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1화. 특수대응팀, 습격당하다 (3)
“이거 웃기는 놈이군.”
곽철우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손목 살이 뜯겨진 유은호의 팔을 내려다보았다.
“그걸 뜯었다고 육체각성도가 바로 회복되는 줄 아는 건가.”
“육체각성? 그런 거 필요 없어.”
유은호는 손가락을 입 안에 넣더니 찌익 하는 투명한 실을 뽑아내었다.
그것은 암살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암살용 로프였다.
“지금으로도 충분하니까.”
로프를 양손으로 감아쥔 유은호의 눈동자에선 한없이 어둡고 적막한 빛이 흘러나왔다.
그 모습은 죽은 자의 영혼을 바라보는 사신의 모습과도 같았다.
“같잖은…….”
곽철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은호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들이마시고 내쉬는 짧은 호흡이 한번 반복되었다.
휘익. 처억. 쿵.
연달아 들리는 소리와 함께 곽철우 옆에 있던 김철영이 통나무처럼 쓰러졌다.
“…….”
곽철우는 그대로 우뚝 서 있었다.
어떻게 유은호가 움직였는지, 무슨 방법으로 부하의 목을 베었는지는 전혀 보지 못했다.
‘이 정도였나.’
유은호에게 채운 바늘 수갑은 일반 바늘 수갑보다 신경물질이 열 배는 더 채워져 있는 터였다.
그런데도 이러한 움직임을 보이다니?
‘아니. 스킬을 사용한 게 아니군.’
곽철우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유은호의 번개 같은 동작이, 초일류 암살자만이 발휘할 수 있는 움직임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능동위장슈트를 입으면 뭐 하냐. 비릿한 냄새가 풀풀 풍기는데.”
낮게 툴툴거리는 유은호의 눈동자는 무서울 만큼 차갑게 정지되어 있었다.
“근거리에선 위장슈트 소용없다는 거, 훈련소에서 안 배웠어?”
사신처럼 낮은 유은호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곽철우가 손을 뻗었다.
“흩어져!”
콰앙!
염동력의 힘이 사방으로 쏟아지자 폭음이 터져 나오고 집기가 폭발했다.
하지만 그것은 실수였다.
흩어지는 먼지와 폭음 때문에 오히려 유은호가 은신하기에 좋은 상태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타일런트 병기를 사용해!”
곽철우의 외침에 나머지 요원 중 한 명이 재빨리 허리춤에 있는 권총을 뽑았다.
탕탕탕.
유니스티움을 섞은 탄알이 유은호의 어깨와 가슴 부위를 스쳐 지나갔다.
치이이익.
나머지 요원은 손목에 부착되어 있는 가스 분사식 타일런트를 사용했다.
“이야, 군경에서도 함부로 안 쓰는 타일런트까지 가져온 거야?”
하지만 소용없었다.
어느새 유은호는 권총을 든 요원의 등 뒤에 달라붙은 채 나직이 속삭였다.
“근데 사람을 죽일 땐, 그런 것 따윈 필요 없어.”
“크윽!”
당황한 요원은 재빨리 뒤로 권총을 발사했다.
탕탕 소리가 울려 퍼졌으나 어느새 유은호의 그림자는 사라져 있었다.
투욱.
동시에 손목 끝이 찌릿하더니 권총을 쥐고 있던 요원의 손이 툭 떨어졌다.
“으아앗!”
“비켜!”
곽철우는 손을 뻗어 염동력을 발휘했다.
박살 난 채 바닥에 떨어진 집기 조각들이 모조리 허공에 떠오르더니,
퓨퓨퓨퓨퓨!
마치 산탄총처럼 사방으로 쏟아져 나갔다.
말은 비키라고 했지만, 자신들의 부하까지 희생시키는 잔혹한 수법이었다.
“큿.”
그때 바닥에 쓰러져 있던 두 요원의 몸뚱이 뒤로 신음성이 들렸다.
은신해 있던 유은호였다.
그는 팔이 잘린 요원의 몸뚱이를 방패 삼아 숨었지만, 위장용 나노슈트는 은신 기능 때문에 강화 섬유와 프로텍터가 장착되어 있지 않았다.
결국 쏟아진 집기들이 요원들의 몸을 통과했고 함께 치명상을 입은 것이다.
“하아. 하아.”
가쁜 숨을 몰아쉰 곽철우는 쓰러진 채 피를 흘리는 유은호를 내려다보았다.
프로필상의 그의 나이는 이제 스물여덟. 하지만 앳된 얼굴은 마치 십 대 청소년을 보는 듯했다.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살아왔길래, 나이도 어린놈이 암살기술에 정통한 것일까?
“죽여주지.”
어쨌든 승자는 자신이다.
