자초한 겁니다.”

언제나 장난스럽게 말을 하지만 유은호는 내뱉은 말을 지키지 않은 적이 없다.

쑥대밭으로 만든다고 공언한 이상, 그 이상의 일이 벌어질 것이 분명했다.

끄덕.

그때 유은호의 뒷모습을 응시하던 주영이 창밖을 보며 고개를 까닥거렸다.

그 순간, 어둠 속에서 물들어 있던 까만 그림자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 마라.”

남성우가 낮게 말하자, 걸음을 멈춘 유은호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아니, 해도 돼.”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는 그림자들을 힐긋 바라본 그는 차가운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너희들 모가지 정도는 5초 만에 따줄 테니까.”

봄바람 살랑거리는 유은호의 미소가 어느새 섬찟한 살기로 변해 있었다.

“뭐해. 빨리 덤벼? 내가 먼저 손을 쓰면 기회도 없을 텐데.”

그 순간 담배가게 내부는 냉동고처럼 차갑게 얼어붙었다.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그림자들은 목 부근을 어루만졌다. 이미 자신의 목이 떨어져 버린 듯한 착각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저놈은 사신이다!

그림자들이 주춤거리는 모습을 본 주영의 눈꼬리가 살짝 떨렸다.

그저 얼빠진 청년인 줄 알았건만, 수많은 요인들을 암살한 특급 암살자조차 얼어붙게 만드는 저 기운은 뭐란 말인가?

“그만.”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성우가 낮게 손을 저었다.

“그만하도록.”

“계속해도 되는데?”

“피를 보려고 온 건 아닐 텐데.”

유은호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니, 피는 여러 번 보려고 했죠. 싸그리 죽이려고 몇 번이나 찾아왔으니까. 근데 왜 지금껏 가만히 놔뒀는 줄 알아요?”

잠시 말을 멈춘 유은호가 해맑게 미소 지었다.

“지금 교관님을 죽이면 너무 편히 보내드리는 것 같아서요. 몸이 성치 않아 아프니까, 조금 더 고통스럽게 살다가 나중에 죽이려고요.”

입가에 그린 미소와 달리 눈동자엔 처절한 살기와 원한이 뒤섞여 있었다.

담배 한 개비를 다시 입에 문 남성우가 길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뭐, 틀린 말은 아니군.”

여유로운 표정으로 불을 붙인 그는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우리네에겐 죽는 건 고통이 아니라 휴식이니.”

남성우의 목소리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담겨 있었다.

몸은 망가지고 정신은 피폐해졌다. 너무나 많은 업보를 진 탓인지, 그는 지금까지 한순간도 편하게 지낸 적이 없었다.

“흥.”

그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낮게 코웃음을 친 유은호가 살기를 거두며 말했다.

“아, 됐고. 그냥 알려주기나 하셔. 오늘 이후 당신이란 존재는 없는 셈 칠 테니까.”

“잊겠단 말인가.”

하얀 연기를 가슴에 한껏 머금은 남성우가 미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너한텐 꽤나 손해 보는 장사일 텐데.”

“언제부터 내 손해 챙겨줬다고? 헛소리 말고 대답이나 하시죠.”

“후우.”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끈 남성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은 나가 있어라.”

괴기스런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담배가게 내부는 처음부터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텅 비어 있었다.

“와, 뭐야. 무슨 비밀장치 만들어놓은 거야? 엄청 빠르네.”

유은호가 가게 주변을 둘러보며 너스레를 떨자 남성우가 테이블 앞에 앉았다.

“우선 앉지.”

유은호는 순순히 쪽방으로 들어와 앉자 남성우는 TV 리모컨의 버튼을 눌렀다.

철커덩.

거대한 쇳덩이가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열려 있는 쪽방의 문이 굳게 닫혔다.

닫힌 문에서 거무튀튀한 금속 광택이 나는 것으로 보아, 이 쪽방 전체는 특수대응팀의 상황실과 비슷한 합금 재질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후우.”

다시 꺼내든 담배를 한 모금 깊게 빤 남성우의 눈에선 전광(電光)이 쏟아져 나왔다.

“빅브라더.”

“빅브라더?”

“그냥 그렇게 불러. 아무도 그자의 정체를 몰라. 본명도 출신도 밝혀진 것이 없어.”

유은호를 응시하는 남성우의 표정은 엄숙하게 굳어져 있었다.

“마치 하늘에서 툭 떨어진 듯한 놈이 지금 통합정보국을 주무르고 있는 거다.”

“그자가 원하는 게 뭔데.”

“글쎄.”

깊게 우러나온 한숨을 내쉰 남성우가 덤덤히 말했다.

“확실한 건 그자의 이름을 이야기한 순간, 지금까지 내가 이루었던 사업의 절반은 날아갔다는 거다.”

통합정보국을 주무르는 인물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무언가를 생각하던 유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만나서 기분 더러웠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리고 앞으론 다신 보지 맙시다.”

“걱정 마라. 둘 다 살아 있을 확률은 없으니.”

“무슨 말이요.”

“오늘 이후 너와 나. 둘 중 하나는 분명 죽을 테니까.”

거대한 음모를 벌이는 우두머리를 붙잡으려 하는 유은호.

거대한 음모의 우두머리의 정보를 발설한 남성우.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어야 할 운명이 된 것이다.

“거, 마음에 드는 말이군.”

피식 웃은 유은호가 닫혀 있는 문 앞에 섰다.

남성우는 문을 열어주기 위해 테이블에 올려놓은 TV 리모컨을 빤히 쥐었다. 잠시 무언가를 골몰히 생각하는 듯 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더 이야기해 주지.”

“말하쇼.”

“발할라 프로젝트.”

그 말을 듣는 순간 유은호는 심장이 쿵쾅거리고 온몸의 피가 밖으로 빠져나가는 듯했다.

철커덩.

리모컨을 누르자 굳게 닫혀 있던 쇠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무언의 축객령이었다.

“…….”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 듯 허공을 바라보던 유은호가 문밖을 나섰다.

그러다 걸음을 잠시 멈추었다.

“정말이지, 더럽게도 질긴 악연 아닙니까?”

고개를 살짝 돌린 유은호가 의자에 기댄 남성우를 힐긋 바라보며 말했다.

“죽어야 할 사람들은 살고, 살아야 할 사람들은 모두 죽었으니까.”

눈썹을 한껏 위로 들어 올린 남성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세상이 원래 그런 식이 아니더냐.”

그 사이 우뚝 서 있던 유은호의 그림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렇군.”

유은호의 말을 곱씹던 남성우가 긴 숨을 들이쉬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때 스윽 하는 소리와 함께 주영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다.

“처리할까요?”

“아서라.”

담배에 불을 붙인 남성우가 피식 웃었다.

“저 녀석은 못 죽여.”

고개를 숙이고 있던 주영이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죽일 수 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각성자라고 해도…….”

“저 녀석. 이미 죽었거든.”

“네?”

주영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껌뻑였다.

그렇다면 방금 전 걸어 나간 유은호는 귀신이란 말인가?

“안 그랬음 오래전에 내가 죽였을 거야.”

알 수 없는 말이다.

남성우는 수수께끼와 같은 말을 중얼거리며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화아아악.

하얀 담배 연기가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 모습은 마치 덧없이 사라지는 인간들의 삶을 보여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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