유은호를 내려다보던 곽철우가 손을 내뻗었다. 단숨에 염동력으로 몸 안쪽을 파괴하려는 것이다.
“S급 스킬은 아닌가 보네.”
그때 누워 있던 유은호가 번쩍 눈을 뜨며 미소 지었다.
“염동력을 사용할 때마다 손을 뻗는 걸 보니.”
당황한 곽철우는 재빨리 염동력 스킬을 사용했다.
하지만 손목이 화끈거리더니 스킬이 이어지지 않았다. 어느새 붉게 물든 로프가 손목을 절반 이상 파고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염동력 스킬 사용자라면 애시당초 이런 좁은 곳은 피했어야지.”
파아!
유은호가 손을 당기자 곽철우의 손목이 통째로 날아갔다.
그의 오른손에는 두 번이나 극한각성을 통해 얻은 A급 염동력 스킬, ‘물체 조작’이 깃들어 있다.
손이 잘렸으니 이젠 영영 스킬은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네놈도 암살자였군.”
잘린 팔목을 움켜쥔 곽철우가 이를 깨물었다.
“그래서 그 나이에 전략기획실 직속의 부서 요원이 된 거야.”
“거참, 말 많네.”
비틀거리며 일어난 유은호가 핏물을 뱉어냈다.
“퉤.”
내장이 뒤틀리고 늑골과 갈비뼈 몇 대가 부러진 상태였으나, 그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정찰팀 불러.”
“뭐라고?”
“밖에 정찰팀 있을 거 아냐? 빨리 부르라고.”
가쁜 숨을 몰아쉰 유은호는 곽철우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부서진 소파에 기대앉았다.
“단숨에 처리하고 싶은데, 바늘 수갑 때문에 육체각성도가 바닥이야.”
스윽.
어느새 곽철우의 목에는 예리하고 가느다란 실이 담겨 있었다.
“빨리 불러. 머리통을 떼어버리기 전에.”
“그냥 날 죽이고 얌전히 기다리는 게 더 나을 텐데.”
“헛소리 마. 네놈이 죽으면 그대로 후퇴할 거잖아.”
“내가 불지 않을 것 같으니, 부하를 잡아다가 고문을 할 생각인가”
텅 빈 시선으로 앉아 있던 유은호가 실을 잡고 있는 손을 올렸다.
“거, 되게 말 많네. 그냥 당길까.”
“불러주지.”
곽철우는 미소를 머금었다.
“이래도 저래도 손해볼 게 없으니.”
그리고 무전기에 천천히 손을 갖다 대었다.
‘내가 오른손으로만 염동력을 발휘한다고 생각하나 보군.’
곽철우의 입가에는 잔혹스런 미소가 떠올랐다.
피나는 연습과 훈련 덕택에, 그는 왼손으로도, 심지어 가만히 서 있어도 염동력을 발휘할 수 있다.
물론 손을 내밀 때보다 힘은 현저히 떨어지긴 하지만.
둥실.
곽철우가 염동력을 슬쩍 발휘하자, 멀리 떨어진 나무 조각 하나가 허공에 떴다.
이 나무 조각 하나만 제대로 던져도 유은호의 경동맥을 끊어버릴 수 있다.
‘이놈. 끝이다.’
살짝 띄운 나무 조각을 유은호의 목을 향해 날리려는 순간,
치익.
낮은 노이즈 소리와 함께 이준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B팀… 전멸했습니다.
“뭐라고?”
순간 곽철우는 귀를 의심했다.
최신형 타일런트로 무장한 요원들은 1급 각성자도 암살할 수 있다.
그런데 고작 한 사람을 잡지 못하고 전멸했다고?
-괴물입니다. 타일런트가 아예 통하지 않습니다.
이준성은 치명상을 입었는지 횡설수설했다.
-아무래도 정보가 새어 나간 것 같습니다. 이미 모든 걸 알고 대비를…….
콰직.
둔탁한 파괴음과 함께 더 이상 무전은 들리지 않았다.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있던 곽철우는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저곳에선 무슨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으하하하!”
그때 무전 소리를 들은 유은호가 폭소를 터뜨렸다.
“미친놈들. 너네 옥탑방 쪽에도 요원을 보낸 거냐?”
“뭐?”
“미친놈들. 그분이 어떤 분인 줄 알고… 쿨럭.”
굵은 핏덩이를 내뱉은 유은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배후를 캐긴 글렀네.”
곽철우가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유은호는 쥐고 있던 실을 당겼다.
촤악 소리와 함께 차가운 마룻바닥이 보인다.
그것이 곽철우가 이승에서 본 마지막 광경이었다.
“후우. 후우.”
소파에 기대 있던 유은호가 텅 빈 시선으로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핏물로 범벅이 되어 있는 두 손. 코끝으로 느껴지는 익숙한 피 냄새.
뼈가 흩어지고 내장이 조각난 듯한 익숙한 고통.
특수대응팀에 오고 나선, 이젠 더 이상 이런 짓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랬는데.
팀장님이 그렇게 약속했는데…….
“정말 싫다.”
소파에 머리를 젖힌 유은호가 두 눈을 감았다.
그러다 묘한 감각을 느끼고는 다시 번쩍 눈을 떴다.
“흠.”
어느새 유은호의 눈앞에는 회색빛 도복을 입은 채 붉은 눈을 번뜩이는 그림자가 우뚝 서 있었다.
바로 천마였다.
“천마 님?”
“이 쥐새끼들의 정체가 뭐냐.”
천마의 굵은 주먹에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만 봐도 유은호는 옥탑방에 덤벼들었던 요원들의 최후를 짐작할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억지로 몸을 일으킨 유은호가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아마도 천마 님을 저희와 같은 협회 소속이라고 판단하고 처리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누구냐고 물었다.”
“…통합정보국 소속의 암살자 같습니다.”
천마는 눈썹을 찌푸렸다.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단체의 이름이다.
“그게 뭐냐.”
“온갖 더러운 일은 도맡아 하는 비밀조직입니다.”
눈살을 찌푸린 천마는 문득 핏물에 절여진 유은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중상을 입었음에도 눈빛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고, 전신에는 벼려진 칼날과도 같은 싸늘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랬나.’
그저 실없는 동네 한량이라고 생각했건만.
그 역시 피와 살육이 난무하는 수라전장을 헤치고 살아온 전사였던 것이다.
“성가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형편없는 실력이었다.”
“네?”
“본좌를 기습한 자들 말이다.”
유은호가 눈을 껌뻑이자 천마가 코웃음을 치며 몸을 돌렸다.
“다음에는 제대로 된 놈들을 보내라고 전하도록.”
천마가 휑 하니 떠나자 유은호는 다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하.”
헛웃음이 터져 나온다.
유은호는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처리하지 못할 인간은 없다고 생각했다.
세상에서 제일 강할 거라고 자부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끝을 알 수 없는 힘을 갈무리한 저 초인의 뒷등을 따라잡진 못할 것이기에.
부르르릉.
그때 멀리서 익숙한 배기음이 들려왔다.
던전용 몬스터 트럭에 브루스 머플러 배기 튜닝을 한 소리다. 바로 특수대응팀의 M903 트럭의 소리다.
“호조야!”
1층에서 우당당탕 소리와 함께 천둥 같은 외침에 울려 퍼졌다.
“이놈들, 뭐야?”
경악을 지르며 4층으로 올라온 한만재는 입을 벌렸다.
4층 내부의 집기는 모두 박살 나 있고, 피에 젖어 있는 시체들 사이로 유은호가 앉아 있었다.
“은호야!”
한만재는 피어 절은 모습으로 소파에 기대 앉은 유은호에게 달려와 소리쳤다.
“어떻게 된 거야? 호조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아들이 걱정된 나머지 유은호가 입은 상처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상황실에 무사히 있어요. 걱정 말아요.”
“그, 그래?”
안도의 표정을 지은 한만재가 상황실로 뛰어가려 하자 유은호가 재빨리 그의 손을 붙잡았다.
“형님.”
“왜, 왜?”
입에서 흘러나온 피를 닦은 유은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은 열지 마요.”
“뭐?”
“이 꼴… 호조한테 보여줄 거예요?”
“아.”
차분한 유은호의 눈빛을 마주하고서야 한만재는 이성을 차렸다.
그리고 그제서야 유은호가 중상을 입었다는 걸 발견했다.
“은호야, 너…….”
양 손목 부근 피부가 완전히 사라져 있고 전신에는 크고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얼마나 피를 많이 흘렸는지 바지 부근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괜찮아요. 죽을 정도는 아니니까.”
“괜찮다니? 이렇게 상처가 깊은데!”
한만재는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의료팀을 호출하려 했다.
하지만 유은호가 그의 팔을 잡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바늘 수갑 찬 것 때문에 각성도가 떨어져서 그래요.”
“은호야.”
“어차피 오늘 채영이 돌아오잖아요. 그때 좀 치료받으면 돼요.”
손을 흔든 유은호는 비틀거리며 아래층 계단으로 걸어 내려갔다.
* * *
초홍은 분노했다.
지금까지 그녀는 협회에서 어떠한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묵묵히 견뎠다.
목숨이 걸린 임무를 수행했고, 이해할 수 없는 지시도 모두 받아들였다.
그것이 지금까지 자신을 지켜준 스승, 장금선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그녀는 결코 지금의 상황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이제 갓 초등학교 5학년인 아이와 은호가 살해당할 뻔했습니다.”
날카로운 초홍의 목소리가 회의실 내부에 울려 퍼졌다.
“아무 이유도 없이 주둔지로 쳐들어와 암살을 시도했는데, 그걸 그냥 넘어가라고요?”
“그냥 넘어가라고는 하지 않았네만.”
창가를 내려다보던 김수웅이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말했다.
“통합정보국에선, 산업기밀과에서 잘못된 정보를 입수해 벌어진 일이라고 인정했어. 관련자들을 모두 문책, 엄중한 처벌을 내렸지.”
“잘못된 정보를 입수해서 벌어진 일이라고요? 그 말을 믿으라는 겁니까?”
초홍의 눈에선 불티가 튀어나올 것만 같다.
“맞아. 꼬리 자르기에 들어간 셈이지.”
김수웅의 목소리에는 아무런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겠나. 부국장 단독으로 벌인 일 때문에 산업기밀 과장의 목이 날아가고 부서가 통째로 해체됐어. 이 정도라면 꼬리가 아니라 팔 하나 정도 자른 셈이지.”
들을 가치도 없는 말이다.
터져 나오는 분노를 참지 못한 초홍은 품속에 있는 신분증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더 이상은 못 하겠습니다.”
그리고 뒷짐을 진 채 창밖을 바라보는 김수웅을 보며 외쳤다.
“관두겠습니다.”
“관두겠다고.”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아이와 제 부하가 영문도 모른 채 살해당할 뻔했습니다.”
초홍은 가증스럽다는 듯 말했다.
“실수니까 넘어가라고요? 그게 말이 됩니까?”
“관련자들은 모두 처벌받았고 통합정보국 부서 하나가 통째로 날아갔어. 솔직히 말해 이쪽에서도 더 요구할 게 없을 정도야. 그런데 뭘 더 바라는 거지?”
“진실이 빠져 있지 않습니까.”
“진실?”
초홍이 차가운 눈으로 김수웅을 바라보았다.
“협회 눈 밖에 벗어난, 실드경계지역으로 전출당한 작은 팀입니다. 저희가 갖고 있는 자료라곤 던전을 순찰하고 각성자들을 구조했던 것들밖엔 없고요.”
“…….”
“협회 각성자들 중에 국제 테러리스트가 있습니까? 무슨 정보를 입수했길래 통합정보국에서 암살팀을 보낸 거죠? 잘못된 정보라고요? 출처가 어딥니까?”
김수웅이 침묵하자 초홍이 경멸스런 표정을 지었다.
“분명 저희 팀이 모르는 진실이 있겠죠. 그리고 그걸 알지 못하는 이상, 언제고 또 이런 일이 벌어질 테고요.”
“흠.”
고개를 끄덕인 김수웅은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관두겠다는 건 자네 혼자만인가? 아님, 팀원 전부?”
“모두 같은 마음일 겁니다.”
“그래? 나와 생각이 다르군.”
유리창에 반사된 김수웅의 입가에는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만두는 건 아마 자네 혼자겠지.”
“천만에요.”
“한만재, 유은호, 신채영… 그들이 평범한 각성자의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물론입니다. 아무 길드에 들어가도 상위 랭커가 되겠죠.”
“잊었나 보군.”
김수웅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박정민 실장이 왜 자네들을 한데 묶었는지, 자네가 왜 팀장이 되었는지 말야.”
“…….”
“뭐, 상관없는 말이려나.”
그리고 테이블에 올려진 초홍의 ID카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수고했네.”
의외로 김수웅은 초홍의 결정을 선선히 받아들였다.
“후임이 결정되는 대로 정식으로 퇴직 처리해 주지.”
“알겠습니다.”
“다만 걱정이군.”
피식 미소 짓는 김수웅이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한만재, 유은호, 신채영…. 그들의 과거를 이해해 주고, 컨트롤 할 수 있는 인물이 협회에 있을런지…….”
순간 초홍은 주먹을 꽉 쥐었다.
시뮬레이션.
상황을 여러 번 반복시켜,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IR 스킬.
발동 시기와 횟수 등이 부정확하다고 알려진 이 스킬로, 김수웅은 전략기획실장의 자리까지 올랐다.
그리고 그는 이 상황을 스킬로 예측한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더라면 초홍의 마음속 깊이 내재되어 있는 두려움을 꿰뚫어 볼 수 없었을 테니까.
“ID카드를 도로 집어도 상관없네.”
고개를 살짝 돌린 김수웅이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홧김에 때려치운다는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만큼 속이 좁은 상사는 아니니까.”
‘으으.’
초홍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실례했습니다.”
그리고 비참함을 꾹 삼킨 채 테이블에 올려 둔 ID카드를 다시 집어 들었다.
“좋아.”
김수웅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몸을 돌렸다.